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래에서 온 특종-84화 (84/107)

84. 퇴사했다고 말했더니, 기자들 난리더라

내가 은행의 자동화 기기서 통장을 빼냈다.

뒤따라 나오는 명세서까지 받아들자, 장도현 과장이 웃음 지었다.

“주 기자님. 첫 인센,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과장님. 다 과장님 덕분이죠.”

“저야말로 감사하죠. 주 기자님 덕분에 이 분기에만 작년 인센의 다섯 배를 벌었으니까요.”

우리가 나누기로 한 인센티브는 6:4.

내가 15억을 건네받았고, 도현은 10억이 넘는 금액을 남겼다.

“그나저나 진짜 많이 버셨네요.”

“저보다 저희 회사가 더 많이 벌었습니다. 투자자들은 더 많은 이익을 냈고. 사성SDS 때 대박이 났었죠.”

내가 알려줬던 정보가 큰 이득이 돼 돌아왔다.

“앞으로도 그런 좋은 정보 잘 부탁드립니다.”

“물론입니다.”

내가 끄덕였다.

도현은 그런 내게 조용히 명함 한 장을 건넸다.

“음, 이게 뭡니까?”

“제가 잘 아는 세무사 명함입니다. 얘기 다해놨으니 연락하시고 가시면 됩니다. 증여세를 깔끔하게 처리해줄 겁니다.”

사실 이런 큰돈을 전해 받는 데에 가장 걸림돌이 되는 건 세금이다.

그럼에도 꼼수를 선택하지 않은 건, 떳떳하게 살기 위해서였다.

도현은 그런 날 이해하고 세무사까지 연결시켜준 거다.

“아, 네 감사합니다.”

“제가 대충 계산해봤는데 세금은 4억 조금 넘게 나올 겁니다. 괜찮으신가요?”

“네. 번만큼 내야한다면, 별 수 있나요.”

“근데, 주 기자님. 한동안 정보 괜찮겠습니까? 취재 나갈 일이 없으실 텐데······”

도현이 걱정스럽다는 듯 본심을 털어놨다.

당연히 정보제공은 문제없지.

다음 주의 이메일은, 계속해서 날아 올 테니까.

“그런 걱정은 안하셔도 됩니다. 어차피 다들 제가 다시 기자로 돌아올 걸 알테고. 연락하면서 관계만 유지해두면 되니까요.”

정보출처에 대해서, 난 대충 그럴듯한 이야기로 얼버무렸다.

도현도 그리 의심치 않고 믿는 눈치다.

“그렇습니까. 그럼 나가실까요.”

나와 도현은 다시 여의도 금융가로 나왔다.

곧 점심시간이 끝나기 때문에 도현은 회사로 돌아가야 했다.

어차피 우리 둘이 계속 같이 있을 이유도 없긴 하지만.

“전 이제 들어가 보겠습니다. 주 기자님은 어떻게 하실 계획이십니까?”

“계획이요?”

직장인들이 바삐 오가는 거리에 서서.

우리 둘의 대화가 잠시 이어진다.

“복귀하시기 전까지, 뭘 하실지 궁금해서 여쭤봤습니다. 여유자금도 생기셨잖습니까.”

장도현 과장은 안경을 고쳐 쓰며 미소 지었다.

그러니까 내가 이 거금을 어디다 쓸 거냐, 그게 궁금한 모양이다.

“그러게요. 저도 이정도로 큰돈이 한 번에 들어올 거라 생각을 못해서. 차근히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은데요. ······아마 부모님을 위해 사용할 것 같습니다. 우선.”

문득, 생각났다.

내가 큰돈을 모으기로 했던 이유.

고향에 있는 부모님을 이곳 서울로, 모시고 오기 위함이지 않았나.

“부모님 말입니까?”

부모님이란 단어에 도현이 사뭇 진지해졌다.

“네. 10억 정도면, 서울에 살 집 하나는 구할 수 있겠죠?”

원체 돈이 없었던 나다.

서울에 올라온 후, 집값을 알아보러 다닌 적이 없으니.

딱히 감이 잡히질 않았다.

“음, 네. 지역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충분할 겁니다.”

“다행이네요.”

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도현이 웃으면서 농담을 던진다.

“보기보다 효자시군요, 주 기자님.”

“보기보다 라뇨. 전 보이는 대로 효자입니다.”

나도 가볍게 맞받아쳤다.

“하하하. 아무튼 주 기자님에 대해 새롭게 알아가는 군요. 저로썬 좋은 선택 같습니다.”

“그런가요?”

“사실 금액이 큰 만큼, 저희 쪽에 펀드를 넣어 보시는 게 어떨까.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부모님을 위한 일이라면 그게 우선인 것 같습니다.”

“네. 맞아요.”

선배들은 돈은 일정액만 모이면, 그 돈이 또 돈을 낳는다고 했다.

그 일정액을 모으기가 힘들지, 불리기는 쉽다는 의미겠지.

하지만 지금은 돈을 불릴 때가 아니다.

당장 미룰 수 없는 일이 있는 거다.

“그리고 참- 전 곧 부서를 옮길 예정입니다.”

그리 큰일이 아니란 듯, 도현이 말했다.

“예? 부서를요?”

“네, 트레이딩으로 갑니다. 주 기자님의 정보력 덕분에 마음을 굳혔습니다.”

지금 장도현 과장이 재직 중인 부서는 법인영업부.

트레이딩은 투자자들의 자본이 아닌, 회사의 자금을 운용해 직접 수익을 내는 부서.

그만큼 위험도도 크고 수익률도 오른다고 했다.

“그렇군요. 제가 더 좋은 정보를 드려야겠네요.”

“기대하겠습니다. 기자님. 그럼, 또 나중에 뵙죠.”

“네 과장님. 들어가세요.”

도현이 미래투자증권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그의 뒷모습이 사라지는 걸 본 후.

나도 발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참, 탈출의 기쁨을 나눌 사람들이 있지!’

지하철로 향하던 중.

휴대전화를 꺼냈다.

코코아톡 앱을 켜고 [디지털투모로우 탈출] 채팅 방에 들어간다.

[주진형 : 저도 오늘부로 디지털투모로우 탈출했습니다]

잠시 후, 내 글을 읽은 선배들의 메시지가 쏟아졌다.

[김기문 : 오오! 주 후배! 드디어 탈출했는가!]

[상성훈 : 충성충성충성! 주느님, 자유의 몸? 곧 우리 매체로 옴?]

[이주연 : 와 축하해 진형아. 이직은? 정하고 나온 거야?]

[주진형 : 아뇨. 사정이 있어서 급하게 나왔습니다. 이제 빨리 알아봐야죠.]

[김기문 : 빨리 알아볼 필요가 있는가! 이뉴스는 언제나 대환영일세!]

[상성훈 : 기문아, 마이뉴스24도 기다리고 있다. 주느님 클라스면 우리정도가 딱 아니겠니?]

[김기문 : 상 선배, 저희는 편집국장이 직접 주 후배에게 전활 걸었답니다]

[상성훈 : 훗. 내가 알기론 우린 대표가 직접 전화했다는데?]

이런.

그다지 알리고 싶지 않았던 내용들이 상성훈 선배를 통해 까발려지고 있다.

[이주연 : 어? 마이뉴스24 대표가요?]

[김기문 : 으? 박호창 대표 말입니까?]

[상성훈 : 그래. 우리 국장이랑 얘기하다가 직접 전활 걸었나봐]

[김기문 : 주 후배는 그런 얘길 한마디도 안 해서 몰랐는데. 이거 우리가 모르는 오퍼가 많았겠구만.]

그렇진 않다.

여태껏 내게 전화 한 곳은 이뉴스와 마이뉴스24 두 매체뿐.

[주진형 : 아뇨 두 군데가 답니다]

[김기문 : 으으, 그렇다면 역시 마이뉴스로 가겠구만 주 후배. 아무래도 거기가 더 위급이지]

[상성훈 : 으하하하 그렇지. 주느님! 환영~합~니~다~]

아니, 아직 결정하지 않았는데.

물론 이뉴스와 비교하자면, 마이뉴스가 두 계단 위급의 매체긴 하다.

디지털투모로우 < 이뉴스 << 마이뉴스24, 정도랄까.

‘뭐가 됐든······디지털투모로우와 똑같은 반복은 싫어.’

난 기사를 쓰고 싶었다.

잘못된 것은 지적하고 좋은 점은 칭찬하고.

어려운 기사는 쉽게 설명할 수 있는 IT기사를 쓸 거다.

이런 간단하고도 당연한 일을 할 수 없다면, 의미가 없다.

[이주연 : 진형아. 어디로 갈진 모르겠지만 웬만하면 빨리 정하는 게 좋을 거야. 시간 끌어봐야 몸값만 떨어질 테고. 지금 너라면 웬만한 곳은 골라서 갈 수 있을 테니까. 잘 생각해봐]

주연 선배가 현실적인 조언을 건네줬다.

[주진형 : 네, 선배. 감사합니다]

[이주연 : 그리고 탈출 진짜 축하해. 진짜 빨리 탈출했네.]

[상성훈 : 언제 함 모일까? 오랜만에 너희들이랑 술이나 한잔 하고 싶은데]

[김기문 : 상 선배 탈출할 때가 마지막이었잖습니까. 그 때도 선배 탈출 턱 안 쐈는데!]

[상성훈 : 어? 어? 이번엔 주느님이 탈출했으니, 주느님이 쏘는 걸로?]

[이주연 : 와, 역시 상 선배. 매너 없어]

잠시 동안 선배들의 대화가 이어지다 끊겼다.

아무래도 근무 중이기 때문에 길게 채팅할 시간은 없겠지.

난 지하철을 타고, 고시텔이 있는 영등포시장역으로 이동했다.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주홍색 햇빛이 새어 들어오는 고시텔 방.

침대서 잠시 자고 있던 난 전화소리에 깼다.

“누구야······”

오랜만의 꿀 같은 낮잠을 방해하는 자는-

[뉴데이트 이수경 기자]

난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다지 중요치 않은 사람이다.

허나 딱히 무시할 이유는 없었기에.

난 수경의 전활 받았다.

“······네, 여보세요.”

목소릴 조용히 가다듬은 후 말했다.

-아, 주 기자님. 지금 어디세요?

수화기 너머 수경의 목소린 약간 들떠있었다.

“저 집인데요.”

-네? 집이요?

“네. 영등포시장 근처입니다.”

-어? 오늘 출근안하신거예요? 아니면 조퇴?

아, 참.

아직 퇴근시간이 안됐구나.

난 시간을 살짝 확인한다.

저녁 5시.

아직 밖이 환한 이유가 있었다.

“저 회사 관뒀습니다. 오늘부로. 그래서 쉬고 있어요.”

내가 솔직하게 근황을 설명했다.

그러자 수경이 호들갑이다.

-네!? 정말요? 와! 기자님! 축하해요!

디지털투모로우의 사정을 알고 있다면 모를까.

퇴사했다는 게 일반적으로 축하받을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어쨌든 축하해주니, 무덤덤하게 받아주기로 했다.

“네. 감사합니다. 근데 무슨 일 때문에 전화 주셨어요?”

느끼지 못할 정도의 귀찮음을 담아 물어봤다.

-아, 기자님. 지난번에 한 번 뵙자고 했는데. 혹시 오늘 괜찮으세요? 잠깐 드릴 말이 있어서. 네?

말투에서 자연스럽게 배인 애교가 새어나온다.

난 잠시 머리를 긁적이곤, 대답했다.

“그럼 영등포시장으로 오세요.”

귀찮았지만, 이전부터 계속 만나자고 조르는 터다.

그냥 시간 있을 때 처리해놓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아 진짜요? 몇 시 쯤 가면 될까요?

“편한 시간대에 오세요. 6시 반쯤 오셔도 되고.”

-네. 그럼 그때 갈게요!

넉살 좋게 수경이 대답했다.

그와의 통화를 끝내고, 난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잠자는 사이 인지하지 못했는데, 부재중 전화와 문자메시지가 여러개 와있었다.

[퇴사했다는 얘기, 들었습니다. 시간 날 때 연락주세요 –이뉴스 국장 채지영]

‘······이뉴스인가.’

아무래도 기문 선배를 통해 소식을 들은 듯 하다.

채지영 국장은 일면식도 없긴 하나, 평판은 나쁘지 않다.

기문 선배가 말하기를, 취재의 양보다 질을 중시하는 국장이라고 한다.

게다가 전자뉴스 소속 매체라 광고에 대한 부담도 적다.

‘한 번 접촉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헌데 이뉴스 뿐만이 아니었다.

다음 문자메시지들도 모두 비슷한 내용이 한 가득이었다.

[마이뉴스24 박호창입니다. 얘기 전해 들었습니다. 주 기자만 괜찮다면 근시일내······]

[안녕하세요. 전화가 안 돼 문자남깁니다. 데일리뉴스 이인순 부장입니다······]

[주진형 기자되시죠? 아이티타임즈 팀장 성철준 입니다. 퇴사했다는······]

얼마 전 통화했던 박호창 마이뉴스24 대표는 물론.

이주연 선배가 소속된 데일리뉴스의 이인순 부장도 내게 전화했다.

거기다가 아이티타임즈까지.

그 외의 중소매체들도 수두룩하게 내게 연락한 상태였다.

“······잠깐 자고 일어났더니 왜······”

왜 이렇게 삽시간에 내가 퇴사했단 소문이 퍼졌을까.

코코아톡 채팅방 목록을 확인하다가, 그 이유를 알아냈다.

[상성훈 : 나 오늘 기자실 갔다가 주느님 퇴사했다고 말했더니, 기자들 난리더라?]

‘······또 상 선배인가.’

내가 이마를 붙잡았다.

이 선배는 참 소문내는 걸 본의아니게 잘하는 성격이다.

[김기문 : 난리 날만 합니다. 요즘 주 후배가 거의 독보적이었으니]

[상성훈 : 그래서 기자 아예 관두는 거 아니냐고 묻는 애들 있길래 내가 따끔하게 한 마디 했지]

[이주연 : 뭐라구요?]

[상성훈 : 주느님과 기자는 업아일체라고. 주느님이 기자고 기자가 곧 주느님이라고오! 으아아아아!]

[이주연 : 우아 진짜 오글거린다. 선배]

[김기문 : 상 선배 칭찬이 주 후배에게 독이 될 것 같습니다만······]

기문 선배의 평가에 백배 동감하는 바였다.

난 괜히 그 대화에 끼어들지 않기로 했다.

휴대전활 내려놓고 화장실에 들어가 우선 세수부터 한다.

머리가 좀 눌리긴 했지만, 그냥 가볍게 모자를 쓰고 나가기로 했다.

1시간 뒤.

“주 기자님!”

영등포시장역 앞.

수경이 거리에 서있던 날 발견하고 다가왔다.

“와! 주 기자님, 이렇게 옷 입으신 거 보니까 확 실감나네요. 퇴사 축하드려요.”

기자들은 꽤 격식 있게 옷을 입는 편이다.

아무래도 사람을 만나는 직업이다 보니, 예의를 차리는 거지.

뭐 상성훈 선배처럼 편히 입는 기자들도 있긴 하다만.

어쨌든 지금 난 무척 캐주얼한 옷차림이었다.

모자에 면 티와 청바지.

때가 탄 운동화까지.

“네. 감사합니다. 일단 어디 좀 들어가시죠.”

우린 가까운 프랜차이즈 카페에 들어갔다.

“제가 살게요! 주 기자님! 드시고 싶은 거 말씀하세요.”

주문대 앞에서 갑자기 수경이 치고 들어왔다.

“에? 여기까지 오셨는데, 그냥 제가 사죠.”

난 딱히 수경에게 얻어먹을 이유가 없다.

심지어 이 부근은 내가 사는 지역이고.

엄밀히 따지면 수경은 손님이지 않은가.

더치페이라면 모를까 얻어먹다니.

내가 대접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아니에요~! 제가 살게요!”

난 고집부리는 수경에게 알았다고 대답했다.

괜히 거절 했다가 분위기만 나빠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럼 전 따듯한 녹차로.”

“네, 앉아계세요. 주문하고 갈게요.”

내가 한적한 자리를 찾아 앉아있자, 곧 수경이 찾아왔다.

“근데 찾아오신 이유가?”

우리의 면식은 단 한 번뿐이고.

그 이후로도 취재나 기사의 접점은 없었다.

아, 물론 내 기사를 우라까이 하던 건 봤다만······

그것 때문에 여기까지 왔을 린 없을 터다.

“네 주 기자님. 퇴사 하시기전 부터 말씀드리고 싶었는데.”

“네.”

“혹시 뉴데이트로 이직하실 생각 없으세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