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 사고가 일어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갑자기 내게 쏟아진 박수갈채.
우레 같은 박수소리에, 다른 병실에서도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나왔다.
그들이 호기심 섞인 눈으로 이 광경을 지켜봤다.
“주진형 기자님! 싸인 좀 해주세요!”
다소 틈이 생긴 기자무리를 뚫고,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이 다가왔다.
그가 내게 종이와 펜을 건네며 부탁했다.
“싸, 싸인이요?”
“네! 저 오늘부터 기자님 팬이에요!”
내가 연예인도 아니고.
이런 경험까지 다 해보다니.
당황스러웠지만, 난 일단 종이를 벽에대고 천천히 서명했다.
[주 진 형]
평소 계약문서에 서명하던 그대로.
난 내 이름 석 자를 아무 멋없이 휘갈겨 썼다.
“감사해요! 주진형 기자님! 악수 한 번 만.”
1호 팬이 내민 손을 얼떨결에 붙잡는다.
악수가 끝나고, 그는 내 쾌유를 기원하며 멀어졌다.
“기자님! 몸 조리 잘하세요!”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 여성이 떠나고 난 후.
다른 사람들도 종이와 펜을 갖고 내게 달려들었다.
“주진형 기자님! 저도 싸인 한 번만 해주세요!”
“주 기자님! 진짜 멋지세요! 얼굴도 잘생기셨어요!”
“한 번 껴안아 봐도 돼요?”
“아니 껴안는 건 좀······”
몇몇 팬들 중엔 극성인 남성 팬도 있었다.
난 순결의 위협을 느끼며 간신히 그들을 떼어냈다.
헌데 이 난리 통에 다시 기자들까지 합세하기 시작했다.
“주진형 기자, 인터뷰도 좀 하시죠!”
“네, 질문 몇 가지만 받아주세요!”
“사고현장에는 어떻게 들어가시게 된 겁니까!”
이로써 복도는 완전히 엉망진창이 돼버렸다.
난 잠시 눈을 감았다.
귀가 울려대는 통에 머리가 아팠다.
그리고 이 고역스러운 상황을 어떻게 대응할지 판단할 시간이 필요하다.
‘어차피 디디고 지나가야 할 징검다리다. 빨리 밟고 건너버리는 게 낫겠지.’
난 다시 눈을 떴다.
앞의 기자들은 녹음기를 들이대며 연신 질문거릴 던지고 있었다.
“저기. 말 하겠습니다. 조금만 조용히 해주십시오.”
내 부탁에 앞자리의 기자들부터 입을 다문다.
그리고 이내 복도 내 사람들이 모두 내 말을 기다리게 됐다.
‘너무 효과적이라 몸 둘 바를 모르겠군.’
흠흠.
난 헛기침을 두 번 한 후 기자들을 향해 설명을 시작했다.
“우선, 오늘 오전부터 LC디스플레이 파주공장에 비 정기 견학을 왔습니다.”
ENG카메라와 스냅카메라 등이 날 찍는다.
많은 사람들, 선배 기자들 앞이라고 떨리진 않았다.
그저 빨리 얘길 끝내고 이 자릴 벗어나고 싶을 뿐.
“사고가 일어난 P8공장의 9층엔, 오전 11시쯤 방문 했었습니다. 그 때 제가 거기서 수첩을 잃어버렸습니다. 점심 식사 후에 이를 찾으러 LC디스플레이 직원과 함께 9층으로 돌아갔던 겁니다.”
내가 미리 준비했던 시나리오의 일부.
그 도입부를 그대로 기자들에게 전한다.
내 답변이 끝나자, 한 남성 기자가 재빨리 손을 들었다.
“다른 증언에 따르면 주진형 기자가 직원의 출입증을 빼앗아 들어갔다는데, 사실입니까?”
이것도 내가 짊어져야 할 짐이었다.
실제로 한 행동이기도 하고.
난 고갤 끄덕였다.
“네. 다른 직원들께서 위험하다고 말리시는 걸, 제가 강제로 문을 열었습니다.”
이 이상 더 빼거나 더할 말이 없다.
난 간단히 대답하곤 다른 기자들의 질문을 받기로 했다.
“보호 장비도 없이 들어가면 위험하다는 걸 알고 있었던 거 아닙니까? 직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들어간 이유가 뭡니까?”
약간은 비난의 감정이 섞인 물음이었다.
난 그 기자가 어디선가 봤던 얼굴이란 걸 알아차렸다.
‘왠지 낯이 익은데.’
이름까지 기억은 나지 않았지만, 어디선가 봤던 선배기자인 건 확실해 보였다.
딱히 이런 질문에 불쾌함을 느낀 건 아니다.
다만 질문이 너무 이상하다.
위험하다는 걸 알고도 들어간 이유라······
“당연히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죠.”
난 차가운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대답은 분명, 이것 외엔 없다.
그런데도 질문자가 원하는 답안은 다른 거란 생각이 들었다.
“위험하다는 걸 알았지만, 아무 방도가 없었습니다. 소방대는 7분 후 도착 예정이었고, 그 전에 쓰러져있는 사람들이 위험해질 거라 생각했습니다. 살리고 싶었습니다. 그 뿐입니다.”
내가 답변했다.
그러자 곧장 추가질문이 이어졌다.
“그럼 주진형 기자는 소방대가 7분 후 올 걸 알고서 현장에 들어갔던 겁니까? 자신이 안전할 거란 확신이 있었군요. 별로 두렵지 않았겠습니다.”
주변 기자들이 술렁였다.
“뭘 그걸 저렇게 해석해?”
“저 선배 왜 저래?”
“허어 선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 틈바구니에서 나와 질문한 기자, 서로의 두 눈이 길게 마주쳤다.
저 억지 부리는 말투와 표정.
뭘까 싶었던 상대의 감정이, 속 시원하게 이해된다.
나를 같잖게 영웅행세하려는 인간으로 생각하고 질문을 던진 거다.
난 개의치 않고 원하는 걸 던져주기로 했다.
“네. 안전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내 소감을 들은 후.
질문한 선배 기자는 ‘그럼 그렇지’라는 득의양양한 얼굴이었다.
거기서 카운터펀치를 날린다.
“세 번째 직원을 구하던 중, 챔버 안에 두 명의 사람이 더 있다는 걸 발견하기 전 까진 말이죠.”
기자들은 물론,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관중들이 술렁인다.
이미 다들 사고결과를 알고 있겠지만, 먼저 구해진 세 명은 큰 부상 없이 요양 중이다.
반면 뒤늦게 구한 직원 두 명은 의식불명 중태.
그러니까 우리가 구하는 게 조금만 늦었더라면.
소방대가 오길 기다렸다면 그들의 생명은 보장할 수 없었을 거다.
“그 순간부터 저를 비롯해 함께 들어와 준 직원 분들의 안전은 보장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챔버 내부로 들어갔습니다. 이 일에 다른 직원 분들까지 휘말리게 한 만큼. 앞서서 책임 져야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대로 내뱉는다.
당시 내가 생각했던 그대로였고, 진심이었기에.
고민할 필요 없이 입이 움직였다.
“숨 한 번 잘못 쉬면 바로 정신을 잃는 상황이었습니다. 안전을 보장할 수 없었고, 두렵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겁니다. 그렇지만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은 없었습니다. 상황은 급박했고, 그 속에서 사람이 계속 죽어가고 있었으니까요.”
난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는 대신.
영혼 없는 말로 대답을 마무리했다.
“선배께서도 저와 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저처럼 몸이 먼저 움직이셨을 겁니다. 설령 7분 후에 소방대가 오지 못한다 해도 말입니다.”
물론 질문한 선배는 나와 생각이 다를 수 있다.
위험하니 자신은 사람을 구하지 않고 관망했을 거라든지.
허나 이미 사람을 구해낸 마당에, 굳이 그런 얘길 뱉을 필요가 있을까.
‘사서 욕을 먹고 싶은 게 아니라면 말이야.’
내 말을 듣고 질문한 기자는 주위 분위기를 뒤늦게 살폈다.
그리곤 이내 머쓱해진 얼굴로 고개를 연신 끄덕인다.
마치 내 말에 공감한다는 걸 보여주려는 것처럼.
“지금 구출하신 LC디스플레이 협력사 직원이 의식불명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또 다른 질문이 이어졌다.
내게 사고의 책임을 요구하는 어조는 아니다.
그럼에도 난 질문을 들으며 움찔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고통스러워하고 있을 그 직원들과 유가족들이 떠오른 거다.
“······제가 뭐라고 말씀드리기 어렵군요. 아쉽고 안타까울 뿐입니다.”
다른 기자들도 차례대로 질문을 던졌다.
“당시 상황에 대해서 다시 여쭙고 싶은데요. 처음 사고가 난걸 발견했을 때 어떤 상태였습니까?”
“승강기에서 내리자마자 클린룸 앞의 LC디스플레이 직원 두 분이 당황해하고 계셨습니다. 큰 일 났다고 소리치셔서 달려가 안을 들여다봤고, 설비 위에 한명, 아래 바닥에 두 명이 쓰러져 있었습니다.”
“안에서 혹시 질소를 흡입하는 느낌이 있었습니까? 있었다면 어떤 느낌이었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아이티데일리 한주협 선배였다.
난 선배에게 눈을 맞추며 당시 내가 느낀 것들을 설명했다.
“네. 마지막 사고피해자 분을 구할 때 챔버 안에서 두 번 정도 숨을 쉬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 약간의 어지러움과 몽롱함을 느꼈습니다. 약한 두통도 느껴졌습니다만, 견딜 수 있는 정도였습니다.”
“JDBC 강현아 기자입니다. 지금 주진형 기자의 이런 행동이 언론을 통해 공개가 됐는데요. 일각에서는 주 기자에게 용감한 시민 상을 수상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일전에 미튜브BJ 윤태현 사건에 도움을 준, JDBC 강현아 선배다.
그가 오른팔을 들고 내게 질문했다.
뒤에는 JDBC 뉴스룸 ENG카메라 날 찍고 있었다.
‘저 선배, 디스플레이까지 취재하나.’
난 놀라움과 반가움을 느꼈다.
하지만 그가 내게 한 질문은 부담스러운 내용이었다.
‘용감한 시민상이라······’
감사한 얘기지만 진짜 준다 해도 받고 싶지 않다.
실패한 내 행동에 그런 큰 의미가 부여된다면, 마음만 더 힘들어질 거다.
“너무 과한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음을 짧게 구술했다.
아직 주지도 않은 상이다.
벌써부터 받지 않겠다고 공표하는 것도 건방진 말일 터.
적절하게 거절의 의사를 표했다.
“LC디스플레이 측에 따로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
“사건이 언제 어떻게 발생했는지. 진상규명을 명확하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상입니다. 선배 기자 분들, 이제 좀 지나가보겠습니다.”
마무릴 짓고 다시 옆 병실로 이동해 보려했다.
그러나 역시 쉽지 않다.
“주진형 기자! 마지막 질문 하나만 더!”
“제 질문도 좀 대답해줘요!”
‘더 질문할 것도 없을 텐데 끈질기네.’
나도 기자이지 않은가.
내게서 유의미한 질의응답은 이미 다 나왔다.
그런데도 뭘 더 물어보고 싶은 건지.
기자들은 날 보내주지 않았다.
‘여기서 더 질문에 답해주다간, 날이 새도 끝이 안날 듯싶은데.’
무의미하게 시간을 뺏길 순 없다.
난 강행돌파를 시도했다.
재밌게도, 이미 질문을 마친 선배 기자들이 내 방패막이가 돼줬다.
“아, 비겨봐!”
“너흰 질문 했다 이거냐!”
“적당히 합시다. 환자 데려다놓고 뭐하는 짓이에요.”
난 그 틈에 김영수 과장과 다른 사고피해자들이 있는 병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죄송하지만 아직 절대 안정이에요. 나가주-”
막아서던 간호사가, 내 얼굴을 보더니 말을 잇지 못했다.
“주 기자님! 밖이 시끄럽다 했는데, 기자님이 오셨던 거군요.”
병원 침대에 앉아있던 김영수 과장이 날 알아보고 반갑게 불렀다.
“앗, 실례했습니다!”
간호사가 비켜주자, 병실 안이 제대로 눈에 들어왔다.
병실에는 LC디스플레이 직원들과 그의 가족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김 과장님. 괜찮으셨군요.”
“저야 문제없었죠. 오히려 주 기자님이 쓰러져서 깜짝 놀랐습니다.”
“아, 기자님!”
침대에 누워있던 다른 직원들도 날 알아봤다.
그 중엔 내게 출입증을 뺏겼던 직원도 있다.
“다행이네요 기자님. 걱정 많이 했어요.”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침대엔 아직 깨지 않은 직원들도 있었다.
얼굴을 자세히 보니 바닥에 쓰러져있던 사람들이었다.
“이분들은? 괜찮으신 겁니까?”
“네, 큰 이상은 없다고 하더군요. 근데 메스꺼움이 좀 심해서 자고 있을 겁니다.”
김영수 과장이 대신 설명했다.
“주진형 기자님? 주진형 기자님이세요?”
자고 있는 환자 옆에 서있던, 20대 후반의 여성이 내게 물어왔다.
“예. 저 맞습니다만······”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해요!”
갑작스레 눈물을 글썽이며 여성이 목을 연신 숙였다.
“주진형 기자님이 구해주신 직원이 제 남편이에요. 위험했다고 들었는데 살려주셔서 진짜로 감사합니다.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저희도요. 기자님 아니었으면 저 사람 죽었을 거예요. 정말, 정말 감사해요.”
다른 30대 중반의 여성도 내 손을 붙잡고 말했다.
“뭘요. 다함께 구한 건데요. 어쨌든 다행입니다. 남편분이 크게 안 다치셔서.”
“네! 저희가 어떻게든 꼭 보답해드릴게요.”
“아뇨, 아닙니다.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가족들과의 짧은 대화를 마치고.
난 병실을 빙그르르 둘러봤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다들 경상 수준이다.
김영수 과장이나 우릴 도와줬던 두 명의 직원도, 코에 호흡기를 끼고 있긴 했지만 크게 다친 구석은 없다.
“저, 과장님.”
내가 김영수 과장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네, 기자님.”
“궁금한 게 있는데. 그 챔버는 왜 열렸던 거고, 안에 사람들은 왜 있던 겁니까?”
“아, 그건······”
쓰읍, 뒷말을 삼키며 김 과장이 고민한다.
난 괜히 재촉하지 않고 그가 알아서 입 열길 기다렸다.
“오전에 말씀드렸다시피, 장비점검을 하느라 그랬던 겁니다. 근데······ 질소가 방출 안 된 걸 파악 못하고 점검을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
사고가 일어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난 그 이유를 확실하게 알아낼 생각이었다.
사고 원인 파악, 그리고 개선.
이 과정을 거쳐야만 또 다른 사고가 발생하는 걸 방지할 수 있다.
‘그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사고를 막지 못했다고, 침울해 있을 필요 없다.
“듣기론 챔버 안의 두 분은 협력업체 직원이시라던데, 왜 협력사 직원들이?”
내가 다시 질문을 던지던 순간.
바깥 복도가 시끄러워졌다.
아까부터 들린 익숙한 기자들의 음성이 한 옥타브 올라간 거다.
‘뭐지? 무슨 일 생겼나?’
병실 안 사람들도 모두 복도 쪽을 쳐다봤다.
“이장수다!”
“이장수?”
복도에서 큰 목소리가 오가더니, 이윽고 병실 문이 열렸다.
간호사는 이번에도 출입통제를 위해 문 앞에 섰다.
그러나 자신 앞에 등장한 무리를 보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자릴 비켰다.
곧 검은색 작업복의 중년남성들이 병실로 들이닥쳤다.
‘기자는 절대 아닌 것 같고. 누구지?’
“아, 이 전무님!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김영수 과장이 내 의문을 해소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