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세계는 별안간 멸망했다.]
내 나이 24세.
부모님께서 지어주신 이름은 멋있는 외자, 정 현.
하지만 이 이름보다 더 널리 알려진, 시청자들이 붙여준 이름은 ‘bj멸돼’.
- 1.
- 생방 시작!!! 너하~~
- bj멸돼님, 어서 오고.
- 멸돼가 뭐여?
- 방송 처음 보냐?
- 멸치 돼지 줄인 말.
- 말랐는데 먹는 양이 엄청 많으셔서, 애청자들이 지어줬어요. 방송 보면 바로 이해하실 거예요.
- ㅇㅈ, 처음 보면 놀랄 수도.
역시나 방송을 켜자마자 채팅창이 가득 메워졌다.
애당초 예상했던 시청자 수는 3,000명 정도였는데, 그가 훨씬 넘어가는 5,000명이 접속해있음을 보며 새삼 내 인기를 다시 느낀다.
“너하~, 다들 안녕하세요. 방송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레오’님 10,000원 후원 감사합니다! “오늘의 메뉴는 어떤 건가요?”]
“‘레오’님 후원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의 메뉴는 한술 도시락에서 신메뉴로 런칭한! 이름하여!”
- 두둥!
- 이름하여?
- 설마….
“‘군대 도시락 – 월요일 아침 편’! 이름 한번 더럽게 기네. 어쨌든 오늘은 이 메뉴를 제가 한 번 먹어보도록 하겠습니다!”
- 앜ㅋㅋㅋㅋㅋ 장난하나?
- 아, 오늘은 생방 안 들어오려고 했는데, 군대 식단은 또 못 참지 ㅋㅋㅋㅋ
- BHQ 치킨에서도 ‘군대 파닭’ 메뉴 새로 하더니, 하다 하다 월요일 아침 짬밥을 팔아 버리네;;
- 신메뉴 나온 바로 다음 날 리뷰! 이게 멸돼님이지.
[‘지방손실방지위원회’님 5,000원 후원 감사합니다! “응, 안 먹어~ 뒷광고 ㅅㄱ”]
“‘지방손실방지위원회’님 후원 감사하고요, 광고는 절대 아니에요. 오랜만에 군대 생각도 나고 해서 한 번 구매해봤습니다.”
- 군대 다녀오긴 했음?
- 다녀왔을걸? 방송 보다 보면 수색대 이야기 엄청나게 하던데.
- ‘그 군대’, 또 시작된다.
“또 다들 아시잖아요. 깔 건 까고, 칭찬할 건 칭찬하고! 그게 제 방송의 매력 아니겠습니까? 여러분들을 위해, 오늘도 저엉말 솔직한 리뷰 들려드릴 준비 되어있으니 걱정하지 마십쇼! 아, 물론 광고주님들 광고는 언제나 대환영입니다!”
- 형의 솔직한 매력 땜에 항상 들어오자너.
- 빨리 먹기나 하자. 기다리다 식는다.
[‘182548’님 10,000원 후원 감사합니다! “혐오 음식 시리즈는 끝났나요? 그게 진짜 재밌었는데.”]
“‘182548’님 후원 감사합니다. 지난주 내내 혐오 음식을 시리즈별로 먹었잖아요. 확실히 조금 힘들긴 하네요. 물론 시청자분들의 웃음이 가장 중요하기는 하지만, 제 위도 잠깐 쉬어가는 시간은 필요하잖아요.”
[‘182548’님 10,000원 후원 감사합니다! “제 생각이 짧았네요. 오늘 방송도 재밌게 볼게요.”]
“네네, 감사합니다. 시청자분들 조금 더 들어오시면, 본격적인 먹방 시작하겠습니다.”
지난번 방송에서 ‘세계의 혐오 음식 시리즈’ 특집을 진행하며, 평균 시청자 수 2만 명을 기록했다. 그에 비교하면 아직은 본격적인 방송에 들어가기에 시청자 수가 한참 부족하다.
역대 최고 시청자 수가 기록된 순간이 무슨 구더기 치즈를 먹고 토할 때인 걸 생각하면, 확실히 자극적인 소재가 ‘너튜브’ 시청자들을 끌어모으기엔 최고다.
다음 주 방송에는 언젠가 농담으로 이야기했던 ‘바퀴벌레 튀김’을 준비해야겠다. 그 정도 자극이면, 시청자를 지금보다 더 끌어모으기엔 충분할 것이다. 그렇다면, 전업 BJ로 전환하는 것도 진지하게 생각해볼 만하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별안간 한숨이 나왔다.
예전 같았으면 이런 생각을 할 리가 없는데.
저녁엔 먹방 BJ, 심야에는 술집 아르바이트.
한때 요리사를 꿈꾸던 내가 이런 일을 할지 누가 알았겠는가.
‘이화는 꼭 네가 지켜주렴.’
2년 전, 여동생 이화를 부탁한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어머니마저 병을 이기지 못하고 아버지를 따라 하늘로 떠나시기 전까진 나조차도 모르고 있었으니.
처음으로 나와 이화만 세상에 남겨졌을 때, 우왕좌왕하며 그나마 유일한 혈육인 삼촌에게 연락했다. 그랬던 삼촌은 어머니께 물려받은 몇 푼 안 되는 돈을 사기로 모두 잃고 연락이 끊겼다.
이후 ‘그 누구도 믿지 말자.’란 신념으로 술집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해 별의별 궂은일을 통해 생활비를 모으기 시작했다.
당연히 대학 졸업과 내 꿈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지내던 내가 먹방을 시작한 건, 술집 아르바이트를 같이하던 형 때문이었다.
교대 전 휴식 시간, 함께 남은 안주를 주워 먹던 형은 내게 먹는 모습도 복스럽고 입담도 좋은데 먹방을 시작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 말에 장난삼아 시작했던 채널이 뜨며, 점차 아르바이트를 하나씩 그만둘 수 있게 되었다.
“시청자분들이 이제 어느 정도 들어오셨으니, 한번 도시락 오픈해볼까요?”
- ㄱㄱ
- 가시죠, 형님.
시청자 수가 10,000명이 넘어가는 순간, 회상을 접어두고 도시락의 뚜껑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일단 도시락은 식판 모양처럼 생겼네요. 이거 하루 세 번 설거지하던 거 생각하면, 어휴. 참고로 군대 식단 시리즈는 요일별, 시간대별로 나뉘어 있더라고요. 참고해주세요.”
- ? 광고, 아니라며;;
- 굳이 이걸 그렇게까지 나누었다고? 위가 옹졸해진다.
- 군대에서 보는 중입니다. 고증 얼마나 정확한지, 실시간 검증 들어갑니다.
“그럼 국을 확인해보죠. 아! 미역국이네요. 아침에 미역국 한사바리 따끈하게 마시고 일과 시작하는 게 국룰이죠.”
- 멸돼님, 역시 먹을 줄 아네!
- 국은 당연히 꼬곰 아님?
- 에이, 떡만둣국이 최고다.
“다음이 제일 중요한 반찬입니다. 이 상품의 메인이라고 보아도 좋겠죠. 세 칸 중의 한 곳에 김치는 당연히 있겠고…. 나머지 두 칸에 이왕이면 돼김볶이랑 김이 같이 나왔으면 좋겠네요.”
- 돼김볶 미만잡. ㅇㅈ? ㅇㅇㅈ
- 라떼 마렵네. 여기 14군번 있냐?
- 응, 짬찌는 가세요.
“돼지고기 김치 볶음에 김 부셔서 밥이랑 비벼 먹으면 진짜 맛있거든요. 그러면 오픈해보겠습니다. 그 전에! 헤헤, 추천과 구독 부탁드립니다!”
추천 수가 쭉쭉 올라가는 것을 본 이후, 뚜껑을 집어 던졌다.
“망할!”
내용물을 확인하자마자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책상을 주먹으로 쾅쾅 내리쳤다.
“죄송합니다. 잠깐만요! 이게….”
한 칸은 예상대로 배추김치가 채워져 있었다. 그러나 그 옆 칸, ‘조기 튀김’이 나를 쳐다보며 헤벌쭉 웃고 있었다.
이미 이것만으로 최악인데, 마지막 칸에는 ‘해물 비빔 소스’가 다소곳이 놓여 있었다.
- 네, 꽝입니다. 군대 최악의 식단 나왔쥬. 이래서 월요일 아침이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거 돈 주고 사 온 거야?
- 이러면 일과 못 하지.
- 극한 직업, 멸돼님 책상.
[‘조용’님 500,000원 후원 감사합니다. “군대 마렵네.”]
“‘조용’님! 조! 용! 님! 우와! 진짜! 후원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이러면 제가 또 리액션을 안 할 수가 없잖아요!”
- 와, 한 번에? 미쳤네;;
- 해물 비빔 소스는 또 어쩔 수 없거든.
- 이 형, 또 춤추는 겨?
50만 원이 들어오자마자 준비한 괴상한 춤으로 리액션을 시작했다.
신들린 마냥 미친 듯이 춤을 출 때, 방문이 열렸다.
“야! 밥 안 먹냐니깐? 몇 번을 말해야 듣냐?”
깜짝 놀라 돌아본 나를 이화가 혐오스럽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으, 더러워. 괜히 물어봤네.”
“아니, 들어올 땐 노크는 하라고! 이 시간에 방송한다니깐!”
“그런 더러운 춤보단 시청자분들도 나를 더 보고 싶어 할걸?”
[‘여동생카와이’님 5,000원 후원 감사합니다. “ㅇㅈ. 이참에 현실 남매 합방 ㄱ”]
[‘풍요와 파괴의 군주’님 10,000원 후원 감사합니다. “다들 마지막으로 볼 수 있을 때, 많이 보세요.”]
[‘맥끊기장인’님 10,000원 후원 감사합니다. “지금 빨리 창밖에 보세요. 개신기함.”]
[‘비비’님 5,000원 후원 감사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민망한 순간을 함께하고 계십니다.”]
[‘어키더키’님 50,000원 후원 감사합니다. “하필 이 타이밍이냐고ㅋㅋㅋ”]
[‘궁시렁’님 20,000원 후원 감사합니다. “자낳괴 가자아~!”]
[‘방구석 만화광’님 5,000,000원 후원 감사합니다. “이 순간만을 기다렸자너~.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방송 계속해줘라.”]
“정중히 부탁드리겠습니다. 제발 나가주시죠.”
“토하기 전에 당연히 나가려 했거든! 그럼 오라버님께서는 추시던 춤이나 계속 추시죠.”
이화가 나가고 넋이 나간 척 의자에 그대로 늘어졌다. 그런 내 눈에 후원이 끊김 없이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고, 속으로 씩 미소 지었다.
사실 ‘조용’이란 아이디는 이화의 아이디. 지금 일어난 상황은 당연히 모두 미리 짜둔 상황이다. 이화가 자신의 아이디로 한 번에 큰 금액을 후원해, 내가 리액션을 하면 모른 척 방에 들어오는 것까지.
아니나 다를까, 여동생에게 리액션을 하는 걸 걸린 상황에 후원은 미친 듯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심지어 ‘방구석 만화광’이란 사람은 한 번에 500만 원이나 후원했다. 아직 본격적인 시식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벌써 이 정도 후원이면 이번 주 수익은 충분히 채운 셈이다.
“아…. 현타…. 그래도 시식 들어가겠습니다!”
수저로 미역국을 한 입 떠 마시며, 슬쩍 시청자 수가 얼마나 늘었는지 확인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별안간 시청자 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몇십 명이 빠져나가는 것도 아니고, 몇백 명이 초 단위로 뚝뚝 빠져나간다.
여동생에게 민망한 리액션을 걸린 데다가, 제일 중요한 시식을 막 시작한 참이다. 시청자들이 유입되었으면 유입되었지, 이렇게 급격하게 빠질 리가 없다.
- 갑자기 다들 왜 나가냐? 재미있기만 하고만. 너튜브 오류 남?
- 야야야야야야야야야 다둘 바께 봐바ㅗ엪
- 응? 오타 뭔데?
- 내가 마지막으로 볼 수 있다 했잖아.
- 하늘 뭔가 이상한데? 여기만 그러냐?
- 여기도 그래. 뭐야? 저거?
“오, 오빠! 바, 밖에 저거 뭐야? 빨리 나와봐!”
“야, 아직 방송 중인데….”
그때 이화가 황급히 방문을 열었고, 그 틈으로 거실의 창이 보였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핏빛 하늘.
그를 보고 뭔가에 홀린 듯이 창가로 다가갔다.
창밖을 바라보며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이거였다.
“오늘이 막방이네.”
핏빛 하늘에서 거대한 괴생물체들이 지상을 향해 쏟아지고 있었고, 여기저기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군대가 괴생물체에게 맞서고 있었으나, 결과는 너무나 뻔해 보였다.
비명이 울려 퍼졌고, 현실감 없이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방 안에 두고 온 ‘조기 튀김’의 머리 부분이라도 다시 한번 더 먹고 싶은 날이 올 줄은.
그날,
세계는 별안간 멸망했다.
[‘캠비온 녹스’님 10,000원 후원 감사합니다. “당분간, 다음 방송 준비가 있겠습니다. 초월자님들, 모두 편히 기다리시길.”]
-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 다음 방송에서 뵙겠습니다.
[인터넷 연결이 불안정하여 방송이 종료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