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 명쾌한 해답을 제시해주지요
“아, 주진형입니다.”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박호창 마이뉴스24 대표에게 인사하기 위함이었다.
허릴 숙일 생각까진 없다.
그저 약간의 예의만 보이면 된다.
“반가워요, 주진형 기자. 통화만 하다가 실제로 보니까 참 미남이네. 얘기 많이 들었어요, 여기 김 대표한테.”
박호창 대표가 눈웃음과 함께 빈말칭찬을 해준다.
큰 의미가 없는 건 알지만 기분은 좋다.
‘내게 무조건 이득이 될 거라던 사람이, 박호창 대표였나.’
난 장 킴 대표의 그 표현이 부디 틀리지 않았기를 바랐다.
“과찬이십니다. 근데 제가 지금 명함이 없어서······”
“후후, 알고 있어요. 지금 주 기자는 자유의 몸이니까. 일단 앉읍시다.”
“그래, 뭘 서서 그러고 있어. 얼른 앉으라고.”
우리 대화에 장 킴 대표가 끼어들었다.
장 킴은 시큰둥한 얼굴로 메뉴판을 박호창 대표에게 건넨다.
“짜장?”
“짬뽕.”
어느 정도 친하지 않은 이상 저런 식으로 편하게 말할 순 없겠지.
두 사람의 간결한 의사소통에 그 친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난 손을 들어 점원을 불렀다.
“사장님, 여기 짬뽕 하나 추가해주세요.”
“예.”
주문을 하고 다시 이 두 사람과 눈을 마주친다.
“딱 좋을 때 왔어. 안 그래도 주 기자 거취를 놓고 얘기 중이었거든.”
장 킴이 먼저 대화의 포문을 열었다.
“음~ 아주 적절하게 등장했군, 그래. 주 기자는 요즘 어디랑 접촉하고 계신가요?”
박호창 대표가 바통을 이어받아 내게 물었다.
음, 대답해주는 건 어렵지 않다.
다만 굳이 매체 이름까지 언급할 필욘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5곳 정도와 얘길 나눠봤습니다. 뭐 아쉽게도 아직 마음이 확 서는 매체는 없었습니다만.”
내 말을 들은 박 대표가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개인적으론 그거 참 다행이네요. 난 주 기자를 우리 마이뉴스에 데려오고 싶은데.”
일단 들어보면 꽤나 감사한 말이다.
그리고 약간의 의문도 든다.
“마이뉴스는 좋은 매체죠. 근데 제가 거길 들어갈 자격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언론사의 편집권한이나 기자 채용 권은 편집국장이 쥔다.
언론사 대표는 반대로 그런 일에 영향력이 없어야 한다.
그게 정상 언론이다.
혹시나 내가 ‘비정상언론’에 낙하산을 타고 추락하는 건 아닌지.
그런 의문을 담아 에둘러 말해본다.
“지난 번 전화와 다른 얘기가 나오는 걸로 봐선, 확인이 좀 필요한가 보군요.”
다행이도 박호창 대표가 내 말뜻을 대충 알아차렸다.
중간에 낀 장 킴 대표는 별다른 말없이 우리 둘의 대화를 관망했다.
“처음 주 기자를 데려오고 싶다 말한 건 우리 김경은 국장이었어요. 김 국장 기자 보는 눈이 나만큼이나 확실하니 주 기자는 걱정 안 해도 돼요. 김 국장 대신 내가 주 기자에게 연락한 이유는, 연봉 얘기를 해주려고 한 거였고. 돈 얘긴 기자들끼리 하긴 어렵잖아요? 하하.”
즉 내게 강한 당근을 제시하기 위해 국장 대신 연락 했다는 거군.
박호창 대표의 말대로.
월급, 연봉 등과 같은 돈 얘기는 편집국장도 쉽게 장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어차피 돈을 주는 건 국장이 아니라 회사의 경영관리(경리) 부서의 역할이다.
이 경영관리의 핵이 누굴까.
당연히 내 앞에 앉은 박 대표다.
‘그렇다면 이해할 수 있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이뉴스24에 내가 들어간단 뜻은 아니다.
내가 지금까지 고민했던 이유.
기자로서의 주체성을 지킬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이 필요하다.
“감사한 말씀입니다. 하지만 누가 될까 두려운 감도 있습니다.”
“누?”
박호창 대표가 고갤 갸웃거렸다.
능력을 인정해서 스카웃하겠다는데, 무슨 누가 된단 건지 이해를 못 한거다.
내가 입을 열어 설명하려던 찰나.
장 킴 대표가 드디어 간섭을 시작했다.
“주 기자가 기존 매체에서 아무래도 좀 안 좋은 일이 있었던 모양이야. 기업광고에 휘둘리지 않고 기사를 쓰고 싶어 하더라고. 뭐, 자본독립? IT언론 스타트업을 만들고 싶대나.”
장 킴의 첨언에 박호창 대표가 내게 확인한다.
“아아. 그런 가요 주 기자?”
“네. 고려하고 있는 사안입니다.”
난 가볍게 고갤 끄덕이며 수긍했다.
대부분의 매체가 기업논리로 움직인다면, 내가 새 매체를 만들면 될 것 아닌가.
거기에 따라오는 여러 문제점이나 고충 등도 있겠지만.
적어도 기자다운 기자로 활동하고 싶단 마음은 충족되겠지.
“뭐, 스타트업에 대해선 여기 김장석 대표가 더 잘 알겠지. 그래도 언론사 대표니까. 내가 얘기를 좀 해줘도 될까요?”
부드럽게, 박호창 대표가 물어온다.
“예. 말씀해주십시오.”
“예상하고 있겠지만, 국내엔 그런 뜻깊은 언론 스타트업은 거의 살아있지 않아요. 아니 없다고 봐도 무방하지요. 왜일까요. 이미 국내 뉴스 콘텐츠 소비구조가 굳어졌기 때문이에요.”
마치 강연하는 강사처럼 박 대표의 설명이 이어졌다.
난 공감하는 바가 있었기에 그의 말에 집중했다.
“사람들은 언론사 사이트에서 직접 뉴스를 보는 것보다. 대형 포털의 뉴스 란에서 기사를 보는 경우 많지요. 헌데 이 포털들은 뉴스콘텐츠 제휴를 자신들의 권력을 삼고, 영세 매체들은 받아주질 않고 있어요. 그러니 작은 매체들은 일반적인 수익구조의 성립이 어려울 수 밖에요.”
보통 대행사를 통한 온라인 광고는 CPC나 CPM 방식을 많이 채택한다.
CPC는 코스트 퍼 클릭, 독자가 광고를 클릭해야 광고수익이 생긴다.
CPM은 코스트 퍼 밀레니엄.
보통 1,000회 정도 광고가 뷰(노출)되면 광고수익이 책정된다.
하지만 이런 수익구조로 흑자를 낼 수 있는 집단은 한정돼 있다.
‘게다가 독자들이 포털을 거쳐서 기사를 읽게 되면 플랫폼 수수료까지 떼이니까.’
언론사들이 대기업들의 직접 광고를 선호하는 이유는 이와 같다.
한 번 광고가 수주되면, 노출이나 클릭 수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데다가.
그 금액 또한 차원이 다르다.
“결국 많은 군소매체들이 선택한 건 어뷰징이었죠.”
박호창 대표가 민감한 이야길 꺼냈다.
어뷰징, 황색언론들이 조회 수를 위해 이른 바 낚시 기사들을 내놓는 행위.
[20대 여교사 학교에서 옷을 벗더니······화들짝!]
[집나간 가출 소녀들 어디로 가는지 봤더니······충격!]
[한움큼 빠지던 머리에 이것 뿌리니······경악!]
이런 식의 제목을 가진 기사들은 독자의 호기심을 유발해 조회 수를 올린다.
정작 기사를 읽어보면 제목과 연결되지 않는 내용에 분개하는 자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조회 수가 폭발적이기 때문에 욕을 먹어가면서도 포기하질 않는다.
그리고 이슈가 된 기사들을 우라까이해 출고하는 행위들도 모두 어뷰징이다.
이건 대소 가릴 것 없이, 모든 매체가 한다는 점에서 약간 차이가 있지만.
“반대로. 언론사들 중 그나마 전문지가 살아남은 이유가 있지요. 그게 다 기업 광고 덕분이에요. 주 기자가 있었던 디지털투모로우가 그 예 중 하나지요.”
결국은 이거다.
소규모 매체가 살아남기 힘든 시대가 됐다.
그럼에도 생명력 질기게 남아있는 곳은 언론이라 부르기도 싫은 혐오매체거나.
기업의 광고비를 받고 그들과 협력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거다.
‘그러니까······ 내가 언론 스타트업을 하면 어뷰징말곤 답이 없다 생각하는 군.’
난 잠시 눈을 감고 생각했다.
박호창 대표는 이윤철 디지털투모로우 대표와 친분이 있다.
어쩌면 나에 대해 이미 대략적인 평가를 들었을지도 모른다.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보기로 했다.
“전 광고 때문에 기사를 내지 못하는 일은 겪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타트업을 고려하고 있는 겁니다. 수익구조에 대해서도 별도로 생각해둔 게 있습니다.”
나도 모르게 약간 날이 선 음색으로 말이 나갔다.
“들어볼 수 있을까요?”
박 대표는 미소를 유지한 채 내게 부탁했다.
“전 일단 메이버라는 플랫폼과 경쟁할 생각입니다.”
“메이버와 말인가요?”
“네. 뭐 내일도 있긴 하지만. 실제 국내 포털 점유율 80%이상인 메이버를 상대로 봐야겠죠. 언론 중심의 IT커뮤니티를 만들 겁니다.”
“언론 중심 IT 커뮤니티?”
커뮤니티는 독립된 사이트이면서 많은 이용자들이 모이는 포털과 닮았다.
포털이 단순히 검색엔진에서 벗어났듯.
커뮤니티 또한 유입된 이용자들이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이를 이용해 발전해나간다.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기사 공급과 크라우드 펀딩 방식의 기사까지 생각 중입니다. 당연히 커뮤니티인 만큼 새로운 형태의 기업 스폰서도 받을 겁니다. 하지만 절대 기자의 기사를 막는 일은 없을 겁니다.”
난 머릿속에 그려놓은 청사진을, 최대한 정제해서 내뱉었다.
박호창 대표는 기업가다.
내 생각을 곧장이라도 추진할 여력도 갖고 있다.
오만일지도 모르겠다만.
괜히 상세히 말했다가 남의 입에 밥 떠먹여주는 꼴은 나고 싶지 않았다.
“구체적인 건 모르겠지만, 주 기자가 자신 있게 얘기할 정도라면 어느 정도 가능성은 보고 있단 얘기겠지요.”
“사실 저도 확신은 없습니다. 대안의 방향으로 생각하고 있을 뿐입니다. 어쨌든 디지털투모로우와 똑같은 경험은 피하고 싶으니까요.”
내 말에 박호창 대표가 웃었다.
“이윤철 대표한테 얘기 들었어요. 주 기잔 어린데도 능력 있고 강단 있는 기자라고.”
“······”
난 별다른 반응을 보일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내가 주 기자의 이런 점들을. 다른 대표들한테 얘기해도 되겠지요?
이렇게 날 협박했던 이윤철 대표다.
그가 정말 날 그렇게 칭찬했다니.
쉬이 믿음은 안 간다.
아니면 박호창 대표가 애써 포장했을 가능성도 있다.
“믿지 않는 눈친데. 진짜 이대로 얘기했어요. 주 기자 칭찬 밖에 안하던데. 디지털투모로우엔 좀 과분했다고.”
“그렇습니까.”
난 눈을 내리깔고 말했다.
설령 날 좋게 평가해줬다 한들, 이제와 어쩌겠는가.
좋게 헤어졌다 여기고 마는 수밖에 없지.
분위기가 어두워지자, 장 킴이 다시 화제를 되돌렸다.
“아무튼. 그래서 독립된 형태의 언론을 만들고 싶단 얘기잖나. 대충 들어보니까 뭐, 영 가망 없는 아이템은 아니네. 재밌어 보여. 그 커뮤니티란 걸 중심으로 사업을 구상하는 것도 추세에 어울리고.”
“그럼······”
내가 기대감을 담아 장 킴을 봤다.
“아니 김 대표, 그렇게 얘기해버리면 내가 뭐가 돼?”
반대로 박호창 대표는 그를 뭐하는 짓이냔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장 킴이 괜히 내게 ‘IT언론 스타트업’이란 희망을 갖지 않길 바라는 거겠지.
“아니지. 난 저게 성공한다곤 안했어.”
장 킴 대표가 덧붙인다.
그제야 경직돼 있던 박 대표의 얼굴이 풀린다.
“주 기자가 성공 가능성을 기대 하지 않고, 자기만족으로 시도해보겠다면. 말리진 않겠어. 하지만 투자자로서는 그리 추천하고 싶지 않네. 성공 가능성이 낮아. 특히 커뮤니티라는 게 자리 잡기 쉽지도 않고.”
벤처투자자의 냉철한 판단이다.
나도 장 킴의 의견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국내엔 여러 가지 온라인 커뮤니티들이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신규 커뮤니티가 성공하는 건 지극히 드물다.
“기존 언론은 차라리 메이버를 통해 콘텐츠 공급만 하면 어느 정도 살 길은 있었단 말이지. 자네가 기사만 쓰면 아무 문제없었듯. 하지만 커뮤니티 기반의 언론을 간다면, 커뮤니티를 먼저 활성화시켜야 해. 마케팅을 하든, 독창적인 유인 콘텐츠를 내놓든지 해서 말이야. 간단하지 않다고. 주 기자는 일단 기자이지 않은가. 그걸 먼저 해낼 수 있을까?”
그렇긴 하지.
나도 이 일이 쉽게 풀릴 거라 생각진 않았다.
여러 어려움들이 산재해 있다는 건 충분히 예견하고 있다.
“그리고 미디어 스타트업은 기존 언론을 대체하기 힘들다는 게, 아직까지 내 시선이네. 자네의 그 독립자본 IT언론 스타트업, 그게 구체적으로 어떨 진 모르겠지만. 스타트업으로 시작하는 이상 한계는 명확하고 살아남아야 할 방도도 한정적이지.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거네. 메이버와 경쟁을 꿈꿀 때가 아니라.”
장 킴은 잠시 내 눈을 읽었다.
내가 자신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파악하려는 거다.
난 그런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난 미디어 스타트업을 시도하려는 사람들, 많이 봤네. 대다수가 어떤 신념 같은 걸 가지고 시작해, 자네처럼. 하지만 결국 지치지. 기존엔 기업구조 때문에 불가능했던 일들이, 현실적으로 안 된다는 걸 발견하게 된 거야. 먹고 살기 위해 그 신념 내려놓게 된다고.”
아직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정말 가능하다는 확신 덕분일까.
난 장 킴의 이 말은 쉽게 긍정할 수 없었다.
“뭐 더 자세한 설명은 너무 시간이 걸릴 것 같고. 한 가지만 더. 지금 자네 기자 경력이 어떻게 되지?”
“1년 됐습니다.”
“지금 자넨, 혼자서 신규 언론사를 이끌어갈 네트워크가 충분하다고 생각하나? 인적 네트워크 말이야. 당장 메이버에 기사공급도 안 되는 미디어 스타트업을 반길 기업 홍보팀이 얼마나 될까. 1년간 얼마나 인간관계를 잘 쌓았는지 생각해보게. 난 여기까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아무리 뛰어난 기사를 써도 보는 사람이 없다면 무용지물.
기업들은 이런 매체와 기자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내가 디지털투모로우라는 회사를 뒤에 지고 그간 만났던 업계인들.
그들이 과연 파급력을 잃은 날 만나줄까.
디지털투모로우 소속으로 취재조차 제대로 못하던 시절이 떠오른다.
“자, 그러니까 이쯤에 내가 등장하면 되겠군.”
장 킴 대표와 바통 터치 하듯.
박호창 대표가 다시 대화의 주도권을 잡았다.
그는 활짝 웃으면서 나를 바라봤다.
“주 기자에게 명쾌한 해답을 제시해주지요. 마이뉴스24로 오세요.”
명쾌한 답이라기 보단, 그냥 박호창 대표의 바람일 뿐이지 않은가.
내가 장난스럽게 웃어넘기려는 순간.
박 대표가 먼저 입을 연다.
“광고 때문에 주 기자 기사를 막는 일? 없을 거라 보장하지요. 이미 김 국장이 허락했어요. 일단 마이뉴스로 와서 경력을 쌓으세요. 마음에 안 든다면 언제든 그만둬도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