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래에서 온 특종-102화 (102/107)

102. 진짜 이유, 알아봐야지. 그게 기자 아니겠냐

나도 알고 있다.

이한중 부장이, LC디스플레이가 어떤 의도로 내게 이런 상을 주려는지.

‘좋은 걸 줄 테니까 더는 아무 말 하지 않고 있으란 거잖아.’

그것도 일부러 일주일이란 시간 유예를 두는 것도.

상을 받기 전까진 내가 입 다물 거라 생각한 거겠지.

이런 바보 같은 발상을 해낸 것도 참 대단하게 느껴진다.

‘나에 대해서 눈곱만큼도 파악을 못한 건가. 아니면 그냥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거야?’

난 분명히 경고를 했다.

이 이상 거짓말로 유가족을 아프게 하지 말라고.

고인을 욕되게 하지 말라고.

그런데 그 경고를 보고서 한다는 제안이 ‘명예로운 LC디스플레이인’?

기가 찼다.

-아, 기자님. 그게 저......

“어려우신가요? 그게 천만 원 넘는 TV받는 것보단 싸게 먹힐 것 같은데요.”

-그런 얘기가 아니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하는 이한중 부장의 난감함이 느껴졌다.

난 그를 곤란하게 하고 즐거움을 느끼려는 게 아니다.

그냥 내 의중을 알아서 파악하고 더 귀찮게 하지 않길 바랄 뿐.

“부장님.”

-네, 주 기자님.

“오늘 방송 보셨다고 하셨죠.”

-예, 봤습니다.

“근데 제가 LC디스플레이에서 주는 상을 받을 거라 생각하신 겁니까?”

-......

“오늘 사고 피해자 두 분이 죽었습니다. 이런 날 제게 전화 하셔서 상을 주겠다고 하면. 제가 기쁘게 받을 수 있을 거라 보셨습니까?”

내가 상을 받지 않는 이유는 이게 다가 아니다.

“그리고 분명 말했습니다. 저 준비하는 기사 있다고. 제가 기사를 내도 그 상, 주신다면 받겠습니다.”

-......

이한중 부장이 도통 대답하지 못했다.

어색한 침묵만이 수화부 너머에 가득할 뿐.

내가 다시 운을 떼려던 순간.

드디어 이 부장이 입을 열었다.

-으음, 주 기자님.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저도 내키지 않는 얘기였습니다만, 저희 전무님 생각은 이렇습니다. ······저희도 내부적으로 재조사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압니다. 이 부분은 저흴 좀 믿고 기다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난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요. 믿고 기다리다가 뒤통수 맞는 건 한 번이면 족합니다. 내부 직원들 중에 분명 진실을 제보한 사람이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도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건, 그 안에선 해결할 수 없다는 걸로 보입니다.”

내 말에 이한중 부장이 한 숨을 내쉬었다.

-후우······알겠습니다. 주 기자님. 일단 주 기자님 입장 보고올리고 나중에 다시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오늘, 피곤하셨을 텐데.

“아닙니다. 이 부장님.”

통화는 종료됐다.

중간에 낀 이한중 부장이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싶지만.

어쨌든 내 입장은 확실하게 표명해야겠지.

LC디스플레이 이장수 전무.

그리고 그 위에 있을 한석범 사장까지.

계속 딴 생각을 한다면 곤란하다.

‘사건을 막지 못했다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시늉이라도 해야지.’

문제가 됐던 것들을 외면하고 넘어간다면 달라질 수 없다.

교통사고가 났다면 그에 대한 정리는 확실하게 해야 하는 거다.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했다.

허나 다음날.

LC디스플레이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출연한 JDBC 뉴스룸은 물론, 내 기사까지.

웹에선 분명 화제의 중심이 돼있었다.

그런데도 내가 요구했던 사과문은 물론, 사건조사를 다시 하겠다는 발표조차 없었다.

아무 일 없었던 듯 조용히 시간만 흘러가고 있었다.

‘이거 무시하는 건가? 전활 걸어야 하나? 아니면······’

오전, LC트윈즈 타워 기자실.

난 휴대전화를 붙들고 한동안 고민했다.

이한중 부장에게 다시 한 번 전화를 걸어, 그들의 의견을 들어봐야 할까.

‘벌써 11시가 다됐는데. 지금까지 아무 말 없는 걸로 봐선. 연락을 한다 해도 달라질 맘은 없다······고 받아들여야겠지.’

그렇다면 일단 움직이기로 했다.

나중에 연락이 온다면 그 때가서 다시 판단해도 된다.

괜히 시간을 낭비하고 있을 순 없었다.

자식을, 남편을, 부모를 잃었을 사람들이 고통스러워할 시간만 길어진다.

난 짐을 챙겨 가방을 메고 기자실을 나왔다.

“어, 진형아.”

마침 기자실 안으로 들어오던 아이티데일리 한주협 선배가 날 발견했다.

“아 선배! 안녕하십니까.”

“어, 너 몸은 좀 괜찮니? 뭐 인터뷰 하는 건 봤지만 아직 무리하면 안 되는 거 아냐?”

한 선배는 걱정이 가득담긴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이 선배는 이런 성격이구나.

겉은 날카로워 보이지만, 툭툭 내뱉는 말속은 따듯하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배.”

“놀랐다 야. 네가 그렇게 됐단 얘기 듣고. 그리고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 때 어떻게 사람들 구할 생각을 했어? 전해 들었지만 위험한 상황이었던데.”

한주협 선배는 친근하게 내 어깰 두드렸다.

지난 번 병실 앞에서 내게 박수를 쳐주던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처음 뵀을 땐 상상도 못했는데.

누출 사고 일을 통해 한 선배가 내게 긍정적인 인식을 갖게 된듯하다.

“저도 경황이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그래. 참, 어제 JDBC 뉴스룸 나온 거 잘 봤다. 걱정하지마라. 우리가 도와줄게.”

“네?”

한주협 선배의 도와준다는 말에, 내가 다시 물었다.

갑자기 뭘 어떻게 도와준다는 거지.

“나랑 이디넷, 아이티타임즈, 전자뉴스 애들도 지금 협력사랑 직원들 찾아가서 취재하고 있어. 정보는 취합해서 너한테 공유 해줄 테니까, 혼자 그렇게 힘들게 뛰지 않아도 돼. LC디스플레이 치는 거, 도와줄게.”

한주협 선배는 디스플레이 업계 내에서 유명한 기자 중 한 명이다.

그런 영향력 있는 인물이, 내게 LC디스플레이의 뒤를 치자며 손을 내밀고 있었다.

게다가 내게 취재정보까지 제공하겠다니.

이제 디스플레이 기자가 된지 일주일 만에 받은, 파격적인 공동취재 제안이었다.

“저, 정말이십니까?”

내가 놀라서 물었다.

“그럼 정말이지. 우리도 사람이다 인마. 사람이 죽었고, 유가족은 억울하다는데. 이런 사고가 일어난 진짜 이유, 알아봐야지. 그게 기자 아니겠냐? 그렇다고 총알받이처럼 앞서서 나간 후배 뒤에서 꿀 빠는 선배는 되기 싫다. 네 기사 먼저 내보내고, 우린 인용으로 가자. 네 기사에 힘 실릴 수 있게.”

“네!? 아니 선배 어떻게 그렇게까지······”

너무나 파격적인 제안이었던 터라, 난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한 선배의 말은 이런 의미다.

우선 정보를 취합해 내가 단독으로 기사를 낸다.

그 후 선배들은 내 기사를 인용, 받아쓰기 기사로 이슈몰이에 나선다는 거다.

‘너무 많은 걸 양보하시는 걸 텐데.’

나로선 잃을 게 없는 제안이었고, 너무나 감사한 말씀이었다.

마이뉴스24 하나보다 여러 매체가 동시다발적으로 움직일 때.

대중을 향한 기사의 노출과 파급력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그게 우리가 고발기사의 우라까이(받아쓰기)를 허용하는 이유다.

“네가 구한 사람들이야. 네가 잡은 특종이고.”

한주협 선배는 그런 내 감정을 읽은 듯, 자신의 생각을 덧붙였다.

“말씀······정말 감사 합니다. 유가족 분들도 좋아하실 거예요.”

“네가 감사할 일이 아니야. 우리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지. 오히려 난 네가 고맙다. 그렇게 나서서 말해준 덕분에, 우리도 여러모로 움직일 수 있게 됐어. 너 영웅 소리 들을 만해.”

“네?”

“너 아니었으면 우리도 그냥 LC디스플레이 발표가 사실인 줄 알고 받아쓰고 있었을 거야. 나중에 쪽팔리지 않게 해줘서 고맙다고.”

“아······”

“아무튼. 지금 취재가?”

“네. LC디스플레이가 묵묵부답이라. 아무래도 예고했던 대로 기사를 하나 더 내야할 것 같습니다. 우선 LC쪽은 증언은 확보돼 있고, 협력사에 가볼 생각입니다.”

“협력사? 어디로 가는데? 라바코라면 다른 기자들이 지금 가있는데.”

“전 코나벡입니다. 라바코의 하청이죠.”

코나벡은 LC디스플레이의 협력사인 ‘라바코’의 협력사다.

즉 하청의 하청.

그리고 내가 챔버 위에서 구출한 직원, 심태용 씨가 다니는 곳이다.

“그래? 알았어. 기사 시기 정해지면 얘기해줘. 참 너 내 번호 모르지.”

“네.”

한주협 선배가 내 휴대전화에 자신의 번호를 입력해줬다.

“우리도 정보 모이는 대로 알려 줄 테니까. 주진형, 너 미친 탈곡기라며? 어디 한 번 LC디스플레이도 잘 털어보자. 너만 믿는다.”

“감사합니다. 선배······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 팩트 체크 끝나고 보자.”

나와 주협 선배는 그대로 헤어졌다.

트윈스타워를 빠져나온 난, 지하철을 타고 평택역으로 향했다.

평택역사에 도착하는 데에는 약 한 시간 반이 걸렸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난 휴대전화 지도 앱에 표시된 대로, 평택역 백화점 정류장에서 8번 버스로 환승했다.

그렇게 또 20여 분.

드디어 난 최종목적지인 안성시 원곡면에 도달할 수 있었다.

드문드문 공장단지가 보이지만, 풍경은 시골과 다를 바 없었다.

낮은 지붕의 전원주택들이 넓게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이쯤인데.”

난 지도를 따라 하천을 건너고, 조그마한 산길을 올랐다.

멀리쯤에 있는 두개의 공장단지가 눈에 들어왔다.

‘저긴가. 내 기사의 핵심내용을 증언할 사람은.’

3분여를 걸어 공장 가까이 다가갔다.

때 마침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서 공장 밖으로 나오는 직원들이 있었다.

그들이 주차장에 놓인 차에 탑승하기 전, 내가 다가가 말을 걸었다.

“저, 안녕하세요. 여기가 코나벡 맞습니까?”

“네. 맞는데요.”

외부인의 등장이라 그런가.

잔뜩 경계하는 얼굴로 사람들이 모두 날 바라보기 시작했다.

“혹시 기자에요?”

단박에 내 정체를 간파한건가.

대뜸 물어오는 한 직원에게 난 그렇다고 말했다.

“예. 마이뉴스24 주진······”

내가 이름을 다 말하기도 전에,

“아, 저희 취재 이런 거 안 받으니까. 돌아가세요. 가요, 가!”

그 직원이 성질을 내며 내 몸을 밀어댔다.

“이거 왜이러십니까!”

갑작스럽게 당한 거친 행동에 나도 언성을 높였다.

내가 무슨 큰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심지어 여기 코나벡 직원을 구한 사람인데.

은인 대접은 못해줄 망정 이런 식의 무례라니.

“아 글쎄, 취재 안하니까 가라구요. 에?”

상대의 막무가내 언사에 나도 화가 났다.

“어차피 저도 댁 취재할 생각 없습니다. 저한테 그런 말씀하지 마십시오.”

“뭐야? 이런 개 싸가지를 봤나. 꺼지라고 새끼야. 말귀 못 알아 듣냐?”

“어어, 그러지마. 네가 참어.”

웃기게도 내게 폭력을 휘두르려는 직원을, 다른 직원들이 달래고 있다.

내가 불청객이란 건 충분히 알아먹겠지만, 왜 그런지에 대해선 납득할 수 없었다.

“전 마이뉴스24 주진형 기자입니다. 오늘 여기 직원이신 심태용 씨를 뵈러왔습니다. 약속도 미리 잡아놓은 상태구요. 근데 왜 제게 그런 식의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내가 물어봤지만, 이에 대해서 명확한 답변을 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흥분한 채 내게 돌아가라 소리치는 작자만 있을 뿐.

“주진형이고 주문진이고 내 알 바 아니고 꺼지라고. 괜히 와서 분란 일으키지 말고.”

“분란?”

영문 모를 소리에 내가 고갤 갸웃 거리는 사이.

날 밀치던 사내는 바닥에 침을 찍, 뱉고는 차에 타버렸다.

다른 직원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신경질적인 눈초리로 날 흘겨본 뒤, 차에 탑승한다.

‘이게 도대체 무슨······’

어이가 없어서 멍하니 섰다.

곧 시동 걸린 차가 공장을 떠난다.

난 휴대전화를 꺼냈다.

LC디스플레이 유준철 대리로부터 받은 연락처 정보를 다시 확인한다.

그리고 그 번호로 전활 걸었다.

신호음이 길게 이어진 후, 상대가 내 전활 받는다.

“······아, 심태용씨. 저 마이뉴스24 주진형 기자입니다. 약속했던 대로 지금 코나벡 도착했습니다. 어디계십니까?”

기분만큼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어본다.

하지만 상대는 쉽게 내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왜?’

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심태용씨? 듣고 계세요?”

재차 질문하자 그제야 심태용의 목소리가 돌아왔다.

-네. 듣고 있습니다.

어제 들었던 그 목소리가 아니었다.

진이 다 빠진 듯, 한껏 우울한 음성.

난 불안함을 느끼면서 심태용에게 위치를 물었다.

“어디계십니까?”

-······공장, 안에 있습니다.

심태용이 이상할 정도로 천천히 대답한다.

난 애써 그에게 밝게 얘길 했다.

“나오시죠. 왜 아직 거기 계십니까. 다른 분들은 다 나와서 식사하러 가시던데.”

-기자님.

불길한 호명이었다.

상대에게서 대화의 맥락을 한참 벗어난 소리가 나올 땐.

일이 늘 안 좋은 방향으로 흐르기 마련이다.

“네?”

-저, 오늘 인터뷰 못할 것 같습니다.

역시나 싶었다.

그러면서도 바로 납득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난 감정을 절제하며 심태용을 설득하기로 했다.

“그게 무슨······어제 다 얘기했던 부분 아닙니까? 갑자기 이러시면- 저 서울에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식사도 거르고 심태용씨 취재하기 위해서. 이러시는 법이 어딨습니까.”

-죄송합니다.

돌아온 건 짧은 대답.

내가 바라는 건 이런 게 아니었다.

“아니, 죄송하다고 하지 마시고. 제가 납득할만한 이유를 좀 설명해주세요. 심태용씨. 얼굴 보고 얘기합시다. 잠깐만 나와 보세요.”

-정말 죄송합니다, 기자님. 저도······ 저도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는 제가 싫습니다. 근데······어쩔 수 없어요. 죄송해요. 돌아가 주세요.

사정을 설명하지 못하고 사과만 하는 심태용에게, 일이 생겼음을 직감한다.

그다지 좋은 일은 아니었겠지.

“무슨 일 있던 겁니까?”

-······

심태용은 대답하지 않았다.

허나 나도 심증이 잡히는 구석은 있다.

“혹시 LC디스플레이에서 뭔가 한 겁니까? 코나벡 쪽에?”

내 물음에 심태용은 끝까지 반응하지 않았다.

“심태용씨······ 제가 당신을 구했다고 생색낼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심태용씨를 먼저 구하느라 늦게 구출됐던 두 사람을 생각해주십시오. 그 분들이 하늘에서 심태용씨를 보고 있습니다.”

감정호소에 심태용은 괴로워했다.

-그만해주세요······저도 힘듭니다. 제발 그냥 돌아가 주세요.

“후우-”

통화를 종료했다.

어쩔 수 없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신태용은 극도로 취재를 꺼리고 있다.

다른 공장 직원들 또한 내게 적대적으로 구는 걸 보면, 내가 오기 전 한 바탕 뭔가 사단이 났던 모양인데.

‘무슨 짓을 한거냐 LC디스플레이 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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