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검수지옥 (4)]
마포대교?
마포대교는 여의도랑 마포를 잇는 다리인데, 그게 왜 저자의 입에서?
“마포대교라고요? 확실해요?”
“…네. 뭔가 잘못되기라도 했나요?”
잘못되었다기보다 이해가 안 간다.
법무팀 헌터들이 굳이 마포대교까지 찾아갈 이유가 있나? 가장 가까이에 있는 다리로 가면 될 텐데….
나랑 같은 이질감을 느꼈는지 이나은이 물었다.
“왜 굳이 마포대교로 간 거예요? 거기에 뭔가 특별한 거라도 있어요?”
“특별한 거요? 그, 그런 건 잘 모르는데…. 그냥 여기서 제일 가까운 다리가 마포대교라 간 거로 알고 있어요. 제, 제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요?”
“제일 가까운 다리가 마포대교라고요? 잠깐만, 지금 이 건물 어디에 있죠?”
“여, 여긴 여의도잖아요.”
그제야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박무성이 여의도에 있다고 말한 회사 지부와 법무팀은 당연히 별개의 장소라 생각했다.
사실상 박무성이 말했던 회사 지부는 법무팀을 지칭했던 건데.
“여기가 여의도란 말이죠? 잘됐네, 저희 원래 여기 오려고 한 거였잖아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상황 정리하는 대로 마포대교로 가죠. 거기 있는 놈들 붙잡으면 회사에 관해 뭐라도 캐낼 수 있지 않을까요?”
확실히 이 신임 판사보다 마포대교로 간 선임 판사들이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긴 할 테다.
다만, 우리끼리 그들을 쓰러뜨릴 수 있는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섣불리 결정을 내릴 순 없었다.
“마포대교로 가는 건 몇 가지만 더 물어보고 결정하자.”
“하기야 이 사람이 아는 걸 다 뽑아내고 결정해도 늦진 않겠네요. 그러면 물어볼 거 얼른 물어보세요.”
이나은에게 대화의 주도권을 넘겨받자마자 적의 전력을 파악할 질문부터 던졌다.
“마포대교 쪽으로 법무팀 인원 몇이나 갔는지 알아요?”
질문을 들은 남성은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 우물쭈물하며 답변을 망설였다.
“더 말했다간 징계받을 수도 있어서….”
“안 말했다가 어떻게 될진 걱정되지 않으시고요?”
물론 이나은이 든 단검에서 피가 배어 나오는 순간, 남성의 망설임은 끝났다.
“판사는 총 세 분이 가셨는데, 말했다시피 검사나 간수 쪽 상황은 잘 몰라요.”
“검사나 간수 쪽 상황? 그러고 보니 중요한 걸 안 물었네요. 법무팀의 인원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죠?”
“판사는 저랑 법무팀장님 포함 네 명이고, 검사는 세 명. 간수는 열 명이에요.”
“변호사는요?”
“네?”
남성은 정말로 궁금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재판하려면 변호사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니죠. 변호사가 왜 필요해요?”
이어진 남성의 말에 따르면, 회사법을 어긴 사람들은 많은 경우 이곳에 끌려오기도 전 법무팀장에 의해 사형 선고를 받는다고 한다. 즉, 이곳에 끌려온 사람 대부분은 재판도 받지 못한 채 간수에게 바로 죽임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 이곳에서 재판 열린 적이 아예 없는 거예요?”
“그건 아니에요. 종종 법무팀장님이 사형 선고를 내리지 않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런 상태로 끌려온 사람이 있을 땐 재판이 열려요. 그렇게 재판이 열려봤자, 피고인은 무조건 사형 아니면 자원봉사를 선고받긴 하지만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남성은 회사법을 어기면 사형 아니면 자원봉사 중 한 가지 징계를 받게 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둘 중 어떤 징계를 받든 피고인의 인생이 끝난 건 마찬가지이니, 굳이 변호사가 피고인을 변호해 줄 필요가 없는 거예요.”
“굳이 변호가 필요 없다뇨? 사형당할 바엔 자원봉사 선고받는 게 낫잖아요.”
“자원봉사라고 하면 잘 모르시겠구나. 실험실에 끌려가게 되는 걸 여기선 자원봉사라 해요. 저 같으면 거기 갈 바엔 차라리 사형 선고를 받는 걸 택하겠어요.”
또 실험실인가.
“실험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길래….”
“매일같이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받는다는데. 자세한 건 저도 몰라요. 판사분들 이야기로만 얼핏 들은 거라.”
“실험실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아요?”
“공덕 쪽이라고 들은 기억이 있어요.”
공덕은 여의도에서 마포대교를 건너 쭉 가면 나온다.
즉, 이나은의 말대로 마포대교에 가 ‘후원 미션’을 끝낸다면 곧바로 공덕에 있는 실험실에까지 나아갈 수 있게 된다.
“다시 법무팀 인원으로 돌아와서, 그쪽 빼고 전부 다 ‘후원 미션’ 하러 갔다 치면 최대 열여섯 명이 갔다는 거네요. 그 헌터들, 랭크는 어떻게 돼요?”
“물어본 적이 없어서 잘은 모르는데…. 인사과에 들어오려면 적어도 C급 이상 헌터여야 하니까, 법무팀 헌터들도 그러지 않을까요?”
열여섯 명의 C급 이상 헌터. 가능하겠냐는 의미에서 눈짓하자, 이나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마포대교를 거쳐 공덕에 가는 거로 결정하자.”
쓸만한 정보를 여럿 얻긴 했으나, 혹시 몰라서 한 가지 질문을 더 던졌다.
“인사과나 다른 회사 지부에 관해선 아는 거 없어요?”
“정말로 이 이상 제가 아는 건 없어요.”
“강이란 헌터에 관해서도 모르는 거죠?”
“인사과장님이요? 최근에 인천 쪽에 지부 확장을 위해 다녀왔다는 것 말곤 아는 게 전혀 없어요.”
“인사과장이라고요? 인사과가 어디에 있는지 정말 몰라요?”
소리 높여 다그치려다가 그만두었다.
완전히 축축해진 남성의 바지를 보니 더 추궁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됐어요. 모르시면 답하지 않으셔도 돼요. 제가 물어볼 건 이게 끝인데, 누구 이 사람한테 더 물어볼 거 있어요?”
“나 하나 있어! 판사 아저씨는 왜 여기 있는 거야? 같이 ‘후원 미션’ 하러 가야 하는 거 아니야?”
“그게. 남아서 자료 정리한 후에 마지막 날 합류하라고 해서….”
“아저씨도 힘든 회사 생활 중이구나.”
자료? 판결문 같은 걸 말하는 건가?
“그 자료란 건 어디에 있는데요?”
대화에 끼어들자 남성은 손가락만 움직여 자신 뒤편의 벽을 가리켰다.
“저 뒤에 있어요.”
남성이 가리킨 벽에 가까이 다가가니 조그만 틈 하나가 보였다. 그 틈에 손가락을 넣자 딸깍 소리와 함께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곧 벽이 갈라지고, 사람 하나 지나갈 수 있을 법한 틈 하나가 생겨났다.
“앞장서세요.”
이나은의 말에 남성은 천천히 틈 안으로 들어갔다.
그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자, 둘둘 말린 두루마리가 빽빽이 꽂힌 서재가 나왔다.
“여기 있는 게 전부 다 재판 자료란 말이죠?”
“네. 맞아요.”
가까이에 있는 두루마리를 펼치니 제일 최근에 있었던 재판 기록이 나왔다.
“피고인 박무성. 영업 비밀 보호 의무 위반. 사형 집행.”
“야구경기장에서 저희 괴롭힌 것치곤 허무하게 죽어 버렸네요.”
“그러게.”
박무성의 재판 기록을 내려두고 다른 재판 기록들도 살피기 시작했다. 남성이 말했던 것처럼 기록은 모두 사형 혹 자원봉사 집행을 내린 데에서 끝이 났는데, 기소 사유가 얼토당토않은 경우가 많았다.
“별의별 이상한 이유로 재판을 열었네.”
영업 비밀 보호 의무 위반부터 시작하여 상사 모욕까지. 피고인은 여러 가지 죄목으로 기소되었는데, 그중 제일 이상한 죄목은 역시 이거였다.
“고작 연구팀장 잠 깨운 걸로 사형을 선고했다니.”
“이런 회사는 왜 다니는 거야? 툭하면 사형이고만.”
김화영의 물음에 남성은 잠깐 침묵하더니 말했다.
“일을 그만두는 순간, 와이프를 실험체로 사용한다고 했거든요.”
남성은 꺼져가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다들 마찬가지예요. 가족이 실험실에 붙잡혀 있어서 그만두지 못하는 거죠.”
가족을 인질로 삼아 굴러가는 조직이라니. 인사과장 자리에 강이란을 앉힐 정도이니 정신 나간 조직인 건 알았다만, 이 정도로 악랄할 줄이야.
퇴사율을 낮추기 위한 회사의 수법에 어이없어할 때, 이나은이 두루마리 하나를 남성의 코앞에 가져다 대고 물었다.
“이 재판, 혹시 자세히 알고 있어요?”
두루마리의 제일 마지막 줄에는 ‘피고인 허상헌. 직무상 명령 거부. 자원봉사 집행(보류).’이라고 적혀 있었다. 남성은 두루마리를 찬찬히 살피더니 말했다.
“최초의 판결 기록이네요.”
“최초라고요?”
“네. 이 사람이 명령을 거부하고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져서 회사법이 만들어졌다고 들었거든요.”
허상헌이 도망친 이후, 회사법을 만들어 그를 어긴 사람을 법무팀으로 강제로 이송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한다.
“그 시스템을 어떻게 구축했는지까진 모르지만, 아무튼 제가 알기론 그래요.”
“그럼 이 부분은요? 왜 보류라고 적혀 있는 거예요?”
이나은이 가리킨 데는 ‘자원봉사 집행(보류)’이라 적힌 부분.
“이야기가 좀 긴데. 우선 이 재판은 피고인 없이 진행되었어요. 아마 판결만 먼저 내려두고, 징계는 피고인을 붙잡은 이후 즉시 집행할 예정이었을 거예요.”
“그래서요?”
“판결을 내린 이후, 회사에선 도망친 피고인을 잡기 위해 헌터들을 여럿 파견했대요. 그 중, 서준우 헌터가 피고인을 찾았는데 그 헌터도 얼마 안 가 연락이 끊겼다고 들었어요.”
“네? 서준우라고요? 그럴 리가….”
서준우란 이름을 들은 순간, 이나은은 이마를 쓸더니 다리에 힘이 풀린 듯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 뒤는요? 연락이 끊긴 다음엔 어떻게 되었어요?”
“피고인이 스스로 회사에 찾아왔어요. 그리고 다시 연구에 참여하는 조건으로 회사에 한 가지 제안을 했대요.”
“제안? 어떤?”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어요. 어쨌든 회사로선 실험실을 설계한 헌터가 제 발로 돌아온 셈이니 그 제안을 거부할 이유가 없었겠죠.”
그러한 이유로 징계가 보류 처리된 것이었다.
“어떤 제안인지 짐작할 만한 것도 없어요?”
“네…. 어…. 소문으론 인사과장님이 인천 쪽에 지부 확장하러 간 뒤에 피고인이 회장님한테 직접 찾아갔다는데, 어쩌면 관련되어 있지 않을까요?”
이나은은 남성에게 고맙다고 말하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잠깐만, 이분 봐주실래요?”
“알겠어.”
남성의 감시를 김화영에게 맡기고,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이나은에게 다가갔다.
“괜찮아? 갑자기 왜 그래?”
몇 번 말을 건넸으나, 이나은은 넋 나간 듯 무슨 단어를 중얼거리기만 했다.
“왜 아저씨가….”
“이나은!”
두 뺨을 붙들고 눈을 맞춘 다음에야 이나은은 중얼거림을 멈추었다.
“이 사람 아는 사람이라도 돼?”
땅에 떨어져 있는 두루마리를 집으며 말하자, 이나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허상헌 아저씨요? 잘 아는…. 아니, 잘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에요.”
“실험실을 설계한 사람하고 아는 사이라고?”
“이전에 말했었죠. 아버지 친구분 중 한 분이 냉동창고를 설계했다고요. 그 사람이 허상헌 아저씨예요.”
“그러면 네가 그때 죽였다는 사람은….”
“맞아요, 서준우 헌터. 제가 죽인 그 멍청한 인간이 회사에서 보낸 헌터였을 줄은 꿈에도 몰랐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