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당하기만 하는 바보는 아니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상황인가.
난 두피까지 열이 오른 상태로 오플러스 본사를 뛰어나왔다.
심장의 쿵쾅거림이 귓가에 들리는 듯 했다.
‘기사를 내린다고? 내 기사를?’
어이없음에 헛웃음과 한숨만 연신 나왔다.
급히 서울역으로 가 지하철을 탔다.
전동차 안에서 휴대전화로 디지털투모로우 사이트를 확인한다.
“······진짜 내렸네?”
내 기사가 삭제됐다.
[LC오플러스, HFC로 진짜 광랜인터넷...내년 가을]은 어디에도 없었다.
기가 차서 저절로 고개가 들어지고, 한숨이 나왔다.
난 꾸역꾸역 역류하는 속을 억눌러 참았다.
20분 뒤.
난 다시 여의도에 돌아왔다.
디지털투모로우 사무실이 있는 빌딩 안.
승강기에 몸을 실고 올라가는 동안, 이윤철 대표의 문자메시지를 되씹었다.
‘일언반구 없이 기사를 내려놓고, 사무실로 복귀바람?’
이를 바득 갈고 싶은 심정이었다.
승강기가 곧 사무실 층에 멈춘다.
문이 열리자마자 난 큰 걸음으로 나섰다.
복도에서 좌측으로, 꺾자마자 디지털투모로우 사무실.
“오! 주 기자! 왔어요!”
정적을 깨듯 내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이윤철 대표는 날 확인하고 자리서 일어났다.
반기는 모습을 보아하니, 내가 화를 낼 거란 생각은 하지 않는 모양이다.
난 김정효 팀장이 없는 걸 확인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대표.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일단 짐 내려놓고, 여기 앉아요. 앉아서 얘기하자구~”
이 대표가 귀빈들 올 때나 사용하던 소파로 날 불러들였다.
난 가방을 내 자리에 대충 내려놓고, 그에게로 갔다.
“대표께서 아무 말씀도 없이 제 기사를 내리셨더군요.”
그래도 상대는 회사의 대표이자, 국장대행이다.
다짜고짜 고함과 감정을 드러낼 순 없다.
난 최대한 평이 한 어조로 사실을 하나씩 이야기했다.
“제 기사엔 틀린 내용도, 저작권 적으로 문제될 부분도 없었습니다.”
“그랬지. 음, 그랬어.”
나랑 장난하자는 것도 아니고.
이 대표의 추임새가 심히 거슬렸다.
“그런데 왜 기사를 내리신 겁니까. 아무리 대표께서 국장업무를 수행중이시라곤 하나, 이건 저에 대한 도리가 아닌 것 같습니다만.”
내 물음에 이윤철 대표는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우리 주진형 기자. 말이 좀 그러네? 도리라니? 내가 뭐 주 기자한테 실수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국장으로서 할 일을 한 건데?”
국장으로서 이유도 없이 기사를 삭제했다니.
앞뒤가 안 맞는 소리다.
“왜 삭제하신 겁니까?”
상대하고 싶지 않은 말꼬리 잡기는 무시하고.
난 재차 질문했다.
단순히 기사를 수정하는 것도, 쉽게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수정해야할 이유, 그리고 명분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기사를 삭제하는 건?
당연히 더 중차대한 뭔가가 있어야만 한다.
그래야 기사를 쓴 기자가 납득을 할 것 아닌가.
“대표께서 지시하셨던 대로, 기술 중심의 기사를 써서 냈습니다. 팩트체크도 모두 끝난 내용이고, 연관돼 있는 양사모두 기사가 나가는 걸 고지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제 기사가 왜 삭제 된 겁니까. 설마, 제 기사를 지워주고 광고를 받기로 한 겁니까?”
말이 길어질수록, 내 감정인 점차 드러났다.
어느새 높아진 언성에 이윤철 대표가 인상을 썼다.
“침착해요 주 기자. 흥분을 가라앉히고 얘기하자고.”
날 진정시키려는 이 대표의 말이 더 신경에 거슬린다.
난 인상을 쓴 채, 그를 노려봤다.
대답을 해라.
뭐가 됐든 그럴듯한 변명이라도 늘어놔야 할 것 아닌가.
자꾸 뜸만 들이는 이 대표에게 짜증이 날 지경이다.
“뭐 알다시피······ 우리 재정상황이 그리 좋지 않아. 주 기자가 열심히 뛰어준 덕분에 좋아지긴 했지만 아직 멀었어요. 응? 회사 사무실 확장도 해야 하고 인력확충도 하려면 지금으로 안 된다 이 말이에요.”
난 입을 꾸욱 닫고 참아본다.
이 대표가 말을 계속 이었다.
“나도 대표이자 국장으로서 고민이 많아요. 어쩌겠어? 돈은 필요한데, 없고. 그래서 내가 나서서 이렇게 광고를 받아 오잖아요. 주 기자가 조오-금만 이해를 해주면 되는 일인데.”
“그래서, 제 기사를 광고 받는 대신 삭제하셨단 말씀입니까?”
듣다 못한 내가 결국 세 번째로 같은 주젤 반복한다.
“아잇! 그래요! 그래서 지웠다! 이제 됐어?”
적반하장으로 성질내는 이 대표에게, 나도 입을 열었다.
“전 분명 대표와 팀장께 그렇게 배우지 않았습니다. 기자로서, 자기 기사에 자부심을 가지라고 말씀해주신 건 대표입니다. 기사 수정할 일이 있을 때 늘 나무라시던 분께서, 기사삭제라는 큰일을 아무 말 없이 했다는 것도. 납득할 수 없습니다. 대표께서도 아시잖습니까.”
아무도 채용하지 않던 1년 전쯤의 나.
그걸 데려다가 기자로서 키운 게 8할은 김정효 팀장.
2할은 이윤철 대표다.
난 그들이 가르쳐준 대로 기자 질을 하고 있을 뿐이다.
뭐, 그리 잘나가는 기자는 아니었겠지만.
이 대표 또한 기자출신 이다.
내 감정을 이해 못할 리가없다.
“주진형 기자, IT기업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기자가 되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요?”
이건 내가 면접당시 이 대표에게 했던 말이다.
나 또한 여전히 내가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그건 돈만 받으면 기업이 싫어하는 기사를 내리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난 물러설 생각이 없다.
우리의 대화가 격해지자, 주변 직원들도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럼 LC 오플러스가 기분 나쁘지 않게 기사를 썼어야지.”
“대표! 그런 게 아니잖습니까!”
“어디 소릴 높이나!”
아무 말 대잔치도 아니고.
이 대표는 애들 억지 부리듯 말싸움을 펼쳐나간다.
아이고, 이거 내가 큰 실수를 했어.
우리 이윤철 대표 정말 대단하시네.
일개 기자가 대한민국 대기업을 아주 불쾌하게 할 뻔했어.
“단순히 기술 분석만 할 거라면 엔지니어들에게 기고문을 받으시면 될 일입니다. 기자가 기업 눈치를 봐가며 기사를 써야합니까!”
기자들 중에 진짜 기술자보다 기술을 잘 아는 사람은 없다.
모두 그들에게 배우고 따로 공부하며 기사를 쓰는 거다.
단순히 기술에 대해서만 얘기하고 싶다면 기술자를 영입할 일.
난 그런 받아쓰기를 위해서 기자가 된 게 아니다.
“말했잖아요. 회사가 어렵다고. 회사가 살아야 기자도 사는 거예요. 그동안 내가 체면 때문에 대놓고 얘긴 못했지만, 기술 기사에 집중하라고 했으면 거기에 따라줘야지. 뻔히 광고 때문인걸 알면서 왜 그렇게 기업을 못 까 안달인지. 쯧즈.”
그놈의 회사가 어렵다는 헛소리.
난 선배들에게 들어서 알고 있다.
저 말은 1년 전에도, 2년 전에도.
심지어 5년 전에도 대표가 얘기하던 소리란 걸.
이 회사는 늘 위기였고, 늘 성장 중이었다.
단 한 번도 고생한 기자들에게 성장의 결과를 나눈 적이 없다.
“대표께선 이 어려운 시기에 법인카드로 골프장도 가시지 않습니까.”
“뭐, 뭣?”
내 돌 직구에 이 대표가 말을 더듬었다.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이 회사가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는 절대 기자들 때문이 아니란 거다.
반대로······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이곳은 성장할 수 없다.
“언론사가 편집국과 영업국으로 나뉜 건. 편집국 기자들이 돈에 휩쓸리지 않고 기사를 쓸 수 있게 해주려는 걸로 압니다.”
“······”
내 말에 이 대표는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실제로, 대부분의 언론사들은 편집국의 기사 재량권을 존중한다.
회사의 광고나 행사를 담당하는 영업국은, 기사방향에 대해 함부로 논하거나 참견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언론사 광고는 기사를 보러 사이트에 들어온 독자들을 향한 거다.
기자들에게 협박하기 위해 달아놓은 게 아니란 말이다.
“설사 디지털투모로우가 기업 광고를 수주했다 한들, 제 기사는 제 의지대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대표께서 직접······ 제게 광고비를 받기도 전부터 기업의 개가 되라고 하시니. 저로서는-”
내 말을 끊으며 이윤철 대표가 치고 들어왔다.
“이거이거, 주진형 기자. 내가 주 기자를 디지털투모로우의 태양이라 부르며 떠받들어 주니까 뭐라도 된 것 같아?”
이 대표의 말에 숨이 턱 막혀온다.
난 지금껏 저 겉만 번드르르한 소리에 들뜨거나, 기뻤던 적이 없다.
“고작 1년도 안된 기자가 왜 그렇게 머릴 굴려. 하라면 하라는 대로, 좀 움직이고 그래야지. 그렇게 해서 이 업계에서 살아남겠어? 여긴 군대랑 다를 바 없어요. 상명하복이고, 까라면 까는 거예요. 주 기자가 아직 1년차라 뭘 모르는 모양인데.”
“······알겠습니다. 대표.”
마음이 섰다.
내가 눈을 내리깔고 조용히 말했다.
“그래요. 이제 좀 내 말을 알아듣겠나? 주 기자는 취재력도 좋고 기사도 잘 쓰는데 참, 너무 지들 좋을 대로 하는 사회부 기자처럼 굴어. 자고로 산업기자는 말이야-”
“제가 그만두겠습니다.”
다시금 고개를 들고, 이윤철 대표와 눈을 맞춘다.
“뭐? 뭐라고?”
되묻는 이 대표에게 내가 다시 한 번 선언했다.
“그만두겠다고 말했습니다.”
말하고 나니 너무나 속 시원했다.
난 왜 이제껏 이 작은 곳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가.
분명 더 큰 곳으로 갈 수 있었고 그럴만한 힘도 생겼다.
사람의 정이란 게, 그래서 무섭다.
‘고맙네. 그 정을 다 뚝뚝 끊어줘서.’
이윤철 대표를 향한 내 마지막 감사함, 은혜는 이제 지워졌다.
난 기자가 됐고, 진짜 기자처럼 살고 싶다.
“어······ 주 기자? 진짜? 그만둔다고?”
이 대표는 현 상황이 믿기지 않는지 같은 얘길 반복하고 있었다.
그간 난 대표 앞에선 늘 유약한 태도만 보였지.
이처럼 강경하게 내 입장을 전달한 적은 드물었다.
그것도 사직 의사를 밝히면서.
“네. 대표가 디지털투모로우의 수장이신 만큼, 그 뜻을 따라야 하는데. 전 도저히 그렇게 못하겠습니다.”
내가 기자로서 배운 것, 그리고 아는 것들.
이 모든 게 이 대표를 향한 반발을 권한다.
그렇지만 내가 디지털투모로우를 바꿀 순 없을 거다.
내게 그럴 권리도 없고.
그러니 내가 떠난다.
“아니, 주 기자. 그렇다고 그렇게 극단적으로 생각하면 안 되지.”
이 대표는 날 말려볼 생각인지, 어조를 낮췄다.
“고작 기사 하나 지운 것 같고 나간다니 과하지, 응? 과해.”
고작 기사 하나, 지운 거라.
동의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난 그보다 더 큰 문제점을 지적하기로 했다.
“단순히 오늘 삭제된 기사 때문만이 아닙니다. 그간 출고되지 못한 제 기사들. 그리고 오늘 대표께서 말씀하신 부분까지. 저로썬 더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어? 아니, 아니야. 주 기자. 지금 나가면 경력 인정도 못 받아. 그리고 이렇게 안 좋게 나가면 어느 매체가 주 기자를 받아줘. 다들 사정은 똑같은데. 응?”
“······”
난 표정 변화 없이 이윤철 대표의 말을 흘려들었다.
그러나 이 대표가 회유책을 쓴다.
“주 기자. 어디 이직제의 온데라도 있어요? 이상한데 가지 말고 내 밑에서 딱 1년 만 더 버텨봐. 그럼 내가 주 기자 마이뉴스24있지, 거기로 보내줄게. 응? 아니다. 2년. 2년만 버텨봐. 그럼 전자뉴스로 갈 수 있어. 내가 책임지고 보내줄게요.”
마이뉴스24는 지금 당장이라도 갈 수 있다.
이미 박호창 마이뉴스24 대표가 직접 이직을 제안했으니까.
그리고 이 대표가 정말 그 유명한 전자뉴스로, 날 보내줄 수 있다한들.
이곳에 2년 동안 더 머무를 이유는 되지 못한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이직은 제 힘으로 하겠습니다.”
난 한 번 결정한 일은 끝까지 해낸다.
회사를 나가기로 한 이상.
무슨 말을 하더라도 내 마음은 바뀌지 않을 거다.
‘게다가 죽어도 기사 마음대로 쓰란 소린 안하네.’
난 이 대표의 행동에 숨겨진 속내를 읽으며 웃었다.
“그렇다면······ 내가 주 기자의 이런 점들을. 다른 대표들한테 얘기해도 되겠지요?”
인상을 험악하게 바꾼 이 대표가 이젠 협박을 해온다.
악덕 사장이 ‘너 다신 이 업계에 발 못 붙일 줄 알아!’라고 외치는 대사 같다.
허나 난 당하기만 하는 바보는 아니다.
“네. 얘기하십시오. 저도 디지털투모로우가 어떤 곳인지, 기자 카페에 낱낱이 올려놓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