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 뭐 때문에 그런 생각을 했는지
며칠 뒤.
부모님이 서울로 올라오셨다.
싸구려 여행용 캐리어 두개에 짐을 잔뜩 넣은 채로 말이다.
난 두 분을 그럴듯한 맛 집으로 모셔 점심식사를 했다.
그리고 우리 아파트 집으로 함께 이동했다.
“진형아, 이 집을 네가 샀다고?”
엄마는 믿기지 않는 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거실 가운데에 섰다.
아버지도 내색하지 않았지만 꽤 놀라신 모양이다.
두리번거리며 집안을 훑고 게셨다.
“집 진짜 좋다. 진형아.”
“네. 한강 멋지죠? 일부러 이쪽으로 샀어요. 그래서 집이 좀 좁아요.”
“좁다니! 이정도면 세 식구 살기 충분하고도 남지!”
엄마는 집 구경에 온통 정신이 쏠려 내게 얼굴을 돌리지도 않았다.
곧 베란다 문을 열고, 창가 쪽으로 걸어 나갔다.
“여기 이리로 와서 좀 봐요, 진형 아버지.”
한껏 들뜬 목소리로 엄마가 아버질 불렀다.
“진형아. 너 이 집 어떻게 산거냐. 네가 무슨 돈이 있다고······”
아버진 엄마의 손짓에 답하지 않고, 내게 조용히 물었다.
조금은 걱정스런 눈.
내가 고시텔에서 생활했던 것도 부모님은 다 아시는 사실이다.
취직 전엔 돈이 없었으니까.
취직 후엔 기자 봉급이 적었으니까.
그런데 갑자기 서울에, 한강이 보이는 아파트를 산거다.
이상하게 여길 만 했다.
“걱정 마세요. 정당하게 번 돈으로 산거니까.”
“말해봐라.”
“제가 취재한 정보를 사는 사람이 있어요. 금융종사자인데, 수익 난 금액의 일부를 떼어줬어요.”
난 솔직하게, 그러나 간단하게 설명했다.
구구절절 풀어서 이야기해봐야, 큰 도움 안된다.
이 정도로 구색만 갖춰 말하면 부모님도 크게 의심하지 않을 터.
“그거 정말, 문제 없는 거냐? 솔직히 난 좀 무섭구나.”
아버지의 평소 강한 모습 온데간데없었다.
갑자기 자신 앞에 펼쳐진, 큰 행복에 놀란 서민 같다.
‘아니. 서민 맞지 우린.’
난 그런 아버지에게 미소를 보였다.
“법적으로 아무 문제없어요. 그 분도 회사 다니면서 받은 인센티브를 떼 준 거니까. 걱정하지마세요.”
“그러냐? 흐음. 이 가구들은?”
아버지가 집안 곳곳에 놓인 소파와 식탁, TV, 냉장고 등을 가리켰다.
“새로 샀어요. 그래서 중요한 것만 챙겨오라고 말씀드렸던 거고요.”
난 내가 꿈꿔왔던 대로 집을 완벽하게 꾸며 놨다.
거실엔 한 편에 푹신한 소파와 에어컨을 놓고.
그 맞은편엔 65인치 TV가 올려 진 장식장이 있다.
주방도 냉장고와 오븐 등 가전제품 등을 배치했다.
“안방도 보셔야죠. 이쪽이에요.”
내가 아버질 모시고 안방으로 이동했다.
안방엔 더블사이즈 침대와 옷장들.
엄마를 위한 화장대까지 구비해 놨다.
“평생 이불만 깔고 주무시다가 침대는 첨이죠? 하하.”
내가 농담 식으로 아버지에게 말을 건넸다.
아버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표정에서 감정을 참아내고 있는 게 너무나 잘 보였다.
“······고맙다. 진형아.”
“뭘, 이런 걸 가지고 우시려고 그래요. 아버지도 늙으셨네.”
난 머쓱함에 머릴 긁적였다.
아버지가 눈물을 보일 거라곤 상정치 못했던 거다.
나도 사실 꿈만 같다.
우리 가족이 이런 집에 모여 함께 살 수 있다는 게.
좁고 허름한 집에서 부대끼며 살던 게 불과 몇 년 전이었다.
‘청과물이 정리되는 대로 새로 일을 알려드려야겠네.’
부모님은 아직 고향에서 운영하던 시장 청과물 가게를 정리하지 않았다.
상경 시간이 촉박했던 탓도 있고, 아버지가 그리 원치 않으셨다고 한다.
아무래도 거의 반편 생을 몰두했던 일이자 장소다.
쉽게 쳐낼 순 없겠지.
그래도 이렇게 서울 살이 하게 된 이상.
현실적으로 가게 일은 하기 어렵다.
난 대신 아버지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전자상거래를 알려드리기로 했다.
“뭐, 천천히 둘러보세요. 짐도 푸시고.”
일단 아버지도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시겠지.
난 아버질 두고 안방을 나왔다.
걸어가며 힐끔 보니 엄마는 아직도 베란다에 서서 한강을 구경하고 있었다.
난 거실을 지나 내가 쓸 작은 방으로 이동했다.
내 방은 그리 크지 않다.
그리고 별다른 가구도 없다.
침대와 작은 책상이 전부.
정작 내 방에 신경 쓰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독립해야지.’
뭉치자마자 독립을 생각하는 게 웃기긴 하다.
그러나 예상치 않은 큰 수입 덕분에, 부모님과 살 아파트도 구한 것일 뿐.
사실 나만의 공간을 마련하는 건 꽤 오래전부터 생각했던 거다.
고시텔 만한 크기도 나쁘진 않았다만.
조금 더 여유 있는 장소가 필요하다.
‘또 돈을 열심히 벌어야 한단 소리지.’
난 책상위에 손바닥을 얹고 곰곰이 생각했다.
요즘도 내 메일함에는 다음 주 보도 자료가 먼저 수신 되고 있다.
이 정보를 장도현 과장에게 지속적으로 공급 중이다.
하지만, 보도 자료는 기자들에게 보내는 것.
내가 빨리 복직하지 않으면, 자료 발송 목록에서 제해질 가능성도 있다.
‘기자가 아닌 사람한테 보도자료 보내봐야 소용없으니까 말이지.’
다만, 난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한 상태다.
어떻게, 어디로 복귀해야할까.
난 바지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메모 앱을 실행한다.
일전에 적어놨던 그 내용이 눈에 들어온다.
[독립자본 IT언론 스타트업]
이 상상을 곧 검증받게 될 거다.
“중국집이요?”
장 킴 대표와 만나기로 약속했던 당일.
여의도 사거리와 국회의사당 사이에 있는, 여의도 공원 안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여전히 휴양지에 놀러온 아저씨 패션이었다.
불쑥 중국집을 가자는 그의 말에, 난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어. 오랜만에 가보고 싶어서 그래.”
“즐겨 찾는 곳이 있으신 겁니까? 제가 대접하기로 했는데, 중국집을 가자고 하셔서 뭔가 당황스러운데요.”
공원을 함께 걸으며 내가 말했다.
“어허, 자네. 내가 설마 자네가 백수고 박봉인 전직기자였다는 것 때문에, 괜히 중국집을 가자고 했을 까봐 그러는 건가.”
아니 뭘, 그렇게 상세하게 구술할 필요까지야.
짐짓 아닌 척하고 있지만, 누가 봐도 저 백수소릴 해주고 싶어서 꺼낸 말일 거다.
근데 자기 딸도 기자면서 박봉 전직기자는 뭐 하러······
“뭐, 부정하진 않겠습니다.”
“설령 맞다한들, 자네가 그런 거에 자존심 쓸 필요 없어. 사람이 배려해주면 받는 거야.”
“저 돈 많습니다만-”
“어허, 나보다 많은가?”
“······아.”
반박할 수가 없는 일침이었다.
난 깨달은 얼굴로 조용히 장 킴을 쳐다봤다.
그러자 장 킴이 호쾌하게 웃는다.
“핫핫핫. 장난이야. 그리고 정말 그 집을 가고 싶어서 그래. MSG가 팍팍 들어간 짜장을 먹어줘야 한국 온 것 같지 않겠나.”
“MSG라면 동네 자장면집도 충분할 것 같은데요.”
“그 집 MSG는 국회 맛이 나서 좋아.”
‘이건 또 무슨 영문 모를 소리야.’
우린 이처럼 별 영양가 없는 대화를 주고받으며, 문제의 중국집으로 향했다.
여의도동 국회대로에 위치한 한 빌딩.
그 지하에 즐비한 음식점들 중에 목적지가 있었다.
[다미원多美園]
‘이래서 MSG라고 한거였냐······’
문 위에 달린 둥근 간판이 좁은 복도위에 눈에 띈다.
유리문에 번잡하게 붙여진 중화요리 사진들.
동네 흔한 중국음식점의 특색을 잘 갖춘 식당이었다.
‘정말 별 다를 바 없어 보이는데 말이지.’
내가 멍하니 가게 외관을 보고 있던 사이.
장 킴 대표가 먼저 가게 문을 연다.
“뭐하나? 들어가자고.”
“네.”
난 장 킴을 따라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역시 인기가 많구만.”
“자리가 없는데요.”
이정도 일 줄이야.
안에는 사람들이 가득차있었다.
근처에 중국요리집이 여기만 있는게 아닐 텐데.
“조금 기다리면 자리 날거야.”
“정말 맛 집인가 보군요.”
내가 그 말을 하던 순간.
막 식사를 마치고 일어나던 일행이 있었다.
그중 말끔한 정장차림의 50대 남성이 장 킴을 알아봤다.
“어? 김 대표?”
“오, 변 의원?”
두 사람이 악수했다.
“한국 돌아왔다는 건 기사로 봤는데. 여기서 볼 줄은 몰랐네.”
“다 여기서 보는 거지. 딱 자네가 여기 있을 것 같았어.”
장 킴은 들뜬 얼굴로 대답했다.
“이쪽 분은?”
변 의원이라 불린 자가, 나를 보며 묻는다.
장 킴이 픽, 불길하게 웃더니 입을 열었다.
“아, 내 딸 친구야.”
“아니, 아니, 그런 설명이 어딨습니까, 대표님.”
내가 체면도 집어던지고 둘 사이에 바로 끼어들었다.
“헛헛, 그럼 뭐라고 할까. 백수?”
그래, 지금 난 기자가 아니지.
이거 원, 직업 잃은 천사도 아니고.
“······안녕하십니까. 주진형이라고 합니다.”
난 장 킴의 직업공격을 무시하고 상대에게 인사했다.
“아, 변일재입니다.”
“민더당 소속 국회의원이야. 이쪽 계열이기도 하고.”
장 킴 대표가 내게 설명을 덧붙였다.
민더당, 민주더하기당의 줄임말이다.
야당 소속 의원인데, 이쪽 계열이란 뭘 뜻하는 건지 알 길이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직접 캐물을 분위긴 아니다.
“사실 이 친구 얼마 전까지 기자였어. IT기자.”
“아아, 그러셨구나. 저 미방위 소속위원입니다.”
순간적으로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했다.
미방위는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라는 길고 짜증나는 이름을 줄인 거다.
말 그대로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를 소관 하는 국회 상임위원회.
즉, 두 정부부처와 관련된 사안들을 실질적으로 담당하는 국회의원이라 할 수 있다.
“만나 봬서 영광입니다. 죄송하게도 지금 명함이 없어서-”
난 변일재 의원에게 양해를 구했다.
기자로서는 놓쳐선 안 되는 취재원 중 한명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지금 ‘기자신분’을 두고 왔으니.
“괜찮아요. 제 명함을 드리죠.”
변일재 의원은 친절히 내게 명함을 건넸다.
난 그 명함을 소중히 받아들었다.
통신 담당 기자였던 만큼.
이 사람의 명함이 얼마나 큰 가치를 지니고 있는 지, 잘 안다.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김 대표는 미국은 언제쯤 돌아가나?”
“오늘 가는데.”
몹시도 시원한 장 킴 대표의 말.
이에 변일재 의원이 못 말린다는 듯 웃음쳤다.
“그래, 다음번엔 식사나 하자고. 스타트업 얘기도 좀 하고.”
“좋지.”
변 의원은 보좌관으로 보이는 30대 남성과 함께 가게 밖으로 나갔다.
나와 장 킴은 그들이 앉았던 식탁자리를 그대로 차지했다.
종업원이 식탁을 치우는 사이, 음식을 주문한다.
우리 둘 다 자장면을 골랐고, 단품으론 탕수육 중자를 시켰다.
“중자는 좀 많지 않을까요? 돈이 아까워서 말하는 건 아닙니다만.”
내가 장 킴에게 말했다.
“자네, 잊었나? 오늘 한 명 더 오기로 했잖나. 소개시켜줄 사람.”
그러고 보니, 베일에 싸인 참가인원이 한 명 더 있었지.
“아아, 그랬죠. 그분은 언제 오십니까?”
“뭐, 곧 오겠지.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으니까.”
장 킴이 모호한 말을 내뱉으며 다른 곳만 본다.
“누군지는 아직 안 알려주실 겁니까?”
내 독촉에 장 킴이 시선을 돌린다.
“뭐, 오면 알게 될 건데. 그때 재미 보자고. 그보다-”
대화의 주도권을 쥐며 바로 흐름을 바꾼다.
“지난번에 말했던 구상해둔 아이템이란 거. 그거부터 얘기해봐.”
역시 기억력이 참 좋은 사람이다.
난 손깍지를 끼곤 꽤 진지한 얼굴을 지었다.
유니콘벤처스 대표, 장 킴.
그라면 충분히 이 이야길 들을 자격이 된다.
인간적으로도 믿을만하고, 분명 내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인물이니까.
“기자답게, 핵심부터 먼저 말씀드리죠.”
장 킴이 말없이 눈을 키운다.
“IT전문 언론매체를 스타트업으로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호우.”
반응이 약간 늦게 돌아왔다.
아무래도 예상치 못한 공격이었던 모양이다.
장 킴의 표정은 묘했다.
실망한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그렇다고 환호할 기세도 아니었다.
“언론 스타트업이라······ 당장이라도 할 말이 많긴 하지만. 일단 들어볼까? 무슨 장점을 보고 들어가려는 건지.”
내게 설명을 요구하는 거다.
난 미리 구성해둔 이야길 꺼냈다.
“기존 언론사완 다릅니다. 자본독립으로 갈 겁니다.”
“정말 어려운 얘길 하는구만. 스타트업이 자본독립?”
“투자의 얘기가 아닙니다. 돈을 버는 방식을 기존 매체와 다르게 잡아보려 합니다. 대기업 광고를 받지 않아도 문제없이 기사를 쓰고 월급을 받는 그런 매체를 지향하는 거죠.”
“······자네가 뭐 때문에 그런 생각을 했는지 단박에 알겠군.”
장 킴 대표의 반응은 부정적으로 보였다.
아니, 좀 난감하다랄까.
난 그 이유를, 곧 알게 됐다.
“이런 얘기라면 내가 잘못 생각했네. 일단 남은 손님까지 오고 나서, 그때 같이 얘기해보고 생각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어, 왔네.”
장 킴 대표의 시선을 따라, 나도 고갤 돌린다.
한 50대 남성이 식당 유리문을 열고 들어오고 있었다.
색을 통일하지 않은 상하의.
다리미로 다리지 않은 꾸깃꾸깃한 린넨 셔츠.
너무 갑갑하지 않게 최소한의 격식을 차린 정장 차림이다.
“여기야.”
장 킴이 손을 들자, 남성이 반색하며 다가왔다.
“아이고, 늦었습니다.”
“마이뉴스24, 박호창 대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