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 독기 품은 기자로 다시 만나지
“······진심이십니까?”
박호창 대표의 말을 들은 난, 되물어 볼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내 기사를 기업논리로 막지 않겠노라, 약속한 것이다.
이미 편집국장과도 얘길 끝냈다고 하니 확실하겠지.
무척 과하다 여겨질 만큼 긍정적이었다.
‘게다가 마음에 안 들면 언제든 나가라고?’
기업 대표 치고는 꽤나 자유분방한 말이 아닌가.
혹은 그만큼 마이뉴스24에 대해 자부심이 있다는 거겠지.
“당연히 진심이지요. 그만큼 주 기자가 꼭 와줬으면 합니다. 다만, 기획기사엔 거부감 없다고 들었어요. 그 정돈, 괜찮겠지요?”
이윤철 디지털투모로우 대표로부터 들은 말이겠지.
난 고갤 조금씩 끄덕였다.
“예, 그렇긴 합니다.”
나도 고고한 선비처럼 굴 생각은 없다.
광고비를 받고 리뷰나 비교, 분석 등의 기획기사를 내는 것.
그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다.
단지 광고 때문에 기사를 막고 지우지만 않는다면 말이지.
“그럼 일이 간단해지지 않나요? 주 기자가 원하는 건 기자로서 목소릴 내는 거였고. 난 그걸 보장해주고. 굳이 그 어려운 독립 언론의 길을 가지 않더라도 말이지요.”
틀린 말이 아니다.
장 킴 대표가 내게 지적한 대로.
내가 꿈꾸는 미디어 스타트업의 길은 평탄치 않다.
가야할 길을 꽤 돌아서 가는 격이 된다.
하지만, 마이뉴스24같은 거물매체에서 내 기사의 생명을 보장해준다면.
그런다면 고민은 해결된다.
“주 기자가 정말 언론사를 운영해보고 싶다면, 그 전에 경력을 좀 쌓는 게 아무래도 좋겠지요. 우리 마이뉴스24가 그 토대가 돼 주겠다는 말이에요.”
박호창 대표가 쐐기를 박듯 말을 쏟아냈다.
그 옆에서 장 킴 대표도 거든다.
“그래, 주 기자. 나도 지금으로썬 박 대표가 제안하는 게 자네한테 가장 좋다고 생각해. 조금 더 평기자로 경험도 쌓아야 할 테고.”
때마침 점원이 주문한 요리를 갖고 등장했다.
두개의 자장면과 짬뽕이 식탁위에 올려지고, 곧 탕수육도 등장했다.
“당장 대답할 필요는 없어요. 일단 식사하지요.”
“네.”
우리 셋은 그렇게 화학조미료 가득한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크으, 그래 이 맛이지!”
장 킴 대표가 자장면을 크게 한입 한 뒤.
과장된 음성으로 감탄했다.
그걸 박창호 대표가 비웃듯 웃었다.
“하여간, 오버는.”
“언제 또 이거 먹으러오겠어. 오늘 잘 음미해야지.”
“김 대표님은 이제 가시면 한국은 언제 다시 오실 겁니까?”
내가 장 킴에게 물었다.
뭐 그렇게 궁금한 건 아니었으나, 약속한 우리의 관계가 있지 않은가.
“음, 글쎄. 뭐 대중없지. 일이 생긴다면 또 들어오겠지만. 별 일 없다면 내년이 될지도 모르지. 왜 그러나?”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스타트업 알려드리기로.”
내가 박호창 대표의 눈치를 살짝 보며 말했다.
“아아, 정보. 그랬지. 그런 건 걱정 안 해도 돼. 요즘 시대가 어느 땐데. 이메일로 보내줘도 되고. 그보다 취잴 하려면 일단 취직을 해야 할 것 아니야?”
“그렇긴 하죠. 알겠습니다.”
“뭔데? 뭘 알려줘?”
박 대표가 궁금한 듯 끼어들었다.
허나 장 킴은 입술 위에 검지를 갖다 댔다.
말하지 말라는 뜻이다.
“어허 그거 치사하게 구네.”
“나중에 혹시나 주 기자가 마이뉴스 가게 되면, 그 때나 물어보라고.”
장난스럽게 말을 주고받는 장 킴과 박호창 대표.
난 고등학생들처럼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을 보며 웃었다.
둘이 어떻게 알게 된 사이인진 모른다.
그러나 꽤 오랫동안 일 외적으로 친하게 지낸 사이라는 게 느껴졌다.
“근데 두 분은 이 중국집에서 자주 만나십니까?”
내가 슬쩍 물어봤다.
이 둘은, 원한다면 더 비싸고 좋은 중화레스토랑을 찾아갈 수도 있을 거다.
그런데 왜 굳이 ‘다미원’인 걸까.
이곳에 무슨 특별한 뭔가가 있나 궁금했다.
“아, 자주 만나지. 아까도 봤다시피, 여긴 국회의원들이 자주 오거든. 국회에서 맛 집으로 알려져서 말이네. 그래서 의원들 만나면서 한 번 씩 들리게 됐는데. 이 맛에 중독됐는지 다른 집 맛엔 만족을 못하겠더라고.”
“난 그렇진 않고. 그보다 우리가 처음 만난 곳이 여기였지요. 12년 전이었나?”
박호창 대표가 말했다.
얼떨결에 두 사람의 첫만남 시기까지 알게 됐다.
“맞어. 각 온라인 매체 대표들 데리고 왔었잖아. 온라인신문협회 대표 취임했다고. 그 때 의원들이 아주 난리가 났었지.”
“아, 그랬나.”
이후 한동안 두 사람의 추억담이 계속됐다.
난 별말 없이 조용히 둘의 역사를 들으며 식사를 마쳤다.
“오늘은 주 기자 쏜다네. 지갑 푹 넣어두고 먼저 나가있자고.”
장 킴 대표가 싱글벙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반면 박호창 대표는 앉아서 내게 그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했다.
“정말로? 주 기자, 그래도 되겠어요? 괜히 저러는 거면 내가 낼게요.”
“네. 김 대표님께 대접해드리기로 약속 했었습니다. 먼저 나가계셔도 됩니다.”
“그래요? 그럼 알겠어요.”
박 대표와 장 킴이 식당 밖에서 기다리는 동안.
난 계산대로 가 식사비를 계산했다.
점원이 건넨 영수증을 받아들고, 나도 식당 문을 나섰다.
그러자 두 사람이 답례의 인사말을 했다.
“어~ 자네 덕분에 잘 먹었네. 이거 한국 땅 잘 뜨겠어.”
“잘 먹었어요, 주 기자. 나중에 내가 식사 한 번 대접할게요.”
인사를 간단히 받은 후.
우린 번잡한 지하식당가에서 바깥 거리로 올라왔다.
“이제 공항으로 가십니까?”
난 바로 장 킴에게 물었다.
장 킴은 오늘 저녁에 출국한다고 했다.
늦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준비해 공항으로 향해야 할 터.
“아니 잠깐 만날 사람이 있어서 종로 좀 가려고.”
여유 있다는 듯, 장 킴이 말했다.
“그렇습니까?”
“어. 어쨌든 오늘은 여기서 끝이군.”
장 킴이 내게 악수를 청했다.
나도 그의 손을 잡았다.
“나 없는 동안, 예인이 잘 부탁하고.”
뜬금없이 예인의 이름이 소환됐다.
“······대표님 댁 따님을 왜 저한테 부탁하십니까.”
어이없는 표정의 내게, 장 킴은 활짝 웃으며 간단명료한 답을 내놨다.
“친구잖아?”
“지금 제 몸 건사하기도 힘듭니다.”
“자네 몸은, 이 옆의 박 대표가 잘 챙겨 줄 거야. 너무 오래 고민하지 말게.”
친구의 협력에 박호창 대표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도 아닌 척, 내게 말을 건넸다.
“김 대표가 그렇게 강요 안 해도 돼.”
내가 고갤 돌려 박 대표를 본다.
“대답은, 언제까지 드리면 되겠습니까?”
아무리 좋은 조건을 지니고 있다한들, 쉽게 판단할 순 없다.
한동안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
“웬만하면 이달 안으로 다시 얼굴을 봤으면 좋겠는데. 괜찮겠어요?”
말뜻을 알아들은 내가 긍정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결정하는 대로 연락해요.”
하고픈 말들을 모두 털어낸 우린, 더 길게 시간 끌지 않고 헤어졌다.
난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돌아왔다.
내방 책상의자에 앉아 가만히 박호창 대표의 제안을 되짚어본다.
연봉은 기존의 1.5배.
광고수주 때문에 기사를 막는 일은 없을 것.
‘내가 고민하던 부분을 쉽게 날려버렸지.’
게다가 내가 원할 때에 이직할 수 있다.
지금껏 접촉한 어떤 매체보다 좋은 조건이다.
행여 우려하던 일이 발생한다 해도, 난 경력만 쌓고 나가면 된다.
그 때 가서 스타트업을 시도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확실히, 박호창 대표는 이윤철 대표와 친분만 있을 뿐 다른 인간이야.’
아니, 오히려 이 대표를 반면교사 삼아 자신을 계속 발전시키는 인물인지도 모른다.
난 노트북 전원을 켜고, 저녁 늦게까지 마이뉴스24의 정보를 모았다.
마이뉴스에 대해선 대충 어깨너머로 알고 있었지만, 세세하게 알아보는 건 또 다르다.
확실하게 정하기 위해 실망하거나 후회할 여지를 남기지 않아야 했다.
그러던 중, 휴대전화가 울렸다.
[나중에 보자고. 그 땐 백수가 아니길 바라겠네 –김장석]
전화 화면을 확인해보니, 장 킴 대표의 문자 메시지가 와있다.
‘지금 출국하는 모양이네.’
시간을 확인하니 저녁 7시.
난 장난 끼 가득한 장 킴의 메시지에 답장을 보냈다.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백수가 원한을 품으면 좀 무섭습니다 –주진형]
내 메시지가 발송 된지 1분도 되지 않았을 때.
장 킴의 메시지가 또 도착했다.
[원한품은 백수 말고 독기 품은 기자로 다시 만나지! -김장석]
지난번에도 느꼈지만, 참 집요한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그 유쾌한 성격 때문에 불쾌함을 주진 않는다.
장 킴은 그렇게 이날 미국 캘리포니아로 돌아갔다.
그 후, 난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며 휴식을 취했다.
일주일 간 기차를 타고 남도를 떠돌며 여행을 즐기기도 했다.
여정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온 날.
난 박호창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이뉴스24에서 일하고 싶다는 말을 전하기 위함이었다.
“자, 거기 서명하면 끝이에요.”
이른 아침, 마포구에 위치한 마이뉴스24 본사 안.
난 대표실에서 박호창 대표와 마주보고 앉아,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다.
두 번째로 작성해보는 거지만, 역시 쉽지 않다.
난 계약서를 다시 한 번 천천히 읽어나갔다.
꼼꼼하게 확인해야 뒤탈이 없으니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내, 계약서를 읽은 내가 서명 란에 이름을 휘갈겨 썼다.
“다 됐습니다.”
“좋아요. 이제 계약서까지 썼으니까 마음이 놓이네요.”
박호창 대표가 진짜로 크게 숨을 내쉬며 웃는다.
“걱정하셨습니까?”
“하하, 그렇지요. 나름 좋은 대우를 보장했지만, 사람 일이란 건 모르니까요. 주 기자 눈독 들이는 곳이 한둘이어야 말이지요.”
“대표께서 해주신 말의 영향이 컸습니다.”
“다행이네요. 효과가 있었다니. 그럼 이제 나가서 인사를 좀 하지요.”
난 박 대표에게 이끌려 편집국으로 이동했다.
확실히 마이뉴스24는 디지털투모로우와 여러모로 차이가 났다.
단순히 사무실 크기만 해도 10배는 넘게 차이가 났다.
인력규모는 얼핏 봐도 상대가 되질 않는다.
디지털투모로우는 경리과 영업팀 직원 세 명이 전부였으니까.
“자, 이쪽이 편집국 김경은 국장이에요.”
김경은 국장은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단발머리 여성이었다.
“주진형입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아, 주진형 기자. 입사 환영해요. 이렇게 바로 와 줄진 몰랐는데. 잘됐네요.”
“말씀 감사합니다.”
초면인만큼 최대한 예의를 차렸다.
그러나 김 국장은 그리 딱딱한 성향은 아닌 듯 했다.
“박 대표께 들었을 테지만, 기사에 대해선 많은 터치를 하지 않을 거예요. 뭐 주 기자뿐만 아니라 대부분 마이뉴스 기자들 기사가 그래요. 논지가 크게 이상한 게 아니면, 문제 삼지 않아요.”
“알겠습니다.”
김경은 국장의 말에 내가 대답했다.
“그럼 난 가볼게요. 김 국장이 주 기자에게 잘 설명해주세요.”
“네.”
박호창 대표는 김경은 국장에게 설명을 일임했다.
내가 생각해도 그게 맞다.
난 편집국의 일원이 된 거고, 그 수장은 앞의 김 국장이다.
그에게서 설명을 듣고 지시를 받는 게 자연스럽다.
“보다시피, 마이뉴스24는 IT만 다루는 곳이 아니에요.”
“네 알고 있습니다.”
김 국장의 시선에 따라 나도 사무실을 훑었다.
한 공간을 나누는 칸막이가 여럿.
같은 편집국이지만 그 안에 부서가 또 나뉜다는 뜻이다.
“주 기자는 당연히 정보통신팀에 배속 될 거예요. 정보통신은 박선혜 팀장이 맡고 있어요. 박 팀장은 지금 외근 중이라, 나중에 인사하고. 저쪽은 정치팀. 왼쪽엔 산업경제팀. 오른쪽으론 스포츠, 연예팀이에요.”
마이뉴스24는 IT전문지로 시작했지만, 이젠 종합일간지와 다를 바 없었다.
난 특히 스포츠, 연예팀을 눈여겨 봤다.
아무래도 저 두 팀이 이 매체의 독자 어그로를 담당하고 있는 부서일 거다.
어그로라는 어감이 별로니, 순화해 표현하자면 독자유입.
페이지뷰(조회수)를 책임진단 뜻이다.
‘그래서 광고 때문에 기사 막을 일은 걱정하지 말라했던 걸가.’
뭐, 페이지뷰에 따른 광고수익이 기업들로부터 받는 금액만큼 크진 않겠지만.
어쨌든 연예부가 있다는 건 매체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요즘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읽는 기사들이 그 분야니.
“그리고 주진형 기자 담당분야 말 인데요······”
잘 설명해나가던 김경은 국장이, 갑자기 말끝을 흐렸다.
내가 의아한 얼굴로 그를 봤다.
김 국장은 잠시 고민하더니 하는 수 없다는 듯.
이내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잠깐 동안만 디스플레이를 맡아줘야 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