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래에서 온 특종-103화 (103/107)

103. 그 위로금, 제가 드리겠습니다

심태용 씨의 취재를 포기할 순 없었다.

‘지금 여기서 돌아가면 기사를 낼 수 없어.’

내가 LC디스플레이의 사고조사 발표를 뒤집기 위해선, 두 사람의 조력이 필요하다.

바로 LC디스플레이 유준철 대리와 협력사인 코나벡 직원 심태용 씨.

우선 유준철 대리는 LC디스플레이의 본 절차에 대해 고백할 수 있는 내부고발자다.

‘다만 유 대리의 담당업무는 장비 순찰이지.’

즉, 유준철 대리는 회사의 내부규정에 대해선 잘 알지만.

실제 장비점검 중에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선 알지 못한다.

그 때문에 협력사 직원인 심태용 씨를 만날 필요가 있다.

사고 당시, 어떤 일이 있었고 뭐가 잘못됐는지 그에게 상세히 들어야 했으니까.

‘그러니까 그냥 되돌아 갈 순 없어.’

여기서 가만히 있어봐야 심태용 씨의 마음은 달라지지 않을 터.

난 공장 건물로 다가갔다.

그리고 입구를 찾아 문을 두드렸다.

“계십니까?”

반응이 없다.

뭐 충분히 그럴 수 있지.

이미 많은 직원들이 이곳을 빠져나갔고, 심태용 씨가 버선발로 반겨줄 거란 생각은 안하니까.

난 그냥 문고리를 잡고 돌려 문을 열었다.

다행히 문은 잠겨있지 않다.

-끼이익.

약한 쇳소리와 함께 철제문이 열렸다.

전등이 환하게 켜져 있는 공장 내부가 내 눈에 들어왔다.

코나벡은 LCD패널과 반도체 제작, 그와 관련된 장비를 제작하는 회사다.

내가 보기엔 다 낯선 것들뿐이지만, LC디스플레이 파주공장에서 봤던 설비도 어딘가 있을 법했다.

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공장 안을 걸었다.

그리고 또 나타난 철제문.

문짝에는 ‘관리실’이라 쓰인 문패가 붙어있었다.

‘이쪽인가?’

문을 열기위해 손잡이를 잡았지만, 난 그대로 멈췄다.

안쪽에서 소리가 들려왔던 거다.

“그래, 태용아. 잘했다. 고맙다 태용아. 그렇게 해야 너도 살고 우리도 산다.”

이전까지 어떤 말들이 오갔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난 이 대화를 놓쳐선 안 된다고 빠르게 판단했다.

조용히 휴대전화를 조작해 녹음 앱을 켠다.

녹음하기 시작한 전화기를 문 가까이에 댔다.

“라바코 애들한텐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라바코라면 LC디스플레이의 제1하청이자 이곳, 코나벡의 협력사가 아닌가.

‘그리고 죽은 두 사람이 다녔던 회사지.’

들려온 이름을 봐선 신태용 씨와 다른 누군가의 대화는 분명한데.

라바코의 이름까지 거론되는 걸 보면, 내가 취재 중인 사안과 분명 연관 돼있을 거다.

난 계속 귀를 기울였다.

“전······전······ 솔직히 힘들어요, 사장님.”

신태용 씨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그가 지칭한 대화상대가, ‘사장’.

코나벡 사장을 뜻하는 거겠지.

“이해해. 이해한다고. 그래도 하아- 네가 한 마디라도 입 여는 순간 우리 전부가 끝이야. 알지? 우리 최대 고객이 누구야. LC아냐? 걔네들 신경 거슬리면 바로 하청의 하청도 못해먹는다고.”

“알아요. 사장님.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요.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제철이 형을 잘라요? 점검할 때 늘 떠밀듯이 규정 다 어기게 만들어 놓은 게 누군데요!”

아까 나와 통화할 때와는 다른, 격한 감정이 서린 목소리였다.

“태용아······ 제철인 내가 알아서 잘 보냈으니까. 걱정 마. LC에서도 위로금 두둑이 넣어줬어.”

사장이라는 자는 신태용 씨를 어르고 달래듯이 말했다.

하지만 신태용 씨의 반응은 좋아지지 않는다.

“돈이 문제가 아니잖아요, 사장님. 세상이 우릴 욕하고 있어요. 사람 죽인 놈이라고. 우리가 잘못해서 사고가 났다고!”

“됐다. 시간 지나가면 다 괜찮아 질 거다. 일단 지금 당장 사는 것부터 생각하자. 응? 태용아. 우리 이대로 작업 끊기면 제철이만 잘리는 거 아냐. 알잖아. 회사가 살아야지. 당장 LC에서 잡음 새어나오면 일 다 끊어버린다는데, 우리가 별 수 있냐.”

“압니다. ······알아서 이렇게 가만히 있잖아요.”

대충 상황이 파악됐다.

왜 신태용 씨가 갑자기 의견을 바꿨는지.

다른 직원들이 내게 불쾌함을 감추지 않았는지 알았다.

‘제철이라는 사람, 아무래도 사업장 책임자······겠지?’

내가 생각했다.

LC디스플레이는 진상조사 발표 당시, 협력사의 사업장 책임자와 대표이사에게 책임을 지게 한다고 밝혔다.

코나벡의 사장이 멀쩡히 여기 있으니, 남은 건 사업장 책임자 뿐.

‘거기다가 LC디스플레이에서 압력을 넣은 게 확실하군.’

문 너머 들리던 대화는 이미 끝났다.

난 녹음앱을 중지시키고, 녹음파일을 클라우드 저장소에 복사했다.

-끼익.

철문이 열리면서 의도치 않게 누군가와 내 눈이 마주친다.

“우아앗! 깜짝이야! 누, 누구에요 당신!”

50대 중반의 배가 나온 중년 남성.

내가 구했던 신태용 씨가 아니다.

“뭐, 뭐야! 어떻게 들어 온 거야? 이봐요! 당신 누구냐니까?”

성질을 내며 날 몰아세우는 남성에게, 내가 명함을 꺼내 내밀었다.

“마이뉴스24, 주진형 기자입니다.”

“뭐!? 기자? ······마, 마이뉴스24 주진형?”

남성은 내가 기자란 소리에 짜증을 냈다.

허나 이내 내 이름을 되새김질 하더니, 동공이 커졌다.

“그, 그 주진형 기자?”

“네. 아마도 그 주진형 일 겁니다.”

난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긴말 하지 않아도, 서로의 관형사가 동일한 대상을 가리킴을 알 수 있다.

세상에 나 말고도 주진형의 이름을 가진 자들은 많겠지만.

지금 이 시점에 이 사람이 놀랄만한 주진형은 나뿐일 테니까.

“신태용 씨를 만나러 왔습니다.”

“······”

남성은 얼어붙은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뒤로, 신태용 씨가 걸어 나왔다.

“돌아가 주세요, 기자님.”

신 씨는 그저 어색하게 허공을 바라볼 뿐.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당장은 돌아갈 수 없습니다.”

난 강경하게 답했다.

신태용 씨의 대답을 들어야만 했으니까.

“전······해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 그래! 돌아가요. 남의 공장에 멋대로 들어와서 뭐하는 겁니까!”

신 씨와 아마도 사장일 남성이 차례로 내게 말했다.

난 사장의 말에 차분히 설명했다.

“불러도 아무도 안 나오시고, 문이 열려있어서 들어왔습니다만.”

“그게 무슨 상관이야! 아무도 안 나오면 없는가 보다 하고 들어오면 안 되지! 이거 불법, 불법 침입이야!”

잘 생각해보면 허락 없이 공장 내에 들어 온 거니, 사장 말이 일리가 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틀린 말씀은 아니네요.”

“그래요, 그래. 나가요 이제.”

내게 나가라고 팔을 휘저어대는 사장을 무시하고.

난 신태용 씨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그에게 짚고 넘어가둬야 할 게 있다.

“나가기 전에 신태용 씨한테 한 가지만 물어도 되겠습니까?”

“······뭡니까.”

“점검할 때 늘 떠밀듯이 규정 다 어기게 만들어 놓은 게 누굽니까?”

“······!”

“아, 아니?”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두 사람은 당황했다.

특히 사장의 안색은 심할 정도로 어두워졌다.

그렇겠지.

가장 들어선 안 되는 사람이 엿듣고 있었으니.

“대화의 맥락을 봤을 땐, LC디스플레이. 거기인 것 같은데. 맞습니까?”

길게 끌 필요 없다.

난 멈추지 않고 그대로 직격타를 날렸다.

“······다 들으셨군요.”

“죄송하지만. 네, 다 들었습니다. 저한테 아무 말씀 안하셔도 됩니다. 전 이대로 서울로 돌아가 들은 내용 그대로 기사로 쓰면 되니까요.”

“아니 기, 기자님! 그러시면 안 됩니다. 안돼요!”

당장 공장에서 나가라고 할 때는 언제고, 사장이 내 팔을 붙잡았다.

“그러시면 저희 다 죽습니다! 네?”

난 그 손을 살며시 떼어내고, 사장의 얼굴을 봤다.

“한 번 정확하게 따져보죠. 정말 기사를 낸다고 이 회사에 악영향이 옵니까?”

“당연하죠! 그놈들이 어떤 놈들인데!”

“어떤 놈들인데요?”

“······”

기세 좋게 소리치던 사장이, 순간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자세하게 얘기하긴 곤란하다, 이건가.

난 그의 말을 기다리지 않고 내 생각을 전했다.

“뭐, 어떤 놈들이든 간에 회사 이름이 거론 됐다고 보복을 할 거라 생각하는 겁니까? 기사에 나오는 순간, 대중의 감시가 시작되는 겁니다. LC디스플레이가 보복하지 못하도록 지켜보는 눈이 많아진다구요. 근데 뭐가 그렇게 두렵습니까?”

사장이 아무 말하지 않고 서있자, 신태용 씨가 끼어들었다.

“······순진한 생각이네요. 기자님. 시간이 흐르면 다 소용없어요. 사람들은 우리에 대해선 다 잊어버릴 테고. LC디스플레이는 갖가지 이유를 대며 라바코 쪽에다 우리 제품을 쓰지 말라고 할 거예요.”

신 씨의 말을 듣고 차분히 생각해본다.

어쩌면, 그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대중도 나도 이 기업을 언제까지고 지켜낼 순 없겠지.

현실이 늘 내 뜻대로 되지 않듯.

LC디스플레이의 행동도 명확히 예측할 수 없는 부분이니까.

그러니 내 생각만을 이들에게 강요하는 건 틀린 일이다.

‘이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걸, 내가 다 지워줄 순 없어. 다른 방향을 찾자.’

어쨌든 내게 필요한 건 협력사의 제보다.

그게 사건의 직접적인 관계자이자 피해자인 신태용 씨의 것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불가능하다면 굳이 신태용 씨에 국한될 필요는 없다.

“어쨌든 전 유가족 분들과 약속했습니다. 이 사건의 진실을 다 밝히기로. 여러분의 사정이 어떤 진 잘 알겠지만, 그게 제가 기사를 멈출 이유는 되지 않습니다.”

“기, 기자님!”

“······”

난 두 사람의 반응을 살폈다.

이정도면 충분히 내 제안이 먹힐 것 같다.

“하지만 일부러 코나벡을 위험하게 만들 필요도 없겠죠.”

“아, 그럼요! 기자님, 그럼요!”

“그럼 절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반색하는 사장에게 바로 제안을 한다.

“네?”

내 물음에 사장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심태용도 궁금한 듯 바라봤다.

“제가 부탁드리는 대로 해주신다면. 코나벡이 LC디스플레이의 미움을 사는 일은 없을 겁니다. 따라 오시겠습니까?”

***

안성 시내의 한 고기 집.

신태용과 나를 태운 사장의 차가 음식점 주차장에 멈춰 섰다.

“안에 들어가 계세요. 주차하고 가겠습니다. 태용아, 너도 먼저 들어가.”

“알겠습니다.”

난 김학철 코나벡 사장의 말을 따라 차에서 내렸다.

신태용도 나와 함께 차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앞장 서주시겠습니까?”

난 태용에게 먼저 식당에 들어가 달라 부탁했다.

아까 전의 직원들 분위기를 떠올려 보면.

지금 내가 먼저 얼굴을 내비치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다.

“네.”

태용이 먼저 고기 집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뒤를 따라 내가 현관을 통과한다.

“어 태용아, 와서 앉아······?”

기다란 좌식 식탁에 둘러앉은 공장 직원들.

그중 한명이 신태용에게 밝게 말을 건네다가 말끝을 흐렸다.

불쑥 등장한 내 얼굴이 눈에 들어온 모양이다.

“어, 저, 저 자식?”

공장 건물 앞에서 날 밀치고 화내던 직원이다.

그가 날 손으로 가리키며 놀라고 있었다.

“저 새끼 여기까지 따라왔어. 미친 거 아냐? 야 이 새끼야!”

기어이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내게 다가왔다.

위협적인 그 자태에 다른 직원들이 그를 급히 말렸다.

“차, 참어.”

“놔봐 형. 저 놈 진짜 정신 못 차리잖아!”

“그냥 앉아라, 승화야. 이런 날 얼굴 붉히지 말자.”

식탁 끝자리에 앉은 40대 중반의 사내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그러자 승화라 불린 남성도 내게 돌격하던 걸 멈춘다.

허나 여전히 죽일듯한 눈빛으로 날 노려보고 있다.

“씨- 너 오늘 괜히 알짱대지 마라. 죽는 수가 있다.”

승화와 우리 사이를 막던 직원들이 다시 자리로 되돌아갔다.

난 그의 경고를 무시하고 태용을 따라 식탁 빈자리에 앉았다.

“아니, 이 새끼가. 진짜 돌았냐? 너?”

승화란 사내가 가만히 날 보더니 기가 찬다는 듯 물어왔다.

그러자 신태용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형. 그거 아니에요.”

“뭐? 야 태용아, 뭐? 뭐가 아니야.”

후우, 숨을 내쉬고.

태용이 나에 대해 소개한다.

“이분, 파주에서 저 구해주신 주진형 기자님이에요.”

“······”

순간 할 말을 잃은 듯.

승화는 입을 벌렸다.

“그래도 취재하러 온건 맞잖아. 아까 보니까 너 취재하러왔다고 하던데.”

승화 바로 옆에 앉은 나이 지긋한 사내가 가세했다.

이제 보니 아까 공장에서 승화를 말리던 남성이었다.

“괜찮아요.”

“뭐가 괜찮다는 거야. 지금 제철이는······”

“형님.”

식탁 끝자리 사내.

그가 더 이상 말하지 말라는 듯 맥을 끊었다.

“아, 미안.”

두 사람의 교통정리가 끝난 뒤.

내가 드디어 식탁 끝 중년의 남자를 향해 입을 열었다.

“알고 있습니다. 임제철씨. 파주공장 담당 관리자셨죠.”

“-네. 들으셨나보군요.”

내 말에 당황하지 않고 임제철이 답한다.

“LC디스플레이가 임제철 씨의 퇴사를 종용했다고 들었습니다.”

“발표했잖습니까. 사고 난 거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겁니다.”

“임제철 씨 잘못이 아니잖습니까? LC디스플레이 잘못이지.”

내 단정에 제철은 극구 부인했다.

“······그런 거 아닙니다.”

하지만 그대로 받아들일 리가 없지 않은가.

난 이미 다 알고 이 자리에 와있다.

“얼마 받으셨습니까?”

“야이 새끼야!”

벌떡 하고, 승화란 사내가 일어섰다.

“태용이 은인이라고 봐줄려 했더니 도저히 못 참겠다. 네가 뭘 안다고 그 딴 개소릴 지껄여!”

난 승화의 고성을 무시하고 제철에게 계속 말했다.

“그 위로금, 제가 드리겠습니다. 대신 LC디스플레이에 대해 증언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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