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화탕지옥 (9)]
내 말에 김동건과 빙의된 여성은 배를 부여잡고 미친 듯이 웃었다.
그들의 눈치를 살피며 걸음을 멈추지 않고, ‘Y 구역’과 연결된 문까지 나아갔다.
“죄송하지만, 그러지 못하겠네요.”
눈꼬리에 맺힌 눈물을 닦아내며 여성이 말했다.
“잠시 여흥을 즐기게 해주어서 고맙군요. 그래도 초월자님의 뜻에 따라 그쪽 두 분 살려드리지는 못하겠어요. 대신에 편하게 죽을 수 있도록 해드리죠.”
이윽고 웃음을 멈추고 곤봉을 쥔 상인들에게 손을 뻗었다.
“저 두 헌터를 고통 없이 보내주세요.”
그 순간, 푸른 글씨가 새겨지기 시작했다.
“김화영 헌터! 지금이에요!”
[플레이어 ‘이나은’에게 플레이어 ‘김한나’의 ‘랜덤 아이템 박스’ 1개가 귀속됩니다.]
[플레이어 ‘이나은’에게 플레이어 ‘손동하’의 ‘랜덤 아이템 박스’ 2개가 귀속됩니다.]
[플레이어 ‘송태섭’에게 플레이어 ‘박상민’의 ‘랜덤 아이템 박스’ 1개가 귀속됩니다.]
[플레이어 ‘이나은’에게 플레이어 ‘이수민’의 ‘랜덤 아이템 박스’ 1개가 귀속됩니다.]
[플레이어 ‘송태섭’에게 플레이어 ‘이찬수’의 ‘랜덤 아이템 박스’ 1개가 귀속됩니다.]
[플레이어 ‘이나은’에게 플레이어 ‘서강현’의 ‘랜덤 아이템 박스’ 2개가 귀속됩니다.]
[플레이어 ‘송태섭’에게 플레이어 ‘이준’의 ‘랜덤 아이템 박스’ 1개가 귀속됩니다.]
푸른 글씨를 읽은 여성이 당황한 사이, 김화영 헌터는 수연이의 손을 잡고 계단 위로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너희 쪽에 주도권을 쥐여준 적은 없어. 이번에는 모든 것을 철저하게 계산하고 왔으니까. 자, 다시 한번 제안할게. 이참에 저 둘은 놓아주고, 김동건 헌터와 나. 단둘의 싸움으로 결판을 내는 건 어때?”
이제 ‘로비’에 남은 유일한 변수는 김동건.
변수를 차단하기 위해 김동건을 또 한 번 도발했다.
“모습을 숨기는 특성도 그렇고, 정말 겁이라도 먹은 거야?”
“네놈 따위에게 무시 받을 내가 아니란 말이다!”
그에 반응해 김동건은 격하게 화를 내며, 반지를 껴 모습을 감췄다.
“꺄악-!”
그런 그가 다시 나타난 곳은 내 앞이 아닌, 김화영과 함께 계단을 오르던 수연이의 뒤.
“초월자님께 대충 들어서 알고 있거든. 이 여자를 죽이면 네 놈도 같이 죽는다며?”
[‘부정의 복수자’님이 당황합니다.]
[‘알 수 없는 자’님이 ‘후원 미션’을 자신의 수혜자에게 노출한 ‘부정의 복수자’님에게 분노를 표출합니다.]
[‘무형의 관리자’님이 부정행위를 지적합니다.]
[‘경계를 넘나드는 광대’님이 샴페인을 터뜨립니다.]
[‘별의 적대자’님이 ‘부정의 복수자’님을 비웃습니다.]
이후, 김동건은 수연이의 복부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빙고. 제 꾀에 제가 넘어갈 줄 알았지. 예상한 대로 움직여줘서 고맙다.”
[‘콩 한 쪽도 나눠 먹는 사이’ 특성이 발동됩니다.]
[플레이어 ‘정현’이 플레이어 ‘임수연’에게 가해지는 공격을 함께 받게 됩니다.]
[‘놀부부인의 주걱’의 절대 방어 판정이 적용됩니다.]
[밥 푸던 주걱으로 플레이어 ‘김동건’의 마른 뺨을 우지끈 때리니 플레이어 ‘김동건’은 두 눈에 불이 화끈 일고 정신이 아찔하다.]
허공에 나타난 주걱이 김동건의 뺨을 강하게 후려쳤다.
[‘놀부부인의 주걱’으로 인해 플레이어 ‘김동건’이 하루 동안 기절합니다.]
[‘놀부부인의 주걱’으로 인해 플레이어 ‘김동건’의 허기가 해결됩니다.]
[‘놀부부인의 주걱’의 내구도가 0이 되어 파괴됩니다.]
기절한 김동건은 그대로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이러니까 나한테 무시 받는 거지.”
그를 비웃으며, ‘Y 구역’으로 향하는 문을 크게 세 번 두드렸다.
[‘무형의 관리자’님이 만족합니다.]
[‘부정의 복수자’님이 미친 듯이 분노합니다.]
“그쪽! 건드릴 상대를 골라도 단단히 잘못 골랐어요!”
빙의된 여성은 경멸 섞인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편하게 죽을 수 있도록 해드린다니까, 왜 굳이 힘든 길로 돌아가시는지 모르겠네요. 이제 자비는 없을 거예요!”
그 말과 함께 ‘로비’의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곤봉을 든 사람들이 별안간 각자 새로운 무기를 장비하기 시작했다.
칼, 창, 활, 총, 단검 등. 종류도 각기 달랐다.
마치 헌터들이 상점에서 무기를 구매해 장비하는 모양새.
설마, 이 미친 초월자가!
[‘부정의 복수자’님이 ‘부평 지하상가’에 있는 플레이어 전체를 대상으로 ‘후원 미션’을 등록합니다.]
[후원 미션]
- 대상 플레이어 : ‘부평 지하상가’에 있는 플레이어 전원
- 클리어 조건 : 플레이어 ‘정현’을 쓰러뜨릴 것.
- 성공 보상 : 전설급 장비 지급
- 실패 페널티 : 없음
[수락하시겠습니까?]
[Y/N]
“초월자님께서 그쪽을 위해, 특별히 여기 사람들 모두를 헌터로 만들어 주셨거든요. 이제 막 헌터가 되었다고 해도 72명의 헌터가 자기 목숨 생각지 않고 그쪽에게 달려들면 제아무리 잘났어도 버텨내지 못하겠죠. 각오하세요!”
F급 헌터 한 명 붙잡겠다고, 72명을 헌터로 만들어버렸다고?
[‘경계를 넘나드는 광대’님이 플레이어 정현을 대상으로 ‘후원 미션’을 등록합니다.]
[후원 미션]
- 대상 플레이어 : 정현
- 클리어 조건 : ‘부평 지하상가’에서 빠져나갈 것.
- 성공 보상 : 직업 승급 자격 해금
- 실패 페널티 : 보유 포인트 500 차감
[수락하시겠습니까?]
[Y/N]
“정말 멍청하네.”
[‘부정의 복수자’님이 등록한 ‘후원 미션’을 거부합니다.]
[‘경계를 넘나드는 광대’님이 등록한 ‘후원 미션’을 수락합니다.]
[‘부정의 복수자’님이 분노합니다.]
[‘무형의 관리자’님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경계를 넘나드는 광대’님이 침을 사방으로 튀기며 크게 웃습니다.]
72명으론 아무래도 부족하지 않나?
당장에 신참 헌터 몇백 명이 와도 지금 상황을 뒤집을 수는 없을 텐데.
저 정도 포인트를 버릴 거면, 차라리 나한테 후원해 줄 것이지.
아무리 생각해도 멍청한 초월자에게 찍혀서 다행이다.
“건드릴 상대를 잘못 고른 건 그쪽이야.”
헌터가 된 사람들이 달려들 때, 거대한 폭발음이 들렸다.
“어째서 폭발이…. 저는 지시한 적 없는데….”
“지시는 내가 했거든.”
내가 붙잡은 문고리에서 열기가 느껴지자마자 문을 열어젖혔다.
“선택하라고 했잖아. 거래할 건지. 죽을 건지.”
열린 문틈으로 ‘지옥불’이 활활 타오르며 ‘로비’로 쉴 새 없이 흘러들어왔다.
이제야 헌터가 된 이들이 ‘불 내성’ 특성이 있을 리가 없다.
[플레이어 ‘정현’에게 플레이어 ‘한경희’의 ‘랜덤 아이템 박스’ 1개가 귀속됩니다.]
[플레이어 ‘정현’에게 플레이어 ‘허지우’의 ‘랜덤 아이템 박스’ 1개가 귀속됩니다.]
메시지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가까이에 있던 사람들부터 ‘지옥불’에 피부가 녹아내려 뼈만 남았다.
[‘남동에서 시작된 바람’님이 당신의 지략에 감탄합니다.]
[‘간웅’님이 불길에 시선을 돌립니다.]
[‘꿈의 인도자’님이 쓰러진 헌터들을 위해 눈물을 흘립니다.]
이어서 증오를 담아 ‘지하의 지배자’에게 말했다.
“‘지하의 지배자’? 이름도 웃기네. 빙의를 풀고 돌아가도, 죽는 건 똑같을 거야. 그것도 최대한 비참하고, 고통스럽게. 내가 이나은 헌터에게 특별히 부탁했으니까. 지금쯤 나머지 내 일행은 너희가 있는 ‘G 구역’에 거의 다 왔을 거야.”
빙의된 여성은 미간을 찌푸리며 소리를 지르지만, 그 의미를 알아듣기도 전에 ‘지옥불’에 휩쓸려 뼈만 남았다.
[‘콩 한 쪽도 나눠 먹는 사이’ 특성이 발동됩니다.]
[플레이어 ‘정현’이 플레이어 ‘임수연’과 보상을 나누어 받게 됩니다.]
[플레이어 ‘정현’이 획득한 ‘랜덤 아이템 박스’ 78개 중 39개가 플레이어 ‘임수연’에게 귀속됩니다.]
“공격도 같이 받고, 보상도 같이 나누고. 정말 최악의 특성이네.”
“현아! 빨리 와!”
‘로비’의 적 세력이 모두 쓰러지고 새겨지는 ‘콩 한 쪽도 나눠 먹는 사이’ 특성의 효과를 욕하려다가 김화영의 경고에 계단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지옥불’을 ‘불 내성’으로 버텼다고 끝난 건 아니다.
역시나 뛰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뒤쪽에서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D급 괴수 ‘불쥐’가 등장합니다.]
“뒤에 불쥐 나타났어!”
저 불쥐 무리를 김화영 홀로 상대할 수는 없다.
계단 앞 떨어져 있던 김동건의 반지를 황급히 줍고 손을 뻗어 김화영의 등을 터치했다.
“어서 가요!”
“알겠어.”
그렇게 세상이 일그러지고, 어느새 눈앞에 김화영이 새긴 표식이 보였다.
“계단 위로 금방 올라올 거예요. 이대로 10번 출구까지 뛰어요!”
미리 새겨두었던 표식까지 순간 이동했다고, 불쥐 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건 아니다.
아래에서 점점 가까워지는 진동에서 벗어나기 위해 ‘G 구역’의 끝에 있는 출구를 향해 쉬지 않고 달렸다.
[플레이어 ‘이나은’에게 플레이어 ‘김한나’의 ‘랜덤 아이템 박스’ 1개가 귀속됩니다.]
[플레이어 ‘이나은’에게 플레이어 ‘손동하’의 ‘랜덤 아이템 박스’ 2개가 귀속됩니다.]
[플레이어 ‘송태섭’에게 플레이어 ‘박상민’의 ‘랜덤 아이템 박스’ 1개가 귀속됩니다.]
[플레이어 ‘이나은’에게 플레이어 ‘이수민’의 ‘랜덤 아이템 박스’ 1개가 귀속됩니다.]
달리는 와중, 보이는 글씨들은 이나은과 송태섭이 계획대로 잘 움직이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곧 ‘G 구역’ 끝, 저 멀리에 10번 출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출구 앞, 이나은과 송태섭은 가로막아선 헌터들을 하나둘 쓰러뜨리며 ‘지하의 지배자’에게 다가갔다.
[플레이어 ‘이나은’에게 플레이어 ‘김윤아’의 ‘랜덤 아이템 박스’ 2개가 귀속됩니다.]
[플레이어 ‘송태섭’에게 플레이어 ‘최동하’의 ‘랜덤 아이템 박스’ 1개가 귀속됩니다.]
[플레이어 ‘이나은’에게 플레이어 ‘박수빈’의 ‘랜덤 아이템 박스’ 3개가 귀속됩니다.]
‘지하의 지배자’를 지키던 헌터들은 결국 이나은과 송태섭의 손에 모두 쓰러졌다.
“드디어 ‘지하의 지배자’만 남았네요. 진짜, 하루가 너무 길었어요. 이제 정말 마지막이에요. 이것만 하면 성공이네요.”
“뭔데?”
“수연아, 손 좀 줘볼래?”
“손?”
수연이의 손가락에 김동건의 반지를 끼워주자, 일렁이며 모습이 사라졌다.
[‘??? ???? ??’ 장비로 인해 플레이어 ‘임수연’이 ‘은신’ 상태가 됩니다.]
“지금은 이나은 헌터 눈에 띄어서 좋을 게 없으니까 이대로 출구로 몰래 올라가. 금방 뒤따라갈게.”
“미안해….”
“미안하다니?”
“나 때문에 이런 일을 다 겪고. 나만 아니었다면 그 많은 사람이 ‘지옥불’에…. 그렇게 될 일도 없었을 텐데.”
“너 때문이 아니야. 그 일은 ‘내’가 저지른 거고, 책임은 저 ‘지하의 지배자’가 져야지. 너는 그냥 구해줘서 고맙다고만 하면 돼. 어쨌든 감사 인사는 이따 하고, 일단 빨리 올라가.”
죄책감을 애써 억누르며, 허공에 미소를 지었다.
수연이는 출구 쪽으로 향한 듯, 대화는 거기에서 끊겼다.
이번에야말로 지겨운 지하상가를 벗어날 때인 것 같다.
“김화영 헌터도 당분간 비밀로 해주실 거죠?”
“오! 나은이가 질투할까 봐 걱정하는 거지? 알겠어, 이 누님만 믿으라고!”
“감사합니다. 이나은 헌터! 송태섭 헌터! 저희 왔어요!”
둘을 향해 손을 흔들자, ‘지하의 지배자’의 표정은 더욱 사색이 되었다.
“마무리는 김화영 헌터가 하는 거로 하죠. 홀로 ‘랜덤 아이템 박스’ 개수 아직 못 채웠잖아요.”
“좋아. 이 여자가 여기 숨어서 저 밑에 사람들 조종한 거지? 맘에 안 들었던 참이었어.”
[플레이어 ‘김화영’에게 플레이어 ‘최예나’의 ‘랜덤 아이템 박스’ 7개가 귀속됩니다.]
[플레이어 ‘임수연’이 지상에 도달했습니다.]
[플레이어 ‘정현’이 ‘후원 미션’을 클리어했습니다.]
[44,444 포인트를 지급받습니다.]
[플레이어 ‘정현’의 ‘직업 승급 자격’이 해금됩니다.]
[‘부정의 복수자’님이 비명을 지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