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래에서 온 특종-80화 (80/107)

80. 어디 한 번 이것도 받아보라지

오전업무를 일찍 마친 후.

“팀장, 일정 나가보겠습니다.”

난 김정효 팀장에게 가 보고했다.

“어. 진형아. 오늘 점심 오플러스인가?”

LC오플러스.

국내 3대 통신사 중 하나다.

김 팀장의 말대로, 난 오플러스 정영환 사원과 점심일정을 잡아뒀다.

“네. 정영환이라고, 유선담당 사원이랍니다. 저도 오늘 처음 봅니다.”

평소 부장이나 차장, 과장등의 홍보인들만 만났는데.

오랜만에 사원을 상대하게 됐다.

대기업 사원이라면, 나이는 내 또래일 듯 하다.

“아, 유선담당이야? 기사는······”

팀장이 다시 자신의 노트북 화면으로 고갤 돌렸다.

아마 내가 보낸 일정보고를 확인하려는 모양이다.

“오플러스, 전화선으로 기가인터넷? 음, 재밌겠네?”

내가 대충 써낸 기사 제목이 읊혀진다.

‘죄송한 얘기지만 아마 그 제목 그대로 나갈 일은 없을 겁니다.’

난 속마음을 털어놓듯, 김 팀장에게 밝게 웃어보였다.

“그래. 서울역이지? 잘 갔다오고.”

“네.”

팀장과 대화를 끝내고, 자리로 돌아가려는 순간.

“어~ 우리 주기자. 잠깐 이리와봐요.”

아, 듣기싫은 목소리의 주인공이 날 불렀다.

난 일단 무표정한 얼굴로 감정을 숨겼다.

그리고 호명한 이윤철 대표의 자리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네. 부르셨습니까.”

“어어~ 주기자. 오플러스 간다고?”

책상에 양 팔꿈치를 기댄 채.

이윤철 대표는 꽤나 관심있는 얼굴로 날 들여다봤다.

“예.”

이 대표와는 그리 길게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난 짤막한 대답을 뱉었다.

“그러고보니 오플러스는 기사가 많이 안나오더라~ 알죠? 우리 주기자. 기술취재 위주로! 비판적인 내용은 쪼끔 밀어두고?”

나만보면 토해내는 레퍼토리도 아니고.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반복해 들은 내용이다.

당장이라도 싫은 티를 팍 내며 반항하고 싶었다.

허나 일단은 참는거다.

어차피 최후에 웃는자가 이기는 것 아니겠는가.

“알겠습니다.”

“좋아요 좋아. 조심히 잘 갔다오세요.”

“네.”

이 말을 끝으로 난 바로 몸을 돌렸다.

짐을 챙기고 급히 사무실을 나선다.

또 괜히 이 대표에게 붙잡히는 건 사양이다.

‘휴. 그나저나 이제부턴 영기 없이 혼자 다녀야 되네.’

결국 오늘부터, 영기가 인터넷 분야 1진을 맡기로 결정났다.

한동안 보도자료나 쓸데없는 기사들을 신경쓰지 않아 좋았는데.

이제부턴 다시 내가 일일히 처리해야 한다.

“선배, 잘다녀오세요.”

“어, 영기씨.”

승강기 하강 단추를 눌러놓고, 기다리는 동안.

영기가 사무실을 나와 내게 인사했다.

“영기씨도 오늘부터 혼자 다녀야 되네. 잘 하고. 이젠 뭐 별로 걱정도 안되네.”

“하하, 아니예요. 실수할 것 같은데.”

“당당하게 굴어. 실수하면 좀 어때. 고치기만 잘 하면 되지.”

“그런가요?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영기는 승강기가 올 때 때까지 내 말동무가 돼줬다.

한 30초 정도가 흐른 뒤.

승강기의 문이 열렸다.

“그럼 오늘은 오플러스 기자실에 계실건가요?”

승강기에 탑승하는 내게, 영기가 물었다.

“어. 바로 거기서 기사 쓰게. 영기씨도 갈 데 없으면 그쪽으로 와.”

“네, 그럴게요.”

“그럼, 나중에 보자.”

“네!”

닫히는 승강기 문틈 사이로 대화를 마친다.

사람을 다 태운 승강기는 곧 1층으로 날 실어내렸다.

건물을 나와 내가 향한 곳은 여의도 역이 아니었다.

그 반대방향에 있는 1호선 대방역.

서울역으로 바로 가기 위함이다.

‘나름 대기업인데 접근성한번 구리네.’

대방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서울역에 내린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서울역의 복잡한 도로를 건너고, 경사로를 한참 올라가야 한다.

더위에 송글송글 맺힌 이마의 땀을 닦아내며, 15분 가까이 고생한 끝에.

난 드디어 높이 솟은 LC오플러스 본사 건물을 볼 수 있었다.

‘여긴 올 때마다 참 힘드네.’

빌딩 입구엔 경호원으로 보이는 두명의 남자가 서있었다.

그들의 위압적인 자세를 구경하며, 난 정문으로 다가갔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경호원이 묵직한 음성으로 방문이유를 묻는다.

LC오플러스 사원들은, 다들 목에 사원증을 걸고 있기 때문에 붙잡지 않는다.

“기자실 왔는데요.”

“아 기자님이십니까? 명함 혹시 받을 수 있을까요?”

난 준비해뒀던 명함을 뒷주머니에서 꺼내 그에게 건넸다.

“아, 네 들어가세요.”

신분만 확인하고, 경호원은 날 통과시켜 줬다.

LC오플러스 1층 로비는 세 구역으로 나뉜다.

좌측엔 2층으로 가는 계단이 있어, 기자실로 갈 수 있다.

가운데엔 출입증을 찍어야 들어갈 수 있는 전자식 개찰구가 설치돼있다.

직원들은 이 개찰구를 지나 승강기를 타고 사무실로 올라간다.

우측엔 작은 사내카페가 있는데, 값이 그리 저렴하진 않다.

난 우선 좌측으로 빠져 계단을 올랐다.

기자실에 들어가 자리를 맡아놓을 겸, 짐을 내려놓기 위해서다.

‘휴. 역시나 사람이 없군.’

기자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아무도 없는 한적한 공간이 나타났다.

이렇게 인적이 드문데엔 물론 지독히 떨어지는 접근성이 한몫한다.

게다가 대부분의 통신기자들은 KGT와 SGT가 있는 광화문으로 가지 않는가.

‘뭐 서울역에 따로 들릴만한 업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지.’

근처에 SGT의 계열사 SGT브로드밴이 있긴하다만.

거기는 기자들 관심이 더 덜한 곳이다.

난 가방을 한 자리에 내려놓으며 생각했다.

이런 이유때문만은 아니겠지만.

LC오플러스는 서울역을 벗어나 용산으로 본사를 이전 준비중이다.

“자. 그럼 연락을 좀 해볼까.”

난 휴대전화를 꺼내 전화를 연결했다.

상대는 오플러스 정영환 사원.

“네 사원님? 오늘 뵙기로 한 디지털투모로우 주진형 기자입니다.”

-아아, 네에 기자니임. 어디계세요?

약간은 귀찮은 듯한.

아니 좀 게으른 목소리가 들려온다.

“네. 저 지금 오플러스 기자실입니다.”

-그러세요? 그럼 5분 뒤에 내려가겠습니다. 로비에 계시면 될 것 같네요.

지난 번 전화했을 때도 느꼈던 지만.

참 열의가 안보이는 어조였다.

“알겠습니다.”

난 짧게 대답하고 전활 끊었다.

5분 후.

로비로 내려온 난, 중앙을 지켜보며 정영환 사원을 기다렸다.

-위이잉.

손에 쥐고있던 휴대전화 화면에, 정영환 사원의 이름이 뜬다.

도착한 모양이다.

“네 사원님?”

-아아. 거기계시는 군요.

수화부의 음성과 로비 내의 소리가 공명한다.

내쪽으로 걸어오는 20대 남성과 눈이 마주쳤다.

“정영환 사원님?”

“안녕하세요오. 기자님.”

전화에서 들었던 그대로.

참 평이하고 느릿한 말투다.

“어디로 가면 될까요?”

내 물음에 정영환 사원이 우측을 가리켰다.

“이쪽 카페로 가시죠. 아니면, 지금 기자실에 다른 기자분들 있나요?”

“없던데요.”

“그으럼 음료만 사서 올라가실까요?”

“그러시죠.”

나눈 대화대로.

우린 사내카페서 차만 구입해, 다시 기자실로 올라갔다.

기자실 한 구석에 마련된 소파에 서로 앉은 뒤.

우린 제대로 인사를 나눴다.

“여기 명함 드리겠습니다.”

“아아, 네에. 저도.”

정영환 사원도 무기력한 말투로 자신의 명함을 꺼낸다.

우린 명함을 교환하고, 서로의 신상에 대해 잠시 이야길 나눴다.

“사원님은 처음 뵙는 것 같은데. 들어오신지 얼마나 되신거예요?”

내 물은에 정 사원이 손가락을 구부려가며 날짜를 셌다.

“한 3개월요.”

음, 역시 그래서 내 기억에 없었던 거로군.

난 그떡끄덕 수긍했다.

어차피 나눌 말이 그리 길지 않으니.

바로 중심내용에 들어가기로 했다.

“오늘 뵙자고 한건, 전화로도 말씀드렸지만 유선인터넷 속도 때문입니다. 오플러스 광랜이 FTTH가 아니라는 얘기가 있던데요?”

FTTH(Fiber To The Home).

광섬유 인터넷의 의미를 담은 약자다.

보통 초고속 인터넷이라 불리는 광랜, 기가인터넷 등은 이 기술을 기반으로 한다.

이전 전화선엔 구리가 들어간 동축케이블이 쓰였다.

구리선은 전송효율이 광섬유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

“아아 그런가요.”

별로 궁금해보이지 않는 얼굴로, 정영환 사원이 말했다.

요근래 홍보팀 인원에게 들었던 대사 중 가장 당황스럽다.

보통 이럴 땐, ‘그럴리가요’나 ‘아닙니다’ 등의 반박을 내놔야 하지 않나.

난 3개월 차 홍보팀 직원임을 이해하며 다시 말을 이었다.

“얘길 들어보니까 오플러스는 FTTH가 아니라 HFC를 쓰는 지역이 많더군요. 그런데도 광랜이라 설명하고 속도도 보장대로 나오질 않고요.”

HFC.

광동축 혼합망(Hybrid Fiber Coaxial)의 약자다.

간단히 표현하자면, 광케이블(FTTH)로 시작해 동축(구리) 케이블로 끝나는 전산망.

한국은 인터넷 강국이라 불리지만, 아직 광케이블이 보급되지 않은 곳이 많다.

HFC는 이런 광케이블이 설치돼있지 않거나, 설치하기 어려운 낙후건물에 대안책으로 쓰이고 있다.

허나 워낙 구형 구리선들이 많아 속도 개선이 크게 이뤄지지 않는게 문제.

“저어기, 근데 FTTH랑 HFC가 뭘 뜻하는 거죠?”

정영환 사원의 질문을 들으면 내가 이마를 탁 쳤다.

상상이상의 초보자다.

“간단히 얘기하면 광랜하고 구리선혼합망입니다.”

“아아, 네에. 맞아요. 이제 기억 나네요. 요즘 공부하고 있거든요.”

그것참 다행인 일이다.

난 정 사원의 추임새를 무시하고 다시 설명에 들어갔다.

“그래서 말인데, 이런 부분에 대한 설명을 고객들에게 하고있는지 궁금하네요. HFC의 경우 비대칭인데다가 속도도 광랜에 못미치는 경우가 많다하던데요.”

이미 여러 실제사례도 확보해뒀다.

“······음. 알겠습니다. 바로 가서 알아볼게요.”

잠시 고민하던 정영환 사원이 대답했다.

그게 끝이 아니다.

더 탄탄한 기사를 쓰기 위해, 물어볼 게 하나 더 남았다.

“이틀 전에 KGT 비전 발표회 있던 거 아시죠?”

“처음듣는데요.”

‘······자랑스럽게 얘기하지마.’

업계 동향을 모를 수야 있다.

헌데 그걸 떳떳하게 굴면 홍보팀에서 근무할 자격이 없지.

그 태도는 근속년수와는 상관없는 거다.

내 회사 후임이 아니니, 왈가왈부 할 필요는 없다만.

참 갑갑함이 느껴진다.

“······어쨌든 거기서 기가-코이어란 기술이 상용화를 준비중이라고 하더군요. 담당자 얘길 들어보니까  HFC망으로도 곧 기가급 인터넷이 지원 될 거랍니다.”

이틀 전, KGT 광화문 본사에서 열린 비전발표 행사.

그곳에 마련된 작은 부스에서 난 기가-코이어를 설명하던 담당자를 만났다.

그 사람은 KGT 융합기술원 인프라연구소 소장이었다.

오플러스의 가짜 FTTH에 대한 얘기도 이 사람에게 들은 거다.

“기가 코이어요?”

어차피 모를게 뻔했기에, 난 바로 설명을 이어나갔다.

“네. 기존 구형 전화선만으로도 1Gbps급 속도를 내는 기술이라던데요. UTP선 교체없이 중간 설비만 바꾸는 걸로 말이죠.”

난 후배를 가르치듯, 상세하게 기가-코이어의 정보를 쏟아냈다.

최신 통신선은 굳이 광케이블이 아니더라도 높은 속도를 낼 수 있다.

단 그 절반의 체급을 지닌 구형 통신선들은 아니다.

헌데 기가-코이어는 구형 통신선으로도 기가인터넷 수준의 속도를 낸다는 거다.

기가급 인터넷은 최소 하향(다운로드) 100Mbps를 초과하는 속도의 인터넷을 뜻한다.

기존 초고속인터넷은 100Mbps 이하의 속도를 제공하고 있다.

1Mbps는 초당 1/8MB, 즉 125kbyte/s다.

“근데, 그쪽 담당자가 말하기를, 이런 기술을 SGT브로드밴은 준비중이라고 하던데. LC오플러스는 없다 설명하더라구요. 사실인가요?”

이게 핵심질문이다.

혹시나 싶어 SGT브로드밴 홍보실에 확인해보기도 했다.

그 결과는 인프라연구소장의 말대로.

SGT도 내년 상용화를 목표로 HFC성능 개량을 준비중이었다.

‘그런데 오플러스는 나오는 말이 없다 이거고. 속도는 떨어지는데 광랜이라 속여서 인터넷 상품을 제공 중이란 말이지.’

난 씩 웃었다.

“제에가 알기론- 저흰 시소코와 협업해서 HFC용 650Mbps 장비를 준비중인 걸로 알아요.”

그래도 아는 게 있긴 했는지, 정영환 사원이 반격에 나섰다.

글로벌 네트워크 장비업체 시소코의 이름까지 거론됐다.

“그럼 그게 언제쯤 도입될까요? 기사 쓰는데에 첨언 하려는데.”

내가 웃으며 덧붙였다.

“음. 잘 모르겠는데. 아마 그럴거에요. 뭐어 확인해볼게요.”

정영환 사원이 굉장히 귀찮은 말투로 대답했다.

‘모르니까 용감한 건가. 이건 오플러스에게 꽤나 위험한 사안인데.’

난 정 사원의 평온함을 보며 생각했다.

이 사람의 상태를 보아하니, 어차피 질문해 얻을 답은 없을 듯 싶다.

“알겠습니다. 그럼 빠른 답 부탁드릴게요.”

나와의 대화를 끝내고, 정영환 사원이 기자실을 나갔다.

기자실 문이 닫힐 때, 난 노트북을 열었다.

‘자, 재료주문은 다 해놨고. 미리 세팅을 좀 해놓을까.’

머릿속으로 기사의 뼈대를 그려본다.

이미 LC오플러스 광랜 인터넷이, 광고하는 속도에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은 확인됐다.

그 이유를 설비에서 찾아 상세히 기술해볼 생각이다.

또 HFC 개량기술에 대해서도 첨부해, 언제까지 이 상황이 이어질지도 쓸 거다.

‘문제는 이 기사를 안전하게 출고 시키는 건데.’

이윤철 대표에게 긍정적인 기술 기사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그러려면······그래.

기사 전개를 한 번 뒤집어보면 되겠군.

방법을 깨우친 내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흥. 그렇게 기술을 부르짖더니. 어디 한 번 이것도 받아보라지.’

기업에게 조금이라도 해가 된다싶으면, 기사를 칼같이 자르는 이 대표.

그가 이 ‘기술 기사’를 어떻게 받을지.

난 벌써부터 기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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