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주 기자. 사무실로 복귀바랍니다
정영환 사원이 내게 다시 연락한 건.
헤어지고 1시간이 지나서다.
-네에 기자님. 알아봤는데 기자님 말이 맞네요.
“맞다구요? HFC를 광랜이라 표기한거요?”
여전히 아무도 없는 오플러스 기자실 내.
난 휴대전활 들고 정 사원에게 재차 확인했다.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쉽게 대답을 들어 놀란거다.
-네에. 맞아요. 그냥 100Mbps급 속도가 나오면 광랜으로 표기를 하고 있더라구요. 법적 문제가 안돼요.
“속도가 50Mbps도 안나오는 곳 많던데요. 일단 비대칭이라서 업로드 속도도 엉망이고요. 이정도면 미리 고지해야 되는 부분 아닌가요?”
난 최대한 부드러운 어조로 지적했다.
괜히 여기서 위협을 느끼게 할 필요 없다.
정영환 사원은 아무래도 내가 왜 이 문제에 집착하는지 모르는 것 같으니까.
-으음, 그을쎄요. 그 부분은 다시 물어봐야 할 것 같은데에······ 일단 법적으로 문제 없다는 걸 봐선 상관없는 것 아닐까 싶네요
다시 유관부서로 물어보는게 귀찮다는 티가 팍 나고 있다.
난 웃음과 함께 고갤 저었다.
어차피 오플러스에 긍정적인 답변은 들을 수 없을 게 뻔하다.
그렇다면 그냥 넘기고, 다음 부분을 확인해야지.
“그럼 HFC 650Mbps 기술 적용은요? 언제쯤인가요.”
-네. 그것도 지금 도입준비중인데. 아마 내년 가을 쯤엔 상용화가 될 것 같다고 하네요.
그래도 내용 전달만큼은 시원시원하다.
“아, 그래요? 관련자료를 좀 받을 수 있을까요?”
-네에. 기자님 메일로 보내드릴게요.
“감사합니다. 그럼 그렇게 기사가 나가도 되겠죠?”
-네에. 또 궁금한거 있으시면······ 연락주세요오.
정영환 사원이 말투만으로 연락하지 말란 눈치를 준다.
다행이게도 내가 쓸 기사에 대해선 관심없는 듯 하다.
“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통화를 마무리하고.
난 휴대전화를 책상 위에 내려놨다.
“······됐고. 슬슬 기사를 써볼까.”
팩트체크는 모두 끝 났다.
이젠 기사 작성만 하면 된다.
난 노트북의 워드프로세서 프로그램을 구동시켰다.
‘기술을 쉽게 풀어써야 된다.’
기술관련 기사는, 사실 다른 기사를 쓸 때보다 수배는 힘이든다.
우선 기술을 기자인 내가 먼저 이해해야 하고.
그 다음으로 이를 쉽게 풀어쓸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초등학생이 읽어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해.
기술 기사를 쓸 때 김정효 팀장이 내게 강조했던 말이다.
난 정영환 사원이 보내준 HFC 개선기술 자료를 수차례 정독한 뒤.
기사 발문 작성을 시작했다.
[LC 오플러스가 이르면 내년 3분기에 오래된 구리선만으로도 기가인터넷을 제공하게 될 예정이다]
평이한 통신 기사처럼 보이는 발문.
작성 의도와 달리, 이렇게 기사를 시작한 건.
역시 이윤철 대표 때문이다.
만약 발문부터,
[LC 오플러스의 광랜인터넷이 실제론 제시된 속도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라고 써있다면 이 대표는 기사를 바로 킬, 하겠지.
‘그러니까 일단 추진력을 얻기 위해 무릎 꿇는 척 해야지.’
광고밖에 모르는 이윤철 대표의 보기싫은 얼굴을 떠올리며.
난 빠르게 타자를 두드렸다.
[LC 오플러스 관계자는 “최근 시소코와 함께 HFC용 장비를 개발중”이라며 “이것이 상용화 되는 내년 가을 쯤엔 HFC로도 FTTH의 기가급 인터넷 서비스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 다음으론 HFC와 FTTH에 대한 설명이 들어간다.
[HFC는 광동축혼합망······FTTH는 광섬유망을 뜻하는 약자로써······]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두 통신망의 차이를 기술한다.
두 문단으로 설명을 마친 후.
시소코와 함께 개발 중이라는 장비에 대해서도 소개한다.
[······오플러스 관계자는 “기존 구리선 중엔 구형 규격이 많다”며 “이를 교체하지 않고도 중간 장비만 바꿈으로써 전송속도를 크게 상승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확히 설명하자면, 2개의 짝으로 구성된 네트워크 케이블이 구형 구리선이다.
신형의 경우 4개의 짝으로 이뤄져, 기가인터넷 속도를 감당 가능하다.
난 그런 기술적인 내용을 길게 써냈다.
그리고 전망에 대해서 첨언한다.
[이렇게 장비교체 만으로 기가인터넷 지원이 가능해질 경우, 기존에 속도제약을 많이 받던 낙후 건물 거주자들의 불만도 줄어들 전망이다]
여기까지만으로도 기사 한 꼭지로써 마무리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겐 안되지.
내가 진짜로 짚어내고 싶은 부분.
그걸 담아내야 하지 않겠는가.
[■ 내년 3분기 까진 여전히 느린 속도...그런데도 광랜인터넷 홍보]
소제목을 넣어 기사의 흐름을 자연스레 전환한다.
즉, LC 오플러스가 내년에 신형장비 도입으로 속도개선을 이룰테지만.
그전까진 여전히 느린데다가 허위광고를 때리고 있다는 거다.
[LC 오플러스가 HFC 신형장비 개발에 몰두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기존 인프라로는 기가인터넷은 커녕 100Mbps 급의 광랜인터넷 속도도 못맞추기 때문이다······]
드디어 하고 싶은 말들이 기사 안에 들어간다.
[······한때 공기업이었던 KGT는 국민세금을 이용해 국내 대부분 지역에 광케이블을 설치했다. 반면 LC 오플러스와 SGT브로드밴은 아직 광랜보급을 못한 지역이 많다. 이 때문에 구형 전화선이 여전히 쓰이는 지역에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플러스 측은 모두 똑같은 광랜인터넷이라 설명하며 같은 요금을 받고 있······]
점차 LC 오플러스를 좀 때리는 모양새가 나온다.
[LC 오플러스 유선인터넷을 이용 중인 소비자 김모씨는 “광랜(FTTH)인터넷이라고 해서 신청했더니 표기된 수치의 절반도 안되는 속도만 제공된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팩트라는 게, 원래 맞으면 더 아픈 법이다.
[이에 대해 LC 오플러스 관계자는 “광랜인터넷 속도 규정에 대해선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전했다.]
즉 오플러스는 광랜 인터넷 소비자들이, 체감 속도가 느리든 말든 보상할 수 없단 거다.
여기까지.
난 기사 작성을 완료 한 후.
디지털투모로우 기사 작성기 사이트에 접속했다.
바로 기사 내용을 복사해 올리고, 제목까지 붙인다.
[LC오플러스, HFC로 진짜 광랜인터넷...내년 가을]
제목과 발문만 보면, 그저 기술 기사로만 보이겠지.
난 흐뭇하게 웃으며 기사를 전송했다.
곧 김정효 팀장이 확인을 할 터.
그 후에 이윤철 대표가 마지막 검토를 하겠지.
‘뭐······약간 불안하긴 한데. 그렇게 외쳐대던 기술기사니까. 그냥 넘겨주길 바라야겠군.’
이 대표가 평소 기사를 꼼꼼하게 보는 편은 아니다.
대충 제목과 발문, 그 정도만 읽고 문제가 된다 싶으면 상세히 확인한다.
그런 허점을 노려 이 기사를 준비한 거다.
물론 그의 습성이 그렇다 한들, 일이 어떻게 흘러갈진 모르는 법.
나도 살짝 걱정이 들긴 했다.
[주진형 : 팀장, 기사 올렸습니다]
김정효 팀장에게 코코아톡으로 보고를 올린다.
[김정효 : 어. 봤다. LC오플러스 HFC 이거지?]
[주진형 : 네 맞습니다]
잠시 기사를 읽은 건지.
김 팀장의 답장이 늦어졌다.
[김정효 : 대표가 하도 기술위주로 쓰라해서 그래? 기술 기사네?]
[주진형 : 하하······ 네.]
[김정효 : 알았다. 확인해볼게]
김정효 팀장의 마지막 코코아톡 메시지.
이를 읽고 난 쿵덕거리는 심장을 느꼈다.
재판에서 심판을 기다리는 피고인이 된 기분이다.
10분 후.
드디어 답장이 왔다.
[김정효 : 진형아. 이거 대표가 전화 달라는데?]
[주진형 : 전화 말입니까?]
이런, 불길하다.
평소엔 어떤 기사를 올리든 전화달란 주문은 없었다.
‘무슨 소릴 할려고······ 출고막을 때도 말 않던 사람이.’
[김정효 : 응, 일단 대표한테 빨리 전화 걸어봐]
[주진형 : 네. 알겠습니다]
난 마음의 준비를 한 후.
전화목록에서 이윤철 대표를 찾고, 바로 전화했다.
“네 대표. 저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오오 주 기자! 기사 잘 봤어요.
“네, 감사합니다.”
-근데 이거 말이죠······
젠장.
역시 눈치챈 건가.
난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통과가 안된다하면, 싸우는 수밖에!’
그렇게 다짐하는 순간.
-혹시 LC오플러스 쪽에서 뿌린 보도 자료는 아니죠?
“예, 아닙니다. 제가 알아낸 내용입니다.”
-오오, 그렇군. 좋아요, 좋아.
‘······?’
예상 외의 반응이었다.
이 대표가 무슨 꿍꿍이인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아무튼 고생했어요! 내 말대로 기술을 파고들다보니까, 이렇게 좋은 기사가 나오잖아요?
“네?”
-하하.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잘 부탁해요이~
뚝.
전화가, 끊겼다.
내가 우려했던 것과 달리.
역시 이 대표는 기사를 제대로 읽지 않은 거다.
“하하······하.”
맥이 풀려버린 난 실없는 웃음소리만 흘렸다.
내 속도 모르고 굳이 전화까지 해서 칭찬하다니.
좋은 광고 건수를 잡았다 이건가.
‘분명 좀 있다 오플러스 측에 전활 걸어 기획기사로 쓰자며 떼를 쓰겠군.’
그렇게 되면, LC오플러스가 기사를 확인하고 진실을 이 대표에게 알려줄 거다.
당신이 속았다는 걸.
‘상관없어. 기사가 먼저 출고되기만 하면.’
-출고된 기사를 수정하는 건 창피한 짓이야.
-그건 네가 그만큼 취재나 검토를 똑바로 하지않았다는 거니까.
이건 김정효 팀장이 날 가르쳤던 내용이다.
한 번 출고 된 기사는 그 수정이 자유롭지 않다.
설령 국장, 그 대행을 맡고 있는 대표라도 말이지.
기사의 팩트가 틀리지 않는 이상 수정은 없다.
그건 내 기사에 당당하다는 기자의 긍지다.
‘기사의 팩트가 틀리지 않았으니 수정할 근거가 없지.’
‘대표조차도 이미 나간 기사를 수정하려면 내 허락이 필요하고.’
당연히 이 대표가 물어보면, 난 수정을 거부할 거다.
[LC오플러스, HFC로 진짜 광랜인터넷...내년 가을 –주진형 기자]
내가 원했던 대로, 기사는 곧 웹사이트에 출고됐다.
메이버 검색결과에 뜬 기사를 확인하고, 난 미소지었다.
[LC오플러스 김상협 차장]
기사가 출고된지 20분 정도 지났을 무렵.
드디어 LC 오플러스로부터 연락이 왔다.
난 휴대전화의 화면을 눌러 전화 수신했다.
“네, 차장님. 주진형입니다.”
-아 주 기자님! 김상협입니다!
30대 중후반의 남성 목소리가 들린다.
김상협 차장은 LC오플러스 홍보팀 내에 나와 가장 가까운 사이다.
내 요청을 잘 들어주기도 하고, 오늘 정영환 사원을 나와 이어준 것도 그다.
“네, 무슨 일때문에 전화주셨어요?”
물론 HFC기사 떄문이겠지.
난 알면서도 모르는 척, 물어봤다.
-저어, 다름이 아니라 오늘 기사님 쓰신 저희 기사 때문인데요.
“네. 혹시 뭐 문제 있나요? 제가 체크는 정영환 사원 통해 여러번 했던것 같은데.”
난 일단 태연하게 대답했다.
-네······ 들었습니다.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정 사원이 백 팀장님께 호되게 깨졌습니다. 그거 무마하려고 제가 이렇게 온거구요
난 LC 오플러스 홍보팀장 백호원을 떠올렸다.
본래 기자 출신으로, 이직하자마자 홍보팀장 직책을 단 능구렁이 사내.
어린 기자들에게 반말을 쓰며 은근히 조종하려는 사람이다.
그러나 내 기사를 수정해달란 요구라면, 쉽지 않을 거다.
“아, 그랬나요? 이거 본의아니게 폐를 끼쳤네요.”
-아······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근데 기자님. 아시다시피 기사 내용이 좀······
기사에 트집잡을 구석은 없지만 내용이 불편하다는 거겠지.
난 눈치챘음에도 아무 말 없이 김 차장의 말을 경청했다.
-난감해서요. 아시다시피 저희가 고객분들을 속이려고 그런게 아니라 쉽게 설명하려고 한 거거든요.
사태를 수습하려는 자세는 좋다.
그러나 설득력은 없었다.
“네. 그렇지만 실제로 광랜을 기대하고 신청하신 분들에겐 당혹스런 일이니까요.”
난 별 감정없는 말투로 김 차장에게 되돌려줬다.
-네. 그럴 수 있죠. 근데 기자님······이거 왠지 모르겠는데 디지털투모로우 대표님이 갑자기 이 기사를 기획기사로 쓰는 것 어떻겠냐고 하셔서······
“흐음.”
이윤철 대표는 정말 내가 파악한 그대로 움직였다.
“그래서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안 될 것 같다고?”
-네. 아무래도 전반부 내용까지는 뭐 그럭저럭 괜찮은데, 후반이······ 기자님이 쓰셨으니 기획기사는 절대 안된다는 것 아시잖습니까.
“하하, 당연히 그렇죠.”
내가 가볍게 웃었다.
회사를 까는 기사에 돈을 준다?
말이 안되는 거지.
-아마 디지털투모로우 대표님은 그걸 잘 모르셨던 것 같더라구요. 설명 드리니까 다시 확인 하시더군요. 저희는 도입부도 좀 걸려서 광고는 어렵고, 그냥 뒷부분만 좀 수정해주시면 좋을 것 같다고······
“차장님 죄송한 말씀이지만, 전 기사 수정할 생각 없습니다.”
다음 말을 차단하듯 내가 단호하게 말했다.
“제가 처음부터 오플러스랑 기획기사로 시작한 기사라면 모를까. 애초에 그 부분을 짚기 위해 쓴 기사입니다. 고쳐선 안돼죠. 차장님도 틀린 부분없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네······ 그렇긴 한데······. 그 이윤철 대표님은 아니면 아예 기사를 지워줄테니까 광고를 넣어달라고 하시던데요?
“예? 뭐라구요?”
이건 또 무슨 소린가.
난 미간을 찌푸리며 김상협 차장에게 물었다.
기사 수정도 아니고, 아예 내린다고?
누구 마음대로?
“어, 그래서 백 팀장님이 그렇게 하자고······”
이어진 김 차장의 진술에 놀랄 새도 없었다.
위잉,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난 심각한 표정으로 전화기 화면을 봤다.
[주 기자. 사무실로 복귀바랍니다~ –이윤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