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 문 열어주세요. 들어가겠습니다
다른 곳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이미 늦었단 걸 안 이상, 더 빨리 만회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난 클린룸과 복도를 나누고 있는 유리창으로 달려갔다.
‘쓰러진 사람이 둘? 아니, 셋이다.’
LC디스플레이 종합공정팀 김영수 과장이 알려줬던 TM설비.
그 설비 위에 한 명이 위태롭게 쓰러져 있다.
그리고 아래 바닥에 다른 두 사람이 엎어진 상태.
“과장님! 119에 신고하세요! 빨리요! 질소 누출입니다.”
내 외침에 김영수 과장이 당황했다.
지나치게 빠른 사태파악이었으니까.
“네!? 아니,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아, 설명할 시간이 없는데.
난 불타는 속을 참아가며 김 과장에게 말했다.
“아까 말씀하셨던 질소 담는 챔버 문이 열려있어요. 지금 저 안 질소농도 높을 거예요.”
김 과장도 내 옆으로 다가와 룸 내부 상황을 확인했다.
“마, 맞군요. 알겠습니다!”
김영수 과장이 신속하게 휴대전화를 꺼냈다.
그가 119에 신고하는 사이.
난 먼저 와서 이 사태를 목격한 두 사람에게 물었다.
“저분들 들어가신지 얼마나 되신 겁니까?”
질소에 노출된 시각을 확인해야 했다.
너무 늦었다면, 나도 위험을 감내할 순 없다.
“일단 저 아래 두 사람은 이제 2-3분 정도 됐어요!”
아, 정말 짧은 시간의 차이로 일이 틀어졌다.
내가 좀 더 일찍 식당에서 나왔어야 했는데······
아니, 이건 미래의 LC디스플레이가 잘못한 거야.
난 그저 오후 12시 40분에 사건이 발생했다고 발표한 걸 믿었으니까.
‘······바보같이 지금 그런 잘잘못을 따지고 있을 때냐.’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난 정신을 차리고 다시 질문했다.
“여기 산소호흡기 있습니까?”
“산소호흡기요? 아, 아뇨.”
“예? 없다구요? 산소호흡기가? 질소를 다루는 공장인데?”
“······어, 네.”
어이없어 하는 내게, 직원은 자신감 없는 말투로 답했다.
이건 정말 위험하다.
산소호흡기가 없다면, 룸 내부로 돌입하기가 쉽지 않다.
허나 이대로 멍하니 소방대를 기다리고만 있을 수도 없었다.
그 동안 룸 안의 질소농도는 점차 올라갈 터.
지금 쓰러져 있는 사람들이 질식사할 확률이 높아진다.
단순히 몽롱함이나 무기력함을 느끼다가 기절한 것에 끝나지 않는다는 거다.
그건 안 된다.
“문 열어주세요. 들어가겠습니다.”
결심을 굳힌 내가 말했다.
“네!?”
“이대로 보고만 있을 겁니까? 저 안 사람들 다 죽기 전에 빼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렇지만······”
직원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나와 김영수 과장의 눈치를 살폈다.
“-네, 네. 9층입니다. 빨리 와주십시오! 네!”
김 과장은 119와의 통화를 마쳤다.
그리곤 내게 보고했다.
“기자님, 지금 신고했습니다. 아무래도 도착까지 6-7분 정도 걸릴 것 같답니다.”
“그 때까지 저 사람들 살아있을 거란 보장 없습니다. 지금 들어가야 돼요.”
내가 김 과장과 직원들을 향해 강경히 말했다.
“하지만, 너무 위험합니다. 기자님이나 저희들도 위험해질 수 있어요. 보호 장비가 없는 이상······”
“더 낭비할 시간이 없습니다. 문 열어주세요. 과장님.”
한참을 고민하던 김영수 과장은, 결국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하는 수 없었다.
난 다른 직원이 들고 있던 출입증을 빼앗았다.
“아, 안됩니다.”
“제가 멋대로 연 걸로 하죠. 여러 분들 잘못은 없는 겁니다.”
“서, 선배. 너무 무모해요! 안에 위험한 거 아녜요?”
유정이 내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
난 대꾸하지 않고 휴대전활 꺼냈다.
메모앱을 켜고, 혹시 몰라 미리 작성해뒀던 기사 제목을 복사한다.
이 내용을 박선혜 팀장에게 코코아톡으로 보낸다.
[주진형 : [속보]LC디스플레이 파주공장 P8 9층 질소누출 사고]
[주진형 : 지금 사람 구하러 갑니다. 기사 부탁드리겠습니다, 팀장]
그걸로 끝.
난 출입증을 클린룸 출입문에 설치된 인증 기에 갖다 댔다.
삐빅,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유정씨. 혹시 모르니까, 뒤로 물러나 있어. 김 과장님은 가능하면 외부공기 들어올 수 있게 해주시구요.”
디스플레이 제조공장은 먼지유입을 막기 위해 창 없는 건물을 만든다.
P8공장도 마찬가지로, 외벽이 통유리로 돼있어 사실상 공기순환이 어렵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일단 김영수 과장에 부탁해둔다.
이 말을 끝으로, 난 숨을 크게 들이 쉬었다.
“후욱.”
그리곤 달렸다.
입구에서 TM설비까지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체감 15m 정도.
하지만 좌우로 장비들이 많아 생각만큼 빠르게 갈 순 없었다.
‘최대한 숨을 참아야 돼.’
난 쓰러져있는 남성의 몸을 돌려, 얼굴을 확인했다.
살아있는지, 아닌지 맥을 짚어볼 새도 없었다.
바로 그의 복부를 내 어깨에 짊어지고, 그대로 들고 일어난다.
‘우······역시 무겁군.’
건장한 성인 남성 몸무게는 적어도 70전후겠지.
거기다가 정신을 잃어서 몸을 제대로 가누질 못하는 상대니, 더 들기 힘들었다.
팽팽해진 다리 근육이 통증을 호소했다.
“······!”
그 때, 김영수 과장이 달려왔다.
그는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내 뒤에 섰다.
곧 쓰러진 사내의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필시 김 과장이 남자의 가슴을 들어 올려준 거다.
내가 고갤 돌려 그를 봤다.
“······”
“······”
우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빛만으로 신호를 주고받았다.
함께 사내를 들고 이동해 입구를 향해 움직였다.
“후우, 허어-”
힘겹게 입구 밖으로 사내를 옮겼다.
그리고 드디어 숨을 몰아쉬었다.
“거기! 보고 있지만 말고, 후하, 이 사람 저쪽으로 데려가서 심폐소생술이라도 해주세요!”
“아앗, 네!”
내 말에 직원 두 사람이 쓰러진 사람을 옆으로 옮겼다.
과연 심폐소생술이 도움이 될 진 모르지만, 안하는 것보단 낫다는 판단이었다.
“과장님 들어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난 시선을 돌려 김영수 과장을 봤다.
“아뇨······아닙니다.”
김 과장은 고갤 숙였다.
“오히려 제가 판단이 늦었습니다. 먼저 움직였어야 하는데······”
“후회할 시간 없습니다. 아직 두 명 더 남아있어요. 가시죠.”
“네, 알겠습니다.”
나와 김 과장은 숨을 깊게 들이 쉬고, 다시 룸 안을 달렸다.
바닥에 쓰러져있는 나머지 한 사람, 그에게 다가갔다.
-동시에 듭시다.
우린 서로의 눈을 보고 고갤 끄덕였다.
서로 마주보고 사내의 팔다리를 잡아, 몸을 들어올렸다.
전보다 훨씬 수월하게 룸 밖으로 그를 빼낼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설비 위의 남자를 구해야 했다.
“저쪽에 올라가려면 시간이 좀 더 걸릴 겁니다.”
룸에 들어가기 전, 숨을 고르던 김영수 과장이 내게 말했다.
“길이 어떻게 되는지 잘 모르겠네요. 올라가려면 돌아서 가야 되는 겁니까?”
당장 내 시선엔 설비 위로 가는 길이 보이질 않았다.
이에 김영수 과장이 손으로 동선을 그리며, 내게 설명했다.
“저기 보이는 우측 장비 뒤쪽으로 돌아 들어가면 계단이 나옵니다. 거기로 올라가면 됩니다.”
길을 대충 이해했으나, 혹시 모르니 김영수 과장이 앞장서서 가기로 했다.
3번째 돌입.
전 보다 더 긴 거리지만, 다행히 질소를 마신 느낌은 나지 않았다.
‘무색무취. 마시면 몽롱해진다고 했지.’
아직은 정신이 말짱하다.
난 김 과장의 뒤에 바짝 붙어 챔버의 계단을 올랐다.
“이런 씨······”
TM설비 위.
먼저 올라간 김영수 과장이 육성으로 욕설을 내뱉는다.
난 무슨 일인가 싶어, 김 과장에게 다가가다 그 이유를 알아차렸다.
‘이런 젠장······’
둥근 뚜껑이 열려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설비 안 챔버.
그 공간 안에 두 명의 사람이 더 쓰러져 있는 거다.
김 과장의 난감한 감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3명이 아니라 5명이었어! 제길.’
머릿속에 보도 자료의 한 문장이 떠오른다.
-협력사 직원 3명이 사망했고, 이들을 구하려던 LC디스플레 정규직원 2명도 중태에······
사망한 남자들은 모두 협력사 직원.
그러니까 저 챔버 안의 남자와 여기 누워있는 남자 모두 협력사 측 인원이겠지.
‘턱도 없이 시간이 부족해.’
난 김영수 과장에게 고갤 저었다.
이어 손으로 설비 위에 쓰러진 남자를 지목했다.
-그래도 이 사람부터 먼저 내보냅시다.
-알겠습니다.
김영수 과장이 목을 짧게 숙였다.
공간이 좁았기에 방금 전처럼 동시에 들 순 없었다.
처음에 그랬듯이, 내가 먼저 어깨에 남자의 복부를 얹었다.
그 뒤로 김 과장이 가슴을 들었다.
우린 급한 발걸음으로 그를 들고 출입문으로 향했다.
심각한 표정으로 클린룸 밖을 나오자, 유정이 내게 다가왔다.
“선배! 괜찮아요?”
“후우, 하아. 유정씨, 난 괜찮으니까 물러나있어. 후우.”
난 들쳐 업고 온 남자를 복도 바닥에 내려놓으며 답했다.
“괘, 괜찮으세요? 과장님?”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던 한 직원이 우릴 보며 물었다.
김영수 과장도 숨을 내쉬며 괜찮다고 손짓했다.
“휴, 그래도 다행이네요. 이 두 사람 아직 살아있어요. 두 분 다 고생하셨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이야기가 직원의 입에서 나왔다.
하지만 마무리 인사를 나눌 시긴 아니었다.
“아직 안에 두 사람이 더 있어요.”
“네엣!?”
내 말에 유정과 직원 둘이 모두 놀랐다.
“챔버 안에, 두 명이 더 있었어요. 다시 가야 됩니다.”
슬슬 팔과 어깨가 저릿했고, 다리도 힘이 빠졌지만 멈출 순 없었다.
게다가 여기도 질소로부터 안전하지 않다.
당장 저 두 사람을 구출한 뒤, 클린룸의 문을 봉쇄해야 했다.
“저, 저희도 들어가겠습니다!”
직원 두 사람이 바닥에서 일어났다.
“그러시겠습니까?”
추임새를 넣은 게 아니다.
난 다시 한 번 그들의 마음을 확인했다.
“네, 동시에 두 명 모두 데리고 나오죠.”
직원의 말을 듣고, 어두웠던 김영수 과장의 얼굴이 환해졌다.
김 과장도 힘이 꽤 빠진 상태일 테지.
지금이라도 이들의 도와주겠다는 말이 고마울 거다.
“그럼, 유정씨. 유정씨가 이 분 심폐소생술 좀 해주고 있어. 하는 법은 알지?”
난 방황하는 유정의 눈을 응시하며 말했다.
왠지 모르는 것 같다.
남성들이야 군대나 예비군 훈련 때마다 배울 기회가 있지만.
여성들이 심폐소생술을 접할 기회는 드문 게 현실이니까.
난 그냥 방법을 설명하기로 했다.
“여기 가슴 사이골에 손바닥을 깍지 껴서 겹쳐놓고 분당 100회 정도로 빠르게 눌러주면 돼. 팔은 직각이 돼야 하고. 안 그럼 오히려 환자가 다칠 수 있어. 알았지?”
“네? 네, 네!”
제대로 알아들었을지 모르겠지만, 더 여기에 신경 쓰고 있을 수 없다.
나도 앉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 네 사람은 숨을 깊게 들이 쉬고, 조금 전과 같이 챔버를 향해 달렸다.
설비 위에 가장 먼저 도착한 건 나였다.
난 알아서 내부공간으로 들어갔다.
누군가는 이 안에서 사람들을 올려 보내야 한다.
질소가 새어져 나오는 이곳에 들어가는 건, 누구나 피하고 싶을 거고.
강요할 수 없으니 직접 하는 수밖에.
‘이 사람들은······얼마 동안 여기에 있던 걸까.’
난 널브러진 두 사람을 보자 가습이 갑갑해졌다.
최대한 빨리 이들을 바깥으로 내보내야 한다.
한 박자 늦게 온 김영수 과장과 다른 두 직원이, 챔버 위에서 신호를 보냈다.
난 한 남자의 허리를 붙잡고, 있는 힘을 끌어 모아 들어올렸다.
“흐읍.”
참아 보려하지만 자동적으로 신음이 새어나온다.
다행히 위에서 남자의 팔을 재빨리 잡고 끌어당겼다.
남자의 몸이 챔버 밖으로 빠져나갔다.
위에서 남자의 몸을 설비 위에 누이는 동안.
난 남은 한 사람을 공간 가운데로 끌고 왔다.
그리고 다시 그의 몸을 감싸 안아 올린다.
“크윽, 흡.”
숨이 새어나간다.
평소 운동 좀 열심히 해둘 걸 그랬나.
나도 모르게 숨이 들어간다.
근육이 산소공급을 간절히 원한다는 소리다.
‘빌어먹을······’
글로 읽었던, 질소 흡입시의 몽롱함이 약하게 느껴진다.
나도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정신 잃은 남자를 챔버 밖으로 내보낸 뒤.
나도 간신히 그곳을 빠져나왔다.
“후우-”
숨이 달렸다.
난 손으로 코와 입을 막고 최대한 참아보려 했다.
하지만 숨을 쉬지 않으면 그게 더 죽을 것 같았다.
결국 한 모금 또, 숨이 코로 넘어간다.
-괜찮아요?
김영수 과장이 눈으로 내게 묻는다.
몽롱함은 더 심해지고 있었다.
눈만 감으면 그대로 쓰러져 버릴 것 같이.
-빨리 움직여요!
난 일부러 큰 동작으로 팔을 움직여, 직원 둘에게 지시했다.
내 의도를 알아들은 두 사람은 먼저 빼낸 남자를 들고 떠났다.
이제 나와 김영수 과장의 차례.
김영수 과장이 나 대신 앞서서 남자를 들쳐 멨다.
난 김 과장이 했던 것처럼 그의 등에 내려온 남자의 상체를 들었다.
먼저 떠난 두 직원의 뒤를 따라, 우리도 바삐 발을 놀렸다.
계단을 내려와, 설비 모퉁이 도는 동안.
내 시야는 점차 흐려지고 있었다.
가까스로 클린룸의 출입구까지 접근한 순간,
“선배!”
유정이 날 부르는 목소리가 마지막.
내 정신은 그대로 스러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