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계의 요리사-11화 (12/168)

[6. 화탕지옥 (1)]

“나은아! 이쪽이야.”

이나은의 말대로 주둔지 입구에 도착하자 다른 두 헌터가 우리를 반겼다.

“죄송해요. 정현 헌터 데리고 오느라 약속 시간보다 늦었네요.”

“괜찮아, 얼마 늦지도 않았는걸.”

“혹시 부탁드린 거는 어떻게 되었나요?”

김화영은 송태섭이 멘 거대한 가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당연히! 오는 길에 한바탕 식량 창고에서 난리 치고 왔지. 재미있었어.”

“식량은 대충 챙겼어. 이 정도면 한동안 배고플 일 없을 거야.”

대충 챙겼다기에는 꽤 많은 양을 챙긴 듯, 가방은 매우 무거워 보였다.

“‘물류 창고 단지’에 도착할 때까지는 충분할 것 같네요. 짐꾼은 번갈아 가면서 맡죠.”

“그럴 필요 없어. 그 가방 내가 맡을게.”

“홀로 맡는다고요? 무게나 부피 때문에 움직임에 많은 제약을 줄 텐데, 번갈아 가면서 맡는 게 나아요. 굳이 한 사람에게 부담을 줄 필요는 없죠.”

“부담이 안 되니까 하는 말이지. 자, 다들 집중하세요. 마술 하나 보여드리겠습니다.”

잠깐의 실랑이 끝에 가방을 빼앗자,

“하나, 둘, 셋!”

가방은 순식간에 ‘특급 냉장고’에 보관되었다.

“꺼내는 것도 자유로우니 걱정하지 마세요.”

피날레 인사하는 시늉을 하자, 김화영이 손뼉을 치며 이것저것 물었다.

“우와! 뭐야? 특성이야? 아니면 고유 능력? 이런 거 처음 보는데? 엄청 편해 보인다!”

“무슨 방법인지는 차차 듣는 거로 해요.”

그런 김화영을 말리며 이나은이 지도를 펼쳤다.

“짐꾼도 정해졌으니 앞으로의 일정부터 빠르게 이야기할게요. 저희는 먼저 ‘부평 지하상가’에 갈 겁니다.”

“지하상가? ‘물류 창고 단지’로 가는 거 아니었어?”

“최종 목적지는 ‘물류 창고 단지’가 맞아요. 지하상가엔 볼일이 있어서 잠시 들리는 거뿐이에요.”

“나야, 정현 헌터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 함께하는 거니 상관없어.”

이나은은 지도의 한 곳을 가리키며 설명을 이어가려고 했다.

“자, 여기가 저희 주둔지에요.”

그때, 모두의 눈앞에 붉은 글씨가 새겨지며 그녀의 설명을 방해했다.

「본격적인 두 번째 시련을 시작하기 전에!」

「전체 플레이어 수가 많이 줄어서 안타까운 나머지, 저 ‘캠비온 녹스’는 여러분들을 위해 또 한 번 친절을 베풀려고 해요.」

[‘피의 살육자’님이 강하게 반발합니다.]

[‘캠비온 멀린’님이 ‘캠비온 녹스’님의 선함에 눈물을 글썽입니다.]

「‘랜덤 아이템 박스’ 말고도 선물을 무려 세 개! 세 개나 더 드릴 거에요.」

「다들 뭔지 너무너무 궁금하시죠?」

진짜 너무너무 알고 싶지 않다.

선물이라던 ‘랜덤 아이템 박스’도 결국 플레이어 간에 서로를 죽이게 하기 위한 장치로서 준비된 것.

그 외에 세 가지 선물도 모두 그런 장치임이 분명하다.

이화에게 생일 선물로 받았던 ‘도로 표지판’보다 더 최악의 선물이다.

“중요한 내용인 것 같으니 메시지부터 확인해야 할 것 같은데?”

“네. 그래야겠네요.”

“어차피 난 봐도 잘 모를 테니, 너희가 잘 보고 알려줘.”

「그럼 첫 번째 선물입니다!」

「날도 쌀쌀하니, 여러분들이 따뜻하게 지낼 수 있도록 준비한 선물입니다.」

첫 번째 선물이란 붉은색 글씨가 새겨짐과 동시에 땅이 흔들리며 일정 간격을 두고 갈라지기 시작했다.

「바로 뜨뜻한 ‘지옥불’입니다!」

이후, 갈라진 틈마다 불타는 액체가 흘러나왔다.

「추우면 언제든 들어가서 목욕해도 괜찮다고요!」

[‘만물을 아우르는 자’님이 반신욕을 추천합니다.]

[‘꿈의 정복자’님이 족욕을 추천합니다.]

「물론 목욕 후에는 뼈만 남겠지만요!」

「플레이어만 태우도록 지옥에서 특별 주문 제작된 불길이니, 다른 생명체나 무생물과 선물을 나누어가질 걱정은 안 하셔도 돼요!」

김화영은 뭐가 재밌는지 메시지를 보고 까르륵 웃었다.

“뼈만 남는대! 아, 메인 MC 너무 웃겨. 마음에 쏙 드네.”

「다음 선물도 공개하도록 하죠!」

「여러분들이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매일 22시부터 10시까지는 적적하게 비를 내려드리겠습니다.」

「이 비를 조용히 감상하실 수 있도록, 특별히 닿는 즉시 여러분이 녹아내릴 정도로 강한 산성을 첨부하였습니다. 이 점 참고해서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꼭 실내에서만 감상해주세요!」

“매일 22시부터 10시까지는 밖에 돌아다니지 말라는 이야기네.”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이 절반으로 준 셈이네요. 곧바로 ‘지하상가’로 가려던 계획은 바꾸어야겠어요. 가던 길에 비 맞고 녹아내릴 순 없으니….”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 ‘지옥불’은 닿지 않으면 그만이고, ‘산성비’는 시간을 맞추어 피하면 그만이잖아요. 마지막 선물도 그렇답니다.」

「마지막 선물은 저 대신 ‘초강대왕’님이 직접 여러분들을 위해 준비했는데요.」

「‘화탕지옥의 독기’를 체험할 기회를 드린다고 하네요.」

“‘화탕지옥의 독기’?”

마지막 선물은 곧 사방에 푸른 글씨가 새겨지며 알게 되었다.

[플레이어 ‘이나은’이 ‘화탕지옥의 독기’에 중독됩니다.]

[플레이어 ‘김화영’이 ‘화탕지옥의 독기’에 중독됩니다.]

[플레이어 ‘송태섭’이 ‘화탕지옥의 독기’에 중독됩니다.]

[‘독 내성’ 특성이 발동됩니다.]

[플레이어 ‘정현’이 ‘화탕지옥의 독기’를 견뎌냅니다.]

「공기 중에 지옥의 독기를 살짝 풀었어요. 숨을 일주일 정도 안 쉬면, 그만이겠죠?」

「혹시라도 지옥의 독기가 궁금해서 잠깐 체험해보는 건 상관없지만, 하루 동안 중독 상태에 빠지면 죽게 된답니다!」

「숨을 못 참는 분들은 상점에서 ‘독 내성’이나 ‘독 저항’ 특성 혹은 ‘방독면’ 장비를 구매해 사용하면 큰 문제 없을 거예요.」

「제가 또 누구예요! 플레이어님들이 최악의 시간을 보내실 수 있도록 돕는 메인 MC 아니겠습니까! 특별 할인가를 적용해서 세 가지 상품을 원래 포인트의 1,000% 가격에 판매하도록 하겠습니다!」

[‘캠비온 녹스’님의 특별 할인이 적용됩니다.]

[상점의 ‘독 내성’ 특성 가격이 상승하여 1,000만 포인트에 판매됩니다.]

[상점의 ‘독 저항’ 특성 가격이 상승하여 300만 포인트에 판매됩니다.]

[상점의 ‘방독면’ 장비 가격이 상승하여 150만 포인트에 판매됩니다.]

「물론 지옥의 독기는 무척이나 세서, ‘방독면’ 장비는 이틀만 써도 망가진다고 하네요.」

「참, ‘독 저항’ 특성이 있어도 모든 스탯이 하루에 10씩 깎여나간답니다.」

「이왕이면 ‘독 내성’ 특성을 구매해야겠죠?」

「많은 구매 부탁드리며, 선물 증정을 마칩니다!」

「최악의 시련 보내세요!」

“일정을 이야기할 때가 아닌 거 같은데?”

“제길! 하루에 모든 스탯이 10씩 깎여나가는 건 너무하잖아! 그렇다고 이틀마다 150만 포인트를 쓸 수도 없는 노릇이고. 1,000만 포인트는 더 말이 안 되잖아!”

“페널티를 감수한 채 이번 시련을 해결하라는 것 같은데요? 포인트를 많이 쓰던가, 스탯을 포기하던가. 그나마 정현 헌터는 ‘독 내성’ 특성이 있으셔서 해당 사항 없는 내용이네요.”

앞선 ‘도산지옥’의 가장 큰 페널티는 괴수 탓에 주둔지 바깥으로 나갈 수 없는 것이라면, 이번 ‘화탕지옥’에서 지금껏 확인된 페널티는 총 세 가지.

그 중, ‘지옥불’과 ‘산성비’는 ‘캠비온 녹스’가 말했듯 주의만 한다면 크게 문제 될 건 없다.

하지만 마지막 페널티는 그렇지 않다.

공기 중에 독기를 풂으로써, ‘독 내성’이나 ‘독 저항’ 특성, 혹 방독면을 비싼 포인트를 주고서라도 생존을 위해 반드시 구매하도록 만들었다.

보유한 포인트로 그를 구매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모두 이번 시련에서 걸러지고, 다음 시련부터는 포인트를 후원받은 헌터만이 남을 것이라는 간접적인 의미기도 하다.

“아니, 어쩌면 세 사람한테도 해당 사항이 없어질 수도 있어요.”

그러나, 이건 내겐 기회다.

“아직 포인트 낭비하지 마세요. 저랑 두 가지만 약속해 준다면 해당 사항을 없애 드릴게요.”

내 말에 일행의 눈길이 모였다.

“들어나 보죠. 밑져야 본전이니.”

“첫 번째 약속. 제가 지금부터 말하는 내용은 이 밖으로 절대 퍼져서는 안 돼요.”

“한 일행인데, 그건 당연한 거지. 뭐, 그런 약속을 해?”

단단히 주의시키고, 사실 전투 능력이 거의 없는 전문계 직업을 갖고 있음을 고백했다.

“그게 왜? 눈치채곤 있었는데, 뭐 어때? 전문계 직업은 전투 말고도 도움 되는 부분이 많으니.”

“그러니까 별로 중요한 것 같지도 않은 걸 심각하게 이야기하고 그래.”

김화영이나 송태섭과는 달리 이나은은 입술만 깨문다.

예상대로 나를 버릴지 말지를 재는듯하다.

이나은과 함께하기로 마음먹고 제일 신경 쓰인 점은, 그녀가 생존하는 데에 있어 내가 필요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필요하지 않다면 그녀는 굳이 나와 함께하지 않을 테니.

반면, 나는 반드시 그녀와 함께해야 한다.

주둔지 바깥에서 수연이를 구출하고 이화까지 찾기 위해선, 그녀 정도의 강한 헌터를 곁에 두어야 한다.

따라서 내 가치를 증명하기 전까진 최대한 전투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숨기려고 했다.

하지만 이렇게 가치를 증명할 기회가 주어졌는데, 이 사실을 숨길 이유는 없다.

“그 전문계 직업 덕분에 지금 상황을 해결할 수 있거든요.”

“오! 아까 보여준 마술도 직업 때문에 가능했던 거구나!”

“맞아요. 어떤 직업인지, 어떤 방법인지 자세한 정보는 다 밝힐 수 없는 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대충은 그러리라 생각했었는데…. 지금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지 없을지, 일단 증명부터 해보세요.”

팔짱을 낀 채, 이나은은 냉랭하게 말했다.

“알겠어. 두 번째 약속은 그다음에 말할게.”

김요한 세력을 무너뜨리고 그저 지도만 찾지는 않았다.

그동안 내 직업과 각종 특성에 관해서도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 결과, 새롭게 알아낸 ‘한솥밥 먹는 사이’ 특성의 또 다른 효과가 있다.

이는 세 끼 이상 함께 식사한 사람을 대상으로 발동할 수 있다.

[‘한솥밥 먹는 사이’ 특성이 발동됩니다.]

[플레이어 ‘이나은’이 플레이어 ‘정현’의 ‘독 내성’ 특성 효과를 받습니다.]

[플레이어 ‘김화영’이 플레이어 ‘정현’의 ‘독 내성’ 특성 효과를 받습니다.]

[플레이어 ‘송태섭’이 플레이어 ‘정현’의 ‘독 내성’ 특성 효과를 받습니다.]

[플레이어 ‘이나은’이 ‘화탕지옥의 독기’를 견뎌냅니다.]

[플레이어 ‘김화영’이 ‘화탕지옥의 독기’를 견뎌냅니다.]

[플레이어 ‘송태섭’이 ‘화탕지옥의 독기’를 견뎌냅니다.]

그리고 이때는 내가 지닌 ‘상점에서 구매 가능한’ 특성을 한 가지 공유할 수 있게 된다.

당연히 일행에게 공유할 특성으로 선택한 것은 ‘독 내성’.

“증명은 이쯤이면 됐나?”

“특성을 공유한다니…. 이런 말도 안 되는….”

[‘부정의 복수자’님이 부당하다며 항의합니다.]

[‘풍요와 파괴의 군주’님이 다시 한번 당신에게 전속 계약을 요청합니다.]

이 정도면 내 필요성은 이나은에게 충분히 어필되었으리라 믿는다.

“좋네요. 합격이에요. 두 번째 약속은 뭐에요?”

“오늘 하루만 내가 길잡이 역할을 하게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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