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래에서 온 특종-99화 (99/107)

99. 아니란 걸. 꼭 세상에 알리겠습니다.

[이에 따라 저희 LC디스플레이는 관리 책임을 다하지 못한 자사 안전담당부서 직원 세 명에게 정직 처분을 내렸고. 협력사 두 곳도 각 사업장 책임자가 책임을 지고 사퇴하기로 했습니다]

이장수 전무는 사고 관련자에 대한 처벌을 발표했다.

그 때 한 기자가 다짜고짜 손을 들고 소리쳤다.

[협력사 관계자가 장비점검 중 실수한 거라고 하셨는데요. 정직원도 같이 처벌하는 이유는 뭡니까?]

생방송 중계인 만큼, 가감 없이 기자의 질문이 전파를 탄다.

[본래 협력사가 장비점검을 할 때, 저희 LC디스플레이 직원이 현장에서 관리감독 하게 돼있습니다. 그런데 사고당시, 감독직을 수행해야할 직원이 함께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지시를 기다리지 않고 독립적으로 행동한 건 협력업체 측 직원입니다만, 저희 직원 또한 근무태만으로 인해 중대한 사고를 발생시킨 것에 대한 징계입니다]

이장수 전무가 뒤늦게 안전 감독관이 없었단 걸 밝힌다.

그래, 관리 감독이 없었던 부분 당연히 처벌해야지.

하지만 그 전에도 빼먹은 게 너무 많다.

‘TM3장비는 협력사가 납품한 거랬지. 그 직원들이 질소에 대해서 몰랐을 리 없잖아.’

그런데도 협력사 직원들이 규정을 어기고, 질소 배출 없이 점검에 나섰다고?

죽을지도 모를 위험을 무릅쓰고?

말이 되질 않는다.

‘분명 김영수 과장은 회사에 말하겠다고 했어. 근데 왜 이딴 발표가 나오는 거지?’

어제 나와 김영수 과장은 사건의 진실 두 가지를 공유했다.

하나는 LC디스플레이 정직원인 감독관이 없었다는 것.

둘은 협력사가 아닌 LC디스플레이 측에서, 장비 내 질소 배출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는 거다.

감독관에 대한 내용은 명확하게 이장수 전무의 입에서 언급이 됐다.

헌데 장비의 질소 배출이 LC디스플레이가 아닌, 협력사의 역할로 바뀌어 있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상황이지. 협력사 직원들이 증언하면 말끔히 밝혀질 일을 왜······’

혹시나 이미 협력업체들과 입을 맞춘 걸까.

그랬기에 이리 당당하게 거짓을 내뱉는 건가.

난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으며, 계속 방송을 시청했다.

그 순간 갑자기 화면에 나타난 문장이 떠올랐다.

[속보- LC디스플레이 협력업체 직원 두 명, 사망]

“······사망?”

뉴스 하단에 표시된 속보.

눈을 크게 뜨고 다시 보지만, 믿고 싶지 않은 내용은 달라지지 않았다.

내 머리가 하얗게 멈춘다.

“아이구, 저런 쯧쯧쯔. 결국 죽었나보네.”

“이 병원이람서?”

“아유, 그랴? 안됐으이.”

속보를 보며 옆에 앉은 노인들이 혀를 끌끌 찼다.

난 이 거지같은 운명의 순간이 와 닿지 않았다.

어이가 없어서 허탈한 웃음이 새어나올 만큼.

난 홀린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망이라고······ 이 순간에······”

머릿속이 온갖 감정과 생각으로 뒤엉켰다.

LC디스플레이는 사고의 원인을 왜곡하고.

그 사고로 인해 중태에 빠져있던 두 사람은 죽었다.

억울하다.

내 가족의 일이 아님에도, 난 억울했다.

‘이 빌어먹을 상황은 대체 뭐야.’

분노가 가슴에 사무치듯 숨을 탁 틀어막았고, 시야는 뿌옇게 가려졌다.

그럼에도 난 발을 떼고 걸어 나갔다.

본래 퇴원 수속을 다 마친 후, 마이뉴스24 사무실로 복귀할 생각이었지만.

이런 상황엔, 아직 돌아갈 수 없다.

난 처연한 걸음으로 병원 건물 3층의 중환자실 병동으로 이동했다.

“상수야아! 아이고! 상수야!”

“상수가 죽었다고······?”

“우리 진수 살려내라 이놈들아!”

병실 앞 복도엔, 취재진과 LC디스플레이 직원들이 이미 가득.

그 사이에 유가족으로 보이는 인물들이 망연자실해 하고 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LC디스플레이 인원의 멱살을 잡고 화를 내고 있었다.

“어! 주진형이다!”

“뭣!”

“주진형 기자다!”

카메라로 연신 사진을 찍어대던 기자들이 날 발견했다.

그들이 우르르 몰려와 이젠 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구했던 피해자 두 분이 사망했는데, 기분이 어떻습니까?”

“혹시 유가족 분들께 하실 말이 있습니까?”

대답하고 싶지 않은 질문들.

난 무표정한 얼굴로 한 마디도 내뱉지 않았다.

이들은 지금 내 감정을 모른다.

나 또한 그걸 일일이 설명하고 해명하고 싶지 않았다.

“한 마디만 해주세요!”

난 내 앞을 가로막는 사진기자들을 헤치고 유가족에게 다가갔다.

애절하게 울부짖던 한 피해자의 어머니의 어깨를 붙잡는다.

그가 내게 눈물 맺힌 얼굴을 보일 때, 말한다.

“어머님.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내뱉은 말에 대해 책임질 각오는 이미 돼있다.

“진실을 밝혀내겠습니다.”

목소리의 울컥함은 통제가 되지 않았다.

한껏 떨리는 내 음성을 듣고, 피해자의 어머니와 가족들이 내게 시선을 준다.

이들도 내 얼굴을 알고 있었던 걸까.

애처롭게 내 이름을 불러준다.

“주진형······ 기자님?”

난 그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돌아가신 두 분의 잘못으로 사고가 난 게 아니란 걸. 꼭 세상에 알리겠습니다.”

“기자님! 부탁드릴게요! 제발, 저희 남편 억울함 좀 풀어주세요!”

피해자 아내로 보이는 여성이 흐느끼며 내게 부탁했다.

그 옆으로 내게 무릎을 꿇는 남성도 있었다.

“도와주세요. 화가 나서 아무것도 못하겠습니다. 힘들게 살아온 내 아들이 이렇게 가버렸는데. 작업자 과실이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다 뒤집어씌우고!”

그들의 분노와 슬픔을 묵묵히 받아들이던 난, 결심을 내렸다.

휴대전화를 꺼낸다.

저장된 연락처 중, JDBC 강현아 선배를 찾아 통화를 시도했다.

시끄러운 복도의 소음에, 난 더 귀 기울여 신호음을 들었다.

“네······ 선배. 주진형입니다.”

강현아 선배가 전화를 받았다.

-어, 주 기자. 속보 봤어. 유감스럽게 됐어. 지금 병원이야?

“네 병원입니다.”

-어떡해. 너무 상심 하지 마. 주 기자는 할 만큼 했어.

“아뇨, 선배. 아직 다 한 게 아닙니다.”

-응?

“선배. 저 오늘 JDBC 뉴스룸, 출연하고 싶습니다. 가능하겠습니까?”

내 물음에 전화 너머 강 선배가 화들짝 놀란다.

-어······? 어! 당근 가능하지! 알았어. 당장 말해둘게. 잘 생각했어!

“그럼 몇 시까지 가면 됩니까?”

-응. 오후 7시까지 상암으로 와. 나머진 내가 다 알아서 케어 해줄게.

***

마이뉴스24 사무실에 들려 박선혜 팀장과 김경은 국장께 보고를 마치고.

난 상암동으로 향했다.

도착한 건 오후 6시 반경.

상암동은 얼마 전 KMR취재를 위해 SBC사옥에 들어갔던 이후 처음이었다.

“주 기자!”

택시에서 내린 뒤, 천천히 JDBC 사옥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사옥 정문에서 날 기다리고 있던 강현아 선배가 손을 흔들었다.

“선배, 기다리고 계셨습니까.”

“응. 안내해줘야지. 식사는? 했어?”

“아직 안했습니다.”

“그럼 식사 같이 하자. 나도 아직 이야.”

우리 둘은 JDBC 사옥 지하에 위치한 구내식당으로 자릴 옮겼다.

식사는 저렴했으나, 가격의 벽을 크게 뛰어넘진 못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음식의 수준은 전혀 중요치 않았다.

난 강 선배와 함께 내가 어떤 말을 하게 될 거고, 어떻게 방송에 임해야 하는지 얘기했다.

“긴장하지 말고, 손 사장님이 잘 리드할거야.”

손정희 JDBC 보도부문 사장.

그가 JDBC 뉴스룸을 진행한다.

내 인터뷰도 손 사장이 직접 하게 될 거다.

“대본은 올라가면 바로 줄 거야. 받아보고 대답할 내용 생각해두면 돼.”

“알겠습니다.”

우린 식사를 마치고 JDBC 뉴스룸 데스크가 있는, 지하 2층 스튜디오로 올라갔다.

“여기 대본입니다. 확인하시고 저희가 신호드릴 때 입장하셔서, 이 자리에 앉으시면 됩니다. 방송 보신 적 있으시죠? 진행은 손 사장님이 하실 거고요······”

조연출로 보이는 사내가 내게 하나, 하나 설명을 해줬다.

뉴스 시작까지는 아직 30분 이상 남은 상황.

난 강현아 선배의 안내로 대기실에 들어가 대본을 읽었다.

[사고 당일 LC디스플레이 파주공장에 가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당시 사고를 어떻게 발견하게 됐는지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위험한 상황이란 걸 직감하셨을 텐데, 두렵진 않으셨습니까]

[LC디스플레이가 발표한 사고조사 결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대본이라고 해봐야 앵커가 질문할 8개의 가이드라인이 적혀있는 것 뿐.

내가 해야 할 말들은 이제부터 차근히 생각을 해둬야 했다.

그렇게 5분쯤 이미지트레이닝을 하고 있을 때쯤.

대기실 문이 열리고, 한 사내가 들어왔다.

“아 주진형 기자. 안녕하십니까.”

침착하고 단조로운 말투.

익숙하게 들어온 정갈한 목소리.

“······손정희 사장님?”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손정희 사장을 맞이했다.

그는 미소 띤 얼굴로 내게 다가왔다.

“오늘, 뉴스룸 출연 결정해줘서 고맙습니다.”

평소 TV화면에서 보던 것처럼, 손정희 사장은 꽤나 당당한 사람이다.

내게 고맙다고 얘기하면서도 굽히는 기색은 전혀 없다.

“아닙니다. 저도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나오고 싶었습니다.”

“그 얘기는 인터뷰하면서 듣기로 하고. 몸은 괜찮으십니까?”

“예. 큰 이상 없습니다.”

내가 고갤 살짝 흔들었다.

“아무튼 다행입니다. 편안히 있다가 나중에 뵙도록 하죠.”

손정희 사장은 길게 말하지 않았다.

잠시 출연자와 얼굴 비추고 인사하려던 거겠지.

“알겠습니다.”

이 말을 끝으로 손정희 사장은 대기실을 나갔다.

그리고 20분 후.

JDBC 뉴스룸이 방송을 시작했다.

난 카메라 구도 안에 잡히는 스튜디오 옆에 빠져나와, 방송을 지켜봤다.

우선 전체 주요뉴스를 간략히 설명하는 브리핑에선, 여 앵커가 진행을 맡았다.

“LC디스플레이가 오늘 질소 누출 사고에 대한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LC디스플레이는 장비점검의 절차 무시로 인한 사고였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서 오늘 오후 2시, 질소 누출 사고로 중태에 빠졌던 LC디스플레이 협력사 직원 두 명이 결국 숨졌습니다. 이미 장기가 많이 손상돼있었다고 병원 측은 전했습니다. 한편 이 두 사람을 구해낸 마이뉴스24 주진형 기자가 오늘 뉴스룸 인터뷰에 출연할 예정입니다······”

브리핑이 끝나고, 손정희 사장이 첫 꼭지를 보도한다.

“시청자여러분. JDBC 뉴스룸을 시작하겠습니다. LC디스플레이가 파주공장에서 발생한 질소누출 사고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발표내용에 따르면 장비를 점검하는 협력사 직원들이 절차를 무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윽고 취재영상이 틀어진다.

그렇게 한 꼭지, 한 꼭지 씩.

손정희 사장이 나에 대한 언급도 하며 뉴스는 흘러갔다.

“그럼, 예고해드렸던 대로. 오늘 JDBC뉴스룸 인터뷰는 LC디스플레이 질소 누출 사고의 영웅으로 불리는 분이죠. 마이뉴스24 주진형 기자를 모시고 이야길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인터뷰 시작 전, 난 스튜디오에 자리했다.

손정희 사장이 내게 인사하자, 날 촬영하던 카메라에 불빛이 들어왔다.

“네. 마이뉴스24 주진형 기자입니다.”

“이렇게 나와 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주진형 기자께서도 질소 노출로 인해 의식을 잃으셨던 걸로 아는데요. 이젠 몸이 좀 괜찮으신 것 같습니다.”

손 사장의 말은 평문으로 끝맺었지만, 이 또한 내게 던지는 질문이다.

내 건강 상태를 대해 시청자들에게 설명해달라는 의미다.

난 살짝 웃으며 그 대답을 풀어놨다.

“네. 사고 당시 마지막-”

문득.

내가 구한 그 사람들이 이제 세상에 없단 게 스치고 갔다.

집중해야 했다.

벌써부터 감정이 흔들려선 안 된다.

“······마지막 인원을 구출할 때 두어 번 호흡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정신을 잃었던 것 같은데 병원에서 검사한 결과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내 반응을 보고 손 사장이 바로 다음 질문을 이어나갔다.

“안 그래도 오늘 오후에 마지막으로 구출됐던 협력업체 직원 두 분이 돌아가셨다고 들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마음이 좋지 않으시겠습니다.”

내 눈물이 보고 싶은 걸까.

난 굳이 물어오는 손 사장에게 고갤 끄덕여줬다.

“예. 솔직히 편안하지 않습니다. 슬프면서도 여러모로 화도 났습니다.”

“화가 나셨다고요?”

굳이 가이드라인대로 인터뷰를 해나갈 필욘 없겠지.

어차피 우리 둘이 이야길 주고받다보면, 나와야 할 내용들은 모두 튀어나올 거다.

“우선은 저한테. 왜 더 빨리 그분들을 구하지 못했을까, 싶었습니다.”

“제가 감히 말씀드리자면, 그건 주진형 기자의 잘못은 아닙니다.”

“네.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그 두 분이 의식불명이란 얘기에 어제부터 후회가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LC디스플레이 측에 화가 났습니다.”

내가 갈아왔던 감정을 조금씩 꺼낼 준비를 한다.

“LC디스플레이 측에 말입니까?”

“네. 그 두 분은 절대 그렇게 돌아가실 이유가 없던 분들입니다. LC디스플레이가 규정을 지켜 작업을 진행하기만 했다면요.”

안경을 고쳐 쓴 손정희 사장의 눈빛이 달라졌다.

진지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호기심 가득한, 저널리스트의 눈빛이었다.

“그렇다면 주진형 기자께서는, LC디스플레이가 당초 발표한 사실과 다르게. 규정을 직접 어긴 사실이 있다는 말씀입니까?”

내 의중을 잘 파악하고 그대로 재확인 해준다.

역시 똑똑한 앵커다.

“예. 그렇습니다. 저는 지금 그 사실을 밝혀낼 준비가 돼있습니다. 지금 저희 마이뉴스24에서 제 르포기사가 올라왔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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