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 매체는 기자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뉴데이트요?”
수경의 이런 제안을 전혀 짐작하지 못했던 건 아니다.
다른 언론사들이 지금 내게 접근하듯, 충분히 가능한 일이니까.
다만 뉴데이트는 내 성향과 정말 맞지 않는 매체였다.
“네. 저희 국장이 주 기자님이 꼭 좀 왔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구요.”
곰살가운 표정으로 말하는 모습은 참 순박하다.
하지만, 꽤 부담스러웠다.
매체 국장한테는 그냥 국장이라고 하면서, 나한텐 기자님이라니.
게다가 내가 선배도 아니고 말이다.
“제 기사 보셨으니 아시겠지만······”
내가 입을 열자 수경이 경청하듯 눈을 본다.
“제가 좀 꼴통이라 서요. 저랑 성향 맞는 매체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내 딴에는 정중하게 에둘러 표현한 거다.
뉴데이트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파수꾼’을 자칭하고 있는 언론사.
실제로 그들 기사 대다수가 기업 중심적 시선과 기업 친화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그게 진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키는 방향인진 모르겠다만.
비판정신을 강력하게 무장한 나와 척 봐도 맞질 않는다.
‘어쨌든 거길 들어가면 디지털투모로우를 탈출한 의미가 그다지······없지.’
말 그대로.
갈 이유가 없다.
“에이~ 성향이 맞는지 아닌지는 오셔서 보셔야 알죠.”
내 말을 제대로 이해 못한 건지, 아니면 알고도 그러는 건지.
수경은 눈을 반짝이며 적극적으로 제의했다.
그의 오밀조밀한 얼굴이 내 눈 가까이에 들어온다.
여기선 일단, 수긍하는 척하는 게 덜 피곤하겠지.
“-네, 일단. 생각해보겠습니다.”
“앗, 정말요! 네! 참, 주 기자님. 마지막에 쓰신 기사가 갑자기 지워 졌던데. 뭐 문제 있었나요?”
그 짧은 사이 세상에 나왔다 사라진 내 기사까지 봤나.
한편으로 고마우면서도 뭔가 꺼림칙했다.
이수경은 뉴데이트 안에서 인터넷 분야를 담당하는 기자로 알고 있다.
그가 왜 내가 쓴 통신 기사를 읽는단 말인가.
내 이름을 검색해서 기사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있나?
아니면- 윗선에서 마크하란 얘기라도 있었을까.
“······음, 저희 대표가. 아니지. 디지털투모로우 대표가 오플러스와 거래하신 모양입니다.”
간단하게 얘기했지만, 수경도 무슨 뜻인지 파악했다.
“아······”
길게 탄식하는 수경에 내가 미소를 지었다.
“뭐, 그래서 나왔습니다. 그 전에도 기사가 몇 꼭지 출고 안 되기도 했구요.”
이정도 얘기했으면, 뉴데이트와 나의 상성도 별로일 거라 짐작하셔야지.
웃음 속에 눈치를 담아 준다.
“그랬구나아······아 힘드셨겠어요!”
수경은 전혀 눈치를 먹지 않고, 오히려 날 달래고 있었다.
“근데 그건 어떻게 아셨어요? 기사 노출된 시간도 짧았고 통신 분야였는데.”
난 슬쩍 수경을 떠 보기로 했다.
수경은 당황한 기색을 숨기며 내게 입을 열었다.
“어, 어, 어쩌다 우연히?”
말끝의 어조가 올라간다.
자신도 확신이 없을 때 하는 행동이다.
“그래요?”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반문했다.
아무리 봐도 윗선에서 수경에게 지시한 것 같다.
주진형을 집중 감시하라고.
그게 어떤 이유냐에 따라, 내가 수경을 대할 태도도 달라지겠지.
‘오퍼하기 전, 내 정보를 수집하려고? 아니면······ 취재 소스를 캐내려고?’
노골적으로 그 의도가 드러나는 순간.
수경의 처분을 결정하면 된다.
“이 기자는 뉴데이트 어떠세요? 계속 다닐 만한가요?”
화제를 수경 쪽으로 돌려본다.
“헤헤, 저야 뭐 아직 눈에 띄는 기사도 못썼는데요 뭐. 뽑아 준거에 감사하며 다녀야죠! 그리고 우리 매체 좋아요. 다들 잘해주시구! 주 기자님도 오시면 딱인데-”
수경은 볼을 발그레 붉히며 내게 답했다.
그걸, 왜 부끄러워하며 말할 필요가 있나.
어쨌든, 수경은 아직 기자로서의 가치관이 서지 않은 모양이다.
내가 질문한 의도와 다른 대답이 돌아온 걸 보니까.
‘뭐 그럴 수도 있지. 아니, 오히려 국내에선 그런 성격이 더 유리할지도.’
난 수경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수경이 오묘한 미소를 짓더니 시선을 피한다.
유메프 환영식 때엔 좀 더 당당했던 것 같은데.
오늘 따라 유독 부끄럼을 탄다.
“참, 주 기자님~ 오늘 저녁에 약속 있으세요?”
이제 생각났다는 듯, 수경이 물어온다.
이미 7시가 다됐는데, 이제와 저녁 약속을 묻다니.
뜬금없는 물음이지만, 그 의도는 식사를 하자는 소리일 거다.
“······네 있어요.”
“에!? 진짜요?”
내 대답에 수경이 창황하게 소리쳤다.
“네, 수경씨랑 일정잡았잖아요.”
“아- 아아! 그렇죠! 헤헤. 제가 좀 바보같네요.”
알긴 아네.
내가 피식 웃자 수경도 덩달아 웃음을 터트린다.
“그럼, 식사하러 갈까요? 저 좀 배가 고파서.”
수경의 말에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시죠.”
어차피 당장 일정도 없고, 앞으로 자주 마주칠 동료기자다.
내게 해가 되지 않는다면 어느 정도 교류를 하는 것도 나쁘진 않지.
우린 자릴 옮겨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다.
수경은 식사하는 내내, 내게 긍정적인 인상을 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계속 웃는 낯으로 나와 대화를 이어나가려 시도한 거다.
“주 기자님은 진짜 멋있는 거 같아요. 다른 기자 분들하곤 다른? 그런 포스도 있고. 그 때 되게 놀랐는데. 유메프 팀장님 환영식 할 때요. 갑자기 사라졌다가 기사 쓰고 돌아오신 거. 저게 기자구나- 진짜 기자는 다르구나 싶었어요.”
“그러셨나요?”
“네! 와, 그때 전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편한 맘으루 온 거였거든요.”
“이 기자도 나름 선배들 사이서 유명하던데요.”
물론 기사 때문인 건 아니지만.
“네? 아이, 그럴 리가요. 뭐 전 아직 눈에 띄는 기사도 못 써냈고······ 헤헤.”
“앞으로 쓰면 되죠. 전 몇 달 전 만해도 제대로 된 기사도 못썼었는데요. 뭘.”
오후 8시 40분 쯤.
우린 식사를 마치고 다시 시장거리로 나왔다.
수경은 뭔가 아쉬운 표정으로 내 옆을 걸었다.
‘아직 못한 말이 있나? 아니면 못 알아낸 정보?’
흐응, 수경이 직설적이지 못한 덕분에 흥미가 좀 생겼다.
곧 지하철 역사에 도착하고.
수경이 지하계단을 내려가기 전, 내게 인사했다.
“기자님, 또 연락드릴게요. 자주 뵀으면 좋겠어요!”
“네. 그렇게 돼야죠. 복귀 곧, 할 겁니다.”
“아······ 네. 그 전에라두요! 그럼 갈게요!”
난 수경의 몸이 사라진 걸 확인한 뒤.
몸을 돌리고 고시텔로 돌아갔다.
퇴사한지 2주가 흘렀다.
난 내게 적극적으로 접근해온 몇 매체의 임원진과 면접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바로 입사하려는 건 아니었다.
그저 각 매체들이 어떤 느낌인지, 파악하고 싶었던 거다.
사실, 첫 직장을 일 년도 못 채우고 끝낸 건, 내 실수다.
경력에 그리 긍정적인 행동은 아니었으니까.
적어도 다음 직장만큼은 확실히 버틸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그리고 부모님과 함께 거주할, 집을 구하러 다니기도 했다.
“아주 잘 사시는 겁니다. 여기 시세보다 오천은 싸게 나온 거예요.”
부동산 중개 사무소 안.
매매 계약서에 인감도장을 찍으려는 내게, 중개업자가 말했다.
결국 결정한 곳은 광진구 자양동의 한 아파트.
27평 아파트의 매매금액 6억 5,000만 원.
최근에 지은 신식 건물을 찾다 보니 가격이 크게 뛰었다.
절대 싸지 않다는 걸 부동산 시세를 잘 모르는 나도 알 정도다.
‘그렇지만······부모님께 보여주고 싶으니까.’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한강이 바로 보이는 베란다 때문이다.
지난 번 예인의 집에서 봤던, 그 광경이 뇌리에 깊게 남았던 듯하다.
“자 됐습니다.”
계약서가 중개업자의 손을 거쳐, 원 매물 자에게 넘어갔다.
대금은 수표로 일괄 계산했다.
매매가 성사 된 후.
난 이제 내 명의가 된, 빈 아파트 집에 홀로 들어가 봤다.
가구 하나 없이 깨끗이 텅 빈 거실 너머.
베란다 유리창엔 드넓은 한강이 햇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여기가······ 내가 산 첫 집.”
일개 기자 봉급으론 절대 1년 만에 구하지 못했겠지.
난 두 달 전 만났던, 그 의문의 노숙자에게 다시 한 번 감사했다.
신이었을까, 아님 악마였을까.
정체가 뭐든, 난 그에게 뱉은 말을 지켜나갈 작정이었다.
‘내게 주어진 기회, 죽을힘을 다해 잡아낼 거야.’
여기서 만족하지 말고 더 올라가야 한다.
그동안 내가 바라왔던 목표는 변함없다.
‘대 기자’ 김광필 선배처럼 IT업계의 인정을 받는 전문기자.
또 업계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지닌 기자였다.
‘폼 나게, 멋지게. 업계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거물이 되고 싶었지.’
헌데, 디지털투모로우를 떠나며 깨달은 게 있다.
‘매체가 뒷받침 되지 않는 이상. 그렇게 되는 건 불가능하다는 거.’
같은 품질의 가방이라도, 어떤 브랜드가 붙느냐에 따라 판매량이 달라진다.
기사도 마찬가지다.
어떤 매체에서 나오느냐에 따라 조회 수가, 반응도가 천차만별이다.
그리고 디지털투모로우가 내게 그러했듯.
기자를 부품으로 아는 회사에선, 성장을 기대하는 건 무리다.
‘기자를 위한 회사가 아니라, 회사의 존재유지를 위한 기자가 돼버리는 거지.’
대기업이 집행하는 광고비에 찌든 국내 언론사들.
광고주가 원하는 내용을 다루고, 그들이 원치 않는 기사를 내린다.
돈에 의해 기사를 쓰고 지울 거라면, 차라리 언론홍보 일을 했겠지.
난 그게 싫어서 퇴사를 했다.
‘기업 중심이 아니라. 기자 중심, 독자 중심의 언론사가 필요해.’
언론은 정말 우리가 다뤄야할 기사들, 독자들이 원하는 기사를 써야한다고 믿었다.
기업행태를 비판하고, 기술을 날카롭게 파헤칠 수 있는 언론.
타협하지 않는 진짜 기자가 되고 싶다.
‘문제는 그런 곳이 극히 드물다는 건데······’
그렇다고 노브랜드, 프리랜서로 나선다?
경력 없는 기자에겐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유명매체 부국장까지 지낸 ‘광피리’쯤 돼야 블로그에 글을 써도 화제가 되는 거다.
블로그와 뉴스기사는 노출 도부터 신뢰도까지 큰 격차를 보이니까.
‘김광필 선배는 과연 어떤 식으로 해결해나간 걸까.’
본인에게 직접 물어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지금 김광필 기자는 은퇴 후 두문불출하고 있다.
‘혹- 이 생태계에 적합한 기자, 였던 걸까.’
김광필 기자의 기사 성향을 떠올리며 짐작해본다.
실은, 잘 모르겠다.
그렇진 않을 거라 부정하며, 난 고갤 저었다.
‘기자 중심의 매체라······’
멍하니 한강을 보며 눈을 감는다.
그러다 번뜩,
“······!”
그 악순환의 이유를 깨달았다.
“돈!”
난 바지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메모앱을 켰다.
내용 몇 자를 적어나가던 중간에, 휴대전화 화면이 통화로 바뀐다.
[장 킴 유니콘벤처스 대표]
의외의 전화였다.
무슨 일일까, 난 잠시 고민하다가 수신을 택했다.
“네. 주진형입니다.”
-어~ 주 기자. 자네 잘 지내?
여전히 경쾌한 목소리다.
“에, 뭐. 그럭저럭 지내고 있습니다.”
-허허! 그럭저럭이라. 퇴사했다면서. 한창 일할 때에 빈둥거리면 쓰나.
“사정이 좀 있었습니다.”
내가 왜 변명을 해야하는 진 모르겠지만.
마치 아버지한테 혼나는 기분이다.
-사정은 모르겠고! 아무튼 난 곧 미국으로 돌아가네. 가기 전에 식사나 한 번 하자고. 응? 지난번에 자네가 한턱 쏜다며. 얻어먹고 들어가야 발 뻗고 미국 갈 것 같은데!
장난기 가득한 그의 말에, 나도 피식 웃음이 났다.
“그럼, 알겠습니다. 대접해드려야죠. 언제가 좋으십니까?”
내가 묻자 장 킴 대표가 빠르게 대답했다.
-다음 주 월요일 점심. 내가 저녁 비행기거든.
“그날 돌아가시는 겁니까? 그 중요한 시간에 절 만나신다구요?”
-오오, 자네 그렇게 말 할 줄도 아나? 중요하긴 하지. 그래도 시간이 그 때말곤 안 나서 말이야. 알잖나. 스타트업들과 면담하느라 일정이 꽉 찼어.
벤처투자사의 역할은 단순히 스타트업을 투자하는 게 끝이 아니다.
그 스타트업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여러 경영지식과 조언을 제공해야 한다.
당연히 그러기 위해선 그간의 성장에 대한 분석도 해야 할 테고.
여러모로 바쁠 거다.
“그러시다면, 알겠습니다. 저야 뭐 지금은 시간이 넉넉하니까요.”
-백수다 이거지?
“······”
-계속 백수일 순 없지 않나. 얼른 다시 취직해야지. 기자 그거 감 잃으면 못써.
장 킴이 집요하게 백수로 공격을 한다.
“그건 저도 준비 중입니다. 참 그러고 보니, 뵙는 날 말씀드릴게 있습니다.”
-뭘?
“구상해둔 아이템이 있는데, 평가를 받아보고 싶어서요.”
내 말에 장 킴이 화통하게 웃었다.
-핫핫핫! 뭔진 몰라도, 기대 되는데? 좋아. 그리고 말이야, 한 명 소개시켜줄 사람이 있어. 그날 같이 가도 되겠지?
장 킴 대표의 말투는 전혀 부탁하는 게 아니었다.
난 그래도 확인해보기로 했다.
“누군지 여쭤 봐도 됩니까? 제가 좀 낯을 가려서요.”
-응, 비밀이야.
“······”
이건 뭐 초등학생 말장난도 아니고.
어이를 상실한 내가 말이 없자, 장 킴이 급히 수습한다.
-걱정하지 말라고. 자네한테 무조건 이득인 사람이니까.
무슨 기준으로 판단한 건진 모르겠다만.
장 킴 대표를 믿어보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 주에 뵙죠.”
-그래. 그때까지 잘 먹고 지내라고.
끝까지 동네 아저씨처럼 인사하는 장 킴이다.
통화 종료 후.
다시 휴대전화 화면엔 메모앱이 나타났다.
거기에 미처 못적었던 글자를 눌러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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