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검수지옥 (6)]
다들 ‘업강독충’에 정신이 팔리자 김아람이 주의를 환기해 주었다. 그 덕분에 일행은 본래의 목표인 ‘야누스의 출입문’에 다시 집중할 수 있었다.
“응. 그럼 저 물고기는 ‘후원 미션’ 빨리 끝내고 마저 구경하자!”
물론 그중엔 여전히 ‘업강독충’에 미련이 남은 사람도 있었지만.
“네? 김화영 헌터님, 일단 저 괴수는 물고기가 아닌 데다가 여기는 수족관….”
“그럼 출발!”
“제 말도 다 안 듣고 그렇게 혼자 나서시면 어떻게 해요!”
선두로 나선 김화영과 난감한 표정으로 그 뒤를 쫓는 김아람. 그 둘을 따라 일행은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혹여나 녹슨 차들 뒤편에 숨어 있던 괴수나 헌터가 튀어나오진 않을까 잔뜩 경계하며 나아갔지만, ‘평시 상태’라는 말에 걸맞게 우리를 막아서는 적은 없었다.
그렇게 아무 일 없이 ‘후원 미션’을 클리어하나 싶었으나.
“처음 뵙겠습니다.”
‘야누스의 출입문’ 앞에 선 낯선 여성이 그런 내 기대를 무참히 깨부숴주었다.
“회사 법무팀장 양혜진이라고 합니다.”
“법무팀장?”
판사복을 입은 여성이 자신을 법무팀장이라 소개하자마자 이나은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신임 판사보다는 법무팀장이 상헌 아저씨에 대해 알고 있는 게 더 많겠죠? 지금 홀로 있을 때, 저 인간을 붙잡기만 하면….”
“지금은 안 돼. 다른 플레이어에게 해를 가했다간 ‘업강독충’의 밥이 된다고 했잖아.”
“이렇게 가까이에 있는데 하필 ‘평시 상태’ 때문에!”
금방이라도 뛰쳐나가려던 이나은은 ‘캠비온 녹스’의 말을 상기시켜주니 겨우 진정했다. 내가 이나은을 말리는 사이, 김화영이 앞으로 나서 법무팀장의 손을 잡고 흔들며 말했다.
“반가워, 난 그냥 김화영이야! 근데 판사 아줌마는 왜 문 안 지나고 여기 혼자 서 있는 거야?”
“지금까지는 문을 통과할 수 없었거든요.”
문을 통과할 수 없다? 어떤 조건을 만족해야만 문을 통과할 수 있는 건가?
“그 이유에 관해서는 당신들도 곧 알게 될 겁니다. 그리고 지극히 당연하게도 전 여기 홀로 있지 않습니다. 다들 나오세요.”
법무팀장의 명령에 곧 차 안에 숨어 있던 헌터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무장한 채 일렬로 정렬한 헌터들은 법무팀장 포함 총 열두 명. 법무팀 건물에서 이화 쪽이 간수 셋을, 노인 쪽이 검사 하나를 쓰러뜨린 걸 생각하면 신임 판사가 말했던 수 그대로다.
그들의 앞에 선 채 법무팀장은 안경을 추켜올리며 충혈된 눈으로 우리를 하나하나 훑어보았다. 그녀의 시선이 최종적으로 멈춘 곳은 바로 나.
“그쪽이 인사과장님께서 말씀하신 분이군요.”
눈을 마주쳐 당황해하는 사이, 그녀는 내 바로 앞까지 걸어왔다.
“무슨 짓을 하려고!”
법무팀장은 이나은의 외침을 깔끔히 무시하고는 지갑에서 조그마한 카드 한 장을 꺼냈다.
“받아주세요.”
그녀가 내 손에 쥐여준 카드는 누군가의 명함.
흰 바탕의 배경엔 검은색 글씨로 간결하게 이름과 직책만이 적혀 있었다.
‘허상헌 / 수석연구원’
“이분의 명함을 왜?”
“인사과장님께서 정현 헌터님 일행이 마포대교로 오면 명함과 함께 이 말을 전해달라 했습니다.”
그녀는 조금 더 가까이 다가오더니, 귀에 대고 조용히 말했다.
“‘자기가 지금 찾으려고 하는 백민기 헌터를 내 앞으로 데리고 오면, 명함의 주인은 살려줄게. 단, 자기와 함께 백민기 헌터를 데리고 내가 있는 곳에 올 수 있는 사람은 이나은 헌터뿐이야. 그 외에 다른 헌터를 데리고 오는 순간, 명함의 주인과 함께 그들을 모두 죽일 거야. 참, 내가 있는 곳은 자기가 백민기 헌터를 찾으면 절로 알게 될 거야.’라고요.”
백민기? 왜 그자를 데리고 오라고….
“그보다 내가 백민기 헌터를 찾고 있다는 건 어떻게 안 거야?”
“제 역할은 말을 전하는 것이지, 질문에 답하는 게 아닙니다.”
어설프게 강이란 말투를 따라 한 법무팀장은 얼떨결에 내뱉은 내 질문엔 답하지 않고 자신의 일행에게 돌아갔다.
“망할.”
“왜 그래요? 저 사람이 이상한 말이라도 했어요?”
이나은은 내 표정을 살피더니, 시선을 내가 든 명함으로 돌렸다.
“아저씨?”
내가 든 명함을 낚아채고는 이나은은 법무팀장의 등에 대고 외쳤다.
“네가 왜 이 명함을!”
“그건 정현 헌터님께 물어보시길 바랍니다. 그럼 ‘후원 미션’ 무사히 마치시길.”
법무팀장은 실소를 날리며 자신의 일행을 이끌고 ‘야누스의 출입문’ 앞으로 다가갔다. 이윽고 그들은 오른쪽 통로로 들어갔다.
법무팀 헌터들이 통로로 들어가자, 평온한 미소를 짓고 있는 얼굴 조각은 입을 다물어 통로를 막았다.
[플레이어 ‘양혜진’이 통로를 막았습니다.]
얼른 이나은이 쫓아가 닫힌 통로를 주먹으로 쳤으나, 굳게 닫힌 통로는 다시 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대신 새로운 글씨가 새겨졌다.
[플레이어 ‘이나은’이 ‘야누스의 출입문’에 접근하였습니다.]
[‘캠비온 녹스’가 적어둔 ‘야누스의 출입문’에 관한 정보가 해금됩니다.]
“정보 해금?”
그에 이끌려 ‘야누스의 출입문’ 앞에 다가서자,
[플레이어 ‘정현’이 ‘야누스의 출입문’에 접근하였습니다.]
[‘캠비온 녹스’가 적어둔 ‘야누스의 출입문’에 관한 정보가 해금됩니다.]
라는 글씨와 함께 새로운 글씨들이 여럿 나열되었다.
[‘야누스의 출입문’을 찾아주신 플레이어분 반갑습니다.]
[지금부터 ‘야누스의 출입문’에 관한 정보를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통로를 통과하기 전, 해당 내용을 숙지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지금 적힌 내용을 보아하니, 단순히 출입문을 통과하기만 하면 되는 건 아닌 듯하다.
[‘야누스의 출입문’의 통로를 통과한 플레이어는 해당 통로를 막을지 말지 선택하게 됩니다.]
[플레이어의 선택으로 막힌 통로는 ‘후원 미션’ 종료 시까지 개방되지 않습니다.]
[또한, 통로가 막히게 되면 해당 통로를 통과한 플레이어들은 이번 시련을 클리어할 때까지 다리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됩니다.]
[선택은 단 한 번.]
[번복은 불가합니다.]
“오라버니, 법무팀장은 왜 통로를 막은 걸까?”
“우리가 쫓아오지 못하도록?”
“그게 이상하단 말이지.”
이화는 왼쪽 통로를 가리키며 어깨를 으쓱했다.
“어차피 우리가 저기로 지나가면 통로를 막은 의미가 없어지잖아. 굳이 통로를 막아서 본인들만 다리에서 벗어날 수 없게 가둔 셈인데, 무슨 속셈이지?”
이화의 의문점은 이어지는 글씨들이 해결해주었다.
[‘야누스의 출입문’의 양 통로가 막혔을 때, 비로소 시련의 진행 조건이 달성됩니다.]
[하나라도 열린 통로가 있다면 해당 다리에서는 시련이 진행되지 않으니 참고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시련의 진행 조건이 모든 통로를 막는 거였네.”
“그러면 속셈이 있어서 통로를 막은 게 아니라, 시련 진행을 위해 막을 수밖에 없었다는 거지?”
“그랬겠지.”
법무팀장이 통로를 통과하지 않고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만일 또 다른 헌터 무리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본인 일행을 반으로 나누어 양 통로를 막고 시련의 진행 조건을 달성시킬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시련의 클리어 조건이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런 모험을 하고 싶진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일행을 반으로 나누는 걸 최후의 수단으로 두고 누군가 나타나길 기다렸겠지. 그때 마침 나타난 게 우리고.
어차피 검수림을 뚫고 다른 다리를 찾아가기엔 시간이 부족하다. 그러니 법무팀장은 우리가 반드시 반대편 통로를 막아줄 것이란 판단하에 자신의 일행을 모두 데리고 통로를 통과한 후 막아버린 것이다.
“결국엔 우리가 이 통로를 막아야만 된단 소리네.”
“응. 그러면 시련은 다리 위에서 진행된다는 건가? 그것도 법무팀 헌터들과 함께?”
“그건 모르지. 혹시 시련 조건이 달성되면 그 즉시 ‘평시 상태’가 해제될 수도 있으니까, 법무팀 헌터들과 전투할 준비는 미리 해두는 게 나을 것 같아.”
“어쨌든 여기 지나가야 한다는 거지?”
이화와 이야기하는 와중, 김화영이 분노한 표정을 짓고 있는 얼굴 조각의 입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김화영 헌터님, 반대편에 법무팀 헌터들이 무슨 짓을 해놓았을지 알, 고 그래, 요? 에?”
“응? 아람아, 언제 건너왔어? 아람이만 있는 게 아니었네, 다들 나 몰래 언제 통로 지난 거야?”
분명 통로를 지나간 김화영은 우리의 앞에 서 있었다.
“스킬이라도 쓰신 거예요?”
“웬 스킬? 그보다 통로 닫을 거냐는데 더 지나올 사람 없으니까 닫아도 되는 거지?”
“잠깐만요! 잠시만 기다리고 계세요. 저도 한 번 통로 지나가 볼게요.”
어느새 검을 뽑아 든 이화가 잔뜩 긴장한 채 통로를 지나자.
“어?”
김화영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앞에 나타났다.
“저 통로를 지나면 여기로 돌아오도록 장난을 쳐두었나 보군.”
“시간도 얼마 안 남았고, 시련 참가 조건과 엮인 이상 더 고민할 건 없어요. 저 통로 지나고 마지막 사람이 통로 닫는 거로 하죠.”
그 말과 함께 난 통로 안으로 들어갔다.
[통로를 통과하였습니다.]
[해당 통로를 막겠습니까?]
[Y/N]
마지막으로 통로를 지나온 동현이 형이 통로를 막자마자 다리 주위엔 막 같은 게 씌워졌다.
그를 보고 신기하다며 김화영이 던진 단검은 막에 닿는 순간 그대로 재로 변했고, 우린 여기서 빠져나갈 생각을 접었다. 대신에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조를 짜 다리 수색에 나섰다.
난 이화와 김아람과 함께 출입문에서 제일 먼 부근을 수색하게 되었다.
“‘후원 미션’을 클리어하긴 했어도, 이번 시련 끝날 때까지 여기 갇힌 신센가.”
“어쩔 수 없지. 저 막을 통과하려다 죽는 것보다야 여기 잠시 갇혀 있는 게 더 낫잖아. 그나저나 아까 법무팀장이란 사람하고 무슨 이야기 나눈 거야? 나은이는 왜 갑자기 화내면서 법무팀장을 쫓아간 거고?”
이화의 물음에 김아람도 궁금했는지 곁에 다가와 귀를 쫑긋했다.
그에 우선 법무팀장이 전해준 말부터 들려주었다.
“백민기 헌터? 그 사람이 누군데 데려오라는 거야? 아니, 그보다 너랑 나은이랑 단둘이서 오라는 건 무슨 소리야? 절대 안 돼. 그냥 무시해버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화는 둘이서만 강이란에게 보낼 수 없다며 몇 번이고 못 박았다.
“일단 그 이야기는 백민기 헌터를 찾은 뒤에 다시 하자.”
“알았어. 그럼 백민기 헌터가 누구인지부터 이야기해줘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