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계의 요리사-60화 (61/168)

[11. 검수지옥 (11)]

“와! 악어 봤어? 책에서 본 것보다 훨씬 컸어.”

천진난만한 감탄에 눈을 뜨자, 김화영의 표식이 보였다. 그에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내쉬어졌다.

“무사히 돌아왔구나.”

예상외로 법무팀장은 너무나 강했다. 만일 내가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김화영은 법무팀장에게 패배해 쓰러졌을 것이다.

하마터면 반대편 통로에 갇힌 채 ‘레비아탄’의 배 속을 구경할 차례가 오길 기다릴 뻔했다고 생각하니 절로 몸서리쳐졌다.

물론 걱정하고 있는 나와 달리 김화영은 너무나 신나 있었다.

“재밌었다. 젤리, 우리 다음에 또 이런 비밀 작전 하자.”

“엔간해선 그럴 일 없었으면 좋겠네요.”

솔직한 내 답변에 실망하는 김화영의 어깨에서 손을 떼고, 서둘러 돌아가자고 재촉했다.

계획의 마무리 단계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일행에 합류하는 것. 자정이 살짝 지난 시간이니 지금 돌아가면 우리의 행방을 의심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혹시나 누군가 뭐 하다 왔냐고 물으면, 김화영과 함께 거미 사체로 만든 신메뉴를 테스트해 보았다고 시치미 뗄 생각이다. 그런 다음에 법무팀 헌터들이 어쩌다 괴수를 놓쳤는지 궁금해하는 모습을 보이며 자연스레 화제를 넘기면 더 추궁하진 않겠지.

“제가 연기하면 잘 받아 주셔야 해요.”

돌아가서 취할 행동을 정리하며 걸어가는데 뭔가 허전해 뒤를 돌아보았다.

“김화영 헌터?”

김화영은 표식 위에 그대로 주저앉아 있었다. 그제야 그녀의 온몸이 피투성이로 얼룩져 있음을 알게 되었다.

“괜찮으세요?”

얼른 달려가 상태를 살피니 매우 심각했다. 김화영이 감싸 안은 왼팔은 기이하게 뒤틀려 있었고, 정신을 간신히 붙잡고 있는지 눈은 계속하여 감겼다.

재밌었다는 말에 괜찮은 줄로만 알았는데, 법무팀장에게 이 정도로 심하게 당했을 줄이야.

“나? 당연히 괜찮…, 지 않을지도?”

“일단 수연이한테 빨리 가요. 저한테 업힐 수 있겠어요?”

“그건 무리. 좀만 잘래.”

결국 김화영은 정신을 잃었다.

쓰러진 김화영을 안고 ‘야누스의 출입문’ 앞에 도착하니 김아람이 다가왔다.

“교대하는데 김화영 헌터님이랑 정현 헌터님 안 보여서 한참을 찾았잖아요! 어디서 뭐 하고 계셨길래…. 김화영 헌터님, 무슨 일이에요?”

“일단 치료부터. 이야기는 그다음에 하자.”

그리하여 수연이가 김화영의 부상을 치료해 주는 동안, 왜 법무팀 헌터들이 패하게 되었는지 알려 주게 되었다.

“이제 고작 이틀 차인데, 괴수가 통로를 통과한 게 이상하다 싶긴 했어요. 역시나 저희 쪽에서 수를 쓴 거였네요.”

모든 이야기를 들은 김아람은 김화영 쪽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인상을 찌푸렸다.

“작전대로 저희 쪽에 괴수가 소환되지 않게 하는 데에는 성공했다 쳐도, 만에 하나 계획이 조금만 더 틀어졌으면 어떻게 하려고 그랬어요?”

그랬을 경우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충분히 잘 알았기에 대꾸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정현 헌터님은 제게 그런 부탁까지 하셔 놓고….”

김아람은 실망했다며 잠시 홀로 있고 싶다고 가 버렸다.

축 처진 김아람의 조그마한 뒷모습을 바라보는데 이나은이 조심히 말을 걸었다.

“법무팀장이란 사람, 강했어요?”

“응. 김화영 헌터가 전혀 상대가 안 되더라.”

“역시 저도 갔어야 해요.”

이나은은 마음이 걸리는지 계속 김화영 쪽을 힐끗힐끗 바라보았다.

“아니, 좀 더 여러 가지를 고려하지 못한 내 실책이야.”

지금껏 우리 일행은 순수한 전투에서 패배한 적이 거의 없다.

권주혁 일당과 강이란을 제외한 다른 헌터들을 너무나 쉽게 쓰러뜨려 왔기에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별일 없을 거라고 방심하고 말았다.

그 결과, 김화영의 심각한 부상으로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콰드득- 콰드득-’

자책에 빠져 있을 때, ‘야누스의 출입문’ 근처에서 철 씹어 먹는 소리와 함께 엄청난 진동이 울렸다.

“무슨 일이에요?”

“맞다. 반대쪽 통로에 SSS급 괴수가 소환됐다는 이야기를 안 해 줬구나.”

“얼마나 크길래, 이 정도 진동이?”

“다리를 씹어 먹을 정도로 커.”

괴수에 관해 설명하는데 ‘야누스의 출입문’이 급격하게 기울기 시작했다.

“그 괴수, 반대편 통로만 씹어 먹고 다시 사라지겠죠?”

“시련 실패 페널티니까 그러지 않을까?”

대답과 동시에 ‘야누스의 출입문’ 뒤편에서 거대한 악어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사라질 생각은 없는 것 같은데요.”

거대한 악어는 ‘야누스의 출입문’마저 씹어 먹으며 조금씩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정현 헌터는 당장 김화영 헌터 데리고 다리 끝 쪽으로 뛰어가세요.”

“그럼 넌 어떻게 하려고?”

“지난번에도 SSS급 괴수 쓰러뜨린 적 있잖아요. 임수현 헌터한테 가능한 만큼 저 괴수의 스탯 낮추어 달라고 부탁한 다음에 쓰러뜨려야죠. 괜찮아요, 김아람 헌터랑 한성수 헌터도 있고. 할 수 있어요.”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서인지 이나은은 애써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어서 가 보세요. 금방 쓰러뜨리고 뒤따라갈게요.”

그러나 그 미소는 얼마 안 가 지워졌다.

[플레이어 ‘이나은’이 ‘레비아탄’과 눈을 마주쳤습니다.]

[플레이어 ‘이나은’이 공포에 잠식됩니다.]

“아니, 아니야. 저 괴수를 어떻게 쓰러뜨려…. 틀렸어. 우린 여기서 모두 죽을 거야. 죽을 거라고.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작전을 짜는 바람에. 다 내 탓이야. 내 탓. 죄,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또 나 때문에 모두가 이렇게…. 왜 난 그 누구도 지키지 못하고…. 이젠 다르길 바랐는데. 고작 네 사람도 지키지 못하다니. 죄송해요. 죄송해요. 죄송해요.”

별안간 죄송하다는 말만을 반복하며 이나은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왜 그래?”

그녀의 변화에 당황해하다 얼떨결에 무너지는 다리 쪽을 바라보았다.

무너지는 다리 뒤에는 아까 보았던 거대한 악어가 있었다. 그런데 이전과 달리 악어의 온몸엔 오돌토돌한 돌기 같은 게 튀어나와 있었다.

“원래 저런 모습이었나?”

달라진 모습에 좀 더 자세히 그를 바라보자 돌기들이 한 번에 갈라졌다.

“뭐야?”

갈라진 틈 사이로 보이는 건 검은 눈동자.

수십, 수백 개의 쫙 찢어진 눈동자가 일제히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플레이어 ‘정현’이 ‘레비아탄’과 눈을 마주쳤습니다.]

[플레이어 ‘정현’이 공포에 잠식됩니다.]

그 눈을 마주치는 순간, 난 알게 되었다.

지난번 맞섰던 ‘사흉 궁기’보다도 훨씬 거대한 저 ‘레비아탄’은 절대 쓰러뜨릴 수 없다는 사실을.

무엇보다.

[?급 괴수 ‘업강독충’이 등장합니다.]

‘레비아탄’의 뒤편에서 강에 빠진 헌터들을 도륙하는 ‘업강독충’을 우리 따위가 상대할 수 있을 리 없다.

두려움 속. 결국 그 자리에 주저앉아 얼굴을 무릎 속에 파묻고 말았다.

‘레비아탄’의 눈동자를 보고 싶지 않아 눈을 질끈 감았음에도 시선은 여전히 느껴졌다.

곧 시선은 사방에서 느껴졌다.

슬며시 눈을 뜨니, 어느새 ‘레비아탄’의 눈동자가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 눈동자 하나하나가 깜빡일 때마다 일행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상대 못 하면 뭐 어때요? 정현 헌터는 죽으면 다시 살아나니까 상관없잖아요.’

‘하긴. 울 오빠는 우리랑 다르게 목숨이 여러 개니까.’

‘현아, 괜찮아. 어차피 우린 죽은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해.’

‘내 목숨은 목숨으로 갚는 건가? 생명의 은인 부탁이면 다 들어줘야지. 근데 생명의 은인은 맞는 건가? 덕분에 죽은 횟수가 더 많은 거 같은데.’

끊임없이 들리는 일행의 목소리에 몸은 주체할 수 없이 떨렸다.

“저 괴수 뭐예요? 그보다 이나은 헌터님은 왜 울고 계시고, 정현 헌터님…. 지금 바지에 소변보신 건….”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멈추고 나를 지켜보는 눈동자가 사라졌다. 대신에 김아람이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다 끝났어.”

“대체 왜 그러세요?”

나의 오만함으로 모두가 죽게 될 거란 생각에 헛웃음이 나왔다.

“아니다. 정현 헌터님, 이나은 헌터님은 저희에게 맡기고 A조한테 가서 이 상황 좀 알려 주세요.”

“가 봤자 뭐 해. 우린 다 죽을 건데.”

“정현 헌터님! 정신 차리세요! 저 괴수 쓰러뜨린 다음에 일을 이렇게 만든 책임 반드시 지게 만들 테니까. 거기 서 있지 말고 얼른 가서 도움 청하라고요!”

김아람이 억지로 떠밀어서일까?

아니면 이 와중에도 조금이라도 더 늦게 죽고 싶어서였을까?

난 뒤도 돌아보지 않고 A조 쪽을 향해 달려갔다.

***

[플레이어 ‘정현’이 ‘레비아탄’의 시선에서 벗어났습니다.]

[플레이어 ‘정현’이 공포에서 벗어납니다.]

“대체 무슨 일이야?”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거대한 사람 머리에 여덟 개의 다리가 달린 기괴한 거미 괴수들을 쓰러뜨리고 있는 A조 앞이었다.

분명 이나은과 대화하고 있었는데, 눈 떠 보니 이화의 앞이라니.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전혀 모르겠다.

“내가 왜 여기 있는 거지?”

그러고 보니 ‘레비아탄’이 나온 것까진 기억나는데 그 이후로 기억이 드문드문 끊겨 있다.

“오빠, 내 말 안 들려?”

“잘 들리니까 소린 안 질러도 돼.”

“그럼 대답해 봐. 저거 대체 뭐냐고?”

이화가 가리킨 쪽엔 ‘레비아탄’이 우리 구역의 절반 정도 되는 지점을 씹어 먹고 있었다.

“언제 저기까지 온 거야? 다른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은 어디 있어?”

“나야말로 궁금하다. 너랑 같이 있던 사람들은 괜찮은 거야?”

나만 여기에 있다는 건, 아마 그 사람들은 이미 저 괴수한테….

“네 표정 보니까 그런 건 아닌 것 같네.”

이화는 양 볼을 번갈아 부풀리다가 이내 나를 앞쪽으로 밀치며 말했다.

“최전선에 송태섭 헌터랑 임성윤 헌터 계시거든. 걸로 가 있어 봐.”

“아니. 나도 너랑 여기서….”

“뭔 소리 하는 거야? 동현 오빠, 이 사람 데리고 거기로 가 주세요.”

이화의 말에 동현이 형이 나를 붙들고 앞쪽으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동현이 형, 잠시만요. 전 이화 곁에 남아 있을 거예요.”

발버둥 치며 외쳤지만, 서서히 ‘레비아탄’ 쪽으로 다가가는 이화를 막을 순 없었다.

이후, 송태섭과 노인에게 나를 맡긴 동현이 형도 이화 쪽에 합류했다.

얼마 안 가 거미를 모두 쓰러뜨린 송태섭과 노인마저 이화 쪽으로 가 버렸다.

그 괴수한테 가면 죽게 될 거란 걸 알았지만, 그들을 말리진 않았다.

어차피 다리에 씌워진 차단막은 시련이 완전히 종료된 이후에야 사라진다. 즉, 이 빌어먹을 막 때문에 저 괴수가 다가와도 다리에선 벗어날 수 없는 처지. 괴수한테 가든 가지 않든 이미 모두 죽은 목숨이니 굳이 말릴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체념한 채 다리의 끝에 홀로 남아 죽음이 닥칠 순간만을 묵묵히 기다렸다.

시간이 흐르고.

‘레비아탄’은 상처 하나 입지 않은 모습으로 내 바로 앞의 다리를 씹어 먹기 시작했다.

그 뒤엔 ‘업강독충’들이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내게 닥칠 운명을 알려 주었다.

“씨.”

곧 ‘업강독충’들이 내게 달려들었다.

[CONTINUE?]

[최근 저장 지점으로 돌아갑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