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래에서 온 특종-105화 (105/107)

105. 막의 절정을 장식할 재료들이 갖춰졌다

나와 임제철 씨는 5평정도 되는 회의실에 들어와 앉았다.

영상촬영에 특화 돼있는 디지털 카메라를 두 대 정도, 다른 방향에다 설치해 놨다.

제철이 약간 위축된 태도로 두 대의 카메라를 번갈아 본다.

“긴장하지 마시고. 카메라는 의식하실 필요 없어요.”

“네. 알겠습니다.”

제철이 길게 호흡을 가다듬은 후.

난 휴대전화 앱으로 카메라를 원격 조종해 촬영을 시작했다.

“모자이크 및 음성변조 처리 할 겁니다. 괜찮으시죠?”

“안하셔도 상관없습니다.”

“아뇨. 일단 해두려구요.”

사실 임제철이란 인물은 LC디스플레이에게 노출되더라도 타격이 없다.

하지만 나도 노리는 수가 따로 있었기에, 우선은 모자이크를 할 생각이었다.

“따로 하실 이유가 있으시다면 그렇게 하십시오.”

내 생각을 읽었는지, 제철이 고갤 끄덕였다.

“그럼 인터뷰 시작하겠습니다. 우선 이전 소속과 직책에 대해서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네. 전 LC디스플레이 협력사인 코나벡에서 현장파견관리 소장을 맡았던 임제철입니다.”

이 부분은 아마도 음성편집을 좀 해야 할 것 같다.

“맡았던, 이라고 하심은 지금은 아니라는 말씀인가요?”

알고 있는 내용을 묻는 건, 이 영상을 시청할 사람들에 대한 배려다.

“네. 오늘부로 퇴사하게 돼 더는 아닙니다.”

“알겠습니다. 우선 최근 발생한 LC디스플레이 파주공장 질소 누출 사고에 대해서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대충 인터뷰이에 대한 소개는 했으니.

이제 본내용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네.”

“LC디스플레이 측은 TM설비의 질소 배출을 협력사의 일이라고 발표했는데요. 이게 사실입니까? 제가 입수한 정보와 달라서 여쭙는 겁니다.”

내가 입수한 정보는 뭐, JDBC 뉴스룸에서 이미 다 밝힌 내용이다.

굳이 첨언하지 않더라도 지금부터 임제철 씨가 다 얘기할 거고.

“아닙니다. 그 설비는 디스플레이 기판 증착 시에 필수적으로 사용됩니다. 질소가 유리 기판을 증착하기 좋은 진공 상태를 만들어, 이물질을 걸러주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LC디스플레이 직원들이 직접 장비를 제어합니다.”

“그 말씀은?”

미리 제철에게서 들은 부분이지만, 다시금 명확한 설명을 요구한다.

“협력사 직원들이 멋대로 건드려선 안 되는 설비란 겁니다. 그리고 그럴 권한도 없습니다. 보통 협력사가 장비 점검을 들어가기 전, LC디스플레이 직원이 설비 챔버에 담긴 질소를 배출 해둡니다. 그리고 일정 시간 후 감독관이 산소농도를 측정합니다. 정상범위, 측정기에 초록불이 뜨면 점검할 협력사 직원을 들여보내는 겁니다. 본래는 이렇습니다.”

“유가족 분들이 주장하시는 내용 및 유출된 LC디스플레이 내부 규정과 동일하군요.”

내가 덧붙였다.

“당연합니다. 그게 사실이었으니까요.”

제철은 차분하게 말했다.

하지만 이 말이 갖는 힘은 강한 파문을 일으킬 거다.

그 점을 우리 둘 다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그날 사고가 난 원인은 뭐였습니까. 뭐라고 보십니까?”

난 손정희 사장의 뉴스룸 진행방식을 떠올리며, 제철에게 질문했다.

집요하면서도 차분하게.

여기서부터 제철만이 해줄 수 있는 이야기가 나올 예정이었다.

이는 내게 협력중인 LC디스플레이 유준철 대리도 잘 모르는 사실들이다.

“음, 복합적입니다만. 실제 사고 피해자에게 얘기를 들어 본 바, 우선은 LC디스플레이 측 설비 담당직원의 일처리가 허술했던게 큽니다.”

“그 말씀은?”

내가 자세히 파고들었다.

“챔버 내의 질소 밸브가 어째선지 미세하게 열려있었습니다. 챔버 내 질소 배출이 다 이뤄졌다고 생각하고 작업자들이 들어갔지만, 이내 그 안에서 질식해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평소 LC디스플레이가 행해온 나쁜 작업방식이 사고를 키우는 데 한몫했습니다.”

“나쁜 작업방식이요?”

내가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

꽤나 강경한 어조였기에, 나도 모르게 예민하게 굴게 됐다.

“네. 참고로 LC디스플레이는 이전부터 줄곧 협력사 직원들에게 시간상의 이유를 대며, 빠른 작업진행을 요구해왔습니다. 고의로 말입니다. 아직 질소 농도가 정상으로 내려오지 않았음에도 협력사 직원들에게 작업을 강행시킨 겁니다.”

“저, 정말입니까?”

고의, 라는 단어 선택에 내가 당황했다.

제철은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말을 계속해 나갔다.

“네. 평소에 늘 겪던 일이었습니다. 단지 지금 일어난 사고는, 그런 상황에다가 질소 밸브까지 열려있었기 때문에 큰 사고로 이어진 것 뿐입니다.”

이 영상의 존재 가치.

즉 우리 대화의 핵심이 튀어나왔다.

‘LC디스플레이는 이 사고의 주범이다.’

난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제철은 내 표정을 한 번 훑고는, 다 꺼내지 못한 뒷내용을 말했다.

“그러니까 본래라면 규정절차를 다 지켜서 미리 질소도 전부 빼놓고 해야 되는데. 바쁘다는 이유로 질소농도가 정상화되지 않았음을 알면서 점검하라 직원들을 들여보낸 겁니다. 협력사의 장비점검은 P8공장만 하면 끝이 아닙니다. LC디스플레이 측은 장비를 빨리 재가동하고 싶기 때문인지, 협력사에게 매번 서두르라 재촉해왔습니다.”

“심각한 일로 들리는데요. 너무 지나친 처사 아닙니까?”

공장의 시간을 보다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사람들을 소모한다.

납득할 수 없는 잔인한 사실이었다.

제철이 내 물음에 긍정한다.

“지나친 것 맞습니다. 게다가 사고가 일어난 시각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점심시간입니다. 그 때 안전 감독관도 없었던 이유가 바로 그겁니다. 협력사 직원들은 점심시간조차 아껴가며 일을 시키고, 정 직원들은 식사를 하러 간 겁니다.”

“직접 목격하신 바가 있습니까?”

함부로 단정 지을 수 없는 사안이다.

그 때문에 난 한 번 더 확인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제철은 자신감 있는 말투로 답변했다.

“네, 있습니다. 제가 현장소장이기 때문에 알 수 있는 일입니다.”

‘거의 다 왔다.’

증언을 뒷받침할 근거까지 충분하다.

슬슬 내용을 정리하고 마지막 타격을 입히면 된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말씀하신 내용에 따르면 LC디스플레이의 진상조사 발표내용은 대부분이 거짓이 되겠군요.”

“거짓말입니다. 오늘도 기사에 협력사 측 잘못이라거나 설비를 제조할 때 통신장비 설치를 빼놨다는 얘기가 나왔는데. 말도 안 됩니다.”

이는 한주협 선배를 비롯해, 다른 선배 기자들이 방금 전 내놓은 기사에 대한 반박이다.

[성기덕 라바코 사장은 “산업안전보건규칙 제623조에 따라 저희가 TM설비에 상시연락기를 설치했어야 했다”며 “이 모든 게 제대로 하지 못한 저희 잘못”이라고 밝혔다]

[김학철 코나벡 사장은 “작업규정을 무시하고 현장감독을 소홀히 한 점, 모두 저희의 책임”이라며 “이에 대한 비난과 책임을 감수하겠다”고 전했다]

LC디스플레이 협력사 사장들이 직접 기자들에게 얘기한 내용들.

물론 이건 위장일 뿐이다.

코나벡이나 라바코 모두, LC디스플레이의 명령에 거스르지 않겠다는 시늉.

우린 이제 그걸 모두 뒤집어엎고, LC디스플레이를 직접 겨냥할 거다.

“그건 또 왜 그렇습니까?”

“우선 협력사가 뭔가 큰 잘못을 저지를 수 있을 만큼 현장 권한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협력사 임의로 LC디스플레이의 규정절차를 무시한다면, 바로 협력관계가 깨질 겁니다.”

당연한 이야기다.

갑은 LC디스플레이, 을은 협력사들.

협력사들이 과연 국내 굴지의 그룹 산하 계열사에게 멋대로 굴 수 있을까.

상식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한 얘기다.

“그리고 통신장비를 TM설비에, 그것도 챔버에 설치한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합니다. 진공을 만들기 위한 장비에 그런 걸 넣으면 장비 본연의 용도로 쓸 수 없게 됩니다. 그러니까 설치를 하려거든 TM설비가 아니라 다른 장비에 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는 법에 따라 LC디스플레이 측이 해야 할 일입니다.”

“즉, 협력사 대표들이 증언한 내용도 거짓이란 말씀이군요.”

난 분리수거를 하듯, 무용지물이 된 협력사 대표들의 주장들을 묶어 버린다.

“제가 보기엔 그렇습니다. 그리고 기자님도 직접 겪어보셨으니 아시지 않습니까. 질소농도가 높은 곳에서 호흡을 하면 약간의 두통만 느껴집니다. 자신의 신체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명확하게 잘 알지 못합니다.”

제철의 표현에 내가 동의했다.

“네. 그랬습니다.”

“그런 상황에 통신설비가 있었다 한들 결과가 달라졌을까 싶습니다. 누가 쓰러져도 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조차 모릅니다. 그러는 사이 호흡은 계속했을 거고, 금세 다 쓰러졌을 겁니다. 연락할 여력이 어딨겠습니까.”

제철의 말대로, 호흡은 동시에 이뤄진다.

어느 한 사람이 쓰러지는데, 다른 직원들은 멀쩡할 리가 없다.

그러니 애초에 통신설비 설치여부를 거론하는 건, 논점 외의 문제란 거다.

“그렇군요. 어, 근데 그 분들이 굳이 욕과 처벌을 받아가면서 이런 거짓말을 할 필요가 있을까요?”

내 눈과 제철의 눈이 똑바로 마주쳤다.

오늘 처음 만난 우리 둘의 마음은 당연히 모두 같을 순 없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같은 심정임을 느낀다.

서로가 원하는 바를 잘 알고, 그 목표가 동일한 덕분이다.

“있습니다. 그러지 않거든 LC디스플레이의 잘못으로 밝혀지게 되지 않습니까. 진짜 LC디스플레이가 잘못을 했든 아니든, 그런 건 중요치 않은 겁니다. LC측은 자신들의 잘못이 밝혀지면 겪게 될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막기 위해 협력사들과 거래를 했을 겁니다.”

제철은 눈을 반짝이며 입을 열었다.

대본을 짠 것처럼, 내가 바랐던 말들이 제철에게서 나온다.

그럴 수밖에 없지.

‘이게 진실이었고, 우리 둘 다 직접 목격한 거니까.’

난 거기에 장단을 맞추듯 말을 얹는다.

“거래요?”

“가령 협력사 유지교체를 빌미로 그런 거짓말을 하게 했다든가. 해당 책임자에게 돈을 주고 입막음을 했다든가 말입니다.”

제철은 자신의 일이 아닌 것처럼, 약간 돌려 표현했다.

이러면 그저 막연한 추측일 뿐이다.

난 좀 덕 직접적인 언급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확신하고 계신 것 같은데. 이유를 여쭤 봐도 될까요?”

“말해도 되는 겁니까?”

“편집할 겁니다.”

내가 답했다.

최종본이 어떻게 나오건, 원본에는 최대한 많은 진실과 증언들이 담겨있어야 한다.

“네, 저희 코나벡에서도 제가 말한 일이 벌어졌고. 바로 저한테도 LC디스플레이가 돈을 주며 입단속을 요구했습니다.”

“돈을 건네준 게 LC디스플레이 측이 확실합니까?”

“확실합니다.”

“확신하시는 근거가?”

난 제철에게 재차 확인했다.

혹시나 LC디스플레이가 부인하고 빠져나갈 구멍이 있는지, 파악해야 했다.

“얼굴을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LC디스플레이 김하진 상무였습니다.”

제철의 말을 듣는 순간 난 당황했다.

예상치 못한 윗선의 등장이었던 까닭이다.

서울로 올라오던 찻길에서도 제철은 이런 얘길 내게 해주지 않았다.

“김하진 상무요?”

난 최대한 놀란 음성을 숨긴 채, 제철에게 잼처 물었다.

LC디스플레이 김하진 상무.

누군진 모르겠지만 아마도, 진상조사 발표를 엉망으로 만든 주범 중 한명일거다.

“네.”

“그럼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전 그 분과의 약속을 어기고 이렇게 인터뷰를 받아들였으니, 돈을 돌려드리려고 합니다.”

이는 나와 협의 된 사안이다.

내가 제철에게 위로금을 대신 주고, 본래 받았던 돈은 돌려준다.

“그러시군요. 알겠습니다.”

여기까지. 난 이쯤에서 인터뷰를 끝내기로 했다.

휴대전화 화면을 켜고 앱을 조작해 녹화를 종료했다.

곧 두 카메라의 작동이 멈추고, 지금까지 찍힌 장면들은 영상파일로 저장됐다.

“수고하셨습니다.”

영상파일을 휴대전화로 복사해 옮기며, 내가 제철에게 인사했다.

“수고하셨습니다. 기자님. 이제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난 휴대전화 화면에서 눈을 떼고, 제철에게 향후 일정을 알려줬다.

“오늘은 숙소 잡고 쉬시죠. 저녁 안으로 기사와 영상 만들어서 올릴 겁니다.”

“시간 다 되시겠습니까?”

내가 시계를 확인했다.

시간은 벌써 오후 4시 반을 넘어가고 있었다.

빠듯하긴 했지만, 계획한대로 진행하려면 별 수 없다.

“어찌됐든 시작해야죠.”

내가 웃으며 답했다.

난 예약해둔 여의도 은행로의 한 호텔로 제철을 보내놓고, 작업을 시작했다.

우선 마이뉴스24 영상팀의 도움을 받아, 영상에 모자이크 처리 및, 음성변조를 적용했다.

그리고 몇 가지 내용은 잘라내 숨긴다.

이는 LC디스플레이를 도발하기 위함이었다.

증인의 정체를 철저히 숨긴 채, 자신 있다면 어디 덤벼보라는 거다.

편집된 영상은 미튜브에 비공개로 올려두고.

난 영상을 바탕으로 한 취재기사도 작성 완료했다.

[LC디스플레이, 돈으로 질소 사고 진실 입 막았다]

어느새 오후 7시.

노트북 모니터에 표시된 기사의 제목을 보며, 난 씩 웃었다.

드디어 막의 절정을 장식할 배우와 상황이 갖춰졌다.

마우스로 기사 송고 버튼을 누른다.

“팀장! 기사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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