79. 광고받으려고 재롱떠는 개
“고생했어. 영기씨.”
영기와 함께 경찰서 건물을 나서며 내가 말했다.
단순히 오늘 일에 대해서만 얘기하는 게 아니다.
윤태현과 처음 엮였던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죽 힘들어했을 영기에게 건네는 위로였다.
“선배······진짜 죄송해요. 저 때문에 이렇게 휘말리게 돼서······ 몸은 좀 괜찮으세요?”
영기는 내 몸을 보며 걱정스런 눈빛으로 말했다.
“으응, 괜찮아. 그리고 미안해 할 필요 없어. 내가 휘말린 게 아니라 영기씨가 휘말린 거니까.”
“네?”
내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영기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 끝났나봐?”
슬슬 해가 떨어지고 있는 경찰서 주차장.
TV에서 단 한 번 본적있는 얼굴이 우리 앞에 서있었다.
“아, 선배. 여기까지 왔어요? 영기씨, 인사해 JDBC 강현아 선배야.”
경황없이 내 소개를 들은 영기가 머뭇하다 이내 인사했다.
“네? 아, 안녕하세요. 디지털투모로우 박영기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강현아 기자예요.”
짧은 머리에 강한 눈매의 여성.
강현아 선배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영기가 그 손을 잡고 악수한다.
허나 도통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 고갤 갸웃거렸다.
“윤태현 뉴스는 8시에 나가는 거죠?”
“어. 지금 데스크에 다 얘기해놨어. 안에는, 잘 처리 된 거고?”
나와 강현아 선배의 대화가 시작됐다.
영기는 그런 우리 둘을 번갈아 볼 뿐.
“네. 검찰 송치 하기로 했어요. 합의는 안할 거고.”
“그럼 그 뒤론 우리 몫이겠네. 주 기잔 거기까진 안 팔거지?”
은근히 압박하는 강 선배의 말투.
난 픽, 웃었다.
우리가 이렇게 실제로 얼굴을 맞대고 얘기하는 건 오늘이 처음이다.
뭐, 전화로 통화했던 것도 오늘 일이지만.
어쨌든 강 선배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데엔 충분했다.
“욕심이 많으신 선배시군요. 뭐 그렇게 하세요. 윤태현이 IT업계의 거물도 아니고. 제가 폭행죄까지 취재할 필욘 없으니까요.”
강현아 선배는 내 말을 듣고 입꼬릴 올렸다.
“듣던대로 성격이 쎄네. 뭐 난 맘에 들어. 시원시원하고.”
“제 성격이 JDBC까지 소문났습니까?”
“우리까지만 소문났을까? 조선, 중심, 동오. 여기는 물론이고, 업계에도 쫙 났지.”
무슨 횡포를 부린 적도 없는데, 성격으로 소문이 나다니.
감정이 복잡해진다.
확실한 건 절대 기분 좋은 일은 아니란 거다.
“제가 그렇게 나쁘게 굴고 다닌 건 없는데. 참 묘하네요.”
“원래 그런거야, 이 바닥은. 잘나가는 놈한테 관심주는 거 당연하잖아? 주 기자 이름은 최근 꽤 많이 오르내리니까. 안좋게 얘기하는 놈들도 있지만 신경쓰지마.”
신경 안 쓸 수 없는 얘길 하면서, 쓰지 말라는 건 무슨 심보지.
난 뒷머릴 긁적였다.
뭐 나에 대해 안좋게, 아니 욕을 하고 다닐 사람이라면 꽤 있는 것 같다.
지난 번 유메프 채용갑질 기사냈을 때.
선배 기자들에게 당당하게 대들었으니까.
‘참, 조선일간 표동수 건도 있지.’
어쩌면 그 인간이 날 가장 싫어하지 않을까.
“어쨌든 오늘 연출 좋았어. 우릴 이용해 먹을 생각까지 하다니. 되게 재밌어?”
강현아 선배가 꽤 뼈가 있는 말을 한다.
“이용이라뇨. 도움 주신 거 감사합니다. 선배는 취재땄으니 서로 상부상조했다고 보시죠.”
“뭐가 됐든. 윤태현이란 애를 어떻게 그리 잘 파악했는지 참 대단해? 말한대로 다 풀어내고 말이야.”
난 윤태현이란 인간에 대해 생각해봤다.
그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생계형 관심종자.
이 단어가 적절하다.
“윤태현이 단순했으니까요. 그렇게 할 줄 알았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을 돈처럼 여기는 놈이니까.”
“음~ 관심을 돈처럼? 하긴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이라 불리더라? 걔.”
강 선배가 내 말을 반복하며 근거를 덧붙였다.
“자기 입으로 영기씨를 죽이겠다고 영상까지 올렸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내뱉은 그걸 이행해야 한다고 판단했을 겁니다. 자기 방송 시청자들을 잃지 않아야 자신의 미래도 보장되는 거니까요.”
내 설명을 다 들은 강현아 선배가 손바닥을 탁, 쳤다.
“그러니까, 주 기자가 도화선에 불을 붙여준 거네?”
“아뇨. 그냥 터지는 시간만 좀 앞당긴 것 뿐입니다.”
윤태현은 분면 언젠가 영기 앞에 나타났을 거다.
내가 연락하지 않았더라도 말이다.
그건 확실하다.
[박영기 기자는 광화문 KGT본사에 있다]
이 메세지를 받자마자 바로 달려온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흐응, 뭐 소문보단 겸손하네. 아무튼 오늘 나도 고마웠어. 박 기자도 기사 잘쓰더라. 참고하고 있어.”
“아, 아니예요.”
갑작스런 칭찬에 영기가 부정했다.
“그럼 난 가볼게. 주 기자는 근시일 내에 한 번 더 보자? 응?”
이거 왜이러시나.
강 선배가 치근대듯 내 팔을 주무른다.
“뭐 때문에 그러십니까?”
우리가 또 볼만한 일이 있을까.
윤태현의 철저한 몰락을 위해, 잠시 JDBC의 힘을 빌린거다.
내 계산으론, 이후로 이와 같은 상황은 오지 않을 거다.
“뭐가 됐든~ 딱딱하게 굴지 말고~ 난 간다 안녕.”
강현아 선배가 내 물음을 능글하게 넘긴다.
그는 이 말을 끝으로 손을 흔들며 떠나갔다.
“선배.”
강 선배가 사라지고 난 뒤.
영기가 날 불렀다.
“선배. 이게 다- 선배가 준비하신 일이었어요?”
‘하아. 찬찬히 다시 설명해야겠네.’
강현아 선배가 괜한 소릴 늘어놓은 탓이었다.
사실 난, 영기가 이 부분에 대해 웬만하면 그냥 모르고 넘어가길 바랐다.
허나 이렇게 됐으니, 설명을 해줘야겠지.
“응, 영기씨. 미안하지만, 내가 윤태현한테 문자 보냈어. 우리 광화문에 있다고.”
“······”
“괜한 짓이라고 생각해도 어쩔 수 없어. 난 영기씨가 결자해지하길 바랐어. 영기씨가 윤태현이란 속박에서 벗어나려면 직접 만나서 싸우는 수 밖에 없다고 판단했어. 영기씬 기사론 윤태현을 충분히 때렸지만, 체감하지 못했잖아.”
난 담담하게 해명했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일을 치뤄졌다.
영기는 그간의 태도와 달리, 단박에 냉정한 결단을 내렸잖은가.
“내멋대로 군 점은 미안해. 사과할게. 하지만 난 과거로 돌아가도 똑같이 할거야.”
어쩔 수 없다.
영기를 무른 상태 그대로 놔둘 순 없으니까.
만일 곁에서 떠나 보낸다 해도, 뭐라도 시도는 해봐야하지 않겠는가.
“아뇨. 선배······고마워요. 도와줘서.”
그건 예상외의 옅은 미소였다.
다행히 영기는 불쾌해하지 않았다.
“저도······ 아까 송치시키라고 외쳤을 때. 후련했어요. 10년도 넘은 일이지만, 그녀석이 절 힘들게 했던 것에 대해 댓가를 치루는 것 같았고······”
“그래. 확실히 홀가분해 보이더라. 잘했어 영기씨.”
“네. 그러니까 미안해할 필요 없어요, 선배.”
영기의 위로에 난 겸연쩍었다.
“그 말, 고마워.”
나로썬 참 다행인 전개였다.
영기에게 진실을 고백하는 것.
이는 고민해 풀어야할 숙제였으니까.
쉽게 서로의 진심을 확인한 후.
우리도 천천히 경찰서 정문 밖을 나섰다.
[후배를 참 독하게 키우는 타입이네]
갑자기 휴대전화 진동이 울렸다.
전화길 꺼내 보니 강현아 선배의 문자 메시지였다.
‘이 사람, 어디서 우릴 지켜보고 있나?’
난 급히 주윌 둘러봤다.
하지만 거리에 강 선배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예정대로, 그날 저녁 8시 뉴스에 윤태현의 폭행영상이 방송을 탔다.
[자신을 비판한 기사를 썼단 이유로 인터넷방송 BJ가 기자를 폭행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나나 영기는 기자라는 신분만 노출되고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가 됐다.
반면 윤태현은 얼굴과 실명이 모두 그대로 나갔다.
여론은 폭발적이었다.
최근 한 재벌기업 총수가, 자기 아들을 때린 술집직원들을 보복폭행하면서 화제가 됐기 때문이다.
여론은 윤태현에게 맞은 나와, 이름이 알려진 영기에게 우호적이었다.
특히 영기에겐 힘내란 응원의 댓글들이 디지털투모로우 사이트에 달릴 정도였다.
자동적으로 윤태현을 옹호하던 세력들은 와해된 것처럼 사라졌고.
대신 그를 비난하는 내용의 글들만 인터넷을 장악했다.
난 검찰에 출두해 피해자로서 증언했다.
검사는 내게 윤태현을 2년 최고구형하겠다 강조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난 법무법인을 찾아가 민사소송까지 걸었다.
그렇게 정신없는 몇 주가 흘렀다.
“이제 나 없어도 되겠는데? 이거 내가 더 아쉽겠다.”
오전, 디지털투모로우 사무실 편집국.
난 자리에 앉아있는 영기의 어깨를 주무르며 말했다.
이는 빈말이 아니었다.
윤태현 사건 이후로, 영기는 홀로서기에 성공했다.
이전 보다 더 자신감을 가지게 됐고, 홀로 취재하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기사 꼭지를 잡는 감각도 꽤 늘었다.
주말기사를 포함해 평기자들이 한 주에 내야 하는 발제기사 꼭지수는 6개.
영기는 4-5개 수준까지 발전했다.
‘나로썬 딱히 좋은 전개는 아니지만.’
편집국 내에선, 그러니까 국장대행인 이윤철 대표와 김정효 팀장 사이에선.
초기 계획대로 영기를 인터넷 1진으로 넣어보잔 말도 나오고 있다.
그렇게 된다면, 내가 특종을 낼 분야가 줄어들지도 모른다.
“아직 아니에요. 선배. 솔직히 선배같은 기자 되려면 아직 멀었죠.”
영기는 교과서적인 대답을 내뱉었다.
그렇지.
“바로 나같은 기자는 당연 될 수 없지. 영기씨. 욕심이 과하네.”
큭큭.
내 장난스런 말에 영기가 웃음을 터트렸다.
요근래 가장 밝은 얼굴이었다.
영기는 그렇게 해결됐지만, 내겐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근데 선배. 요즘 대표하고 너무 자주 다투시는거 아닌가요?”
이윤철 대표.
그와는 최대한 말을 섞고 싶지 않았는데.
요샌 그게 참 쉽지 않은 상태다.
“어쩔 수 없잖아. 기사에 간섭하는 정도가 너무 심해졌어. 나 요즘 못나간 꼭지가 한두개씩 꼭 생겨. 이 대표가 다 거르는거야 기사를.”
“네? 왜요?”
내 말에 영기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이 녀석, 평소 사무실에서 나오는 대화를 주의깊게 듣지 않았군.
최근 난 이윤철 대표와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김정효 팀장이 통과시킨 기사들을, 이 대표가 출고하지 않는 일이 잦아졌고.
그가 내게 기사에 대해 지시하거나 조종하려는 경향이 강해진거다.
‘광고 때문이겠지만······너무 노골적이서 더 따르기 싫어.’
이해는 한다.
광고라는 건, 국내언론의 생명줄이다.
돈을 벌어야 기자들에게 월급을 주고 사무실을 운영할테니까.
헌데 내가 연이어 단독 기사를 낸 덕분일까.
이미 디지털투모로우엔 작년보다 광고가 많이 들어온 상태다.
금전적인 문제는 분명 없을 거란 소리다.
‘그런데도······비판적인 논조는 지양하고 기술 위주로 취재해보란 소리만 앵무새 처럼 반복하고 있으니.’
이윤철 대표의 듣기싫은 그 지시사항이 귓가에 맴돈다.
-그럼, 그럼. 비판적인 기사도 좋아요. 하지만 다들 비판하니까 우린 좀 더 긍정적인 방향을 보자는 거지. 응? 기술을 심층적으로 다뤄보는 건 어떨까······
모든 IT업계의 회사들을 ‘기술’만으로 기사를 쓸 순 없다.
그걸 잘 알면서도, 이 대표가 이렇게 기술에 집착하는 데엔 다 이유가 있다.
‘기획 광고기사.’
말그대로.
업체의 기술을 분석해 칭찬하는 기사를 내는 걸로, 광고를 대신하는 거다.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보통 이런 기사는 광고비를 먼저 받고 쓴다.
이윤철 대표는 반대로 기사를 먼저 내고 그 다음에 업체에 접촉하려 한다는 거다.
업계 관계자들을 직접 만나고 다녀야할 나로썬 얼굴 팔리는 일이었다.
‘기사를 썼으니 돈을 달라니. 무슨 인질협박도 아니고 말이지. 도대체 얼마나 더 벌어야 만족하려나.’
이런 점에 있어 나와 이 대표의 감정이 맞지 않는다.
게다가 내가 고생해 취재한 기사들이, 빛을 못본다는 것.
그건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그러고보니 지난 번에 선배 KGT 전산마비 기사 안나갔었죠?”
“어. 별 말도 안되는 이유로.”
일주일 전쯤이었다.
오후 4시부터 5시까지, 한 시간 동안 KGT 전산이 마비된 사건이 있었다.
이 전산은 이동통신가입자들의 신규가입, 번호이동, 요금제 변경 등의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네트워크 시스템을 뜻한다.
그런 중요한 체계가 마비됐다는 건, 꽤 큰 사고였다.
이 사실을 일찍 발견한 난, KGT측 확인을 받아 기사를 작성했다.
그리고 그 뒤는 아까 말한대로다.
“무슨 일제앞잡이도 아니고 말이야. 난 지금 독립운동하다가 탄압받는 기분이야.”
표현이 약간 과장돼있긴 하나, 실제 내 마음은 이랬다.
이윤철 대표는 내 기사를 막은 직후.
KGT홍보실로 연락해 ‘내가 주진형 기사 막았다!’고 외쳤다고 한다.
심지어 이 얘길 KGT 강동우 차장으로부터 전해들었다.
언론사 대표란 사람이 정말 채신머리 없지 않은가.
광고받으려고 재롱떠는 개도 아니고.
“어쩌실 거예요, 선배?”
영기가 걱정된다는 듯 내게 물었다.
뭐 어쩌겠는가.
설마 내가 이 대표에게 순응하고 그저 그런 기사만 쓸까.
그러기엔 내가 가진 기회가 너무 많다.
“걱정하지마. 안그래도 이 대표가 원하는 걸로 한방 준비 중이니까.”
“원하는거요?”
“그래. 기술을 묵직하게 담은, 팩트리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