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 기사보다 사람 목숨이 먼저다
내가 휴대전활 확인하고 있던 사이.
문준철 대리가 주문한 차를 쟁반에 담아 들고 왔다.
난 내 음료를 챙길 정신도 없었다.
그저 눈앞에 적혀있는 내용에 몰두했다.
[오늘 파주공장 질소누출 사고에 대해 알려드립니다 –LC디스플레이 홍보팀]
기업에서 어떤 사고의 발생으로 보도 자료를 낸다면, 필시 큰 문제가 됐을 때다.
좋게 해결되거나 넘어간 일의 경우 발설하지 않는다.
사건사고의 발생 자체가 흠결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건 분명······’
내가 화면을 눌러 이메일 내용에 들어갔다.
[금일 오후 12시 40분경, 경기도 파주시에 위치한 저희 P8공장에서 질소 누출 사고가 있었습니다]
첫 문장은 평이했다.
마치 별 일 아니란 듯, 짐짓 태연하게 말하는 것처럼.
[이 일로 현장에 근무하고 있던 협력사 직원 3명이 사망했고, 이들을 구하려던 LC디스플레이 정규직원 2명도 중태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사상자가 나오고 말았다.
난 아랫입술을 깨 물으며 자료를 급히 읽어나갔다.
[저희 LC디스플레이는 현재, 소방청과 협력해 사고가 일어난 공장 9층은 물론 공장 전체에 방재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또 현장 감식을 통해 사고원인과 질소 유출량 등을 정확하게 파악 중입니다]
‘P8공장 9층인가······’
난 아직 공장라인이나 P8이란 용어에 대해 알지 못한다.
어떤 특정 설비가 모여 있는 곳이라고 짐작만 할 뿐.
혹시나 더 자세한 내용이 적혀있을까 싶어 눈을 내렸다.
[사망한 직원들의 유가족 분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희 LC디스플레이는 정확한 원인 규명에 최선을 다해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보도 자료는 여기서 끝이었다.
아니, 보도 자료라기보다는 사고가 일어났단 사실통보.
급박한 언론대응에 가까웠다.
아마 사고 직후엔 소방방재청이나 경찰청을 통해 첫 보도가 나갔을 거다.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홍보팀은 정보를 수집해 자료를 냈으리라.
“저, 주 기자님.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잠시 생각하던 난, 내게 말을 거는 이한중 부장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고갤 들고 내 앞의 홍보팀 직원들을 본다.
‘아, 너무 오래 시간을 끌었다.’
난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그들에게 해명했다.
“아 죄송합니다. 이상한 문자가 와가지고······ 실례했습니다.”
“아, 괜찮습니다. 어떤 일이기에, 그렇게 심각한 표정을 지으시는가, 했습니다.”
내가 그렇게 심각한 표정을 지었던가.
난 오른손으로 내 얼굴을 어루만졌다.
잘 모르겠지만 조금 굳어있는 것 같긴 하다.
“아, 이거 잘 마시겠습니다.”
난 내 앞에 놓인 찻잔을 보고 문준철 대리에게 말했다.
“하하, 네.”
방금 전까지 OLED의 구조가 어떻고, 휘도가 어쩌니 얘길 나눴지만.
사고 자료를 보고나니 맥이 풀려버렸다.
지금 그런 걸 묻고 있을 때가 아닌 듯 했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단순한 자료였다면 이렇게 당황하진 않았을 거다.
합병이나 투자, 신기술 개발, 신제품․서비스 출시.
분명 특종이지만, 이 사건사고는 어깨에 지고 있는 무게감이 다르게 느껴진다.
“모바일 OLED 쪽도 궁금하신 것 같은데요.”
내가 말을 더 잇지 못하고 난감한 표정으로 있자, 이한중 부장이 말했다.
아까 내가 질문하려다가 끊어진 내용을 재개하자는 신호였다.
“아, 네. ······모바일의 경우 LC는 거의 생산을 안 하는 것 같던데요. 아무래도 WOLED가 모바일에 부적합해서 그런 건가요?”
간신히 아까 전에 하려던 질문을 떠올리고, 입 밖으로 꺼냈다.
내 질문이 아까부터 LC디스플레이에 부정적인 내용만 나오다보니, 과장 둘의 눈빛이 좋지 않았다.
별 수 있나.
오늘은 대충 여기까지만 해두는 게 좋을 듯싶다.
“저희도 모바일 OLED를 만들어요. 사성디스플레이 수준의 고해상도구요. 탑재된 제품도 시판됐습니다. LC전자의 C플렉스라고 커브드 형태의 OLED디스플레이를 탑재했어요.”
이국현 과장 옆에 조용히 있던, 차세현 과장이 대답했다.
“차 과장님이 모바일 담당이신가요?”
“네, 제가 모바일 디스플레이 담당입니다.”
“음, 그 C플렉스. 제가 검색해보니까 디스플레이 품질에 말이 좀 있던데– OLED 번인 현상도 심각할 정도로 빨리 나타나고, 화면에 잔상이 너무 심하다는 평이 많더라구요.”
차세현 과장은 애써 웃으며 내게 말했다.
“그건 C플렉스1이구요. 2는 많이 개선됐어요. 충분히 실사용에 문제가 없습니다.”
‘내 기억으론 그것도 별반 다를 바 없던데······’
뭐 홍보팀 직원이 하는 말이니 만큼, 100% 다 믿을 순 없겠지.
허나 더 이상 이들과 곤란한 분위기는 만들지 않기로 했으니까.
난 대충 수긍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대신, 새로 질문 할게 있다.
“그렇군요. 근데 OLED생산 공장이 파주 P8공장인가요?”
혹시나 싶어서 물어본다.
지금까지 OLED얘기를 했기 때문에 이어서 말하는 것도 자연스럽고.
“아뇨. P8은 대형 LCD 생산라인이구요. OLED는 P9공장에서 생산합니다. 생산라인은 M1, M2 두개가 있구요. 8세대 디스플레이를 생산해요.”
차세현 과장의 설명을 듣던 내가, 손을 들었다.
“8세대 디스플레이면, 공정 개선을 뜻하는 건가요?”
“아. 그건 아니구요. 디스플레이 패널의 사이즈로 세대를 구분해요.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3.5세대부터 작은 TV크기의 6세 대 까지는 구미공장에서 생산하구요. 7세대와 8세대, 대형 패널의 경우 파주에서 만들고 있어요.”
몰랐던 지식을 배운다.
즉, 8세대 OLED디스플레이 패널은, 아마 현재 생산되는 것 들 중 가장 클 거다.
“그럼 P8도 8세대 LCD 패널을 만드나요?”
“네. 맞아요. 가로세로가 2미터가 넘는 패널들이죠.”
그렇게 10분 간.
난 LC디스플레이 홍보팀과 몇 가지 이야길 더 나눴다.
마음은 다른 곳에 간 상태지만, 어느 정도 장단은 맞춰야 하니까.
“그럼 또 궁금한 게 있으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카페 자리에서 일어나며, 내가 말했다.
“네. 주 기자님, 언제든 연락 주십시오! 참, 보도자료 메일링 아까 오시기전에 등록해놨습니다. 보도 자료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한중 부장의 말에, 깨닫는다.
방금 전의 자료가 어떻게 내게 날아온 건지.
‘등록, 된 거구나.’
새삼스럽게 홍보팀과의 관계에 대해 중요성을 느꼈다.
“그럼 나중에 또 뵙겠습니다.”
“네. 들어가세요, 부장님.”
네 사람과 헤어진 뒤.
난 트윈스타워 밖으로 나와 근처 벤치에 앉았다.
특종이 언제 터질지는 알았다.
하지만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는 도저히 감이 서지 않았다.
‘하필이면 디스플레이를 맡자마자 이런 일이 터지는 거냐······’
난 머릴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생각했다.
처음이다.
사람이 죽어나갈 사고를 취재하게 되는 건.
내가 사회부 기자였다면 모를까, 이제 1년 안된 IT기자니까.
당연히 사람의 목숨이 오가는 사고완 거리가 있었다.
‘이게 취재가 가능한 일이야 근데?’
고개를 들었다.
밝은 햇빛을 손등으로 가리며 파란 하늘을 본다.
멍하니 고민해봤지만 답이 나오질 않았다.
일단 내가 파주공장에 갈만한 계기가 없다.
그리고 사건이 터지는 시간에 맞춰 바로 기사를 쓴다?
‘말이 안 된다.’
일단은 사건을 목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설령, 내가 파주공장에서 이 사고를 볼 수 있다 해도······
‘내가 이걸 단순히 기사로 쓰는 게 게 맞는 걸까? 사고가 일어날 걸 알면서 아무것도 안하고?’
답답한 마음에 벤치에서 벌떡 일어난다.
“후우!”
큰 소리로 한숨을 내쉬었다.
도통 알 수 없는 답답함이 가슴에 체증처럼 느껴졌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 뭐가 맞는 선택일까.
당장 답은 나오지 않았다.
“일단, 돌아갈까.”
발제기사를 급히 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근무시간이다.
여기서 이렇게 계속 방황하고만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난 결국 다시 트윈스타워 기자실로 돌아왔다.
[질소 누출]
노트북으로 간단히 메일함의 보도자료 확인 후.
난 메이버 검색창에 보도 자료서 본 단어를 입력했다.
질소 누출로 인해, 사람이 죽는다니.
사실 무지한 탓에 그 위험도에 대해 잘 체감하기 어려웠다.
[신보리원전, 질소 누출 사고로 3명 사망]
검색 결과에 나온 기사 중 하나에, 시선이 꽂혔다.
마우스 포인터를 움직여 기사를 클릭했다.
[신보리원전에 질소가 누출되면서 안전관리 직원 세 명이 숨졌다]
기사는 작년에 발생한 사건을 담고 있었다.
[26일 오후 4시 30분경, 신보리원전 3호기 건설 현장 밸브룸에서 질소가스가 누출됐다. 이로 인해 건설 안전관리 직원 최모씨와 박모씨, 안전관리 용역업체 KTS솔루션 직원 구모씨 등 3명이 질식해 쓰러졌다. 다른 직원이 발견해 병원으로 이송했으나 모두 숨졌다]
[보리원전 직원 1명도 구조작업 나섰다가 질소 가스에 노출 됐다. 하지만 메스꺼움만 호소했을 뿐, 별다른 증세는 없었다]
‘질식?’
질소라는 게 인체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난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 때문에 질식해 사망에 이르렀단 얘기가 잘 납득이 되질 않았다.
내용을 좀 더 읽어보자, 기사에 그 이유가 설명돼 있었다.
[······질소는 공기 중에 가장 많이 포함된 기체다. 공기는 78%가 질소며 21%가량이 산소로 이뤄져있다. 하지만 대기 질소 성분이 많아질 경우, 산소 부족 증을 일으켜 질식사하게 된다. 이는 질소가 인체 내 산소공급을 막고 세포 내 저장 산소까지 몰아내기 때문이다······]
즉, 과도한 질소 성분에 노출 돼 사람들이 질식을 했다는 건가.
글만 읽고 있는데도 자동적으로 몸서리가 쳐지는 내용이었다.
[사고 직후 중앙119 구조본부 울산화학구조센터의 소방관이 긴급 출동했다. 질소가 누출된 밸브룸의 경우 산소 농도가 14%까지 떨어졌던 것으로 밝혀졌다. 전문가들은 공기 중 산소 농도가 16% 이하로 떨어지면 호흡이 곤란해진다고 설명했다]
모든 가스 누출이 그러하겠지만, 질소 또한 약간 누출 된다고 해서 큰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닌 모양이다.
다만 누출이 지속적으로 이뤄지면, 결국 공기 중 산소농도도 떨어진다.
‘호흡에 문제가 생기기 전에 누출을 빠르게 파악하는 게 중요하군. 근데 그걸 못 알아차리는 건가?’
난 기사 사이트를 나와 질소에 대해 검색해보기로 했다.
곧 검색결과에 질소에 대한 인터넷 백과사전 항목이 떴다.
[······질소는 무색무취의 기체로 상온에서는 화학적으로 불활성 상태로 존재한다. 이를 이용해 화재를 막기 위해 우주선이나 특정 설비에 주입 된다······ 식품 선도를 유지하는데 쓰기도 한다. 특히 과자봉지의 충전제로 유명하다. 낮은 온도의 액체질소는 식품의 냉동 또는 건조에도 쓰인다······]
띄엄띄엄 글을 읽으며 정보를 취합해 나간다.
아마도 무색무취기 때문에, 직원들도 질소가 누출 중이란 걸 잘 깨닫지 못한 거다.
‘그렇다면 누출을 감지하는 장치가 없는 건가?’
난 곰곰이 생각했다.
자세한 건 홍보팀에 물어봐야겠지.
하지만 LC디스플레이가 질소로 사람이 죽을 수 있단 걸 모를 린 없을 거다.
그런데도 감지장치가 없다면, 질소가 ‘사용’되는 경우일 가능성이 있다.
‘불활성 기체다 이거지. 장비나 공정 어딘가에 쓰이는 건가?’
대충 윤곽이 잡히고 있었다.
난 눈을 감고 다시금 이 일에 대한 내 입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죽음의 미래를 알고 있다는 것.
그걸 모른 척 방관한 채, 중립적 기록자로서 기사를 쓸 거냐.
아니면 사람을 구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해 사고 발생을 막을 건가.
‘내게 일주일 후의 자료가 날아오지 않는다면, 이런 고뇌는 할 필요 없었겠지.’
그러나 이건 배부른 소리일 뿐이다.
내가 미래의 일을 알게 된 만큼, 그에 따른 책임을 지는 게 맞다.
‘뭐······ 내 논리대로라면. 난 단순히 받아쓰기만 하는 기자는 아니었잖아? 몰랐다면 모르겠지만, 알고 있는 이상은 가만히 있는 게 죄다.’
그러니까 중립적 기록자 같은 건, 나랑 맞지 않는다.
판단은 정해졌다.
‘구하자. 그 사람들. 기사보다 사람 목숨이 먼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