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남겨진 사람들(2)]
“지금부터는 면을 삶아볼게요.”
다음 작업은 면을 삶는 것. 냄비에 물을 끓인 뒤, 면을 집어넣고 소금을 살짝 뿌렸다.
“면 삶는 데 시간이 좀 걸리니까, 기다리는 동안 손질한 재료들을 볶아주도록 하겠습니다.”
두 번째 프라이팬을 꺼내 기름을 둘렀다. 프라이팬이 적당히 달궈져 수연이가 손질한 재료를 모두 넣어 볶으니 마늘 향이 확 올라왔다.
“수연아, 면 좀 여기에 넣어줄래?”
양파 색이 투명해진 것을 보고 삶은 면을 넣어 함께 볶았다.
“김화영 헌터, 소스 가져와 주세요.”
마지막으로 소스를 붓고 물을 살짝 넣어 재료들과 섞어 주었다.
“물은 왜 넣는 거야?”
“소스 살짝 묽어지게 하려고요.”
“난 꾸덕꾸덕한 게 더 좋은데.”
소스에 면과 다른 재료들이 충분히 섞였다고 생각되었을 때, 젓가락으로 면발을 한 바퀴 휘감아 김화영에게 건넸다.
“그러지 마시고 간 한번 보실래요?”
“알겠어.”
김화영은 면을 오물거리며 맛보곤 내 팔뚝을 여러 번 후려쳤다.
“됐어!”
“괜찮아요?”
“응. 바로 다른 애들 깨워올게. 식기 전에 먹어야지.”
김화영이 위층으로 올라간 틈을 타 완성된 ‘버섯 크림 파스타’를 한 가닥 먹어보니 정말 간이 잘 되어 있었다. 역시 ‘요술 맷돌’에서 나온 소금을 써서 그런지 다른 조미료 없이도 간이 딱 맞는다.
“파슬리나 후추가 없는 게 아쉽긴 한데, 어찌 되었든 ‘버섯 크림 파스타’ 완성했습니다!”
[‘풍요와 파괴의 군주’ 님이 맛을 궁금해합니다.]
[‘번개의 아내’ 님이 자신이 만든 요리를 보고 만족해합니다.]
“이왕 심사위원이 모셔진 김에 심사평을 들어보도록 할까요?”
요리를 끝마치고 접시에 1인분 만치 담아 송태섭의 앞에 내려놓았다.
“정말 심사평 말해야 해?”
“그냥 먹고 감상 말해주세요.”
“초월자님들이 듣고 계신 거지?”
“그래봤자 열댓 분 정도밖에 안 돼요.”
“열댓 분이나? 일단 알겠어.”
송태섭은 크게 심호흡하더니 자신의 접시에 시선을 고정했다.
“이게 괴수로 만든 요리라고?”
‘검수 수프’를 생각했던 건지 ‘버섯 크림 파스타’의 비주얼을 본 송태섭의 얼굴이 환해졌다.
“마늘 향 진짜 좋네.”
조심스럽게 한 가닥 맛본 송태섭은 놀란 듯, 한 가닥을 더 먹어보더니 말을 잇지 못했다.
“어때요?”
“진짜 너무 맛있는데? 음식점에서 파는 거 먹는 것만 같아. 멸망 이후에 이런 걸 먹게 될 줄이야.”
그 말을 끝으로 송태섭은 음식 먹는 데 완전히 몰두했다. 방송용으론 전혀 만족스럽지 않은 심사평이었으나, 개인적으론 무척 만족스러웠다.
“수연아, 우리도 먼저 먹고 있을까?”
“그러자. 빨리 먹고 설거지 도와줄게.”
오디오를 채우기 위해 얼른 송태섭의 옆에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먹고 말하고를 반복하며 입을 쉬지 않고 놀리는데 기다리던 글씨가 새겨졌다.
[플레이어 ‘정현’이 직업 승급 조건, ‘3종 이상의 요리 제작 및 섭취’ 중 3/3 달성하였습니다.]
[플레이어 ‘정현’이 제작한 요리 종류에 따라 승급하게 될 직업이 결정됩니다.]
[플레이어 ‘정현’이 제작한 요리는 ‘빙혈어 찜’, ‘검수 수프’, ‘버섯 크림 파스타’입니다.]
[플레이어 ‘정현’의 직업이 ‘괴수 요리사’로 승급합니다.]
[일부 정보에 접근 권한이 부여됩니다.]
[‘식당’ 개업이 가능해졌습니다.]
식당 개업? 거의 모든 자영업자가 망한 시점에 식당 개업이라니.
[고유 능력 ‘식탐’으로 ‘리빙 라면’의 특성이 귀속됩니다.]
직업 승급으로 얻게 된 혜택에 어이없어함과 동시에 괴수의 특성이 귀속되었다. 기대했던 것과 달리 귀속된 특성은 ‘리빙 라면’의 특성뿐이었다.
“괴수 자체를 먹어야만 고유 능력이 발동하는 건가.”
아무래도 퇴치한 후에 보상으로 얻은 재료를 먹는 거로는 새로운 특성을 얻을 수 없나 보다.
새로이 알게 된 고유 능력 ‘식탐’의 효과를 머릿속에 입력하며 이번에 귀속된 특성을 확인했다.
‘인스턴트’. 이름만 보아선 어떤 특성인지 예상이 가지 않았다.
“라면하고 어울리긴 하는데, 이건 또 무슨 특성이야?”
[‘인스턴트’]
- 고유 능력 ‘식탐’으로 ‘리빙 라면’으로부터 귀속.
- 전투 시, 3분간 민첩 스탯이 50 상승한다.
일부 정보에 접근 권한이 부여되었다더니 ‘인스턴트’의 효과가 적힌 창이 생겨났다.
“스탯 상승이면 나한텐 전혀 쓸모없잖아. 잠깐만, 이 창이 생겼다는 건 혹시 ‘CONTINUE?’가 무슨 특성인지도?”
[정보 접근 권한이 부족합니다.]
“식탐은?”
[정보 접근 권한이 부족합니다.]
“왠지 데자뷔 같네.”
짧은 욕설을 내뱉는데 접시를 깨끗하게 비운 송태섭이 물었다.
“맛 평가하라는데?”
[플레이어 ‘정현’이 플레이어 ‘송태섭’에게 ‘버섯 크림 파스타’를 요리해주었습니다.]
[플레이어 ‘송태섭’에게 요리의 맛을 평가받습니다.]
“솔직하게 느낀 바대로 별점 줬어.”
[플레이어 ‘송태섭’이 별점 5개를 부여합니다.]
[‘최상급 요리’ 등급을 받습니다.]
[‘버섯 크림 파스타’ 레시피가 생성됩니다.]
[플레이어 ‘송태섭’이 ‘버섯 크림 파스타’를 먹어 모든 스탯이 영구적으로 1 상승합니다.]
[플레이어 ‘송태섭’의 피로가 회복됩니다.]
스탯과 더불어 피로가 회복된다는 글씨에 송태섭이 감탄했다.
“이런 음식을 공짜로 먹으니까 미안한데.”
“괜찮아요. 이렇게라도 일행에 보탬이 돼야죠.”
“그러면 음식 푸는 거라도 도와줄게.”
송태섭이 눈짓한 곳을 보자 김화영이 일행을 이끌고 식당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현아, 다 데려왔어!”
그들에게 음식을 퍼주기 위해 서둘러 초월자에게 마무리 인사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어젯밤. ‘버섯 크림 파스타’를 먹고 김아람과 이나은의 설전이 치러졌다. 두 사람이 다툰 쟁점은 공덕에 언제 갈 것이냐. 이나은은 나한테 말했던 것처럼 하루 동안 정비하고 다음 날 바로 공덕에 가자고 주장했고, 김아람은 조금 더 정비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두 사람의 견해차가 좁아질 겨를 없이 감정의 골만 깊어져 결국 우리는 투표를 통해 둘 중 누구의 의견을 따를지 결정했다. 투표 결과, 이나은의 의견이 근소한 차이로 승리했다. 그리하여 생긴 정비 시간 동안 난 새로이 얻은 ‘정보 열람 권한’을 사용해 지금껏 볼 수 없었던 정보를 살펴보았다.
제일 먼저 살펴본 건 레시피.
‘빙혈어 찜’과 ‘검수 수프’ 레시피를 본 뒤, ‘버섯 크림 파스타’ 레시피의 정보를 보여달라고 하자 두 개의 창이 생겨났다. 하나는 요리의 등급과 효과 등에 관해 적힌 창이었고, 다른 하나는 재료와 조리법이 적힌 창이었다.
─ ─ ─ ─ ─ ─
‘버섯 크림 파스타’
- 레시피 등급 : 고급
- 요리 등급 : 최상급 요리
- 모든 재료를 지니고 있을 시, 100% 확률로 조리가 시작됩니다.
- 섭취한 플레이어의 모든 스탯을 영구적으로 1 상승시킵니다.
- 섭취한 플레이어의 피로가 회복됩니다.
─ ─ ─ ─ ─ ─
“일반 레시피랑은 다르게 모든 재료를 지니고 있어야 조리가 시작되는 거구나. 대신에 섭취했을 때, 두 가지 효과를 볼 수 있는 거고.”
고급 레시피의 정보까지 확인한 난 다음으로 지금껏 궁금했던 특성들을 하나씩 살피기 시작했다.
다른 모든 정보는 확인할 수 있었으나, 단 세 개.
고유 능력 ‘식탐’을 비롯하여 ‘CONTINUE?’, ‘한솥밥 먹는 사이’ 특성만큼은 정보를 확인할 수 없었다.
“‘한솥밥 먹는 사이’ 특성의 정보.”
[정보 열람 권한이 부족합니다.]
“제일 궁금했던 건 확인할 수가 없네. 대충 어떤 건지는 다 알겠지마는 확실하게 알고 싶었는데.”
정보 확인은 여기에서 마치고 상점을 살펴보았다. 직업이 ‘괴수 요리사’로 승급한 만큼 다양한 장비, 스킬, 특성이 추가되어 있었다. 그중 한 가지 눈길을 사로잡는 게 있었다.
[‘이상식욕자’]
- 사용 가능 직업 : 괴수 요리사
- 모든 괴수가 식자재 취급된다. 괴수를 섭취할 때마다 미식 수치가 1 상승한다. 미식 수치가 특정 수준에 다다르면 ‘미식가’ 특성이 귀속된다.
- 희망 소비자 가격 : 30만 포인트
“사두면 언젠가 또 다른 특성까지 얻을 수 있다는 거네.”
무엇보다 모든 괴수가 식자재로 취급된다는데 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상점에서 ‘이상식욕자’ 특성을 구매합니다.]
[30만 포인트를 지불합니다.]
[‘이상식욕자’ 특성이 귀속됩니다.]
“살짝 비싼 것 같긴 하네.”
“어떤 게요?”
‘이상식욕자’ 특성 외에 또 쓸만한 게 있나 뒤져보는데, 이나은이 다가왔다.
“상점 좀 구경하고 있었어. 내가 정비할 거야 이런 것밖에 없잖아.”
“저도 오랜만에 상점 좀 봐야겠네요. 요새 스탯만 올리느라 다른 건 살펴보질 못했네.”
이나은은 내 옆에 털썩 앉더니, 아무 말 없이 허공을 응시했다. 본인이 말한 것처럼 상점을 살피는 것 같긴 한데, 표정을 보아하니 할 말이 있는 듯했다.
김아람의 그림을 구경하는 노인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자 역시 이나은이 먼저 침묵을 깼다.
“그, 있잖아요.”
다음 말을 차분히 기다리니 고개를 저으며 이나은이 말을 이었다.
“실험실에서 별일 없겠죠?”
“그래야지.”
왠지 할 말은 그게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별다른 언급은 하지 않았다. 집이나 마찬가지였던 물류 창고 단지부터 자신의 가족까지 엮인 곳에 본격적으로 부딪히는 거니 아무래도 머릿속이 복잡할 거다. 괜히 그를 들쑤시고 싶진 않았다.
조용히 다시 상점을 살피려 할 때, 저 멀리서 이화가 우리를 불렀다.
“내가 둘 방해한 건 아니지?”
이나은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화는 잘됐다며 말했다.
“그럼 우리 오빠 좀 빌리자.”
“날 왜?”
“주변 건물에 쓸 만한 게 있는지 보게. 겸사겸사 몸도 풀고.”
“괴수나 다른 헌터라도 만나면 어떻게 해요. 정현 헌터는 그럴 때 도움도 안 될 텐데, 저랑 같이 가요.”
“괜찮아. 멀리 안 갈 거야. 그리고 S급 헌터 한 명은 여기에 남아 있어야지.”
“그러면.”
이나은은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 때마침 옆에 지나가던 송태섭을 붙잡았다.
“송태섭 헌터라도 함께 데려가요.”
“나? 갑자기? 어딜?”
“정 걱정된다면 그렇게 할게. 그럼 출발합시다.”
그리하여 도착하게 된 바로 앞의 빌딩. 완전히 폐허가 된 상태라 별달리 뭐가 있을까 싶었으나 이화의 고집에 곳곳을 수색하게 되었다.
“송태섭 헌터는 여기 층을 살펴봐 주실래요? 전 오빠 데리고 위층 한 번 살펴볼게요.”
“알겠어. 무슨 일 있으면 여기서 바로 빠져나가는 거야.”
“당연하죠.”
이화는 한동안은 수색에 집중하는 듯하더니 별안간 나를 멈춰 세웠다.
“그래서 예측하는 스킬이 있다고?”
“어?”
“어젠 어떤 괴수를 만나게 될지 왜 못 맞힌 거야? 며칠 전에 검수라는 괴수가 나올 건 왜 못 맞혔고?”
내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이화는 나를 몰아세웠다.
“오빠 꾀병 부리는 걸 하도 많이 봐서, 거짓말할 때 표정쯤은 꿰뚫고 있으니까 속일 생각은 말고 말해줘. 왜 그런 작전을 세운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