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계의 요리사-21화 (22/168)

[7. 불편한 동행 (3)]

[플레이어 ‘임수연’이 30만 포인트를 ‘오를레앙의 성처녀’에게 바칩니다.]

“후원받은 포인트를 초월자님께 다시 바쳤다고?”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일이에요.”

“나도 그래. 곧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것 같은데? 기대된다!”

김화영의 말이 끝나자마자 수연이의 몸에서 강력한 빛줄기가 뻗어 나왔다.

세 갈래로 갈라지는 강렬한 빛줄기에 괴수들은 뒤로 주춤하고 김화영은 탄성을 내질렀다.

[성스러운 힘이 1시간 동안 그대를 도우니, 악을 필멸하라!]

빛줄기는 또 다른 글씨가 새겨짐과 동시에 나를 제외한 일행에게 흡수되었다.

[성스러운 힘이 스며들어, 플레이어 ‘이나은’의 ‘신체의 강도’, ‘회복력’, ‘지능’, ‘행운’, ‘체력’이 100 상승합니다.]

[성스러운 힘이 스며들어, 플레이어 ‘김화영’의 ‘신체의 강도’, ‘회복력’, ‘지능’, ‘행운’, ‘체력’이 100 상승합니다.]

[성스러운 힘이 스며들어, 플레이어 ‘송태섭’의 ‘신체의 강도’, ‘회복력’, ‘지능’, ‘행운’, ‘체력’이 100 상승합니다.]

“역시 재미있는 일 벌어지기 시작했다!”

“스탯 상승이라고요? 무슨 이런 고유 능력이 다 있어요?”

“좋기만 하고만. 뭐 어때? 이러면 카드를 뽑을 이유는 없네.”

“안 좋다는 뜻이 아니라…. 이 고유 능력 좋아도 너무 좋잖아요….”

이나은의 말대로다. 1시간 동안, 총 스탯 500 상승. 그것도 한 명도 아니고, 세 명이나. 30만 포인트를 초월자님께 바쳤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도, 너무나 말도 안 되는 고유 능력임은 틀림없다.

[스킬 ‘성역’으로 인해, 플레이어 ‘임수연’이 ‘전투 불가’ 상태가 됩니다.]

[‘성역’ 안의 아군 판정 플레이어의 ‘회복력’이 50 상승합니다.]

[‘성역’ 안의 아군 판정 플레이어의 피로가 모두 회복됩니다.]

“지하상가에서 대체 어떤 사람을 구해 온 거야? 내가 본 버퍼 중에서 이런 버프를 부여하는 사람은 지금껏 본 적이 없어.”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일정 공간 내의 아군에게 버프를 부여하는 희귀한 특성까지. 이 정도면 우리 일행에서 수연이가 어떤 쓸모가 있는지 충분히 설명된 것 같다.

“감사합니다. 도움이 될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이번에는 수연이를 중심으로 희미한 연기가 사방으로 퍼져나가 구형을 이루었고, 그 안에 있던 우리의 몸을 따스한 기운이 감쌌다.

새겨진 글자들이 거짓이 아님임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어제 온종일 지하상가에서 고생하느라 누적된 피로가 싹 가셨다.

연기의 중심에서 수연이는 땀을 뻘뻘 흘리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오를레앙의 성처녀’가 승리를 노래합니다.]

[‘알 수 없는 자’님이 성스러운 힘에 격하게 분노합니다.]

[‘경계를 넘나드는 광대’님이 ‘알 수 없는 자’님에게 위로주를 건네며 깔깔 웃습니다.]

[‘방구석 만화광’님의 눈이 빛납니다.]

[‘캠비온 녹스’님이 당황하며 시스템을 점검합니다.]

[‘균형을 재는 자’님이 눈을 뜹니다.]

“몸이 가벼워졌어. 이 정도로 몸이 개운한 건 오랜만인 것 같네. 아무 문제 없이 괴수를 처치할 수 있겠어.”

가장 먼저 움직임을 보인 건 송태섭. 그는 제일 앞에 멈칫해 있던 불개에게 묵직한 대검을 휘둘렀다. 무척이나 빠른 움직임에 불개는 아무 반응도 하지 못한 채 몸이 반으로 갈라졌다. 그를 신호로 전투는 시작되었다.

“몸이 개운해도, 다들 이 연기에서 벗어나진 말아요. 임수연 헌터에 대해서는 전투 후에 묻도록 할게요.”

멈칫해 있던 불개들이 이빨을 드러내며 달려들기 시작했고, 이나은은 그중 한 마리에게 주먹을 꽂아 넣는 것으로 전투에 가담했다. 이나은의 주먹에 맞은 불개는 깨갱거리며 나가떨어졌지만, 다른 불개들은 으르렁거리며 공격을 계속해서 감행했다.

송태섭과 이나은이 선두에서 괴수와 맞서는 동안, 김화영은 단검을 뽑아 들고 우리 주위를 지켰다.

“호오, 현! 이 누나를 위해 너 제법 재밌는 아이를 데리고 왔구나! 좋아! 수연이라고 했나? 이 멍멍이들 쓰러뜨려 줄 테니, 앞으로도 더 재미난 거 많이 보여달라고!”

“김화영 헌터, 앞에 불조심하세요!”

이나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붉게 부풀었던 불개의 배가 꺼지더니 입에서 불덩이가 두덩이 방출되었다. 그중 하나는 송태섭의 대검에 막혔으나, 남은 하나는 곧장 우리를 향해 날아왔다.

“쓸데없는 소리는 그 정도만 하시고, 이건 저한테 맡기세요.”

서둘러 김화영의 앞에 나서, 불덩이를 몸으로 받아냈다.

“현아!”

“괜찮아. 지옥불에 휩싸여도 괜찮았던 놈이었으니까.”

걱정하는 수연이의 머리를 툭툭 건드리고는, 김화영은 나를 뒤로 밀쳤다.

“그래도 걱정하는 척이라도 해주면 얼마나 좋아요.”

“이 누나한테 그런 거 기대하지 말렴. 대신에 저놈에게 복수는 제대로 해줄 테니까.”

불 내성으로 공격을 버텨낸 나와 위치를 바꾼 김화영이 던진 단검은 불개의 입안에 정확히 꽂혔다. 이어서 반대 손으로 던진 단검도 불개의 눈에 꽂혔다. 다트 던지듯 가볍게 던진 단검들은 모두 불개에게 꽂히고, 곧 괴수가 쓰러졌다는 글씨가 새겨졌다.

“단검이 몇 자루나 있는 거예요? 허공에서 끊임없이 나오네요.”

“영업 비밀! 그만 궁금해하고, 불덩이 날아오면 고기 방패 역할이나 지금처럼 계속해줘.”

“혼자 아무 도움 못 주는 것보단 그게 더 나아서, 그러려고는 했는데. 고기 방패라뇨! 너무하잖아요!”

말다툼하는 와중에도 불개들은 치고 빠지기를 반복하며, 몇몇은 저 뒤편에서 불덩이를 내뿜었다. 그렇지만 우리 일행은 단 한 번의 유효타도 허용하지 않은 채 공격을 받아쳤다. 그 과정에서 오히려 불개들을 쓰러뜨려, 어느새 불개는 단 한 마리만이 남았다.

“이제 한 마리뿐이네요.”

“그런데 뭔가 이상하지 않아?”

“어떤 게요?”

숨을 고르는 이나은에게 송태섭이 의문을 표했다.

“다들 어디서 맞고 왔나, 상처투성이잖아. 우리랑 싸우기 전에 누구한테 당한 것 같은데? 움직임도 뭔가 둔한 것 같고.”

“그렇긴 하네요. 우리랑 싸우기 직전에 다른 헌터들에게 된통 당했나 보죠.”

“그러면 괴수들이라도 보통 회복부터 하려고 하지 않나? 인간한테 바로 덤비는 게 아니라.”

“너무 등급이 낮아서 그럴 지능도 없나 보죠.”

“그러기에는 C급 괴수 중에서 지능이 가장 높다고 악명 높은 놈들인걸. 그 정도 지능도 없다고?”

“뭐, 어때. 이제 재미없는데 남은 괴수도 쓰러뜨리고 물류 창고 단지나 어서 가자.”

“네. 알겠어요.”

대화에 끼어든 김화영의 말에 이나은은 남은 괴수를 향해 나섰다.

“설마…. 아니겠지? 내가 여기에 있는 건 어떻게 알고…. 아니면, 혹시. 당한 건가?”

송태섭이 이상한 말을 중얼거렸지만, 무슨 말인지 물어보기도 전에 새로운 글자들이 새겨졌다.

[‘불개’에게 ‘광포화’ 상태가 부여됩니다.]

[‘불개’의 ‘힘’, ‘민첩’이 300 상승합니다.]

[C급 괴수 ‘불개’가 B급 괴수가 되었습니다.]

[‘불개’의 ‘회복력’, ‘지능’, ‘체력’이 매초 감소합니다.]

“괴수의 능력치 상승…. 이거 제가 잘못 보고 있는 거죠?”

“아니. 내 눈에도 똑똑히 보이는걸. 오늘은 왜 이리 처음 보는 게 많아?”

“단숨에 600 스탯이 상승했다니…. 그래도 B급 괴수니까 주의만 한다면 하나 정도는 충분히 물리칠 수 있어요. 서둘러 쓰러뜨리죠.”

괴수 등급 상승이라는 처음 보는 이상 사태에도 이나은은 침착하게 전투 자세를 취한다.

[‘불개’에게 ‘거대화’ 상태가 부여됩니다.]

[‘불개’의 ‘신체의 강도’, ‘체력’이 300 상승합니다.]

[B급 괴수 ‘불개’가 A급 괴수가 되었습니다.]

[‘불개’의 몸집이 두 배로 증가합니다.]

그런 우리 일행을 비웃기라도 하듯, 괴수의 근육들이 꿈틀거리며 별안간 몸이 커지기 시작했다. 곧 거대한 그림자가 우리 위에 드리워지고, 우리의 허리 정도 오던 불개는 반대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도망칠까?”

“떡하니 유일한 통로를 막고 있는데, 맘대로 되겠어요?”

“그럼 어떻게 하려고?”

“제가 쓰러뜨릴게요. 전 A급 헌터잖아요. 버프까지 받아서 S급 헌터의 스탯과 비슷한 상태이고요.”

내 제안을 거절하고, 이나은은 가슴팍에 두 주먹을 올렸다. 이후, 오른발을 앞으로 한 발짝 내디뎠다.

[플레이어 ‘이나은’이 ‘겨루기 준비’ 상태가 됩니다.]

“또, 아직 보여드리지 않은 제 스킬이면 A급 괴수 정도는 충분해요. 그동안 다들 몸 사리세요. 공격에만 특화된 스킬이니, 누구를 보호하지는 못하니까. 그러니, 다들 피해요!”

불개의 배가 붉어지더니, 엄청난 열기와 함께 거대한 불덩이가 날아왔다. 그에 부딪힌 벽은 단숨에 무너져 내렸다.

다행히 이나은의 경고에 모두 몸을 날려 공격을 피했으나, 수연이 몸 주위의 희미한 연기도 사라져버렸다.

“몇 발 더 날아온다!”

다른 일행이 어찌 되었는지 파악할 틈도 없이, 불덩이를 피해 수연이를 들쳐메고 이리저리로 몸을 날렸다. 지치지도 않는지 불개는 자신의 몸집만큼이나 거대한 불덩이들을 끊임없이 뱉어댔다.

불 내성이 있더라도, 저 정도 크기의 불덩이를 정통으로 맞으면 그 충격으로 죽을 게 뻔했다.

한참을 도망치자, 불덩이는 멈추었다.

“정신없네.”

숨을 헐떡이는 내 옆에서 수연이가 조용히 말했다.

“그래도 이나은 헌터는 대단하다.”

수연이의 말대로다.

불덩이가 멈춘 이유는 불개가 지쳐서가 아니었다.

어느새 거대한 불개의 앞으로 다가간 이나은이 기합을 내지르며 주먹을 뻗었기 때문이었다.

[플레이어 ‘이나은’이 ‘정권 지르기’ 기술에 성공하였습니다.]

[1점 득점으로, ‘힘’이 2배 적용된 피해를 입힙니다.]

이나은의 주먹이 닿자, 그 충격파로 불개의 몸에 그대로 구멍이 뚫렸다.

[플레이어 ‘이나은’의 ‘겨루기 상태’가 해제됩니다.]

[A급 괴수 ‘불개’를 퇴치하였습니다.]

[기여도에 따라 보상이 차등 배분됩니다.]

[기여한 바가 없어 보상이 지급되지 않습니다.]

불개는 그렇게 주먹 한 방에 쓰러졌다.

“그럼 물류 창고 단지로 다시 가볼까요?”

“잠깐만.”

가슴을 내밀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이나은을 밀치고, 송태섭은 괴수에게 다가갔다.

“뭐예요?”

그리고 이나은이 따질 틈도 없이, 괴수의 시체를 살피더니 외쳤다.

“강이란! 그 자식! 여전히 나를 찾고 있었어! 조용히 사라져 준다 약속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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