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래에서 온 특종-95화 (95/107)

95. 이전보다 더 유명인이 될 것 같으니까

한동안 조용했다.

감각이 느껴지기 시작했을 땐.

내 몸이 중력에 이끌려 어디론가 한없이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가 문득, 난 깨어났다.

“우으-”

말이 제대로 나오질 않았다.

신체의 감각은 느껴졌지만, 가위에 눌린 양 모든 게 무거웠다.

간신히 눈을 실눈을 뜨자 흰 공간이 희미하게 보였다.

‘병실이구나.’

그리고 내 코에 삽입돼 있는 산소호흡기를 확인했다.

“어, 깨어나셨습니다!”

움찔거리는 내 손을 보고 누군가가 외쳤다.

“진형아!”

“선배!”

“주진형씨, 정신이 드세요?”

온갖 커다란 목소리에 머리가 지끈거리며 울렸다.

난 눈을 크게 한 번 깜빡인 뒤 대답했다.

“네······괜찮습니다······”

이제야 앞 사람의 형태가 또렷이 내 눈에 들어왔다.

내 바로 곁에 있는 사람들, 부모님과 기문 선배, 유정이까지.

뒤로는 흰 가운을 입은 의사와 간호사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환자 의식 차렸습니다. 안정 취해야 되니까 조용히 해주세요.”

의사가 밖으로 나가서더니, 누군가에게 말했다.

병실 바깥은 무척 소란스러웠지만 지금 그것까지 고려할 정신은 없었다.

난 일단 몸을 움직이려고 노력해봤다.

팔 다리는 무리 없이 움직이는데, 어쩐지 피가 안 통했던 것처럼 무뎠다.

“진형아, 이게 무슨 일이야! 엄만 너 죽는 줄 알았잖아!”

엄마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내게 외쳤다.

“안 그래도 아픈 애한테 소리치지 말아. 진형아, 어디 불편한덴 없어?”

아버진 그나마 침착하게 내게 말했지만, 목소리의 떨림이 느껴졌다.

“네, 괜찮아요.”

슬슬 몸도 풀리고 있었다.

난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다가, 상체를 일으켜봤다.

“선배!”

내가 무리한다고 생각한 걸까.

유정이가 불안한 듯 외쳤다.

반면 부모님은 큰 소리 없이 내 몸을 부축했다.

난 도움을 받아 베개에 등을 기댔다.

“주 후배, 쓰러진지 3시간 만에 깨어난 거네. 위험했어.”

서있던 기문 선배가 내게 말했다.

“3시간······입니까?”

병실 내에 설치된 벽시계를 보고 시각을 확인한다.

시침은 숫자 4를 가리키고 있다.

창밖을 보니 아직 해는 떠있다.

새벽은 아니니, 오후 4시겠지.

“선배, 선배 쓰러질 때 진짜 죽는 줄 알았어요.”

유정이 곁에 꼭 달라붙어 울먹이듯 내게 말했다.

“유정씨, 어떻게 된 거야? 나오다가 기억을 잃었는데······”

내가 당시 상황에 대해 유정에게 물었다.

유정은 울상으로 내게 설명했다.

“선배가 룸 나오다가 쓰러져서······먼저 나온 직원 분들이 바로 꺼내 오시고, 룸 문 닫았어요. 근데 선배가 정신을 못 차려서. 소방대가 바로 와서 호흡기 끼고 실려 온 거예요.”

다행히 소방대가 좋은 시기에 등장해줬구나.

이미 지나간 일이었지만, 난 절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혹시나 그들이 늦었다면 지금 난 깨어나 있지 못했을 수도 있다.

“김영수 과장은?”

사고 당시 얘길 듣다 보니, 함께 있던 김영수 과장이 생각났다.

그는 괜찮을까 걱정이 들었다.

“과장님은 옆 병실에 있어요. 선배처럼 정신을 잃은 건 아니라서 안정만 취하고 있어요.”

“다행이네. ······그럼 쓰러졌던 사람들은?”

내가 질문하자 기문 선배와 유정이 시선을 내리깔며, 침묵했다.

이런 반응, 느낌이 좋지 않다.

난 등골을 스치고 지나가는 불안함을 인지했다.

그러나 입을 다물 순 없었다.

“기문 선배. 어떻게, 된 겁니까?”

내 지명에 기문 선배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겨우 나와 눈을 마주치고 이야길 꺼냈다.

“먼저 꺼냈던 세 명도 지금 깨어나서 병실에 요양 중이네.”

“나머지 두 사람은요?”

“······의식불명이네. 지금 중환자실에 있어.”

“아-”

나도 모르게 탄식이 새어나왔다.

갑자기 솟구치는 안타까움.

난 허탈하게 머리칼을 흩트릴 수밖에 없었다.

‘미래를······못 바꿨다고······?’

아니, 정확히는 바꿨다.

난 미리 봤던 보도 자료 내용을 드문드문 기억해냈다.

협력사 직원 세 명이 사망, LC디스플레이 직원 두 명이 중태.

그래, ‘과거의 미래’에 비하면 분명 나아진 결과였다.

‘그렇지만······’

사고를 막을 수 있을 거라 믿은, 내가 오만했던 걸까.

나머지 두 사람이 중태라는 사실이 큰 실패처럼 느껴졌다.

“이건 주 후배 잘못이 아니네.”

“맞아요! 선배!”

“그래, 진형아. 네가 목숨 걸고 구한 것만 해도 대단한거야.”

네 사람이 동시에 날 위로했다.

하지만 내 감정은 쉽게 희석되지 않았다.

“그 두 사람은 정말 위급했네. 구출이 좀 만 더 늦었으면 바로 질식사했을 거라고 하더군. 어쨌든 주 후배가 두 사람까지 살린 거네.”

난 기문 선배에게 희미하게 웃어보였다.

이렇게까지 얘기해주는 선배에게 감사했다.

‘침울해져 있어선 안 되겠지. 내게도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바깥의 소란스러움이 더 커졌다.

“아 진짜 ! 뭐야?”

“밀치지마요!”

“누군데? 이봐요, 뭐냐고요!”

“야, 야 너네 가만히 있어. 이 분······”

거친 음성들이 병원 복도에서 병실 안까지 흘러들어온다.

그리고 이윽고, 병실 문이 열렸다.

“아직 들어오시면 안돼요. 환자분 안정되기 전까지 면회 사절입니다.”

간호사가 문손잡이를 잡고 들어오려던 사람을 막아섰다.

“주 기자 깨어났다고 하지 않았어요?”

침대에선 그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목소리만으로 난 누군지 바로 알아챘다.

“간호사님, 그 분 들여보내주세요.”

“네?”

내 말을 듣고 순간적으로 당황한 간호사가, 몸을 돌렸다.

난 눈이 맞은 그에게 뒷말을 덧붙였다.

“-저희 대표님입니다.”

“아, 앗! 네.”

간호사가 문에서 손을 뗐다.

그러자 좁게 열린 문틈 사이로 박호창 대표가 빠져나왔다.

“아, 우리도!”

“문 더 열어봐요!”

“들여보내줘라 좀!”

아귀지옥 마냥 낯선 음성들이 아우성쳤다.

다행히, 그들은 이 병실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간호사가 신속히 문을 다시 닫은 덕분이다.

“주 기자. 몸은 좀 어떤가요.”

박 대표는 심각한 얼굴로 내게 다가왔다.

“괜찮은 것, 같습니다. 대표께서 여기까지 오실 필요는 없었는데, 죄송합니다.”

내가 사죄했다.

뭐 때문이든, 근무 시간 중에 멋대로 굴어서 쓰러진 건 내 잘못이다.

“무슨 소리. 주 기자가 쓰러졌는데 내가 바로 와야지요. 아무튼 놀랐습니다. 갑자기 질소 누출이라니.”

“보고 제대로 못 드린 점 죄송합니다. 팀장과 국장께는 제가 따로 연락하겠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박선혜 팀장에게, 달랑 기사 제목만 보내놓은 것도 꽤 무례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상황이 워낙 급박했으니, 어쩔 수 없었다.

“응, 그러면 좋지요. 두 사람 다 주 기자 혼낼 마음 없으니까 걱정 마요. 오히려 쓰러졌다 그래서 무척 걱정했어요. 함께 오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주 기자 대신, 사고 기사를 맡아야 해서 못 왔어요. 나중에 따로 올 겁니다.”

“알겠습니다.”

내가 고갤 끄덕였다.

“참 이분들은?”

박호창 대표가 내 곁에 선 사람들을 보며 물었다.

소개해달라는 그 뜻을 알아듣고, 내가 바삐 설명했다.

“아 제 부모님이십니다. 여긴 이뉴스 김기문 기자, 이쪽은 디지털투모로우 이유정 기자입니다.”

내가 소개를 마쳤다.

그러자 부모님과 기문 선배, 유정이 차례대로 인사를 했다.

“아, 대표님! 안녕하세요. 진형이 엄마입니다.”

“진형이 애비인 주성철 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이뉴스 김기문 기자입니다.”

“안녕하세요. 디지털투모로우 이유정 입니다!”

박 대표는 각 인사를 목례로 가볍게 받았다.

그리곤 네 사람에게 다시금 자신의 신원을 밝혔다.

“안녕하십니까. 마이뉴스24 대표 박호창이라고 합니다.”

박 대표는 나의 부모님께로 시선을 고정 한 후.

좀 더 크게 허릴 숙였다.

“이거 죄송합니다. 소중한 아드님을 맡겨주셨는데, 이렇게 위험한 일을 겪게 해드려서.”

갑작스런 사과였다.

난 팔을 뻗어 황급히 박 대표를 말렸다.

“대표, 그건 제 잘못입니다. 대표께서 사과하실 일이······”

“하하, 그래도 내가 회사 책임자니 부모님께 사과드려야겠지요.”

박호창 대표는 꽤나 어른스러운 태도로 말했다.

아니, 이런 여유와 배려는 진짜 어른이 뿜어내는 거다.

언뜻 디지털투모로우 이윤철 대표라면 어땠을지 상상해버리고 만다.

아마도 ‘그렇게 멋대로 굴면 취재는 누가하고 기사는 누가 쓰나’ 화내지 않았을까.

“아닙니다. 회사 대표님께서 무슨 잘못이 있으시겠습니까. 저희 아들놈이 무턱대고 행동한 거지요. 제가 죄송합니다.”

아버지는 박 대표의 사과를 평소 성정대로 받았다.

늘 낮은 자세로, 작은 일 하나도 책임감 있게.

아들의 잘못은 곧 자신의 잘못이라 여기는 게 우리 아버지다.

“하하. 들었지요, 주 기자. 앞으론 인명 구하기도 좋지만 부디 자신의 몸도 잘 챙겨요. 되도록이면 주 기자가 오랫동안 마이뉴스에서 일했으면 하니까.”

그런 아버지의 성향을 파악한 걸까.

박호창 대표도 서로 더 미안해하는 무의미한 경쟁은 하지 않았다.

“명심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내가 고갤 숙이며 대답했다.

“그리고 주 기자. 대단한 인재인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로 대단할 줄은 몰랐는데. 사람을 또 한 번 놀라게 하더군요.”

“예?”

“그 짧은 시간에 기사 제목을 생각해서 보냈다면서요? 그 다음 바로 5명을 구했고. 감탄했네요. 주 기자의 기자정신만큼은 다른 선배기자들도 못 따라올 것 같아요.”

그 제목은 사실, 전날 미리 준비해뒀던 거다.

만약 아무 준비도 없이 그 상황과 맞닥뜨렸다면?

난 박선혜 팀장에게 코코아톡 메시지를 보낼 생각조차 못했을 거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가 너무 박 대표에게 과장돼 보여 지는 것 같아 부끄러웠다.

게다가 기문 선배도 함께 있는데, 선배기자들보다 낫다느니 하는 말은 과했다.

“아닙니다. 대표. 선배 기자들께 비할 바는 못 됩니다.”

난 일부러 무덤덤하게 말했다.

내 얼굴을 읽고 박 대표가 화제를 바꾼다.

“밖엔 지금 주 기자를 취재 하겠다고 방송국과 매체 기자들로 가득 찼어요.”

“그렇습니까······”

아까 그 난리판을 보고서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이미 인터넷은 주 기자에 대한 기사로 도배됐어요. 마음의 준비 해두세요. 이전보다 더 유명인이 될 것 같으니까.”

“······네.”

이 대화를 끝으로 박호창 대표는 다시 병실을 나섰다.

내 상태가 호전된 걸 본 기문 선배와 유정이도, 각자 매체로 복귀하기로 했다.

“주 후배. 편히 쉬고 있게.”

“선배······”

유정은 끝까지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며 칭얼댔지만, 난 빨리 가라 손짓했다.

결국 병실엔 간호사와 부모님만 남게 됐다.

난 휴대전화로 인터넷에 접속해 올라온 기사들을 확인했다.

박 대표가 언급한 내 기사들도 궁금했고, 과연 사고가 어떻게 서술됐는지 알고 싶었다.

[LC디스플레이 파주공장 질소 누출...2명 중태]

[LC디 파주공장 질소 샜다...2명 중태 7명 경상]

[소방청“파주공장 방재 작업 중······질소 농도 위험”]

[LC디스플레이 안전인증 1년도 안 돼...질소 누출]

메이버 뉴스 검색결과엔, 이렇듯 간단히 사건을 정리한 기사들이 한 뭉텅이.

그리고 그 아래에 또 다른 묶음기사들이 내 눈에 들어왔다.

[현직 기자, 질소 가스 뚫고 공장직원 구해-아이티데일리 한주협 기자]

[LC디스플레이 직원보다 빨랐다! 기자의 살신성인 -이뉴스 김기문 기자]

[기사보다 생명...LC디스플레이 파주공장의 영웅 주진형 -디지털투모로우 이유정 기자]

왜 박호창 대표가 이전보다 더 유명인이 될 것 같다 말했는지 단박에 알았다.

‘내일코코아 합병 무산 막았단 기사처럼, 아예 내 이름이 실려 버렸군.’

그 당시에도 그랬지만 알고 지내는 기자들이 문제다.

난 유정이가 쓴 기사 제목을 보며 이마를 짚었다.

‘내가 영웅이라고······ 아니야. 난- 미래를 알고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어.’

어쩌다 미래를 알게 돼, 사고를 막으려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물론 애초부터 완벽히 해결할 수 있는 조건은 아니었지만.

만약 내가 모든 걸 솔직하게 고백했다면······

아니 그래봐야 아무도 믿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그럼 내가 도대체 어떻게 했어야 좋았던 걸까.’

이에 대한 생각을 하던 순간.

난 그 방향을 깨닫고, 병실 침대에서 일어났다.

“진형아! 왜 누워있지 않고.”

엄마가 서려는 내 몸을 막으며 만류했다.

“괜찮아요. 다른 분들, 좀 보러가야겠어요.”

“누구? 너랑 같이 온 사람들?”

“응. 옆방이라고 했죠? 선생님, 호흡기 떼도 되나요?”

난 기계로 내 상태를 확인하던 간호사에게 물었다.

“음, 환자분 계속 끼고 계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어지럽지 않으시면 빼도 되긴 해요.”

간호사의 답에 난 코에 껴있던 호흡기를 빼냈다.

그리고 환자복 차림으로 드디어 병실 밖을 나선다.

“어! 주진형이다!”

문이 열리자마자 날 알아본 기자가 소리쳤다.

“뭐!?”

복도 이곳저곳에 앉아있던 기자들이 금세 일어나 내게 달려들었다.

“주진형 기자! 소감 한 말씀 해주세요!”

“주진형 기자, 지금 몸 상태는 어떻습니까!”

“당시 공장 상황은 어땠습니까!”

“주진형 기자가 직접 공장 출입증을 가져가 문을 열었다는데, 사실입니까!”

정신없이 카메라와 녹음기, 질문들이 쏟아진다.

난 그 기자들의 틈바구니에 껴 옴짝달싹 못한 채.

난감한 마음으로 자리에 서있었다.

그 때.

-짝짝짝.

어디선가 우렁찬 박수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 소리로 사람들이 시선을 돌렸다.

나 또한 진원지를 찾아 고갤 들었다.

그곳엔 아이티데일리 한주협 선배가 서 있었다.

‘한 선배······?’

내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그를 본다.

“주진형 기자님! 존경합니다!”

뒤이어 지나가던 남성이 내게 소리쳤다.

한 번도 만나 본적 없던 얼굴.

분명 이 병원의 방문객이겠지.

그런 사람에게 갑자기 존경한다는 소릴 들으니 참 오묘했다.

-짝짝짝.

복도 뒤쪽에서부터 병실 앞까지.

점차 박수 소리가 전염돼갔다.

남녀 가릴 것 없이 날 향해 큰 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주 기자님! 진짜 영웅이세요!”

“리스펙입니다!”

“잘생겼어요!”

겹겹이 쳐지는 그 파도가 이윽고 내 주변 기자들에게도 도달했다.

분위기에 휩쓸린 다른 기자들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눈치를 본다.

이내 녹음기와 카메라를 들고 있던 손들이 점차 내려가고.

이제 그들도 날 향해 어색한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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