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검수지옥 (2)]
“일행분들하곤 이야기 잘 끝냈어?”
“네. 다들 강이란 헌터를 쫓는 데 찬성했어요.”
“그러면 오빠네 일행 다섯에 우리 일행 넷을 합치면.”
이화는 평소 습관대로 손가락을 하나씩 펴 가며 수를 세기 시작했다.
“총 아홉 명이 함께 이동하게 되겠네.”
앞으로 뻗은 이화의 왼손은 모두 퍼져 있고, 오른손은 한 손가락만 접혀 있었다.
난 아직 접혀 있는 엄지손가락을 마저 펴주며 인원 수를 정정했다.
“아홉 명이 아니라 열 명이야. 임성윤 헌터도 우리랑 함께할 거거든.”
“흐음, 열 명이란 말이지?”
이화는 전부 펼쳐진 자신의 손을 잠시 내려다보더니 만족스럽다는 듯 눈썹을 치켜세웠다.
“더 좋네. 이 정도 인원이면 강이란 헌터 잡기엔 충분하겠어.”
충분하다, 고 볼 수 있으려나?
전에 강이란이 ‘회사에서 쓸데없어진 우리 세력 좀 교체하라고 했는데, 이번 기회에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편하게 정리했네.’라고 말한 적 있다. 그 말대로라면 지난번 공방전에서 우리가 겨루었던 자들은 회사에서 버리라고 했던 헌터란 게 된다.
괴수를 부리는 헌터며, 분신을 만드는 헌터, 망자를 살리는 헌터 등. 우리가 힘겹게 쓰러뜨린 상대들이 고작 버리는 패였다는 건, 서울에 남겨둔 헌터들은 무척 강하고 그 수도 많다는 뜻인데. 열 명으로 그들을 뚫고 강이란을 붙잡을 순 있을까? 설령 붙잡는다 해도 이나은과 송태섭이 힘을 합쳤는데도 쓰러뜨리지 못한 강이란을 쓰러뜨릴 순 있고?
더 큰 문제는 강이란의 세력 뒤에 회사란 거대 세력이 존재한다는 거다. 지부의 위치만 말해도 잡아가는 곳에서 자신의 휘하 세력을 건드렸을 때 가만히 있을 리는 없다. 결국엔 그들과도 맞붙게 될 텐데. 서울을 먹은 세력을 휘하로 부리는 곳을 고작 열 명이 상대한다? 이건 더 말이 안 된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 아니 산 하나를 없애겠다고 끙끙대는 거나 다름없다.
물론 그렇다고 꼬리 빼고 도망칠 생각은 없다.
그 정신 나간 놈이 ‘자기가 찾아오지 않으면, 내가 먼저 찾아갈 거야. 그리고 그땐 이렇게 봐주는 일 따윈 없을 거야.’라고 경고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그 자식한테 당한 걸 제대로 갚아주기도 해야 하니.
어차피 강이란을 상대해야 하고, 그로 인해 회사와도 맞서야 한다는 최악의 상황이 기정사실이 되었는데. 이참에 둘 다 다시는 우릴 건드리지 못하도록 박살 내는 편이 낫겠지.
그를 위해서 내게 당장 필요한 건 전력, 그리고 정보. 아무리 죽음 이후 귀환하는 능력이 있다 한들, 이 두 가지 없이 적들과 상대할 순 없는 노릇이다.
먼저 전력 부분을 생각하면, 이왕이면 버려도 상관없는 패로 적들과 머릿수를 맞추고 싶긴 한데. 그런 패들을 보충할 만한 곳이 딱 한 군데 떠오르긴 한다. 그럼 전력은 그곳에 가서 채우기로 하고. 다음으로 정보를 얻을 방법은….
백민기.
그 사람을 찾는 게 우선인가.
“열 명으론 턱없이 부족해. 제대로 맞붙기 전에 우리와 함께 싸워줄 헌터를 더 구해야 해.”
“응? 강이란 헌터 잡는데, 굳이 열 명보다 더 많은 사람이 필요해?”
“그 자식이 문제가 아니라, 지금은 뒤에 업고 있는 회사를 상대해야 한다는 게 문제거든.”
“회사?”
회사와 엮이지 않기엔 이미 너무 늦었다. 이젠 일행에게도 그곳에 대해 제대로 알려야겠지.
“그냥 서울 전체.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큰 상대와 싸워야 한다고 보면 돼. 자세한 건 전원이 모였을 때 이야기해줄게. 어쨌든 너희 쪽도 모두 강이란 헌터 잡으러 갈 거란 거지?”
“응. 그러면 일단 거실로 우리 일행 데리고 올게. 거기서 다 함께 모이는 거로 하자.”
이화가 본인 일행을 데리러 가기 위해 떠나고, 이나은이 물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을 더 구한다고요? 물론 저희 편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긴 하지만, 다들 시련에서 살아남기도 바쁠 텐데 굳이 적을 만들려 할까요?”
“이미 적이 된 사람들을 끌어들이면 되지. 그런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한 군데 있거든.”
“어디요?”
“이거 보고 좀만 생각하면 너도 금방 떠올릴 수 있을걸?”
이화에게 푸른 수첩을 던져주고 난 우리 일행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잠시 후, 거실엔 아파트 내 모든 헌터가 모였다. 김아람은 모인 사람들을 하나하나 둘러보더니 물었다.
“여기 있는 인원들이 다 함께 이동하는 건가요?”
“우리는 아니야. 나랑 천수는 여기 남고 성윤 아재만 너희랑 함께할 거야.”
김호연의 말에 김아람은 걱정된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두 분을 제외하면 총 열 분이구나. 같이 싸울 인원이 는 것은 좋지만, 식량 부분이 좀 걱정되긴 하네요. 혹시 정현 헌터님 일행은 식량을 얼마나 비축하고 있나요?”
“그 부분은 걱정할 필요 없어요.”
일행 중 누군가 답하기 전에 내가 나섰다.
“제가 만들어 주는 걸 가리지 않고 먹어준다면, 식량 문제는 어찌어찌 해결할 수 있거든요.”
“오- 오라버니 요리 오랜만에 먹겠네.”
“재료가 재료인지라 맛은 보장 못 하지만….”
“이런 상황에 반찬 투정 같은 걸 하면 안 되죠. 그럼 식량 관련해선 믿고 부탁드리겠습니다.”
아홉 살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오다니. 내가 저 나이 땐 오이 먹기 싫다고 내내 투정 부렸던 것 같은데.
괜스레 부끄러움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이자 김아람은 다음 이야기로 화제를 옮겼다.
“이번 시련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이야기하기 전에 우선 자기소개부터 할까요? 앞으로 꽤 오랜 시간 함께하게 될 텐데, 서로 이름은 알고 있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또 랭크나 직업을 알면, 작전을 세울 때도 유용할 거고요.”
“그러면 나, 나부터 할게!”
김아람의 제안에 김화영을 필두로 자기소개가 시작되었다.
본인의 직업과 클래스를 솔직하게 말한 김화영과 달리 난 그럴듯하게 꾸며낸 직업과 랭크를 이야기했다. 다행히 E급 헌터이자 연금술사란 거짓말을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는지 차례는 자연스레 다음 사람에게로 넘어갔다.
다음 차례였던 수연이도 내 눈치를 살피더니 성녀가 아닌 널리 알려진 직업 ‘치료사’로 자신을 소개했다. 이 역시 태클 걸리지 않고 다음 사람에게로 순서가 넘어갔다.
그렇게 이어진 송태섭과 이나은, 노인의 소개가 끝나고 차례는 꼬맹이 일행에게로 넘어갔다.
“저는 김아람이라고 합니다. 나이는 9살이고, 랭크는 A입니다. 직업은 조금 독특하긴 한데…. ‘꿈꾸는 자’입니다.”
‘요리사’, ‘성녀’에 이은 세 번째 희귀 직업. 이름만 들어선 무슨 직업인지 전혀 예측이 안 된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러나 김아람은 직업에 관한 설명을 더 이어가지 않고 한성수에게 순서를 넘겼다.
“정이화 헌터 덕분에 목숨을 건진 한성수라고 합니다. 나이는 21살이고, 랭크는 B. 직업은 이나은 헌터와 같은 무투가입니다. 다만, 전 공격보다는 맷집에 자신이 있어서 주로 방어를 담당해 왔습니다.”
“못난 오빠를 둔 정이화입니다. 방금 성수가 말한 건 진짜 다 부풀린 거예요. 저 아니었어도 그깟 헌터 하나쯤은 홀로 이겼을 텐데…. 어쨌든 전 22살이고, 랭크는 S. 직업은 마도사입니다. 여러 원소 중에서 전 온도 관련 원소를 다룰 수 있어요.”
“이제 내가 마지막인가? 이름은 김동현, 나이는 29살. 랭크 B인 검사야.”
이전과 달리 무뚝뚝해진 동현이 형을 마지막으로 자기소개는 끝났다.
정리하자면,
〈S급 헌터〉
정이화 : 22세, 마도사
〈A급 헌터〉
김아람 : 9세, 꿈꾸는 자
이나은 : 21세, 무투가
임성윤 : 68세, 사수
〈B급 헌터〉
김동현 : 29세, 검사
김화영 : 28세, 암살자
송태섭 : 29세, 전사
한성수 : 21세, 무투가
〈D급 헌터〉
임수연 : 26세, 성녀
여기에 F급 헌터인 날 더한 건가.
생각보다 평균 랭크가 무척 높다. 하긴 그랬으니 지금껏 살아남은 거긴 하겠지만.
“자기소개는 여기에서 마치고 본격적인 이야기를 해볼까요? 저희의 공통적인 목표는 강이란 헌터를 붙잡는 것임은 이미 확인했고. 지금부턴 계획을 짜야 할 것 같아요.”
“계획을 짜려면, 우리 오빠 이야기부터 들어야 할 것 같은데?”
이화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내게 모였다.
“아까 모두에게 할 이야기가 있다며.”
“그랬지. 음- 솔직히 말할게요. 저희끼리 강이란 헌터를 붙잡는 건 불가능할 거예요. 아니, 불가능해요.”
“무슨 소리야? 물론 그때 나랑 이나은 헌터가 강이란과 싸워서 졌더라도….”
“강이란 헌터 개인이 강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순전한 전력 차이를 두고 한 이야기에요. 강이란 헌터 뒤에는 회사란 거대 세력이 자리 잡고 있어요.”
뒤이어 박무성과 강이란이 한 말, 수첩을 통해 내가 알아낸 회사에 관한 정보를 차근차근 이야기했다. 모든 이야기를 마치자 얼굴을 찡그린 김아람이 눈을 감곤 말했다.
“정리하자면, 저희가 강이란 헌터를 건드리면 회사도 나설 거란 거죠? 그래서 강이란 헌터를 붙잡고 이후 회사란 거대한 세력에 맞서기 위해선 전력과 정보 모두 필요하다. 맞나요?”
“정확해요.”
“그 두 가지는 어떻게 구할 건가요?”
“사정이 있어서 정확한 위치를 말할 순 없지만, 서울에 회사 지부 한 곳이 있거든요. 거기에서 실험실 위치를 알아낸 후, 실험실로 갈 거예요. 그곳에 가면 두 가지 모두 구할 수 있을 거거든요.”
김아람은 고개를 푹 숙이더니 나이에 맞지 않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강이란 헌터를 붙잡기로 한 이상, 물러설 길도 없고. 그 말대로 해야겠네요. 제 생각엔 이 근처에서 ‘후원 미션’을 끝내고 서울로 이동….”
“아니, 그럴 시간 없어요.”
김아람의 말을 끊고 이나은이 나섰다.
“서울까지 걸어가는 건 너무 오래 걸려요.”
“그 외엔 딱히 방법이….”
“단번에 가죠.”
단번에 간다?
“다들 더 준비할 건 없죠?”
“오! 나은아, 새로운 스킬이라도 있는 거야? 난 당연히 바로 가도 되지.”
“다들 치료도 끝났으니 상관없긴 하지만, 그래도 계획을 완전히 세우고 가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계획은 간단해요. 가서, 누가 나오면 쓰러뜨린다. 이게 다예요.”
설마….
“그럼 지금 바로 가요. 모두 제가 하는 말 따라 하시면 돼요.”
“이나은 헌터, 그 방법은….”
“회사 지부는 여의도에 있다.”
[플레이어 ‘이나은’이 영업 비밀 보호 의무를 위반한 사실이 적발되었습니다.]
[현재 인사위원회 개최가 불가합니다.]
[징계 심의를 미룹니다.]
[인사위원회가 개최되기 전까지 플레이어 ‘이나은’을 구속합니다.]
[플레이어 ‘이나은’을 법무팀으로 이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