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계의 요리사-108화 (109/168)

[17. 독사지옥(9)]

“정말 인사과장님도 죽이려고? 뒷감당 가능해? 회사에서 분명 난리 칠 텐데.”

“인류의 미래를 위한 거룩한 희생입니다! 신의 뜻을 이해하고 나면 모든 간부님이 이해해줄 겁니다.”

침을 튀기며 외치는 종교인을 바라보며 군인은 귀찮다는 듯 자신에게서 떨어지라고 손짓했다.

“정현 세력이야 상부에서도 제거하고 싶어 하니 그렇다 쳐도, 인사과장님은 아니잖아. 정말 명령대로 해도 괜찮은 거 맞아?”

“지금이 아니면 인사과장님이 진 짐을 덜어드릴 수 없습니다. 장교님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초월자님께서 강림하시더라도 인사과장님을 죽이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그건 맞지.”

“인사과장님이 진 짐을 내려드릴 방법은 실험실을 무너뜨리고 바깥으로 나가는 통로마저 전부 파괴하는 것뿐입니다. 아아- 슬프지 않습니까? 본인의 죄도 모른 채 계속해서 악의 구렁텅이로 빠지는 인사과장님의 모습이 전 너무나 슬픕니다. 그를 구원하지 않고는 저의 깊은 슬픔을 떨쳐낼 수 없습니다.”

군인은 한숨 쉬더니 하던 기도나 빨리 끝내라고 재촉했다.

“시련도 남아 있으니까 어서 일이나 끝내자. 근데 자폭 장치 가동하려면 소장 눈깔이 필요하다는 거 아니었어? 내가 가져올까?”

“아닙니다. 신께서 그가 이곳으로 올 것이라 점지해주셨습니다. 장교님께서도 믿으십시오! 믿음이 모든 걸 해결해줄 겁니다!”

두 손을 천장을 향해 뻗으며 종교인은 열심히 믿음을 설파했다.

“네가 믿으라는 신은 뭐라 할까? 좀 그래. 구원받으면 바퀴벌레가 된다니.”

“멸망 이후, 모든 생명체의 수는 점차 줄어들었습니다! 인류, 개, 고양이, 나무, 전부 수가 줄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바퀴벌레만은 아닙니다. 바퀴벌레의 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빠른 속도로 늘어났습니다. 그 이유가 뭔지 알고 계십니까?”

“죄를 씻고 구원받으면 바퀴벌레가 된다며.”

“그렇습니다! 죄를 씻어내 바퀴벌레가 되기 위해선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위대하신 바퀴벌레 신께서 장교님도 구원해주실 겁니다.”

“알겠어. 한번 믿으려고는 노력해볼게. 그러니 제발 그 빌어먹을 기도 좀 빨리 끝내봐.”

듣자 하니 실험실을 폭파한 장본인은 이 정신 나간 종교인인 것 같다.

“오늘 죄 많은 자를 신님의 곁으로 보내고자 하니, 부디 소장을 이곳으로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종교인이 소리 높여 기도한 지 얼마 안 되어 구석에 놓인 캐비닛 문이 열렸다. 누굴까 하고 지켜보니 캐비닛 안에선 최정규가 다리를 절뚝거리며 걸어 나왔다.

“진짜 바퀴벌레 신이 있는 건가? 기도할 때마다 다 이루어지는 것 같네.”

“그분의 존재를 의심하시면 안 됩니다. 믿으십시오. 믿으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종교인의 외침을 무시하고 군인은 품에서 권총을 꺼냈다. 그들의 모습을 본 최정규는 급히 허리 숙였다.

“작전 과장님과 대주교님께선 여기에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작전 과장과 대주교? 단순한 회사 내 인물이 아니라 고위직이었나.

“심판의 날이래. 귀찮은데 같이 가자길래 왔어.”

“맞습니다. 신이 점지해준 심판의 날은 바로 오늘입니다! 오늘 많은 이들이 구원받게 될 겁니다!”

“하- 모르겠고, 넌 그냥 죽으면 돼.”

최정규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죽음을 맞이했다. 가슴에 총을 맞을 때까지도 저항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어지간히도 당황한 모양이다.

종교인은 최정규가 쓰러지자 그의 곁에 가 두 손을 모았다.

“오늘 한 생명이 그대의 곁으로 갔습니다. 다른 이를 고문하던 이의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해주시길 바랍니다.”

“기도 끝났지? 눈 뽑는다?”

종교인이 기도를 마치자 군인은 바닥에 쓰러진 최정규를 뒤집었다. 그리고 그대로 손으로 눈알을 뽑아냈다.

“이제 바로 실험실 폭파하는 거야?”

“아직은 때가 아닙니다. 정현 세력 헌터들과 인사과장님의 싸움을 지켜봐야 합니다.”

“출입구 쪽 CCTV가 저기 있네. 근데 인사과장님은 안 보이고 내 부하들이랑 정현 세력 헌터들밖에 안 보이는데?”

그때 캐비닛 문이 닫히더니 다시 열렸다.

“여기 어딘가에 자기가 있을 것 같아서 왔는데, 왜 자기는 보이지 않고 작전 과장하고 대주교가 있는 거지?”

캐비닛에서 나타난 건 강이란. 무슨 일인지 그는 출입구 쪽으로 가지 않고 소장실로 왔다.

“상부의 명령을 받고 왔습니다.”

강이란의 계급이 더 높은 건지 군인과 종교인은 곧바로 머리를 숙였다.

“상부의 명령이 연구소장을 죽이라는 거였나?”

강이란은 죽어 있는 최정규에게서 눈길을 거두더니 단검을 뽑아 들었다.

“눈을 뽑은 걸 보니, 자폭 장치를 가동하려는 생각이었나 보네.”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인사과장님께선 죄를 씻어내야 한다고. 오늘이 그날입니다. 제가 인사과장님의 죄를 씻겨드리겠습니다. 인사과장님께서 따로 하셔야 할 건 없습니다. 그저 가만히 구원을 기다리시면 됩니다!”

“너희가 말하는 구원 따윈 안 바란다고 몇 번이고 말했던 것 같은데, 내가 기억을 잘못하고 있나?”

강이란이 던진 단검이 정확히 종교인의 어깨에 꽂혔다. 종교인은 자신의 몸에서 흐르는 피를 보며 몸을 떨더니 더욱 열심히 기도하기 시작했다.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한 거였는데, 역효과가 났네. 어쨌든. 누구야?”

“누구냐니, 어떤 걸 물어보시는 겁니까?”

“너희는 실험실에 자폭 장치가 있다는 걸 알아선 안 되잖아. 누가 알려준 거야? 최정규 연구소장은 여기 죽어 있는 걸 보니, 범인이 아닌 것 같고. 강남 실험실 연구소장 짓인가? 아니면 그보다 더 위?”

마지막 말에 군인이 움찔하자 강이란은 소리 높여 웃었다.

“아무래도 날 죽이려는 간부님이 계신가 보네. 정성훈 헌터님의 명령, 맞지?”

“잘 알고 계시면서 굳이 물어볼 필요는 없었을 텐데요?”

“조카랑 날 한 번에 묻으려는 생각이었나 보네.”

“인류가 구원되는 걸 방해하는 자들에게 벌을 주는 건 당연합니다. 인사과장님은 오히려 고마워하셔야 합니다. 저희가 직접 죄를 씻어내 주려 하고 있지 않습니까.”

뒷걸음질 치던 종교인은 컴퓨터가 놓인 책상 아래에 달린 버튼을 눌렀다.

‘관리자 권한에 따라 공덕 실험실이 곧 폭파됩니다.’

‘실험실 내에 남아 계신 분들은 서둘러 밖으로 대피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실험실은 1분 뒤 자동으로 폭파됩니다.’

“1분만 시간을 벌어주신다면 신께선 반드시 장교님을 구원해주실 겁니다.”

“구원 따윈 안 바라니까, 일이나 제대로 끝마쳐.”

군인은 종교인에게 최정규의 눈알을 던져주곤 권총 두 자루를 꺼내 들었다. 이후 강이란이 접근할 틈도 주지 않고 총을 난사했다. 신기하게도 탄창에 든 총알 수에 제한이 없는 건지 권총에선 끊임없이 총알이 발사되었다.

엄청난 속도로 자신에게 날아오는 총알을 전부 베며 강이란은 앞으로 뛰어갔다. 그 모습을 본 군인은 표정이 점점 썩어갔다.

마침내 강이란이 군인의 코앞에 다가왔을 때, 총구는 검에 베여 완전히 부서졌다. 무용지물이 된 권총을 버리고 군인은 육탄전을 벌였다.

신체의 강도가 어마어마하게 높은지, 강이란의 단검은 군인의 맨몸에 큰 상처를 입히지 못했다.

자잘한 상처만 입히다 강이란은 별안간 뒤로 물러나며 단검을 던졌다. 군인은 두 팔을 얼굴에 가져다 대 날아오는 단검을 간신히 받아냈다.

“내가 전에 말했지? 작전 과장은 빈틈이 잘 보인다고.”

양팔이 얼굴 쪽을 향한 탓에 비어 있는 군인의 복부를 향해 강이란이 주먹을 뻗었다. 공격에 군인의 몸이 뒤로 밀린 틈을 타 강이란은 종교인에게 다가갔다.

“각오는 되어 있겠지?”

강이란이 종교인을 향해 주먹을 뻗으려는 찰나, 안내 방송이 나왔다.

‘최종적으로 공덕 실험실 폭파가 승인되었습니다.’

‘공덕 실험실이 폭파됩니다.’

“설마 고유 능력을?”

“오늘을 위해 초월자님께서 장교님께 고유 능력을 선사하신 겁니다. 그분도 이들이 구원받길 원했던 겁니다. 그러면 부디 죄를 씻고 바퀴벌레로 태어나길 기도하겠습니다.”

“귀찮은 일 끝났으니, 며칠 병가 내야겠네.”

[‘별의 적대자’님이 500만 포인트를 사용하여 자신의 수혜자를 텔레포트 시킵니다.]

[‘부동의 노인’님이 500만 포인트를 사용하여 자신의 수혜자를 텔레포트 시킵니다.]

“안 돼! 자기들이 여기서 죽어선 안 된다고!”

[죽음의 경계로 이동합니다.]

***

뭐가 어떻게 된 거지?

군인이 강이란을 막아낸 시간은 많아봤자 30초 남짓. 그런데 왜 공덕 실험실 폭파가 승인된 거지? 심지어 종교인이 최정규의 눈으로 홍채 인식을 하는 건 보지도 못했는데?

강이란과 종교인이 언급한 장교의 고유 능력과 관련된 건가?

“혹시 시간을 스킵해서 짧은 미래로 가는 고유 능력이 있어?”

「이 몸이 초월자가 부여할 수 있는 모든 고유 능력을 알고 있는 건 아니라네.」

“그렇지만 그쪽도 시간과 관련된 신이잖아. 그럼 뭐라도 알고 있는 게 있지 않아?”

「이 몸이 말해줄 수 있는 건, 자네가 죽기 직전 그 누구도 시간을 건드리진 않았단 것뿐이네.」

“시간을 건드리지 않았다고? 그럼 어떻게?”

「그나저나 이제 ‘죽음의 경계’에 오는 게 익숙해졌나 보군.」

「죽자마자 공포에 질리지 않고 생각부터 정리하다니. 여러 번 보았지만, 자넨 정말 이상해.」

“머리 아프니까 잠깐만 조용히 해줘.”

「많이 혼란스럽나 보군.」

작전 과장과 대주교라는 직책을 가진 걸 보면 실험실을 폭파한 두 사람 모두 강한 헌터일 거다. 심지어 작전 과장은 아주 잠깐이지만 강이란의 공격을 막아내기도 했으니 실력은 보증된 셈.

문제는 그런 놈들이 정성훈의 명령을 받아서 나랑 강이란을 한 번에 죽이러 왔다는 거다. 우리가 탈출할 시간 따윈 안 주고 실험실을 폭파할 게 분명하다.

“애초에 연구소장이 그쪽으로 가지 못하도록 막아야겠네. 그러면 자폭 장치를 가동하지 못하겠지.”

「강이란 헌터를 ‘독사지옥’의 구덩이에 빠뜨린 다음, 그들이 알아서 실험실을 폭파해주길 기다린다는 것 아니었나?」

“그 작전은 폐기야. 송태섭 헌터랑 한성수 헌터가 군인들을 상대할 동안, 이나은 헌터랑 이화가 작전 과장과 대주교를 상대하게 할 거거든.”

「뭔가 이상하지 않나? 그러면 강이란 헌터를 상대할 사람이 없는 거 아닌가?」

“그 자식은 내가 상대하면 돼.”

「자네가 상대한다?」

“강이란이 상태창을 봐준 덕분에 네가 준 힌트를 완전히 이해했거든.”

「두 번이나 더 죽고서야 이 몸이 준 힌트를 이해하다니. 너무 늦는 거 아닌가?」

“이제라도 알아챈 게 어디야. 답답하면 직설적으로 말하던가.”

「그런 건 재미없지 않나?」

“알아서 해. 그리고 당분간 못 볼 거야. 이번에 강이란을 확실히 쓰러뜨릴 거거든.”

「자신감 넘치는군.」

“혼란스러웠던 건 강이란 때문이 아니라 다른 두 사람 때문인 거니까.”

「그럼 자네가 줄 즐거움을 기대하고 있겠네.」

[CONTINUE?]

[최근 저장 지점으로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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