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래에서 온 특종-104화 (104/107)

104. 결국 날 증명하는 건 행동이다

“뭐라구요?”

임제철은 평정을 유지한 채 내게 물었다.

명확한 의미를 몰라서 묻는 게 아니다.

그저 내가 제시한 내용에 대한 확인이 필요했을 거다.

“형! 이새끼 말 들을 필요 없어요!”

반대로 평정을 잃고 화를 내는 건 승화란 자의 몫이었다.

그는 날 죽일 듯 노려보며 욕설을 내뱉었다.

난 그 저급한 말들을 듣지 않은 척 넘기고 임제철을 바라봤다.

“제가 듣기론, LC디스플레이가 준 입막음 금액이 700만원이라던데요. 맞습니까?”

내가 금액 숫자를 말하자, 식탁 주위에 앉은 직원들 모두가 흠칫 놀랐다.

미안하지만, 미리 김학철 코나벡 사장에게 다 들은 내용이다.

LC디스플레이가 임제철에게 건넨 금액과 요구한 사항까지.

그러니까 어쭙잖은 발뺌은 소용없다.

‘그리고 여기선 내 쪽에 붙는 게 유리하다는 것도. 알려줘야겠지.’

난 임제철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다시 입을 열었다.

“1,000만 원. 드리죠. 증언 부탁드리겠습니다.”

“태용이가 말해준 겁니까?”

말없이 앉아만 있는 심태용을 보며, 제철이 내게 물었다.

태용은 이에 대해 답하지 않았다.

그저 상황이 흘러가는 걸 지켜볼 생각인 듯 했다.

난 식당 입구 쪽을 한 번 흘깃 본 후, 제철에게 설명했다.

“누가 말했는지, 그게 뭐가 중요하겠습니까마는. 주요 인물들이 한 자리에 다 모인 것 같으니 말씀해드리죠.”

딸랑 소리와 함께 식당 문에 달아놓은 풍경이 울렸다.

직원들이 고갤 돌려 입구를 보자, 그곳엔 김학철 사장이 막 들어와 있었다.

“사장님! 여깁니다.”

한 직원이 김 사장을 부른다.

난 그 외침을 들은 후, 다시 말을 이었다.

“저는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방송을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LC디스플레이가 한 거짓말들. 그걸 밝혀내서 돌아가신 분들의 억울함을 풀어내려 합니다.”

앞의 직원들은 자신들과 무슨 상관이냐는 듯, 불편한 눈초리로 내 말을 듣고 있다.

곧 김학철 사장이 내 옆에 앉았다.

“아니, 사장님 왜 그쪽에 앉으세요.”

승화란 사내가 김학철 사장에게 돌려 말했다.

날 무시하고 떨어지라는 소리였다.

김 사장은 그런 승화에게 손사래를 쳤다.

“가만있어.”

“네?”

“주 기자님 말씀하시니까 들어.”

“하, 하지만-”

“승화야. 토 달지 말자.”

“······네.”

난 한쪽 입 꼬릴 올려 피식 웃었다.

그게 맘에 안 들었는지 승화가 화를 억제하듯 한숨을 쉬었다.

“이미 제가 아는 LC디스플레이 직원이 내부에서 진실을 토로하고 있지만, 정작 LC디스플레이와 고용노동부, 경찰의 수사는 엉망이었습니다. 여기서 본래는 태용씨의 도움을 받으려 했습니다. 마침 제가 구했던 분이기도 하고, 실질적으로 당시 사고에 연관돼 있는 분이니 가장 적합하죠. 그런데-”

난 잠깐 말을 끊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도 알아 둘 필요가 있다.

내가 왜 이 자리에 동석했는지.

그리고 당신들이 왜 날 도와야 하는지.

“아시다시피 코나벡도 LC디스플레이로부터 압력을 받았고. 그로인해 제 인터뷰가 파투가 났습니다. 사정을 들어 본 바. 제가 제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없단 걸 느꼈습니다. 코나벡도 나름의 사정이 있었던 거죠.”

“그래 새꺄. 분위기 파악 못하고 네가 나댄 거 이제 알았냐?”

거 참.

내가 봤을 땐 승화 당신이 분위기 파악을 못하는 것 같은데.

“그래서 절충안을 내놓은 겁니다. 코나벡은 이 싸움에서 벗어난 것처럼 내버려 두고. 피해가 없는 선에서 LC디스플레이의 협력사 업무에 대해 증언할 사람을 찾는다. 그게 당신입니다. 임제철 씨.”

내 지목에 임제철이 반응했다.

“저, 말입니까?”

“네. 회사를 나오는 임제철 씨는 더 이상 LC디스플레이로부터 피해를 받지 않는 위치고. 전 협력사 직원으로서 제보할 내용은 충분하니까요.”

“······제가 왜 그래야 하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라고.”

“그래서 제가 왜 그 일에 동참해야 합니까?”

흐음.

뭐 때문 인진 몰라도, 제철이 내게 자존심을 세우고 있다.

난 잠시 생각했다.

지금 당장 내 말을 따르도록 강요할만한 방법, 갖고 있다.

하지만 되도록이면 자의에 의해서 움직여줬으면 한다.

피차간에 마음이 맞아야 뭐든 나중에 문제가 안 생기는 법이니.

저쪽이 내 태도를 맘에 들어 하지 않으면, 그까짓 것쯤 굽혀줄 수 있다.

“제철아, 그게-”

김학철 사장이 사정을 설명하려 했다.

하지만 내가 말렸다.

“아뇨 사장님. 제가 말하겠습니다.”

김 사장이 나서지 않고 내가 직접 우리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임제철 씨. 질소로 두 명이 죽었습니다. LC디스플레이 정직원이 아니라 협력사 직원이 말입니다. 그분들이 설마 직접 제조한 설비의 위험성을 몰랐을까요? 그래서 죽은 거 절대 아닙니다. 유가족들도 아는 규정과 절차를 지금 LC디스플레이 혼자 눈 가리고 아웅 하고 있는 거고.”

내가 숨을 고르고 다시 말을 해나갔다.

“지금은 사고의 피해자가 라바코지만. 다음엔 코나벡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 계신 분들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 씨- 또라이 새끼가 재수 옴 붙는 소릴!”

승화란 사내가 내게 성질을 냈다.

난 그의 얼굴을 똑바로 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재수 옴 붙는 소리가 아니라, 태용씨에게 실제로 일어날 뻔한 일이고. 앞으로 일어날 일입니다. 지금 여기서 잘라내지 않으면 똑같은 사고는 반복됩니다. 소를 잃었지만 외양간마저 고치지 않으면 다음 소 역시 없어질 테니까요.”

“······말은 잘하네. 씨-.”

성질은 나지만 딱히 반박할 말은 없었는지, 승화가 좀 수그러들었다.

“전 유가족 분들과 약속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사건의 진실을 세상에 알리겠다고. 이미 모든 진실을 아시잖습니까. 도와주십시오. 코나벡이든 임제철 씨 본인이든, 절대 피해가는 일 없게 만들겠습니다.”

여기서 부족하다면 난 무릎이라도 꿇을 작정이었다.

하지만 감정적인 호소로도 임제철이 끝내 도와주지 않는다면······

‘김학철 사장을 통해 강요하는 수밖에 없겠지.’

코나벡을 이용한 기사는 나와 김학철 사장, 심태용까지 모두 바라지 않는 일이다.

그러니 일이 틀어질 경우엔 김 사장이 직접 움직여야 하겠지.

“태용아. 넌 어쩌고 싶어?”

다행히 마음이 완전히 닫혀있던 건 아닌 모양이다.

제철이 심태용에게 나지막이 물었다.

“······전······ 돕고 싶어요. 제가 직접 나설 순 없지만······ 죄송해요 제철이 형.”

“-그래. 알았다.”

의외로 간단한 수락이었다.

김학철 사장이 반색하며 확인했다.

“그, 그럼 자네 도와 줄 건가?”

“어떻게 하면 됩니까?”

내가 나섰다.

그 질문에 답하기 전 설명해둘 게 있다.

“그전에 다시 확인을 좀 하고 싶습니다. 전속가시는 직장, LC디스플레이와 연관 돼 있지 않은 반도체 회사로 압니다. 확실하시죠?”

“네. 사장님 추천으로 가는 곳입니다.”

그렇다면 됐다.

적어도 임제철은 LC디스플레이로부터 피해 받을 일 없을 거다.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일단 코나벡의 안전을 위한 밑밥이 필요합니다. 불똥이 튀지 않도록 말이죠. 그걸 지금 다른 기자들에게 부탁할 생각입니다. 그 후에······ 서울로 잠시 올라가시죠.”

난 계획했던 내용 외에 새로운 행사를 하나 떠올렸다.

“서울로? 여기서 취재해 가는 거 아닙니까?”

제철이 의아하다는 듯 내게 묻는다.

“물론 취재는 여기서 해도 됩니다. 하지만 서울로 오셔서 취해주셔야 할 퍼포먼스가 있습니다.”

“퍼포먼스요?”

“네 괜찮으시다면 돈 뿌릴 기회를 좀 드리고 싶은데요.”

내가 미소 지었다.

고깃집에서 임제철의 송별회 후.

난 제철이 운전하는 차에 타고 안성에서 서울로 향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 안에서 난 한주협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선배. 저 주진형입니다.”

곧 선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진형아. 취재 잘했어? 우리 쪽은 미안한데 큰 소득이 없다. 라바코 측에서 자신들이 직원 관리를 잘못한거라고 우기고 있다. 사장이 직접 나와서 유가족한테 사과하겠다는데?

흐음, 대충 짐작은 했지만.

역시나 LC디스플레이 측이 먼저 관련된 협력사에 접근을 해놓은 상태였다.

“그쪽도 그렇습니까?”

-어. 너도 그랬어?

“네. 하지만 소득은 있었습니다.”

-어? 그래? 그럼 다행인데.

내 말에 현주협 선배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그래서 말인데 기사를 좀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나설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서.”

-뭔데? 말해봐.

“라바코 측 입장 그대로 실어서 기사 내보내주십시오.”

-뭐!?

예상치 못한 내 부탁에 선배가 소릴 높였다.

난 차분하게 뒷말을 덧붙인다.

“코나벡 김학철 사장 멘트도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대로 같이 실어주시면 될 겁니다.”

-야 진형아. 뭐하려는 거야? 완전 반대로 되잖아 그럼.

“그냥 협력사들 입장이 이러하다, 하지만 유가족들은 여전히 이에 대해 반박하고 있다. 이 정도로 평이하게 써주시면 될 겁니다. 그럼 선배들께서 나중에 기사 쓰실 때도 피해가지 않을 겁니다.”

한 선배 말대로 협력사들의 입장을 그대로 실을 경우.

당초 우리가 계획했던 기사와는 전혀 다른 논조가 된다.

우린 협력사들은 잘못이 없고 LC디스플레이가 규정을 어겼다는 걸 전제로 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이래야만 할 이유가 있다.

-아무리 그래도······ 괜찮겠어?

“네. 이건 코나벡에 피해가 가지 않기 위한 방비책일 뿐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선배. 제가 일이 진척되는 대로 따로 또 보고 드리겠습니다.”

-일단 알았다. 그럼 네 말대로 진행할게.

“네, 감사합니다.”

주협 선배와의 통화를 마치고.

난 핸들을 잡고 있는 임제철에게 말했다.

“들으셨죠? 코나벡에는 절대 피해가는 일 없게 처리할 겁니다.”

제철은 고갤 끄덕였다.

“알았습니다. 그 마음 진심이란 거,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요? 다행이군요.”

“사장님이 말씀해주셨습니다. 태용이랑 사장님 대화 다 들으셨다고.”

내가 신경 안 쓴 사이, 김학철 사장이 언질을 해둔 거로군.

사정을 다 전해 들었다니, 굳이 숨길 필요도 없겠지.

“예······뭐, 우연히?”

“다 알고도 지켜주기로 한 점, 감사드립니다.”

“이제 퇴사하신 임제철 씨한테 들을 말은 아닌 것 같은데요.”

내가 웃으며 농담을 건넸다.

반면 이에 대해 돌아온 임제철의 반응은 몹시 진지했다.

“코나벡은 좋은 회사입니다. 규모가 큰 건 아니지만 나름 업계에선 알아주는 곳입니다. 내부도 튼실하고. 직원들도 보셨다시피 형제처럼 지내고 있죠. 아마 같이 기숙생활을 하다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만.”

“그렇습니까.”

“그 탓에 승화가 더 감정조절을 못했던 것 같습니다. 친하게 지내던 제가 LC지시로 쫓겨나기도 했고. 어제 LC측 임원이 와서 입단속도 거칠게 하고 간 터라. 여러모로 그 녀석도 맺힌 게 많았을 겁니다. 그 점은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여태껏 승화의 무례한 태도를 신경 쓰고 있었던 건가.

난 웃으며 제철의 진중한 사과를 받았다.

“괜찮습니다. 아니 불쾌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이해합니다.”

“-아무튼 그런 좋은 회사도 LC같은 대기업의 입김 한 방이면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게 현실이에요.”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잘 전달이 됐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도 더 이상 엄한 사람들이 다치는 건, 보고 싶지 않으니까.”

나도 알고 있다.

진심으로 이런 말을 해준다곤 해도, 결국 날 증명하는 건 행동이다.

난 차창 밖으로 스쳐지나가는 도로를 바라보며, 앞으로 저질러야 할 일들을 정리했다.

그렇게 약 한 시간 반이 걸려 우린 서울에 도착했다.

[LC디스플레이 협력사 “사고는 우리 탓...관리 잘 못했다”]

[“LC공장 질소누출은 통신장비 부재 때문...제조사 잘못”]

[LC디 협력사 대표들 “유가족께 정말 죄송하다...저희 실수”]

그 사이 내 주문대로 선배들의 기사가 온라인에 게재됐다.

‘지금쯤 LC디스플레이 녀석들은 이 기사들을 읽고 싱글벙글하고 있겠군.’

나와 임제철은 마포에 위치한 마이뉴스24 사무실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사무실로 함께 들어간다.

“어, 주 기자. 그 쪽 분은?”

김경은 국장이 사무실에 들어온 우리 둘을 보며 말을 걸었다.

“네, 국장. 코나벡 현장파견관리 담당자였던 임제철 씨입니다.”

“코나벡······오늘 주 기자가 취재 간다던 LC 협력사?”

김 국장은 내가 정보보고 했던 내용을 다 기억하고 있었다.

“네. 맞습니다.”

“여기서 취재할거예요?”

“네. 취재도 하고- 저기 회의실에서 영상을 찍을까 합니다.”

난 장비 실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마이뉴스24가 기자들에게 지원해주는 장비는 노트북 뿐 만이 아니다.

디지털 일안 반사 카메라, DSLR도 빌려 쓸 수 있다.

게다가 간단한 영상장비도 나름 갖추고 있었다.

“영상이요?”

궁금해 하는 김경은 국장에게 내가 계획을 밝혔다.

“네. 기사와 함께 미튜브에 인터뷰를 게재할 예정입니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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