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후원 미션 (3)]
‘불쥐’는 용암에서 주로 서식하다 보니 불에 내성만큼은 그 어떤 괴수보다 강하다.
따라서 며칠 전 버렸던 ‘불쥐’ 시체를 요리해 먹으면 그와 연관된 특성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예상대로 상태창을 확인하니 ‘불 내성’ 특성이 새로이 생겨났다.
이제는 정말로 ‘히드라’를 잡으러 갈 준비가 끝났다.
“괴수 고기를 요리하고, 먹방이네 뭐네 초월자님들께 말을 거는 걸 보니 그쪽도 정상은 아닌 것 같네.”
“요즘 세상에 뭐 어때요?”
“그냥 그렇다는 거지. 슬슬 남겨진 일행들이 걱정되니 빨리 움직이자고.”
“걱정하지 마세요. 저도 해지기 전까지 주둔지로 복귀하지 않으면 죽은 목숨이라 낭비할 시간이 없거든요.”
“해지기 전? 주둔지? 뭐! 그렇다면, 네가 그 ‘후원 미션’의 주인공? 이름이 같길래 그저 우연인 줄로만 알았는데, 동명이인이 아닌 본인이었구나!”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네요.”
“와, 어쩐지 우리 후원자님께서 거금을 스스럼없이 쓰셨다 했다.”
내가 미션의 주인공이란 사실을 알게 되자 서용현은 유명인이라도 만난 듯 신기하단 눈빛으로 위아래를 훑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사인과 사진을 부탁받고 가족관계부터 키, 몸무게, 숨겨둔 연인 같은 질문 공세가 쏟아질 기세라 얼른 목적을 밝혔다.
“제가 부탁드릴 건 ‘히드라’ 퇴치에요.”
“‘히드라’? 이전에 두어 번 퇴치해보긴 했는데, 우리 둘이서 그 괴수를 상대한다고? 아무리 나라도 그건 좀 무리일 것 같은데?”
내 말에 서용현은 다소 심각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히드라’는 기본적으로 머리를 잘라도 오 분 후에 잘린 부위에서 두 갈래로 새로운 머리가 자라나. 그래서 정공법은 머리를 자르고 즉시 불로 지지는 거야. 그런데 안타깝게도 난 불을 만들어낼 수가 없어.”
“그 부분은 제가 해결할 수 있어요. 오 분 내에 모든 머리를 자르는 건 가능하신 거죠?”
“당연하지! 이래 봬도 랭크 SS의 헌터라고.”
“그럼 바로 출발할까요?”
주둔지로 향하는 길, 서용현은 내게 이것저것을 물어봤다.
“혹시 직업은 어떤 거야? 나는 묵직한 대도를 쓰는 전사인데, 너는 조그마한 칼을 쓰는 암살자?”
“아니에요. 직업은 연금술사예요. 다만 재료를 손질할 때 검이 필요하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오호? 우리 일행의 연금술사와는 약간 다른가 보네. 그러면 고유 능력이나 특별한 특성 같은 건 있어?”
“헌터가 된 지 이제 겨우 일주일 차에요. 아직 ‘불 내성’ 말고는 딱히 별다른 능력이 없어요. 아! 기름을 허공에서 연성할 수 있는 정도? 멸망 이전이었다면 떼부자가 될 수 있는 능력인데, 지금은 쓸모없는 능력이에요.”
그 물음에 거짓말을 지어, 내 이야기인 듯 들려주었다.
자신의 정보를 술술 부는 것은 순진한 사람들이나 하는 짓.
지금도 이 세계에서 정보는 자산이나 마찬가지지만, 앞으로 정보의 가치는 더 상승할 것이다.
‘시련’ 시작 전 고작 ‘후원 미션’에 베팅을 걸었단 이유로 메인 MC ‘캠비온 녹스’는 ‘자신이 후원한 헌터를 통해 미션이 성공하도록 도울 수도, 방해할 수도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규칙은 분명 ‘시련’에도 적용될 것이다.
즉, ‘시련’에 돌입하면 목적에 따라 초월자들은 자신이 후원한 헌터를 통해 서로를 견제할 것이란 의미.
지금은 서용현이 나를 돕는다고 해도 다음번에 만났을 땐 적대 관계가 될 수도 있다.
그러니 함부로 내 정보를 내어줄 수는 없다.
[‘별의 적대자’님이 당신의 세 치 혀에 경의를 표합니다.]
[‘낮은 시선의 소유자’님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습니다.]
“딱히 특별한 점은 없구나? 베팅의 주인공으로 선정되었길래 뭔가 대단한 거라도 있을 줄 알았지.”
“저도 처음엔 제게 숨겨진 힘이 있는 줄 알았어요. 저 앞이 ‘히드라’가 은신한 곳이에요.”
“그럼, 일 좀 해볼까?”
‘히드라’가 나타났던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기다리기라도 했던 듯 땅이 흔들렸다.
[A급 괴수 ‘히드라’가 등장합니다.]
[‘열두 과업의 전사’님이 투지를 불사릅니다.]
[‘현인 반수’님이 이전의 고통에 몸서리칩니다.]
[‘경계를 넘나드는 광대’님이 인상을 쓰며 술병을 집어 던집니다.]
“부탁드릴게요.”
“나만 믿으라고!”
서용현이 거대한 검을 뽑아 드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나는 근처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올라갔다.
무너져내린 건물의 꼭대기에 다다르니, 이미 여섯 개의 머리가 베어져 있다.
서용현이 콧노래를 부르며 가볍게 대도를 한 번 휘두르면, ‘히드라’의 머리가 몸에서 분리되었다.
‘히드라’는 거대한 몸을 비틀면서 독성 연기를 뿜어내 저항해보지만, 서용현 앞에선 소용없었다.
녹색 연기는 서용현의 몸에 닿기도 전, 검에서 뻗어나가는 엄청난 풍압에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게 SS랭크 헌터의 실력…. 이제 나도 할 일을 해야지.”
건물은 ‘히드라’의 전체 몸 크기보다 살짝 높아서, 여기에서 뛰어내린다면 그대로 ‘히드라’의 몸에 올라탈 수 있다.
“이 정도 높이면 충분하네.”
아래의 싸움은 더 지켜볼 필요도 없었다.
“어이~ 약속대로 내가 할 일은 끝냈다. 오 분이야. 상처 부위를 어서 불로 지져.”
서용현은 갖고 놀았다고 표현해야 할 정도로 손쉽게 ‘히드라’의 모든 머리를 베어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지.”
서용현의 외침을 듣자마자 나는 눈을 질끈 감고 건물에서 뛰어내렸다.
낙하하는 나를 사방에서 때리는 매서운 바람을 느끼며 말했다.
“‘특급 냉장고’에 남은 기름 전부!”
[‘특급 냉장고’에 보관된 기름이 모두 방출됩니다.]
엄청난 양의 기름이 ‘히드라’의 위로 폭우처럼 쏟아부었고,
“화끈하게 가자아아아아아아아-!”
그대로 그 위에 떨어지며 라이터를 켰다.
기름에 불이 붙어, ‘히드라’의 전신에 화염이 피어나고 나는 그 화염에 감싸졌다.
[A급 괴수 ‘히드라’를 퇴치하였습니다.]
[기여도에 따라 보상이 차등 배분됩니다.]
[1만 포인트를 지급받습니다.]
[‘특급 냉장고’에 ‘히드라의 맹독’이 보관됩니다.]
보상과 관련된 메시지가 새겨지고, 이어 초월자들의 후원이 쏟아졌다.
[‘현인 반수’님이 복수감에 쾌감을 느끼며 4000 포인트를 후원합니다.]
[‘낮은 시선의 소유자’님이 만족감에 고개를 끄덕이며 5만 포인트를 후원합니다.]
[‘경계를 넘나드는 광대’님이 당신이 살아남은 것에 불만을 표합니다.]
쏟아지는 메시지 속, ‘불 내성’의 힘으로 나는 안전하게 ‘히드라’의 시체 위에서 내려왔다.
서용현은 ‘히드라’를 쓰러뜨리고 다시 텔레포트로 복귀했다.
500만 포인트란 거금을 스스럼없이 두 번이나 사용한 초월자를 뒷배경에 둔 SS랭크 헌터.
적으로 만나게 된다면 상당히 까다로울 것 같다.
“서용현 헌터라, 왠지 다시 만날 것 같은 느낌이 드네.”
이번에는 엄청난 뒷배경을 둔 그가 나를 도왔기 때문인지, 미션을 방해하러 나타난 헌터가 보이지 않았다.
잘 풀린 것에 안심하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해가 지기까지는 아직 약간의 시간이 남아 있다.
“시간도 남았는데, 이 기회를 버릴 수는 없지.”
이제 코앞의 주둔지로 돌아가면 미션은 끝나지만 나는 ‘히드라’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여전히 불타고 있는 ‘히드라’의 시체에서 꼬리를 식도로 팔뚝 길이만큼 썰었다.
오줌 지린내.
맹독.
뱀.
먹기 싫은 요소가 산더미 같지만, 그런데도 먹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 한탄스럽다.
난 눈을 질끈 감고, 구더기 꿈틀거리던 치즈보다는 낫다고 자기 위로를 하며 입안에 꼬리를 쑤셔 넣었다.
최소한의 씹음과 힘겨운 삼킴.
맛은 역시나 드럽게 없다.
그냥 익힌 뱀이니 맛있을 리가 없다.
[‘풍요와 파괴의 군주’님이 당신의 식성에 감탄하며 1만 포인트를 후원합니다.]
[‘번개의 여신’님이 역겨운 표정을 짓습니다.]
[고유 능력 ‘식탐’으로 ‘히드라’의 특성이 귀속됩니다.]
그렇지만, 어떻게든 부가 옵션을 늘려야 한다. 앞으로 뭘 더 먹어야 할지 모르는데 겨우 이 정도에 무릎 꿇어선 안 된다.
그렇게 나는 무릎 꿇은 채 눈물을 흘리며 억지로 입안의 꼬리를 모두 삼켜야 했다.
힘겹게 얻은 특성은 ‘독 내성’.
언젠가 영화에서 보았던 ‘죽은 멍청이’처럼 베여도 신체가 다시 재생되는 능력 같은 게 생길 줄로만 알았는데, 약간은 아쉽다.
그나마 꼬리를 씹으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에 초월자들이 즐거워하며 포인트를 많이 후원해준 걸로 위안 삼아야겠다.
나름의 식사를 마치고, 나는 주둔지를 향해 발을 뻗었다.
***
미션 때문인지 주둔지의 입구는 그 어떤 때보다도 경계가 삼엄했다.
“저기 보입니다.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우리 주둔지의 샛별 같은 존재! 모두 박수!”
평상시 아는 체도 않던 헌터들이 나를 보자마자 환호성을 질렀다. 되도 않는 아부를 하는 자도 있었다.
베팅의 대상에 선택되었단 사실이 나를 특별하게 만든 것 같다.
환호 속에 주둔지에 발을 들이자 곧바로 메시지가 떴다.
[플레이어 정현이 ‘후원 미션’을 클리어했습니다.]
[플레이어 정현에게 ‘직업 전용 장비’가 지급됩니다.]
[베팅 결과에 따라 포인트가 재배분됩니다.]
「예상외의 결과에 충격을 받으신 분도, 예상이 맞아 즐거워하시는 분도 보이네요. 어찌 되었든 베팅은 여기에서 종료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다고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직 본격적인 시작도 안 하였으니까요.」
「그러면 지체없이 바로 메인 이벤트, ‘시련’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알 수 없는 자’님이 음흉한 미소를 짓습니다.]
[‘허영의 사내’님이 자신의 승리를 예감합니다.]
[‘방구석 만화광’님이 새로운 페이지를 펼칩니다.]
「모든 초월자님들 부디 즐거운 시간 되시길.」
「아, 참! 플레이어님들은 당연히 최악의 시간 되시길 바랄게요!」
[‘시련’이 시작됩니다.]
[‘시련’의 난이도를 조정 중입니다.]
“기뻐할 틈도 안 주네.”
[진광대왕의 심판]
- 대상 플레이어 : U+2641 행성 생존자 전원
- 클리어 조건 : 7일 내, 모든 플레이어 수를 절반으로 줄일 것.
- 성공 보상 : 다음 시련 진출
- 실패 페널티 : 전체 플레이어의 3/4에 해당하는 인원 무작위로 사망
- 만일 후원하던 플레이어가 한 명도 남지 않았을 경우, 후원자님께서는 더 게임에 참여할 수 없으니 주의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후원할 대상 선별은 다음 시련까지 가능합니다. 신중한 선택 부탁드립니다.
[진광대왕의 심판이 시작됩니다.]
[U+2641 행성에 ‘도산지옥’이 구현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