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래에서 온 특종-107화 (107/107)

107. 거짓은 여기까지입니다

“이, 이게 무슨 짓이야!”

김하진 상무의 감정이 폭발했다.

5만 원권 지폐들은 마구잡이로 흩어져 로비 이곳저곳에 떨어졌다.

나중에 다 수거할 생각을 하면 참 머리가 아프지만.

다행히 그걸 줍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 우리가 누구인지,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있는 듯 했다.

“상무님. 전 이 돈 못 받겠습니다. 도로 가져가 주십시오. 상무님과 했던 약속을 지킬 수 없어서 돌려드립니다.”

임제철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김하진 상무에게 준비한 말을 읊었다.

난 그 옆에서 깐족이며 김 상무의 심기를 건드렸다.

“이런, 이 많은 돈을 주시면서 한 약속이 뭡니까 상무님?”

“이, 이, 미친놈들이!”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욕지거릴 내뱉으려던 순간.

선배 기자들이 김하진 상무를 둘러쌌다.

그들 손엔 녹음 중인 스마트폰과 카메라들이 쥐어져 있었다.

“김하진 상무님! 협력사에게 돈을 건네셨다는 게 사실입니까!”

첫 출격은 역시나 한주협 선배.

그 뒤로 다른 선배들이 목소릴 냈다.

“협력사들의 진실제보를 입막음하기 위해 현장담당자들을 매수한 겁니까?”

“LC디스플레이 안전관리 최고책임자로서 직무를 유기했단 사실을 인정하십니까!”

“사고 진상규명이 잘못됐다는 증언에 대해서 답변해주세요!”

기자들의 질문이 폭풍처럼 몰아친다.

사방에서 정신없이 말들이 쏟아지자, 김하진 상무는 도통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다른 직원들이 막아섰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선배들도 작정하고 덤비고 있다.

육탄전에 익숙한 기자들과, 이런 일은 처음 겪는 다른 직원들.

이들 간의 뚫고 막는 기술의 차이는 극명했다.

결국 김하진 상무는 전자개찰구를 통과하지 못했다.

나를 비롯해 선배 기자들은 수십 장의 사진을 찍었고, 영상도 촬영했다.

“상무님. 지금이라도 사실을 밝히고 용서를 구하십시오.”

임제철의 어조는 전과 다를 바 없이 평이했다.

허나 그 눈빛만큼은 1월의 시베리아처럼 냉혹했다.

“이, 임제철. 당신 진짜 뭐하는 짓이야...... 이거 코나벡도 다 알아?”

누가 비열한 인간 아니랄까봐 상대의 약점을 물어뜯으려 한다.

그러나 제철은 전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당연히 모릅니다. 저 어제부로 퇴사했잖습니까. LC디스플레이 명령으로.”

좋은 대답이었다.

나도 옆에서 제철의 말에 지원 사격했다.

“상무님. 안 그래도 저 코나벡 갔다가 까이고 돌아왔습니다. 대체 심태용 씨한테 무슨 짓을 한 겁니까? 인터뷰한다던 사람이 갑자기 돌변했던데.”

내 물음에 김하진 상무가 입을 다물었다.

이제 더 이상 김 상무가 코나벡을 의심할 일은 없을 거다.

“아이 기자님들~ 왜 이러십니까!”

전자개찰구 안쪽에서 다른 인물들이 등장했다.

이한중 부장과 이국현 과장, 차세현 과장 등, 모두 LC디스플레이 홍보팀 인원들이었다.

“이 부장님. 오셨어요?”

“아······ 주 기자님.”

이한중 부장이 내 부름에 다소 껄끄러운 반응을 보였다.

하긴 그런 이상한 제안을 했었는데, 내 앞에 당장 서기가 창피하겠지.

충분히 이해한다.

“이렇게 단체로 오시기전에 미리 연락 주셨으면, 저희가 마중 나갔을 텐데요.”

마중은 무슨.

난 이치에 안 맞는 이한중 부장의 말을 들으며,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내 속 맘을 읽은 것처럼 한주협 선배가 대신 일침을 가했다.

“에이, 이 부장님. 사람 섭하게 마중이라뇨. 저희 함께한 세월이 얼만데. 여긴 이제 저희 안집이나 다름없잖아요. 집에 오는데 무슨 마중을 해줘요? 그것도 매일 오는데.”

“하하, 그렇긴 하네요.”

논리적인 반박이 불가해진 이한중 부장이, 실수를 인정했다.

“아무튼 기자님들. 오늘 아침부터 너무 흥분하셨습니다. 저희가 준비해서 자료 바로 내드릴 테니까, 일단 돌아가셔서 더도 말고 한 시간만 기다려주세요.”

이한중 부장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홍보팀 직원들이 김하진 상무 주변을 둘러섰다.

‘이거 순순히 털려주진 않겠다는 건가?’

그래, 당연히 이건 홍보팀이 나서야 할 일이지.

하지만 나는 물론이고, 연차가 높으신 우리 선배들도 절대 가만히 있진 않을 거다.

“뭘 준비해요. 여기서 한 마디만 해주시면 끝나는 건데.”

한주협 선배가 장난기 없는 말투로 이 부장에게 다가갔다.

“그래서 김하진 상무님이 여기 계신 임제철 씨한테 사고 내용 발설하지 말라고 돈을 건넨 게 맞냐구요. 당사자 두 명이 한자리에 모였는데 왜 맞다 틀리다 말을 못합니까?”

강하게 나오는 한주협 선배의 등 뒤로, 다른 선배들이 숟가락을 얹었다.

“그래요, 상무님. 시원하게 한 마디 부탁드리겠습니다!”

“상무님 돈으로 입막음 했다는 내용이 사실입니까?”

“그 돈이 내 돈이다, 왜 말을 못합니까!”

이한중 부장은 선배들의 폭격에도 꿋꿋이 버텼다.

그리곤 웃는 낯으로 상황을 타개할 변명거릴 늘어놓는다.

“김하진 상무님이 돈을 주신 건 아마 사고 책임자 분들을 위한 위로금이었을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상무님?”

이 부장이 만들어낸 같잖은 변명 속으로, 김하진 상무가 덥석 들어간다.

“어, 어 맞아요. 책임지고 물러나시는 분들이니 위로금을 드린 것 뿐 이에요. 그게 무슨 입막음이······”

“입막음이죠. 상무님.”

내 차례였다.

난 김하진 상무의 말을 끊으며 나섰다.

김 상무는 물론 이한중 부장도 내게 시선을 돌렸다.

“협력업체 관리자도 아닌, 안전담당 상무께서 협력사 직원에게 직접 돈을 건네는 게 정상입니까?”

내가 지적했다.

안전담당은 말 그대로 공장의 안전을 담당 관리하는 직책이다.

안전장비는 제대로 구비가 돼있는지, 공정절차는 안전하게 이뤄지고 있는지.

유사시의 대비책이나 대응방법에 대해 파악하고 고민해야할 입장이라는 거다.

사고가 나면 그에 따른 책임을 지면되지, 왜 협력업체 직원에게 돈을 건넨단 말인가.

협력업체 관리와 관련 있는 인적(HR)부서에서 행동한 거라면 모를까.

“그, 그건······”

“사고로 일어난 문제니까요. 사고 책임자께서 유감의 표시를 담아 인사하기 위해 갔던 겁니다.”

이한중 부장이 보호막을 치듯, 아예 내게 직접적으로 말을 걸기 시작했다.

난 코웃음 치며 이 부장의 얘길 부정했다.

“유감의 표시를 담아? LC디스플레이는 사고 책임소재를 협력사 현장관리자들에게 떠밀었습니다. 그래놓고 그들에게 유감의 표시로 돈을 줬다는 겁니까? 정작 협력사나 피해 당사자들이 700만원이나 되는 돈을 받았다는 소린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만.”

“······”

이한중 부장은 입을 다물었다.

LC디스플레이 이장수 전무가, 사고 피해자들에게 위로금이랍시고 전달한 봉투는 그리 두껍지 않았다.

5만 원 권 지폐가 140장이나 들어갈 수준이었다면, 이런 말을 꺼낼 필요도 없었겠지.

설령 이 부장의 말이 사실일지라도,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격이다.

피해자들보다 사고의 책임자로 퇴사하는 사람에게 더 많은 돈이 주어지다니.

“이 부장님. 저희 그렇게 어이없게 무너져 내릴 변명을 들으려고 이곳에 온 거 아닙니다. 제가 말했었죠. 계속 거짓말하면 용서치 않을 거라고.”

말장난은 여기까지다.

난 단호한 얼굴로 다시 한 번 경고문을 띄웠다.

대화로 끝낼 수 있는 일이지만, 상대가 원치않다면 실력행사로 가야하는 법이겠지.

“주 기자님.”

이한중 부장은 아직 포기할 수 없는 모양이다.

그렇겠지, 이 사실을 막아내느냐 못하냐에 따라 LC디스플레이의 이미지는 크게 달라진다.

자신의 인사평가에도 꽤나 영향을 끼칠 테지.

하지만, 노력해도 도저히 안 되는 일도 있는 거다.

애당초 틀려먹은 걸, 맞은 거라고 우기는 것만큼 바보 같은 노력도 없다.

“어제 나간 영상, 잘려나간 부분 꽤 됩니다. 그 원본은 고용노동부에 보내놨습니다. 그쪽도 여론을 읽을 능력이 된다면 가만히 있진 않겠죠. 그리고 한 가지 더.”

난 휴대전화를 손에 쥐고 높이 들어보였다.

많은 사람들의 눈길이 내 손끝에 닿았다.

그들의 귀에 다 들어갈 정도로 큰 목소리로, 난 외쳤다.

“이 안에 녹취파일이 있습니다! LC디스플레이 파주공장 내 근무 중인 한 직원에게서 받은 겁니다. 질소 누출 사고의 진상을 외부로 발설하지 말라는, 상사의 음성이 포함돼 있죠. 그 상사의 윗선은 누굴까요. 아십니까? 김하진 상무님?”

유준철 대리로 부터 전해 받은 녹취파일이 내 마지막 한 방이다.

타격이 잘 먹혀들어갔는지, 김하진 상무는 입을 벌린 채 날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이한중 부장도 더 이상 방어해낼 수 없다 판단했는지, 아무런 반박도 내뱉지 못했다.

난 김 상무의 양 어깨를 친근하게 붙잡고, 그에게 속삭였다.

“당신이 저지를 수 있는 거짓은 여기까지입니다.”

[진실 밝힌 협력사 직원, LC디스플레이 상무에게 돈 돌려줘 -마이뉴스24 주진형 기자]

[협력사 입 막은 LC디스플레이 상무, 돈벼락 맞아 -아이티데일리 한주협 기자]

[질소 누출 사고의 진실 가렸던 LC, 본사에서 망신 -전자신문 배우진 기자]

[입막음 당했던 협력사 직원, LC디스플레이에 복수했다 -아이티타임즈 황진규 기자]

LC트윈즈 타워 동관 로비에서 그 사태가 벌어진지 1시간 후.

우리의 기사는 신속하게 인터넷에 게재되기 시작했다.

다른 매체들도 부랴부랴 우리 기사를 받아써댔다.

“진형아, 네 기사 메이버 메인에 떴다.”

동관 기자실.

한주협 선배가 내게 다가와 알려줬다.

“그렇습니까?”

난 곧장 노트북으로 메이버 뉴스홈에 접속해 그 말의 진위를 확인했다.

LC디스플레이 홍보팀의 방해공작이 사라진 덕분일까.

우리 기사가 정말 메이버 뉴스홈 메인 상당에 당당히 자리하고 있었다.

“어, 실시간 검색어 순위도 지금 2위다.”

한 선배의 말대로 LC디스플레이 키워드가 실시간 검색어 2위에 올라있었다.

그 아래로 LC디스플레이 협력사, 질소누출, LC디스플레이 상무 등.

사건 관련 단어들이 순위를 주로 차지했다.

난 내 메이버 뉴스홈 기사에 달린 댓글들도 확인해봤다.

[OLD*** : 진짜 LC디스플레이 개 쓰레기네. 이놈들 지난번에 주진형이 뉴스룸 나왔을 때도 아무 말 없었지 않음? 이것들 다 잡아 족쳐야]

[Neo*** : 와 LC디스플레이 상무 ㄷㄷㄷ 재수사 되서 인생 망했으면]

[Liv*** : 나 저거 목격했는데 장난 아니었음. 막 5만 원짜리 지폐들 쏟아지고 ㅋㅋ 아, 주울 수 있었는데]

[KIN*** : 주진형 기자 멋있다. 사람 구하고 유가족들 한 풀어주고]

[Dia*** : 야 LC디스플레이! 조사 똑바로 다시 해라.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댓글 개수는 이 만개를 돌파하고 있었다.

LC디스플레이를 비난하는 내용이 대다수, 나에 대한 칭찬도 간혹 있었다.

“미튜브도 한 번 들어가 봐.”

한주협 선배의 말에 난 미튜브 사이트에도 접속했다.

나와 선배들은 로비에서 촬영한 현장영상을 이곳 미튜브에 올려 공개해 놨다.

-이, 이게 무슨 짓이야!

-상무님. 전 이 돈 못 받겠습니다. 도로 가져가 주십시오. 상무님과 했던 약속을 지킬 수 없어서 돌려드립니다.

김하진 상무에게 돈을 뒤집어 뿌리는 임제철 씨의 모습이 담긴 영상.

이 영상들은 도합 조회 수 400만을 넘기며 다른 사이트 등지에 공유되고 있었다.

“반응들은 기사랑 비슷하네.”

한 선배가 영상 페이지 내에 달린 댓글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 말대로, 대부분 속 시원하다는 의견과 사고 재수사를 촉구하는 내용들이었다.

“지금 홍보팀 애들 뒷수습이고 뭐고 멘붕이겠는데?”

자신의 노트북 모니터에 눈을 붙인 채, 한 선배가 중얼거린다.

그럴 수밖에 없지.

곪은 상처를 가려둔 채 조용히 지나가려했지만, 결국 드러났고.

그나마도 별 것 아닌 것처럼 속이려다가 상처가 터졌다.

“인과응보죠. 중간에 김하진 상무를 빼내서 입을 맞추려했던 것도 참 바보 같은 짓이었습니다.”

난 일을 무마하려던 이한중 부장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지금으로부터 1시간 전.

김하진 상무는 결국 LC디스플레이 홍보팀 인원들과 함께 사무실로 사라졌다.

이중한 부장은 우리에게 사태파악을 제대로 한 후, 자료를 내겠다고 했다.

하지만 더 이상 보도 자료 따위는 중요치 않다.

진실은 이미 명명백백히 드러났고, 우리가 바라는 건 그에 따른 결과다.

“뭐, 그럴 수밖에 없었던 모종의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한 선배의 의미심장한 어투를 듣다보니, 나도 걸리는 점이 있었다.

‘과연 상무 선에서 마무리 될 일이었을까?’

분명 이틀 전, 난 이중한 부장을 통해 ‘명예 LC디스플레이인’이라는 시답잖은 상을 제안 받았다.

이중한 부장에게 지시내린 사람은 LC디스플레이 경영지원그룹 총괄 이장수 전무.

그리고 홍보팀이 경영지원그룹 내에 존재한다는 걸 떠올려보면······

“짚이는 바가 있으십니까?”

난 생각을 멈추고, 한주협 선배에게 물었다.

하지만 선배는 고갤 가로저으며 털어놓지 않는다.

“확실하지도 않고. 뭐 있다 한들, 지금은 별 수 없어.”

한 선배의 추측이 내 것과 동일하다면.

선배가 이렇게 얘기하는 것도 이해는 간다.

“어, 잠시 만요.”

이때 내 휴대전화가 울린다.

[031-93X-XXXX]

등록되지 않은 지역 전화번호였다.

난 약간 미심쩍었지만 일단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짧은 통화 후.

한주협 선배에게 난 기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선배. 고용노동부에서 LC디스플레이 질소 누출 사고 재조사 착수했답니다. 김하진 상무 소환조사 들어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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