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검수지옥 (14)]
‘전시의 통로’를 통과해 일행의 앞으로 돌아왔을 땐, 엄청난 진동이 울리고 있었다.
진원지는 여의도로 이어지는 다리의 끝부분.
[마포대교-SW 구역에 실패 페널티가 주어집니다.]
[SSS급 괴수 ‘레비아탄’이 등장합니다.]
곧 진원지를 뚫고 거대한 악어가 그 지긋지긋한 모습을 드러냈다.
[‘전시의 통로’를 지켜 내지 못했습니다.]
[‘평시의 통로’를 지나 훗날을 도모하길 바랍니다.]
[‘평시의 통로’를 지나면 다리를 둘러싼 차단막을 통과할 수 있게 됩니다.]
“괴수가 통과했다고? 모든 괴수가 쓰러지는 걸 두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 그게 무슨 소리야?”
“정이화 헌터님, 진정하세요.”
“괴수가 통과했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 뭣보다 괴수가 통로를 통과했다면, 그 괴수는 지금 어디에 있는데? 내 눈에만 안 보이는 건 아닐 거 아냐.”
괴수. 정확히 말해 괴수 시체는 ‘특급 냉장고’에 보관되어 내게 귀속된 채로 ‘전시의 통로’를 통과했다. 그러니 통로를 통과한 괴수 시체는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을 수밖에.
“뭔가 착오가 있었거나, 저희가 모르는 일이 뒤에서 벌어진 게 아닐까요?”
“모르는 일? 설마 법무팀 헌터들이 뒤에서 꾸민 일인가?”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자세한 건 저 괴수한테서 벗어난 이후에 알아보죠.”
“꼬맹이 말이 맞네. 이대로 있기엔 너무 위험해. 강 아래엔 ‘업강독충’도 있지 않은가.”
“네. 지금은 ‘평시의 통로’를 통과해 다리에서 벗어나는 게 우선이에요.”
노인의 도움으로 혼란을 수습한 김아람은 ‘평시의 통로’에 일행들을 하나둘 통과시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일 마지막으로 통로에 들어가며 중얼거렸다.
“‘레비아탄’이 나타난다는 것까지 다 제대로 예상하셨으면서, 왜 굳이 우리 통로에 괴수를 통과시킨 거지? 정말로 뭔가 착오가 있었나? 무슨 일이 벌어지든 간에 다른 사람들 모두 ‘평시의 통로’ 통과하도록 만들어 달라 하셔서 그렇게 하긴 했는데….”
착오는 없었다.
이미 마포대교에서 두 번이나 죽은 뒤다. 세 번째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는 상황인데 착오가 있을 리 없다.
‘전시의 통로’에 괴수를 통과시킨 건 처음 김화영에게 이야기한 작전대로다.
우리 일행이 시련을 클리어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작전을 생각하게 된 건 마포대교에서의 두 번째 죽음 때문이었다.
당시 ‘캠비온 녹스’는 무승부 난 곳을 돕는다며 ‘레비아탄’ 두 마리를 ‘마포대교에만’ 풀었다. 이는 우연히 나온 결정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말해 우연히 나온 결정이 아닐 가능성 또한 존재했다.
만일 후자라면.
마포대교에 ‘레비아탄’을 푼 게 우연히 나온 결정이 아니라면.
그 말인즉슨 우리 일행 중 누군가는 초월자들의 미움을 받고 있으며. 초월자들은 그 사람을 죽이기 위해 ‘캠비온 녹스’에게 ‘레비아탄’을 풀게 시켰다는 의미가 된다.
미움을 받는 사람은 아마 수연이일 가능성이 크다. 이전부터 여러 초월자의 반감 어린 글씨를 받아 왔고, 시련을 클리어했을 땐 ‘알 수 없는 자’가 수연이의 시련 클리어에 분개하기도 했으니.
죽음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최악의 상황을 모두 가정하고 파훼법을 찾아야 하는 법. 따라서 난 수연이를 죽이기 위해 초월자들이 ‘레비아탄’ 두 마리를 푼 것이라 가정하고 파훼법을 물색했다.
내가 가정한 최악의 상황대로면 시련을 클리어하거나, 혹 법무팀 헌터들이 시련을 클리어하지 못하도록 만들더라도 초월자들은 어떻게든 수연이를 죽일 수를 쓸 것이고. 우리 일행은 그에 휩쓸려 전멸할 게 불 보듯 뻔했다.
이에 내가 생각해 낸 파훼법이 시련에서 실패하여 페널티를 받아 버리는 것이다.
굳이 이런저런 핑계까지 대 가며 ‘레비아탄’을 푼 걸로 보아, 초월자에겐 인간을 함부로 죽일 수 없다는 제약이 있을 것이다. 그런 제약이 없었다면 이미 수연이를 없애고도 남았을 테니.
그러니 아예 우리를 죽일 핑곗거리를 없애기로 마음먹었다. 당시 그들이 댄 핑계는 ‘무승부가 난 구역에서도 승부를 낼 수 있도록 돕겠다는 것’과 ‘시련을 통과할 만큼 강하니, SSS급 괴수쯤은 아무 문제 없겠다는 것’. 이 두 가지 핑계를 한 번에 없애 버릴 방법이 바로 시련 클리어에 실패하는 것이었다.
어차피 페널티가 즉사하는 것도 아니고. 성공 보상인 상점 확장과 목숨을 저울질했을 때 목숨 쪽으로 저울이 기우는 건 당연하니 난 이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물론 수연이를 버리는 방법도 있긴 했는데, 이는 떠올리자마자 선택지에서 제외했다. 초월자들의 미움을 받는다는 건, 분명 이유가 있어서일 텐데. 살아만 있어도 초월자들에게 엿 먹이는 것이나 다름없는 존재인 수연이를 버린다는 건 말도 안 되었다.
어쨌든 우리 측이 시련에서 실패하게 만드는 방법을 쓰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으니, 남은 건 실패 페널티를 피해 살아남을 수를 마련하는 것.
이때 해결해야 할 건 세 가지였다.
우리 일행에게 대놓고 시련에서 실패하자고 권할 수 없다는 것과.
법무팀장이 자신들을 희생해서라도 다리를 폭파해 우리를 죽이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것.
그리고 다리에서 무사히 벗어날 것 같으면 ‘캠비온 녹스’가 또 이상한 꼼수를 써 우리를 죽일 수도 있다는 것.
이 중, 첫 번째. 일행에게 대놓고 이 방법을 권할 수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죽음에서 귀환한다는 비장의 수를 알릴 수 없으니까.
따라서 작전을 신중히 짜야만 했다. 기존 우리 일행이야 내 말을 믿고 작전에 따라 주겠지만, 새로 합류한 일행들의 경우 미래를 아는 듯한 내 작전을 들으면 의심부터 할 테니까. 특히나 김아람의 경우, 내 작전대로 할 바엔 안전하게 시련을 클리어하거나 법무팀 헌터들이 시련을 클리어하지 못하게 만들자고 주장했을 게 뻔했다.
그래서 난 꼼수를 썼다.
김아람에겐 반대편 통로에 괴수 시체를 통과시킬 것이라 말한 뒤 협조를 구한 것이다.
‘왜 굳이 그렇게 해야 하는데요?’란 물음엔.
‘나한텐 예지 비슷한 스킬이 있거든. 이 스킬은 내가 어떤 괴수랑 어떠한 상황에서 마주하게 될지 보여 주는데, 이대로 무사히 시련을 클리어하면 우리는 SSS급 괴수 ‘레비아탄’을 두 마리나 상대하게 돼.’라고 대답을 지어냈다.
이 스킬이 실제로 있다는 건 이튿날, 셋째 날 나올 괴수 이름을 미리 일러 주어 증명했다. 결국 내가 일러 준 게 모두 들어맞자 김아람은 작전에 협조해 주기로 했다.
괴수를 ‘특급 냉장고’에 숨긴 채 ‘전시의 통로’를 통과한 것도 김아람을 끝까지 속이기 위해서였다. 우리의 작전은 법무팀 헌터들의 시련을 망치는 것으로 알고 있도록 만들기 위해서.
이제 통로 반대편으로 넘어가 우리가 시련 클리어에 실패한 원인을 어물쩍 주최 측의 착오로 넘겨 버리면 김아람은 이에 관해 의문을 품지 않을 것이다.
“어? 정현 헌터님, 계속 찾았잖아요. 물어볼 게 있었는데, 왜 모습을 계속 감추고 계셨어요?”
반지를 빼내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김아람은 내게 다가왔다.
“뭔가 이상해…. 난 분명 ‘평시의 통로’에 괴수 시체를 통과시켰는데 왜 ‘전시의 통로’에 괴수가 통과했다고….”
“정말요? 그러면 ‘야누스의 출입문’에 이상이 생긴 건가.”
“어찌 되었든 우리가 해야 할 건 그대로야. 어서 다리에서 벗어나자.”
“네. 시련 클리어야 어찌 되었든 그게 우선이겠네요.”
예상대로 김아람은 작전에 관해 더 물어보지 않고 넘어가 주었다.
“그쪽이 왜 여기에?”
김아람과 대화할 때, 누군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SSS급 괴수를 상대하고 있는 게 아니었나요?”
대화에 끼어든 건 법무팀장. 그녀의 뒤로 법무팀 헌터들이 차츰 모습을 드러냈다.
“그 괴수는 저어- 멀리 소환됐거든. 그래서 얼른 도망친 거야. 법무팀장 아줌마도 빨리 도망쳐.”
“제가 손쓰지 않아도 정현 헌터님 일행이 다 죽으리라 생각해 안심하고 있었는데. 저답지 않게 방심했네요.”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죄송한데, 잠시 비켜 주시겠어요?”
법무팀장은 김화영을 밀치곤 내 앞으로 다가왔다.
“현이한테서 당장 안 떨어져?”
“오빠한테 손대는 순간, 너희 모두 이 다리에서 못 빠져나갈 줄로 알아.”
“난 괜찮아. 어차피 나도 법무팀장한테 할 이야기가 있거든.”
송태섭과 이화를 말리자 법무팀장은 높이 들어 올렸던 지갑을 잠시 아래로 내렸다.
“마침 잘됐네요. 저도 정현 헌터님께 하고 싶은 말이 많거든요.”
“그럼 다리부터 터뜨리고 이야기 이어 가는 게 어때?”
“그걸 어떻게 그쪽이?”
대답 대신 싱긋 웃자, 법무팀장은 잠깐 침묵한 채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더니 결국 냉정을 잃었다.
“뭐 상관없겠죠. 어차피 마포대교를 건널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단 사실은 변하지 않을 테니!”
법무팀장의 외침과 함께 주변의 차들이 폭파되기 시작했다.
“과연 그럴까?”
“네?”
“시련이 ‘무승부’로 끝나지도 않았고, 우리가 ‘SSS급 괴수를 쓰러뜨리지 못해 도망친’ 이상 그럴 일은 없을걸?”
[‘알 수 없는 자’ 님이 당황합니다.]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건가요?”
“뒤나 좀 보라고.”
내 말에 뒤를 돌아본 법무팀장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차가 폭파된 지점은 우리가 서 있는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지점. 내가 김화영에게 부탁해 바꾼 폭발 지점대로였다.
“부, 분명 폭발은 여기가 아니라….”
“저 뒤편에서 일어났어야겠지. 그 얼빠진 표정 보고 싶어서 굳이 안 해도 되는 대화에 어울려 준 거니, 난 이만 가 볼게. 김화영 헌터, 이제 됐어요.”
“자, 잠깐!”
“그럼 안녕히.”
작전대로 일행 모두가 김화영의 팔을 잡은 채 날 기다리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내가 김화영의 팔에 손을 얹자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내 말 맞지? 안 지워질 거라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다리의 끝에 새겨진 아주 조그마한 표식이 보였다.
“정말이네요.”
드디어 다리를 무사히 건넌 것이다.
[‘알 수 없는 자’ 님이 기회를 놓친 데에 격노합니다.]
[‘호색한 찬탈자’ 님이 분노합니다.]
[‘번개의 아내’ 님이 속 시원해합니다.]
뭣보다 초월자에게도, 법무팀 헌터들에게도 엿을 먹이기까지 했다.
“모든 게 완벽하네.”
거의 일주일 만에 도달한 마포에서 승리를 만끽하고 있자니 글씨가 새겨졌다.
[‘빛나는 눈의 전략가’ 님이 당신의 전략에 찬사를 보냅니다.]
[‘빛나는 눈의 전략가’ 님이 플레이어 정현을 대상으로 ‘후원 미션’을 등록합니다.]
[후원 미션]
- 대상 플레이어: 정현
- 클리어 조건: 플레이어 ‘허상헌’의 신기 훔치기
- 성공 보상: 신기 지급
- 실패 페널티: 신기 ‘????? ??’ 이용 자격 박탈
[수락하시겠습니까?]
[Y/N]
“신기?”
이상하다. 분명 처음 듣는 단어인데, 어쩐지 익숙한 느낌이 든다.
‘빛나는 눈의 전략가’가 준 후원 미션을 살피자니 글씨가 또다시 새겨졌다.
[‘번개의 아내’ 님이 플레이어 정현을 대상으로 ‘후원 미션’을 등록합니다.]
[후원 미션]
- 대상 플레이어: 정현
- 클리어 조건: ‘빛나는 눈의 전략가’ 님의 ‘후원 미션’ 클리어
- 성공 보상: 신기 지급
- 실패 페널티: 신기 ‘?????’ 이용 자격 박탈
[수락하시겠습니까?]
[Y/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