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래에서 온 특종-100화 (100/107)

100. 그분들을 전 용서치 않을 겁니다

“르포 기사를 쓰신 겁니까?”

내가 사전에 고지했던 내용이 아니었다.

놀랄만 한 일이건만, 손정희 사장은 전혀 당황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인터뷰는 별다른 동요 없이 이어져나갔다.

“네. 병실에 입원해 있는 동안 작성했습니다. 제가 뉴스룸 인터뷰를 시작할 때 아마 기사가 출고 됐을 겁니다.”

상암동에 오기 전, 마이뉴스24 사무실에 들렀을 때.

난 박선혜 팀장과, 김경은 국장에게 이에 대해 말해 놨다.

작성 완료한 르포 기사를 JDBC 인터뷰할 때 출고시켜 달라고.

이렇게 되면 내가 주장하는 바와 내 기사가 동시에 많은 관심을 받을 터.

메이버도 가만히 있을 수 없겠지.

‘뉴스홈 메인에 기사를 올리게 되겠지. 그 힘을 충분히 활용하는 거다.’

국내 점유율 80%의 온라인 뉴스 플랫폼인 메이버.

그리고 여전히 시청자들에게 유효한 유명 TV뉴스 방송.

이 두 곳을 통해 기사의 노출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린다.

“기사 내용을 좀 여쭤보고 싶은데요.”

손정희 사장이 내게 물었다.

“기사는 오늘 여기서 드릴 말씀과 비슷합니다. 제가 어떻게 그날 파주공장에 있었고, P8공장 9층에 들어가게 됐는지, 그리고 사람들을 어떻게 구했는지. 뭐 때문에 사고가 난 건지까지- 기술 돼 있습니다.”

“뭐 때문에 사고가 났는지, 말입니까?”

중요한 내용이다.

손정희 사장이 재차 내 말을 확인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아까 전의 난, LC디스플레이가 발표한 진상조사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 지적했다.

그들이 밝히지 않은 진실들.

내가 그걸 알고 있고, 기사로 써냈다고 주장하는 거다.

“우선 시간 순으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내가 먼저 손정희 사장에게 제안했다.

인과관계, 즉 사건의 전후를 천천히 되짚어 주고 싶었다.

“예, 그렇게 하시죠. 그렇다면 그날 LC디스플레이 파주공장에 가게 된 이유는 뭡니까.”

“네. 제가 사실 디스플레이 분야를 맡게 된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까?”

“네. 그래서 파주공장 견학을 요청했던 겁니다. 디스플레이의 제조과정이나 공장의 모습 등을 알고 싶었습니다. 신청 후 어제 저 외의 스무 명 가량의 기자 분들과 함께 파주로 이동했습니다.”

“꽤 많은 인원이었군요.”

“네. LC디스플레이 측에서 10명 이상의 기자단을 원했습니다.”

“그렇게 수요일, 그러니까 어제 파주로 견학을 가셨던 거군요.”

“네. 오전 동안 P8공장의 전 층을 볼 수 있었습니다. 9층은 마지막에 들렸는데, 제가 실수로 수첩을 그곳에 두고 나왔습니다.”

“실수로요?”

사소하다고 여길만한 부분도 쉽게 넘어가질 않는군.

하지만 괜찮다.

이런 손정희 사장의 성격을 미리 알고 있었기에, 변명은 준비했다.

“네. 제가 작은 수첩을 사용하는데 잠시 의자에 내려놨다가 바닥에 떨어졌던 모양입니다.”

난 윗옷 안쪽 주머니에서 잃어버렸던 수첩을 꺼냈다.

LC디스플레이 측이 찾아서 내게 돌려준 물건이었다.

“그 수첩입니까?”

“네. 오늘 아침 LC디스플레이 측으로부터 돌려받았습니다. 이걸 되찾으려고 점심식사 후 다시 공장 9층으로 가게 됐던 겁니다.”

실제로 오늘 난 이 수첩을 LC디스플레이로부터 전해 받았다.

9층을 조사하다 복도 의자 밑에서 발견했다고 한다.

“혼자 가신 겁니까?”

손정희 사장은 사건의 전초 부분에 대해 꼼꼼하게 짚고 싶은 모양이었다.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LC디스플레이 김영수 팀장과 동행했습니다. 동료 기자도 함께 있었구요. 혼자 공장을 돌아다닐 수 없다는 것이 LC디스플레이 측 입장이었습니다.”

“그럼 9층에 도착하자마자 사고가 났다는 걸 알게 되신 거군요.”

손 사장이 이야길 건너 띄고 빠르게 진행시킨다.

나도 그 장단에 맞춰준다.

“승강기에서 내리자마자, 직원 두 분이 보였습니다. 그분들이 김영수 팀장을 보고 큰 일이 났다고 소리쳤고, 저희가 놀라서 클린룸 안쪽을 보니 세 명의 사람이 쓰러져 있었습니다.”

“세 명이요?”

사고피해자는 날 제외하고 다섯 명.

내가 세 명만 봤다고 하니 손정희 사장이 숫자를 확인한다.

“네. 당시 복도에선 세 명만 육안으로 확인됐습니다.”

이 자리에서 룸 내의 구조에 대해 자세히 표현하긴 힘들다.

간단히 설명하는 수밖에 없다.

“그럼 나중에 두 명의 직원이 더 있다는 건 어떻게 알게 되셨습니까?”

“세 번째로 구출한 직원이 질소를 담아두는 TM설비 위에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저와 김영수 과장이 함께 설비 위쪽으로 갔는데, 먼저 도착한 김영수 과장이 설비 내부공간에 쓰러진 두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많이 놀라셨겠습니다.”

당시 내 생각을 추측하며, 손정희 사장이 물었다.

“정말 큰일 났다. 싶었습니다. 질소에 대해선 간단한 내용만 알고 있었는데. 인체 내 산소공급을 막는다는 거였습니다. 즉, 호흡 없이 두 사람을 구해내야 한다는 건데, 그게 사실 너무 힘들어보였습니다.”

내 말에 손 사장이 옅은 미소를 보였다.

“그래도 결국 구해내셨군요.”

“네. 다른 직원 분들이 구출에 참여한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주진형 기자는 그럼 질소 농도가 높았던 그곳에서 숨을 쉬었던 겁니까?”

이제는 내가 쓰러졌던 이유에 대해 해명할 차례인가.

난 당시를 회상하며 손 사장에게 대답했다.

“네. 제가 챔버 안으로 들어가 사람들을 올려 보내는 역할을 맡았는데. 그 때 힘을 많이 쓴 탓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숨을 쉬면서 아차 싶진 않으셨습니까?”

“물론 당황했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숨을 쉬지 않으면 도저히 두 사람을 올려 보낼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결국 그래서 마지막에 쓰러지신 거군요.”

내 이야길 전부 들은 손정희 사장이 상황을 깔끔하게 정리했다.

중간 내용은 생략해도 크게 상관없다고 생각한 거겠지.

곧장 질문의 주제가 바뀐다.

“그럼 이쯤에서 사건의 원인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은데요. LC디스플레이는 협력업체 직원들이 규정절차를 어기고 점검을 진행했기 때문, 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주진형 기자가 목격한 사실은 뭔지 들려주시겠습니까.”

드디어, 본격적인 공격이 시작된다.

난 앉은 자세를 고쳐 잡았다.

그리고 손정희 사장과 카메라를 향해 입을 열었다.

“네. 일단 제가 확인한 내용은 이렇습니다. 챔버 안과 위에 쓰러져있던 세분은 협력사 직원 분들입니다. 그리고 그 아래 바닥에 쓰러졌던 두 분은 LC디스플레이 정직원 분들로. 사고 발생 후 시간이 좀 흐른 후. 설비 위 사람이 쓰러진 걸 발견하고 구하기 위해 들어왔다가 질소흡입으로 정신을 잃었던 겁니다.”

“그게 중요한 내용입니까?”

그다지 중요치 않은 부분이라는 걸 돌려 말하는 거다.

하지만 난 그런 손 사장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렇습니다. LC디스플레이가 발표한 대로, 현장 감독관이 없었다는 증거입니다. 만일 감독관이 있었다면, 설사 사고가 발생했다 하더라도 빠른 구출이 가능했을 거고. 두 분이 돌아가실 일도 없었을 겁니다.”

“그럴 수도 있겠군요.”

“이 뿐만 아닙니다. 설비 실 근처에 이런 유사상황을 대비한 장비가 하나도 구비돼 있지 않았습니다. 먼저 순찰을 돌다 구하러갔던 직원 분들이 쓰러진 건, 애초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알아보니 산소농도 측정기라는 게 있더군요. 본래 이걸로 설비실 내부 산소농도를 측정한 뒤 들어가게 돼있습니다만, 그게 불가능했습니다.”

“측정기가 공장 내에 없었습니까?”

내가 힘차게 고갤 끄덕였다.

“네. 게다가 산소호흡기 같은 보호 장구도 없었습니다. 사고당시 제가 직원 분들께 산소호흡기가 있냐고 물었지만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습니다. 위험한 공정을 다루는 공장에서 기본적 장구들이 없다는 건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일입니다.”

“말씀을 듣다보니, LC디스플레이 측에 심각한 안전결함이 있었군요.”

“이 협력사 직원 분들은 모두 TM3, 즉 문제가 된 설비를 납품한 업체 소속입니다. 이분들은 분명 설비에 들어가는 질소가 얼마나 위험한지 아셨을 겁니다. 그런데도 절차를 무시하고 점검을 진행했다는 LC측 주장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애초부터 전제가 잘못됐다는 거다.

LC디스플레이는 협력사 직원들이 절차를 무시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어느 누가 목숨이 오가는 작업의 절차를 무시한단 말인가.

내 논리에 손정희 사장은 잘 납득한 분위기였다.

내가 말을 이어나간다.

“그래서 제가 알아보니, 해당 설비는 공장이 가동중지 되기 전까지 작동되는 거였습니다. 점검 전 LC디스플레이 측이 장비를 정지시키고 질소를 배출시켜야 합니다. 그 후 산소 농도를 측정해서 정상일 때 점검인원을 투입하는 게, 그게 진짜 작업 규정이었습니다. 헌데 이 과정은 빠져버렸고, 애꿎은 협력사 직원 분들이 잘못을 다 뒤집어 쓴 겁니다.”

“확실한 내용입니까?”

데스크 위에 놓인 대본을 다시 정리하며, 손정희 사장이 내게 물었다.

중요한 기점이다.

내 주장의 논리는 충분히 보여줬다.

이제 그 논리를 뒷받침할 근거를 내놔야 했다.

“네. 확실합니다. 돌아가신 협력업체 직원 문진수씨의 아내 분께서 해주신 말씀입니다. 이 증언은 제 르포기사를 보시면 자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말을 들은 손정희 사장이 다시 안경을 고쳐 썼다.

약간 경직된 표정을 보아하니, JDBC측은 아직 이 정보를 구하지 못한 상태인 듯하다.

“그리고, 유가족분들 외에도 전 이미 내부고발자의 증언을 확보한 상태입니다.”

가슴팍에 숨겼던 권총을 꺼내듯.

난 카메라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공표했다.

이건 경고다.

LC디스플레이에게 허튼 소릴 더 이상 지껄이지 말라는 신호를 보내는 거다.

“혹시 누군지 말씀하실 수 있으십니까?”

손정희 사장이 바로 내게 물어왔다.

물론, 궁금할 테지만 밝힐 순 없다.

난 고갤 가로저었다.

“아뇨. 불가능합니다. 사실 이곳에 오기 전, 제가 아는 LC디스플레이 관계자 분들께 연락드렸지만 이에 대해선 함구하는 눈치였습니다. 실제로 제보하신 분도 회사로부터 사건과 관련해 언급하지 말라는 압박을 받고 있었습니다.”

네다섯 시간 전의 일을 떠올려본다.

피해자 유가족들을 만난 후, 난 김영수 과장에 전활 걸었다.

-이렇게 사람들이 억울하게 떠나간 걸. 그대로 묵과하실 겁니까? 김 과장님.

해명을 요구했다.

진실을 밝혀 달라 부탁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침울한 김 과장의 목소리뿐이었다.

-죄송합니다. 기자님······저도 처자식 볼 면목은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게 말하면 자신의 자리가 위태롭다.

김영수 과장은 간접적으로나마 자신이 감시받고 있음을 알렸다.

상황파악을 한 난, 별 수 없이 전활 끊었다.

김 과장에게 더 이상 어떤 기대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을 때에,

[기자님이 구해주신 유준철 대리 연락처입니다. 유 대리에게 연락하시면 다 될 겁니다]

그의 문자 메시지가 내게 왔다.

LC디스플레이 파주공장 순찰요원인 유준철 대리의 연락처와 함께.

-주 기자님. 제 목숨 구해주신 분께 뭘 못해드리겠습니까. 제가 아는 내용은 전부 말씀드리겠습니다.

유 대리의 도움으로 난 LC디스플레이의 장비점검 절차규정과 산소농도측정기의 부재 등을 파악했다.

만일 LC디스플레이가 지금 내 경고를 알아듣지 못하고, 또 간보는 행위를 하게 된다면.

‘그 땐 전면전이 되겠지.’

그저 유준철 대리의 이름이 공개되는 선까진 가지 않길.

난 바랄 뿐이었다.

만일 공개된다면 유 대리의 입장이 난처해질 테니까.

본인은 상관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피할 수 있다면 피하는 게 맞다.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음, 마지막으로 주진형 기자가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까?”

어느새 방송 시간이 꽤 지났다.

앞의 PD가 손정희 사장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이를 파악한 손 사장이 내게 마무리 멘트를 요구했다.

난 살짝 웃으며 LC디스플레이에게 선전포고를 했다.

“네. ······이 사고는 규정만 지켜졌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헌데 그 규정을 누가 어겼느냐. 그 사실을 흐리고 거짓을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숨을 고르고,

“이미 대부분의 증거는 갖췄습니다. 만약 한 순간의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계속해서 고인과 유가족 분들을 아프고 힘겹게 한다면. 전 그분들을 절대 용서치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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