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 선배라 불러라. 알았지
기자를 꿈꾸는 기자준비생들이 가입하는 최대 규모의 온라인 카페 ‘방랑’.
나처럼 전 현직 기자들도 이 카페 사이트를 이용하고 있다.
그 카페에 디지털투모로우에 대해 글을 써서 올린다면, 어떻게 될까.
장담컨대.
기자준비생들은 절대 이 회사에 면접을 보러 오지 않을 거다.
경력직 기자들 또한, 자연스레 이곳을 거르게 될 테고.
“다녀왔습니다.”
냉담한 분위기로 가라앉은 사무실에, 김정효 팀장이 들어섰다.
외부미팅을 마치고 사무실로 복귀한 모양이다.
그는 묘한 사무실 분위기를 감지한 듯.
나와 이윤철 대표 사이를 바라보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음, 김 팀장. 주진형 기자랑 밖에 나가서 얘기좀 하고 오세요.”
침울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이 대표가 말했다.
김 팀장은 침착하게 물었다.
“네?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십니까.”
“주진형 기자가 말해줄 거예요.”
이 대표는 소파서 일어나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자리에 놓인 컴퓨터 마우스만 딸깍, 딸깍 누를 뿐이었다.
“나가자. 진형아.”
김정효 팀장의 부름에, 나도 자리서 일어났다.
우리 둘은 다시 사무실 건물을 나왔다.
근처 카페 안.
“대표 왜 저러는 거냐?”
음료 한 잔씩, 각자의 앞에 두고.
드디어 김 팀장이 싸늘한 분위기의 이유를 물었다.
난 따듯한 차를 한 모금 마시곤, 그에게 대답했다.
“본론부터 말씀드리면, 제가 그만두겠다고 했습니다.”
“······그래?”
요근래 나와 이 대표의 신경전을 보고 짐작했던 걸까.
내 생각과 달리, 김정효 팀장은 그리 놀라지 않았다.
“마음 굳힌 거니?”
김 팀장의 부드러운 물음에 내가 고갤 끄덕였다.
“예.”
“알았다. 그건 내가 대표하고 얘기해볼게.”
“죄송합니다. 미리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저도 갑자기 정하게 됐습니다.”
이윤철 대표의 말대로, 기자세계는 군대와 비슷하다.
상명하복, 보고체계까지.
그렇기 때문에 퇴직의사를 밝힐 때에도, 이 대표가 아니라 김 팀장에게 먼저 말했어야 한다.
그게 김 팀장에 대한, 예의기 때문이다.
“아니다. 오늘 나간 기사때문이지? 갑자기 사무실로 돌아와서 대표랑 얘기한 건. 무슨 말이 오갔는 진 모르지만, 네가 그렇게 결정한데엔 다 이유가 있겠지.”
“팀장······”
내 마음을 다 이해해주는 팀장에게 고마웠다.
그리고 미안했다.
내가 기자 구실 할 수 있도록, 지금껏 가르치고 도와준 사람이다.
그에 대한 보답을 다 하기도 전에, 떠난 다는 거.
죄송할 따름이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렇게 돼버려서.”
“그런 말 할 필요 없다. 사실 대표하고 기자들 사이에서 내가 중재역할 제대로 못한 것도 있고. 우리 매체 상태가 이 모양이니, 나라도 대표한테 할 말 했어야 하는데. 내가 너무 무관심했다. 미안하다.”
김정효 팀장은 도리어 내게 사과했다.
“아닙니다.”
“그래서. 앞으론 어떻게 할 거냐. 기자는, 계속 할 거지? 내가 봤을 때 넌 기자가 천직이야.”
나와 김정효 팀장의 나이 차이는 거의 15년.
그리고 그 차이는 기자경력 차이기도 하다.
대선배인 김 팀장에게 이런 말을 듣는 건, 처음이었다.
그리고 말로 이루 할 수없이 황송했다.
“네······ 계속 할 겁니다. 제 꿈이-”
“김광필 선배가 롤 모델이라고 했지.”
“네······”
김정효 팀장도, 내가 면접 때 말했던 걸 기억하고 있다.
“너라면 충분히 가능성 있어. 지금처럼만 계속 하면. 그래. 어디 갈 데는 있어? 없으면 내가 이디넷이라도 얘기해볼까. 거기 지금 취재팀장이 내 후배야.”
김정효 팀장은 이디넷코리아 팀장 출신이다.
아직도 그만한 연이 닿을 만하다.
하지만, 난 팀장에게 그렇게까지 손을 벌리고 싶진 않았다.
“정말 감사하지만, 괜찮습니다. 사실 제의 온 곳이 몇 곳 있습니다.”
“오? 그러냐. 하긴 너 정도 활약한 기자가 오퍼 안 오면 그게 이상한거지. 그나저나 제의 받은지 얼마 안됐어? 그동안 용케 버티고 있었네?”
실은 꽤 지난 이야기지만, 굳이 밝히지 않기로 한다.
“네, 요즘에 받았습니다.”
“그래. 잘됐다. 너 나가고 나면 아무래도 좀 힘들어지겠지만. 요즘 영기도 잘 치고 나가고 있고. 어떻게든 되겠지. 너도 걱정하지 말고 옮겨라. 나도 실적 올려서 옮길 거다. 작은 매체 한 번 키워보겠다고 왔는데, 참 힘드네. 그래도 진형이 네 덕분에 내 체면 많이 섰다.”
“네······”
내게 이렇게 잘 대해주는 김 팀장 앞에서.
난 한없이 작아지는 자신을 느꼈다.
‘언젠가······ 이 사람한테 진짜 보답을 하고 싶다.’
사회에 나오면, 인간관계라는 게 참 부질없다고 들었다.
모두 자신의 손익을 따져가며 사람을 만난다고.
특히 직장상사는 희생하는 법 없이 늘 부하직원을 부려먹거나 이용하기 바쁘다했다.
나도 어느 정도 공감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김정효 팀장은, 그 이야기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이다.
후배를 이끌어주는 좋은 직장 상사이자 선배 기자.
내가 닮고 싶은 사람이었다.
“알았어. 이 대표하곤 내가 잘 얘기해볼게. 어차피 이 대표도 고집이 세서 너 붙잡는다고 뜻을 굽히진 않을 거다. 걱정마.”
“알겠습니다.”
우린 그렇게 대화를 끝냈다.
김 팀장은 카페에 남아 이윤철 대표를 불러냈다.
난 이 대표의 눈에 띄지 않게 건물 뒤로 돌아 사무실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날 바로.
나에 대한 처분이 결정됐다.
“진형아. 일주일만 더 다니고 퇴사하는 걸로 하자 신다.”
홀로 사무실로 돌아온 김정효 팀장이 내게 말했다.
“아 그렇습니까?”
“그래. 잘됐다 생각해라. 이달까지만 딱 하고 끝나는 거니까. 어차피 나갈 사람, 빨리 내보내는 쪽이 낫다는 게 이 대표 생각이다.”
설명은 그렇게 했겠지만.
사실 기간이 늘어나 다음 달까지 근무할 경우, 급료계산이 늘어나기 때문일 거다.
어쨌든 인수인계 기간을 한 달 정도 생각했던 내겐, 희소식이었다.
“네 저도 좋습니다.”
“그래. 나갈 때까지, 마무리 잘하고. 통신 분야는 아무래도 영기한테 물려야겠다.”
“영기씨요?”
“응. 너랑 붙어 다닌 게 있으니. 통신 쪽도 어느 정도 하겠지. 인터넷은 내가 잠시 맡아야지 뭐. 넌 연락명단하고 인수인계만 좀 잘해줘.”
그러고 보니 남는 사람들은, 내가 하던 업무를 또 나눠가져야한다.
영기와 팀장에게 미안해진다.
“알겠습니다.”
이후 일주일 동안.
난 영기에게 틈틈이 내가 아는 통신사 정보와 연락처 등을 공유했다.
[주진형 : 영기씨. 엑셀로 정리한 통신사 관계자 연락명단 파일이야]
[박영기 : 네 선배. 근데 선배, 진짜 그만두실 거예요? 안가시면 안돼요?]
영기도 지속적으로 날 붙잡으려 했다.
[주진형 : 알잖아. 나, 이 대표 밑에서 일 못할 것 같아. 미안 영기씨]
[박영기 : 아뇨······ 선배가 미안하실 일은 아니죠. 그냥 아쉬워서요. 주 선배 밑에서 더 배우고 싶었는데]
[주진형 : 푸하하. 나랑 영기씨랑 경력차이 1년도 안나는 거 알아? 충분히 잘하고 있어. 더 가르칠 게 없어. 어차피 기자일은 스스로 해내는 거야]
[박영기 : 그렇기 하지만······ 네 선배.]
그래도 내가 마음을 돌리는 일은 없었다.
뭐, 내가 결정을 바꾼다 해서 이 대표가 좋아할 것 같지도 않고.
퇴사 당일 오전, 사무실.
난 정말 평소처럼 외신을 번역했고, 발제 기사를 작성했다.
“고생했다. 진형아. 여기까지만 하고 들어가라.”
“어, 그래도 됩니까?”
“뭘 그래도 돼야. 너 오늘이 마지막인데 그럼.”
김정효 팀장이 웃으면서 말했다.
“자자, 편집국 모두 주목.”
김 팀장의 낮은 목소리에, 사내 기자들이 모두 그를 바라봤다.
“오늘, 퇴사하는 주진형 기자가, 인사 한마디 할 거니까. 진형아 나와서 인사해.”
이건 미리 상정하지 못한 깜짝 이벤트였다.
근데 앉아서 당하는 게 아니라 내가 직접 해야 한다는 게 문제로군.
“아, 예.”
난 자리서 일어났다.
기자들이 모두 보이는 화이트보드 앞까지 걸어 나가 섰다.
뒤를 돌아보자, 그동안 정들었던 얼굴들이 모두 날 보고 있었다.
“흠흠······”
난 헛기침을 잠시 한 후.
할 말을 창작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선 이렇게 갑자기 떠나게 돼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디지털투모로우에 몸담았던 기간이 비록 1년도 안되지만, 참 많은 걸 배웠고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이는 이윤철 대표님과 김정효 팀장님의 덕분입니다.”
난 내 우측 대표 석에 앉아있는 이윤철 대표와 눈을 마주쳤다.
이 대표는 시선을 피하진 않았지만, 굳은 얼굴을 유지했다.
“특히 변변치 않은 절 채용해서 이렇게 기자로 만들어주신, 이 대표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난 허릴 꾸벅, 숙였다.
이 인사엔 정말 거짓감정이 섞여있지 않다.
저 부분만큼은, 언제나 내가 그에게 감사하며 살아갈 거다.
하지만, 그 뿐.
내가 이윤철 대표와 다시 엮일 일은 없겠지.
“그리고 지금껏 함께 저와 고생한 동료 기자 분께도 감사합니다. 비록 저는 이곳을 떠나지만, 제 고향은 늘 디지털투모로우 일겁니다.”
이것 또한 진심이었다.
내가 디지털투모로우를 탈출한 선배들과, 여전히 끈끈하게 이어져 있듯.
탈 디지털투모로우를 하더라도, 내 뿌리는 이곳이다.
“가까이서 혹은 멀리서, 디지털투모로우가 더 잘되고 커지길 바라고 있겠습니다. 그리고 이곳에 속한 분들께서도 좋은 기사 많이 써주시길 바랍니다. 꼭 좋은 모습으로 다시 봤으면 좋겠습니다. 이상입니다.”
내 말이 끝나자,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난 머쓱함에 빨리 내 자리로 돌아왔다.
지나치다 본 영기는 아예 눈가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뭘 또 울어 이런 일 가지고.’
내가 영기를 많이 도와줬다곤 하나, 그래도 선배다.
선배가 적을수록 편해지는 건 군대나 회사나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뭐, 곧 한껏 풀어지는 거 아니려나.’
걱정이 들면서도, 그게 더이상 내 몫이 아님을 깨닫는다.
이제 난, 이 회사와 정말 남이 되는 거다.
오후 12시 정각.
난 회사 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며 작별인사를 했다.
“선배, 다시 돌아오실 거죠? 연락하세요.”
영기는 내게 달라붙어선, 연락하란 당부를 했다.
“응. 시기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난 기자밖에 없어. 영기씨야 말로 자주 연락해.”
“넵, 선배.”
영기가 빠지고 나니, 김정효 팀장이 다가온다.
“진형아. 고생했다. 잘 들어가고. 시간 날 때 술이나 한 잔 하자.”
술자릴 좋아하는 김 팀장 다운 말이었다.
“네. 감사합니다. 팀장.”
“참, 이직하게 되면 문자나 주고.”
“네. 꼭 말씀드리겠습니다.”
“아, 그리고 진형아······”
김 팀장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날 빤히 바라봤다.
“앞으론 팀장이라 하지말고. 선배라 불러라. 알았지.”
울컥, 했다.
15년 선배이자, 취재팀장.
그를 직책이 아닌 단순 ‘선배’로 부를 수 있는 자격을 내가 받은 거다.
“네, 선배······”
“그래. 가.”
난 뭉클한 가슴을 숨기고, 뒤돌아섰다.
그대로 여의도 사거리를 향해 걸어 나갔다.
이른 시간의 퇴사로 몸과 마음이 상쾌했다.
잠시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충동도 일었다.
허나 그 전에.
내가 들려야만 할 곳이 있었다.
“네, 과장님. 다 왔습니다. 아, 네 보이네요.”
여의도 금융가.
난 휴대전활 들고 있는 장도현 과장을 찾아냈다.
“아, 주 기자님. 퇴사는 잘 하셨습니까?”
도현이 웃으면서 내게 인사했다.
“네, 방금 잘 처리하고 왔습니다. 이제 자유인이네요.”
“뭐, 조만간 다시 돌아오실 것 알고 있습니다.”
“그래야죠.”
간단히 대화를 한 후.
“자, 그럼 가시죠.”
“네.”
우린 자리를 옮겼다.
근처 신난은행 여의도 지점 안.
난 대기석에 앉아 은행원과 상담하는 도현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잠시 후, 상담이 끝났는지 그가 자리서 일어난다.
내게 다가온 그가 손에 든 흰 봉투를 건넸다.
“그럼 바로 입금하시죠.”
난 도현과 함께 자동화기기가 설치 된 장소로 이동했다.
내가 통장을 기기에 넣고, 입금 메뉴를 선택한다.
곧 기기의 지폐투입구가 열렸다.
난 도현에게서 받은 흰 봉투를 열어, 안에 든 지폐들을 꺼냈다.
금액을 알 수 없는 수표들.
확인하지 않은 채 곧장 투입구에 넣어버린다.
곧 투입구가 닫히고, 지폐를 세는 소리가 기계 안에서 요란하게 울렸다.
[입금 금액 1,500,000,000 원 맞으십니까?]
[예][아니오]
난 당당히 예를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