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 상무님. 곧 뵈러 가겠습니다
“응, 읽어볼게.”
사무실에 남아있던 박선혜 팀장이 내게 답했다.
박 팀장은 외근을 나갔다가, 내 인터뷰 기사를 위해 사무실로 복귀한 상태였다.
부디 이 기사가 그런 박 팀장의 수고를 충분히 보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응, 됐어. 잘 썼어. 국장, 지금 출고 할까요?”
다행히 박선혜 팀장은 만족스런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그리곤 국장 석에 앉아있던 김경은 국장에게 출고여부를 물었다.
김 국장은 긍정의 의미를 담아 고개를 까닥였다.
“네 나도 읽어봤어요. 그대로 출고해도 되겠어요. 근데 주 기자, 올려둔 영상은 어떻게 할 거예요?”
편집완료 된 영상을 미리 시청한 김 국장이 질문했다.
영상 내용이 가진 파급력에 대해서 잘 알고 있기 때문인지,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였다.
난 노트북 화면을 보며 마우스를 몇 번 클릭했다.
곧 비공개였던 미튜브 영상이 공개로 전환됐다.
“네, 국장. 영상은 막 공개로 돌린 상태입니다. 기사에 미튜브 태그도 삽입해 뒀습니다. 기사 출고되면 영상 설명엔 기사 링크 넣겠습니다.”
준비했던 대로 김경은 국장에게 보고한다.
머릿속에서 계획했던 내용들이다.
차근차근 실행하는 건 무척 자연스러웠다.
“알겠어요. 그럼 박 팀장 바로 출고하세요!”
대부분의 직원들이 퇴근한 사무실.
편집국 테이블의 우리 셋만이 분주하게 손을 움직였다.
[[단독]LC디스플레이, 질소 누출 진실 돈막음했다 - 주진형 기자]
기사는 마이뉴스24 사이트에 바로 출고 됐다.
올라온 기사를 보니, 박선혜 팀장이 손을 본 건지 제목이 약간 변경돼있었다.
단독 표시가 추가 됐고 질소 사고는 질소 누출로.
입막음은 돈막음으로 바뀌었다.
‘돈막음이라······ 나쁘지 않네.’
박선혜 팀장의 센스에 내가 미소 지었다.
난 다음으로 여러 대형 포털의 뉴스페이지에도 접속했다.
기사가 잘 전송 됐는지 검색해 확인 한 후.
아이티데일리 한주협 선배에게 전활 건다.
“선배 늦은 시간 죄송합니다.”
큰일이 있지 않은 이상, 웬만한 산업기자들은 이미 퇴근했을 시간이다.
혹시나 실례일 수도 있기에 난 예의를 갖췄다.
허나 한 선배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어, 진형아. 뭘 죄송해. 기사 올렸어?
“네, 지금 출고 됐습니다. 메이버 뉴스홈에 올라가 있습니다.”
-됐구나! 알았다. 바로 받아쓸게. 걱정하지 말고 있어라.
분명 선배들은 자신들에게 큰 이득이 없음에도 날 돕고 있다.
내 기사를 베껴 쓸 때, 자신들의 이름을 내걸 수도 없는 노릇.
아마 [온라인뉴스팀]이나 [온라인속보팀] 등의 이름을 걸고 기사를 낼 거다.
이건 본래 우라까이(받아쓰기)를 할 때 법적분쟁을 피하기 위한 수단이지만.
지금처럼 내 기사를 중점적으로 띄워주기 위해 쓸 수도 있다.
그게 순전히 나만을 위한 아닌 것쯤은 나도 안다.
‘진실을 위해서. 슬픔과 부당함을 이겨내기 위해서.’
그 목적지를 위해 우리 함께 달리고 있다는 동료애가 솟았다.
[한주협 : 진형아. 지금 기사 올라갔다. 한 번 봐]
10분 쯤 지났을 때, 한 선배로부터 코코아톡 메시지가 왔다.
난 내용을 확인 후 곧장 답장했다.
[주진형 : 알겠습니다]
노트북으로 메이버 검색 창에 ‘질소 누출’을 검색어로 입력했다.
검색 결과 화면이 뜨고, 기사들이 주르륵 나열됐다.
내 기사가 뉴스 클러스터의 최상단, 즉 첫 번째로 올라와 있었다.
다음으로 날 도와주기로 한 선배들의 매체 기사들이 붙어있다.
[돈으로 질소 누출 진실 막은 LC디스플레이 -아이티데일리 온라인뉴스팀]
[“LC디, 돈으로 질소 누출 제보 막았다”-전자뉴스 온라인뉴스팀]
[질소 누출 진실 막은 LC디, 협력사 회유 -아이티타임즈 온라인뉴스팀]
[질소 누출 사고, “진실이 돈에 가려졌다”-이디넷코리아 온라인속보팀]
질소 누출 사고는 최근 여론의 관심도가 가장 높은 사안이다.
이 정도로 기사가 나간 이상, LC디스플레이도 두 손 놓고 있을 순 없겠지.
‘하지만 대응책 같은 건 필요 없을 거야.’
어떤 걸 준비 했든, 이미 저질러버린 일들에 대한 책임은 피할 수 없다.
계획일 일정은 멈추지 않을 거다.
난 차가운 눈으로 노트북 화면을 내려다 봤다.
[LC디스플레이 안전 지킴이, 김하진 상무]
작년 인터뷰 기사에 첨부 돼 있는 사진이 눈에 꽂힌다.
거기엔 LC디스플레이 김하진 상무의 사진이 나와 있었다.
‘안녕하세요. 상무님. 곧 뵈러 가겠습니다.’
***
다음날 오전 7시 반.
난 임제철이 묵은 여의도의 호텔에 도착했다.
제철은 로비에 미리 나와 날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평소 코나벡에서 근무할 때 입던 작업복 차림이었다.
“오셨습니까?”
“잘 주무셨어요? 이렇게 하루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난감사의 마음을 담아 꾸벅 인사했다.
“아닙니다. 이게 맞는 일입니다. 저도 떳떳할 수 있고. 태용이도 원하는 일이니.”
“참, 그 종이 가방에?”
제철이 들고 있는 종이가방을 보고, 내가 물었다.
“네. 다 준비됐습니다.”
내가 고갤 끄덕였다.
“그럼 가실까요?”
“네.”
난 제철과 함께 호텔을 나와 여의도 공원으로 향했다.
“기사하고 영상 잘 봤습니다. 편집을 그렇게 하실 줄 몰랐습니다.”
여의도 공원을 가로질러 가며, 임제철이 내게 말했다.
영상과 기사에 자신의 신분이 하나도 노출되지 않은 점을 짚은 거다.
난 웃으며 답변했다.
“하하. 혹시 LC측에서 배짱있게 고소드립이라도 칠 줄 알고 해본 건데. 연락 없더군요. 찔리는 게 확실히 있는 거겠죠.”
확실히, 기사가 나가고 난 뒤 LC디스플레이 홍보팀으로부터 연락이 없었다.
본래 같았으면 번개같이 연락해 사실 확인이 된 거냐 따져야 정상이다.
아니면 지난 번 처럼 날 회유하려는 시도라도 하거나.
헌데 반박할 생각이 전혀 없는 것처럼 묵묵부답이었다.
“그럴 겁니다. 이게 사실이니까.”
제철이 말을 받았다.
난 내심 LC디스플레이가 마이뉴스24나 날 고소하길 바랐다.
그렇게 일을 키워줄 수록 더 큰 타격을 줄 수 있을테니까.
‘하지만 상황파악을 하고 멈춘다면, 그건 어쩔 수 없지.’
지금으로도 충분하다.
어제 나간 기사의 조회수는 벌써 천 만 명이 넘게 읽은 상태다.
기사에 달린 댓글 수도 100만개가 넘었다.
화제 몰이는 기대 이상으로 성공한 거다.
‘방해가 없었다면 더 많이 봤겠지.’
어제 저녁, 내 기사는 메이버와 내일 뉴스홈 상단에 걸리지 않았다.
본래 그날의 가장 큰 이슈나 중요한 기사가 뉴스 페이지의 상단을 차지한다.
헌데 내 기사는 IT과학 기사 범주로 들어가야만 볼 수 있었다.
게다가 메이버 검색어 순위 노출도 되지 않았다.
제대로 된 포털 노출 없이 800만 명이 읽은 기사다.
근데 어떻게 검색어 순위에 오르지 않는단 말인가.
-이거, 작업하고 있네 얘네.
-작업이요?
-LC디스플레이에서 검색어 빼 달라고 한 모양이야. 아까까지 순위 급상승에 있었어.
박선혜 팀장이 설명해준 바에 따르면 그렇다.
LC디스플레이 홍보팀이 뒤에서 메이버와 접촉하고 있다는 거다.
‘흥. 대놓고 얘긴 못하니까 뒤에서 견제를 하겠다는 거지?’
그래 봐야 이제 끝이다.
공원을 가로질러 향한 장소는 여의도의 LC트윈즈타워.
우린 곧 LC디스플레이 본사가 있는, 트윈즈타워 동관 로비에 들어섰다.
“어! 진형아.”
동관 1층엔 먼저 도착해 있는 선배 기자들이 있었다.
한주협 선배가 손을 들어 날 불렀다.
“선배. 오셨습니까.”
“어, 이쪽 분이······?”
“네. 코나벡 현장소장 하셨던 임제철씨입니다.”
내가 임제철을 소개하자, 선배들이 모두 다가와 인사를 나눴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아이티데일리 한주협 기자입니다.”
“전자뉴스 배우진 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아이티타임즈 황진규 기자입니다.”
“이디넷 송영주 기자입니다.”
제철은 담담한 표정으로 그들이 건네는 명함을 받으며 목례를 했다.
“다들 카메라는 챙겨 오셨습니까?”
“당연하지.”
내 물음에 한주협 선배가 웃으며 대답한다.
자, 대부분의 배역이 무대에 자리했다.
마지막 주연급 배우 한 명만 더 도착하면 극은 시작된다.
“김하진 상무는 언제쯤 올까요?”
“안내데스크에 물어보니까 보통 8시 30분쯤 온다더군. 조금만 기다리면 돼.”
난 시간을 확인했다.
이제 8시 20분.
출근 시간인지라 오가는 LC그룹 직원들이 우리들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딱 봐도 외부인인 기자 무리.
직원들도 무슨 일이 생긴 건지 호기심이 동할 거다.
관중은 많을 수록 좋다.
난 씩 웃었다.
“야, 온다! 저기!”
잠시 우리끼리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던 중.
건물 입구를 본 한주협 선배가 소리쳤다.
그곳엔 두 세 명의 직원을 대동한 채 걸어들어오는, 김하진 상무가 있었다.
“진형아, 가라. 네가 가야 그림이 나오지.”
“그래. 주 기자. 지금 들이대.”
“가랏, 주진형. 너로 정했다!”
한 선배를 비롯해 다른 선배들이 내 등을 떠밀었다.
난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옷을 바로 잡고 김 상무에게 달려갔다.
“김하진 상무님!”
로비를 걸어가던 모든 사람들이 쳐다보도록.
난 우렁찬 목소리로 김하진 상무를 불렀다.
당연하게도 출근하던 직원들이 내쪽으로 이목을 집중하기 시작한다.
바라던 바다.
“누구······아니, 주진형 기자?”
내 얼굴을 기억해낸 듯, 김 상무가 얼떨떨하게 말한다.
그래, 기억 못할 리가 없지.
나도 당신 얼굴을 본 후에야 알았지만, 우린 초면이 아니다.
이장수 전무와 함께 피해자 병실에 들어왔던 임원진들.
그 안에 당신도 있었으니까.
‘그 때 내 말에 기가 찬다는 듯 한숨을 내 쉬었던 사람이 당신이었을 줄이야.
-감사인사 보다는 이 사고의 확실한 진상조사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전무님.
-허어-
너무 끼워맞추기 같지만, 우리의 해후는 마치 이전부터 정해져있던 것 같다.
“네 상무님. 주진형입니다. 지난 번 병원에서 뵙고 처음이군요. 가장 먼저 찾아 뵀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난 뼈있는 인사로 포문을 열었다.
그래, 당신이 이 일의 핵심인물임을 먼저 알았더라면.
우린 좀 더 일찍 재회 했겠지.
“뭐, 뭡니까. 이 시간에. 일정도 안잡았는데 갑자기 와서는.”
김하진 상무는 당황한 목소리로 내게 항의했다.
주변 직원들이 내게 다가온다.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나중에 연락하시고 다시 오시죠.”
난 그들을 손으로 밀어 낸 뒤, 김 상무에게 다시 말했다.
“상무님, 어제 저희가 낸 기사 보셨습니까? LC디스플레이가 질소 누출 사고 관련해 협력사들을 돈막음 했다는 기사.”
“으, 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헛기침한다.
누가봐도 명백히 곤란해보인다.
내가 고의로 편집해버렸기에, 기사와 영상엔 누가 제철에게 돈을 건넸는지 나와있지 않다.
하지만 본인과 그 관련자들은 잘 알고 있겠지.
LC디스플레이 김하진 상무, 당신이 그런 비열한 짓거릴 했다는 걸.
“이에 대해 안전관리를 맡고 계신 상무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상무님 사실을 인정하십니까? 그리고 누가 이런 행위를 했는지 알고 계십니까?”
내 추궁에 김하진 상무가 눈을 급히 깜빡이더니, 강행돌파를 시도했다.
“상무님! 어디 가십니까!”
날 피해서 급한 발걸음으로 도망치는 김 상무를 쫓았다.
“노코멘트요!”
“상무님!”
그리고 김하진 상무가 전자개찰구를 앞에 서던 순간.
오래 기다려온 또 다른 주연 배우가 김 상무를 막아선다.
“······다, 당신!”
“김하진 상무님. 받았던 돈은 그대로 돌려드리겠습니다.”
임제철이 종이봉투를 두 손으로 잡아 올렸다.
그리곤 김 상무를 향해 안의 내용물을 쏟아낸다.
화르륵, 수십 장의 노란색 종이들이 새처럼 공중에서 춤을 췄다.
“우왓! 신사임당이다!”
꽃잎처럼 5만 원권 지폐들이 김하진 상무의 몸에 흐드러지게 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