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계의 요리사-4화 (5/168)

[3. 후원 미션 (2)]

「참여하실 분들은 포인트 베팅 부탁드립니다.」

“컥-!”

흐릿하던 시야가 점차 돌아오며 익숙한 주방이 눈에 들어왔다.

“분명 난 ‘히드라’의 독에 죽었을 텐데….”

[‘알 수 없는 자’님이 당신의 뜬금없는 발언에 흥미를 보입니다.]

[‘방구석 만화광’님이 당신의 발언을 미친 듯이 노트에 기록합니다.]

[‘열두 과업의 전사’님이 당신의 발언에 인상을 씁니다.]

[‘현인 반수’님이 당신의 발언에 분노합니다.]

「네, 총 60여 분의 초월자님께서 베팅하셨군요.」

저 베팅 이후 ‘후원 미션’을 수행하던 도중, 나는 땅속에 숨어있던 ‘히드라’의 독에 당해 죽었다.

“꿈은 분명 아니야.”

꿈이라기에는 너무나 생생하다.

녹색 연기에 뒤덮였을 때, 숨을 쉴 때마다 칼날들이 곳곳을 쑤시고 들어오며 온몸이 불타는 느낌이었다. 그런 고통이 꿈일 리 없다.

“엔간해서는 다시 당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어.”

꿈이 아니라면 정말로 ‘CONTINUE?’라는 글귀와 함께 ‘후원 미션’이 주어졌을 때로 돌아온 것이다.

“돌아왔다….”

진위가 어찌 되었든 일단 기회가 한 번 더 주어졌다고 생각하니, 가쁜 숨은 점차 평온해졌다.

마음이 안정을 되찾아가며 집중력도 돌아왔다.

만약 실제로 과거로 돌아왔다면, 그 원인에 관해 짐작이 가는 곳은 하나.

식탐으로 새로이 얻게 된 ‘불사조’의 특성.

“그 특성이 이런 것이었나?”

‘불사조’가 죽음 이후에 별안간 사라져 다른 곳에서 유유히 돌아다닌다는 소문과 지금 상황을 결부하면, 내가 얻은 특성이 어떤 것인지 대충 이해가 간다.

‘불사조’의 특성은 죽었을 경우, 그 자리에서 바로 되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최근 저장 시점’으로 시간을 거슬러 귀환하는 것.

“그 최근 저장 지점이 ‘후원 미션’ 시작 직전인 거고.”

퍼즐이 하나둘 맞추어진다.

주둔지로 복귀하던 길에 괴수가 하나도 보이지 않던 것은 ‘히드라’가 땅에 은신해 있었기 때문이다. B급 괴수 이하로는 모두 ‘히드라’의 강력한 독을 견디지 못하니 다른 곳으로 도망친 것이다.

하필 ‘히드라’가 은신한 곳은 주둔지로 향하는 유일한 길이었고, 그곳을 지나던 나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불사조’의 특성으로 시간을 거슬러 ‘후원 미션’ 시작 직전으로 귀환했다.

“내 생각대로라면, 이 특성 너무 사기잖아.”

「그럼 지금 시작하겠습니다!」

다만, 문제는 이 사기적인 부가 옵션이 있어도 내 자체 옵션이 쓰레기라는 것. 이런 스탯으로 ‘히드라’라는 A급 괴수를 통과할 수 있을 리 없다.

그렇다고 ‘히드라’가 다른 곳으로 가기만을 마냥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 최악의 경우엔 기다리던 와중 미션을 방해하려는 헌터들에 의해 목숨을 빼앗길 수도 있다.

“미션을 방해하려는? 잠깐….”

‘베팅에 참여하신 분들은 자신이 후원한 헌터를 통해 이번 미션이 성공하도록 도울 수도, 방해할 수도 있습니다.’

‘히드라’를 통과할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닌 듯하다.

“생각대로만 잘 풀려준다면 이번 미션 충분히 성공하겠는데?”

앞으로의 방침이 정해졌으니, 망설일 이유는 없다.

“좋아. 어디 한번 해보자고. 내가 가진 포인트는 총 얼마지?”

[보유 포인트 : 10만 포인트]

‘이름 없는 자’가 후원한 10만 포인트는 다행히 그대로 있다.

“상점에서 ‘요리사’ 직업이 구매할 수 있는 특성, 스킬, 장비 전부 보여줘.”

헌터는 초월자에게 후원받은 포인트로 스탯을 올리거나 상점에서 자신의 직업이 사용할 수 있는 특성, 스킬, 장비를 구매할 수 있다.

어차피 나는 스탯을 올릴 수 없으니, 가지고 있는 포인트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해 ‘히드라’를 죽이거나 피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을 상점에서 찾아내야만 한다.

목록들을 쭉 살피다, 흥미로운 특성 하나를 발견했다.

[‘요리사의 특급 냉장고’]

- 사용 가능 직업 : 요리사

- 자신이 보유한 것을 ‘특급 냉장고’에 보관한다. 자신이 원할 때, 어느 장소에서든 냉장고에서 대상의 이름을 말하면 꺼낼 수 있다.

- 단! 살아있는 생명체는 보관 불가!

- 희망 소비자 가격 : 5만 포인트

“게임의 인벤토리 같은 건가? 이거라면 무거운 짐을 지고 다니지 않아도 되겠네. 좋아, ‘요리사의 특급 냉장고’ 구매.”

[상점에서 ‘요리사의 특급 냉장고’ 특성을 구매합니다.]

[5만 포인트를 지불합니다.]

[‘요리사의 특급 냉장고’ 특성이 귀속됩니다.]

“혹시 기름도 있나?”

[‘기름’]

- 사용 가능 직업 : 전 직업

- 누구나 아는 그 기름이다.

- 희망 소비자 가격 : 리터 당 500 포인트

“기름 1만 포인트 어치 구매.”

[상점에서 ‘기름’을 구매합니다.]

[1만 포인트를 지불합니다.]

[‘특급 냉장고’에 구매한 기름이 보관됩니다.]

“마지막으로 이거까지.”

[‘대장금의 궁중 식도’]

- 사용 가능 직업 : 요리사

- 장비 등급 : 전설

- 내구도 500 공격력 0 방어력 0

- 모든 식자재를 벨 수 있다.

- 희망 소비자 가격 : 4만 포인트

[상점에서 ‘대장금의 궁중 식도’ 장비를 구매합니다.]

[4만 포인트를 지불합니다.]

“그렇게 무겁지는 않네.”

조그마한 식도가 손에 쥐어져 몇 번 휘둘러보았는데, 이전 아르바이트 당시 사용했던 식도보다는 확실히 훨씬 괜찮다.

“이제 남은 포인트는 0. 내가 지금껏 어떻게 살아남았는데, 이대로 죽을 수는 없지. 그럼 다음 작업을 하러 가 볼까?”

포인트를 모두 소비한 다음 내가 도착한 곳은, 목적지의 정반대 방향.

우리가 괴수의 시체를 버리던 곳이다.

[‘열두 과업의 전사’님이 당신의 행동에 답답함을 느낍니다.]

[‘낮은 시선의 소유자’님이 자신의 선택을 후회합니다.]

[‘피의 살육자’님이 올바른 길로 나아가라고 다그칩니다.]

계속해서 새겨지는 메시지를 무시하고 우선 주변의 버려진 나뭇가지를 모아 불부터 피웠다.

불을 피우고 주변에 돌을 쌓아 프라이팬을 고정했다. 이후, 기름을 두르고 달궈지기를 기다리며 준비했던 대사를 말했다.

“초월자님들 너무 급하시네. 금강산도 식후경! 이런 말이 있습니다. 초월자님들도 한국의 이 속담 다들 아시죠?”

초월자들이 우리의 모습을 지켜보고 메시지를 보낸다는 건,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을 모두 지켜본다는 의미.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선, 내가 제일 잘하는 것을 하면 된다.

“아직 해지려면 시간도 넉넉하게 남았는데, ‘후원 미션’을 진행하기 전에 첫 번째 먹방을 시작하겠습니다!”

[‘번개의 아내’님이 당신의 발언에 흥미를 보입니다.]

[‘방구석 만화광’님이 당신의 복귀를 환영합니다.]

[‘풍요와 파괴의 군주’님이 군침을 흘리기 시작합니다.]

[‘허영의 사내’님이 당신의 건방짐에 분노합니다.]

[‘별의 적대자’님이 미션 진행을 재촉합니다.]

[‘골목의 미식가’님이 레시피를 받아 적을 준비를 합니다.]

역시나 먹방을 시작한다는 말에 수많은 관심이 쏠린다.

결국, 초월자들도 시청자에 불과한 것이다.

이들이 별안간 나타나 헌터에게 힘을 준 이유는 필히 자신들의 흥미를 채우기 위해서이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모든 인류를 헌터로 만들지 않은 이유도, 본인들이 직접 나서 괴수를 소멸시키지 않은 이유도, 그건 그들이 보고 싶은 그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저 재미있고, 자극적인 소재를 원한다.

그래서 ‘후원 미션’에서 내 생명을 걸고 베팅까지 한 것이고.

물론 제값을 내며 내 모습에 즐거워하는 것까지는 상관없다.

하지만 지금처럼 나나 이화의 생명까지 갖고 놀 생각이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아 철저히 그 값을 전부 받아낼 것이다.

“어느 정도 초월자님들이 보고 계신 것 같으니, 오늘의 메뉴를 발표하, 기 전에!”

[‘골목의 미식가’님이 온몸을 비틀며 아우성칩니다.]

[‘풍요와 파괴의 군주’님이 호기심에 숨을 헐떡입니다.]

[‘번개의 아내’님이 60초 광고 스킵 버튼을 찾습니다.]

“A 랭크 이상의 헌터를 후원해주시면, 먹방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번개의 아내’님이 뜻밖의 요구에 고민합니다.]

[‘경계를 넘나드는 광대’님이 당신의 광기를 칭찬합니다.]

[‘풍요와 파괴의 군주’님이 다른 초월자들을 다그칩니다.]

[‘낮은 시선의 소유자’님이 500만 포인트를 사용하여 자신의 수혜자를 텔레포트 시킵니다.]

성공이다.

“여긴, 어디야? 분명 ‘불가사리’를 상대하고 있었는데?”

약간 넋이 나간 듯 보이지만, 중무장한 장비를 보니 A 랭크 이상의 헌터가 확실하다.

사실은 농담이었다고 말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이 방법이 제대로 먹혀들어 갈 줄이야.

“안녕하세요. 여긴 김요한 헌터 세력의 주둔지 근처에요. 저는 정현이라고 해요.”

“응? 김요한 헌터의 영역이라면, 인천 쪽이네. 춘천에서 인천까지 단숨에 이동시키다니 후원자님은 대체 어떤 의도이신지….”

안경을 쓴 남성은 잠시 침묵하더니 말을 이었다.

“아, 우리 후원자님께서 너를 딱 한 번만 도우라네. 그러면 원래 있던 곳으로 보내준다고. 후원자님의 부탁이라면 어쩔 수 없지.”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릴게요.”

“나는 서용현이야. 그러면 내가 해야 할 건 뭔데? 시간 아까우니 빨리빨리 끝내자고.”

“잠시만요. 저도 그러고 싶지만 초월자님들께 약속했던 게 있어서요.”

“약속?”

[‘낮은 시선의 소유자’님이 눈도 깜빡이지 않고 당신을 지켜봅니다.]

[‘풍요와 파괴의 군주’님이 ‘낮은 시선의 소유자’님에게 고마움을 표합니다.]

“‘낮은 시선의 소유자’님 후원 정말 감사합니다. 그러면 오늘의 메뉴를 발표하겠습니다. 바로 ‘불쥐’라는 D급 괴수로 만든 쥐고기입니다! 쥐고기는 예전에 베트남에서 유행이었는데, ‘불쥐’로 만든 쥐고기는 과연 맛이 어떨지 제가 한 번 먹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뭐? 장난해? 괴수를 먹는다고?”

어이없어하는 서용현을 잠시 무시하고 식도로 ‘불쥐’ 시체를 손질하기 시작했다.

신속히 가죽을 벗겨내고, 이어서 머리와 꼬리를 잘라냈다. 그 후, 배를 갈라 내장과 뼈를 제거하고 살코기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잘 달궈진 프라이팬에 올렸다.

이윽고 시큼한 고기 익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풍요와 파괴의 군주’님이 고기가 어서 익기만을 기다립니다.]

[‘번개의 아내’님이 괴수를 요리하는 당신에게 신기함을 감추지 못합니다.]

“이제 고기가 다 익은 것 같으니, 한 번 먹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손으로 조심조심 고기의 끝을 집어 한 점 입에 넣었다.

“의외로 삼겹살 맛이 나는 것 같으면서도, ‘불쥐’가 용암에서 주로 살아서 그런지 매콤한 불맛이 입에서 톡 쏘네요. 억! 자, 잠깐만!”

“야? 괜찮아? 그러니까 누가 괴수 고기 먹으래? 어서 뱉어!”

서용현이 등을 두드리려는 걸 말리고 눈물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 이렇게 맛있는 고기를 먹어본 지가 언제인지…. 정말 너무 맛있네요. 주변에 이런 식자재가 있었는데 여태 몰랐다니…. 먹방 BJ로서 자격이 없네요.”

마지막 한 조각까지 최대한 맛있게 먹으며, 말을 마쳤다.

“그럼 식사를 마쳤으니, 저는 이만 미션을 수행하러 가보겠습니다. 다음 먹방에서 뵙도록 할게요.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풍요와 파괴의 군주’님이 아쉬워하며 1만 포인트를 후원합니다.]

[‘골목의 미식가’님이 3000 포인트를 후원합니다.]

[‘번개의 아내’님이 4000 포인트를 후원합니다.]

포인트를 후원하는 메시지가 끝없이 이어지고, 서용현이 조용히 물었다.

“진짜 맛있어?”

“그럴 리가요. 하수구 물 떠 마시는 느낌이에요.”

역겨움을 간신히 참아낼 때, 기다리던 다른 메시지도 생성되었다.

[고유 능력 ‘식탐’으로 ‘불쥐’의 특성이 귀속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