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독사지옥(13)]
급소를 맞은 고통까진 참을 수 없었는지 강이란의 입에서 처음으로 욕설이 터져 나왔다. 그가 욕설을 내뱉으며 뒤로 물러난 덕분에 벽에서 벗어나 공격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수십 번 죽음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몸에 배었기 때문일까? 공격은 물 흐르듯 이어졌다.
식도를 휘두르고, 프라이팬을 내리찍는 걸 반복하다 보니 공격을 회피하는 데 급급하던 강이란은 결국 군인 시체에 발이 걸리고 말았다.
내가 유도했던 대로 강이란이 넘어져, 곧바로 그의 위에 올라탔다.
이제 식도를 꽂아 넣어 강이란의 숨통을 완전히 끊기만 한다면-
“잡았다.”
식도를 들어 올린 팔을 강이란이 강하게 쳐냈다. 식도가 저 멀리 날아가자 강이란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자기, 내가 이쯤에 시체가 있단 걸 까먹을 줄 알았던 거야?”
“제길.”
한 수 앞서 본 건 내가 아닌 강이란이었다.
강이란은 무기를 잃은 내 멱살을 잡더니 그대로 단검으로 목을 그었다.
[죽음의 경계로 이동합니다.]
***
「오랜만에 공격 한 번 성공했다고 너무 좋아한 거 아닌가?」
「벌써 몇 번이나 목이 베어 죽은 건가? 이 몸이 세기론 정확하게 열세 번이었던 것 같은데.」
“귀환이나 시켜줘.”
「쌀쌀맞긴. 서른한 번째 죽음은 없길 바라네.」
[CONTINUE?]
[최근 저장 지점으로 돌아갑니다.]
***
초월자의 바람과 달리 죽음은 그 뒤로도 반복되었다.
날아오는 단검에 맞아 죽은 게 서른다섯 번.
강이란에게 붙잡혀 죽은 게 예순두 번.
끊어진 컴퓨터 전선에 감전되어 죽은 게 세 번.
“자기, 의외로 침착하네. 좋아, 계속 즐겨볼까?”
하도 많이 죽음을 반복하다 보니 이제는 강이란이 퍼붓는 속공에 몸이 자동으로 반응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기계처럼 공격을 피하고, 그의 급소에 주먹을 꽂아 넣은 다음 군인 시체 위로 몰아넣었다.
“이것도 하도 반복하다 보니 지겹네.”
쓰러지는 강이란을 바라보며 군인의 총을 집었다.
총에 든 총알은 단 한 발. 그렇다고 심장이나 머리 같은 급소 부근을 총으로 쏠 순 없었다.
쉰네 번째 죽음에서 저 자식이 밝힌 바에 따르면 본인에게는 죽음에 이르는 공격을 딱 한 번 방어할 수 있는 장비가 있다고 했다. 그 말대로 급소를 노리고 쏘면 저 자식이 숨겨둔 장비가 총알을 튕겨내게 된다. 그렇게 튕겨 나간 총알은 전선을 끊고, 결국 내가 거기에 감전되어 죽는 결과로 이어지게 되니 여기선 다리를 쏘는 게 최선이다.
침착하게 오른 다리를 쏜 뒤 총을 제어실 밖으로 던졌다.
“저번엔 저거에 달린 검을 던져 나를 죽였었지.”
“…이렇게 쓰러지면 신나서 내 위에 올라탈 줄 알았는데.”
“오른 다리를 맞추고 나서 총을 밖으로 던졌으니까 인제 단검을 던지고.”
머리를 노리고 기습적으로 던진 단검을 피한 뒤.
“몸통 쪽으로 한 개 더 던진 다음.”
이어서 날아오는 단검을 프라이팬으로 쳐냈다.
“프라이팬으로 시야가 가려진 틈을 타 내게 돌진.”
어느새 본인의 소매를 찢어 다리 부근의 상처를 묶은 강이란은 황소처럼 돌진했다. 한 번은 이렇게 돌진한 강이란에게 부딪쳐 뒤로 넘어졌으나, 그것도 이미 경험한 이후. 난 침착하게 프라이팬을 놓고 몸을 옆으로 날렸다. 부딪칠 대상이 사라지자 강이란은 자칫 균형을 잃을 뻔했다.
“저 상태로 균형을 잃진 않고 나를 보며 자세를 취한 뒤, 다시 속공.”
발끝으로 간신히 균형을 유지한 강이란은 새로운 단검 두 자루를 장비하고 내 쪽으로 달려들었다.
“시시하네.”
숨통을 끊기 위해 다가오는 단검을 모두 피하며 이따금 내 공격을 섞어 주었다. 덕분에 공격을 퍼붓는 건 강이란이나 그의 몸에만 상처가 늘어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졌다.
“어째서?”
몇 번이고 들은 의문을 던진 강이란은 결국 허탈한 표정으로 공격을 멈추었다. 그러나 이것조차도 강이란의 연기.
“여기서 급소를 노리면 숨겨둔 장비를 꺼내니까….”
제일 최근 죽은 시점은 여기다. 이대로 급소를 노리면 일전에 봤던 장비가 식도를 튕겨내고 기세는 강이란에게 넘어간다.
그때의 죽음을 떠올리며 강이란에게 달라붙어 접근전을 이어가는 대신 식도를 목 쪽을 향해 던졌다.
식도를 던진 건 숨겨둔 장비를 쓰게 하기 위함. 식도가 강이란의 목에 가까워지니 섬광이 일었다. 섬광과 함께 튀어나온 면도날에 부딪혀 식도의 궤적이 바뀌자 강이란은 완전히 질색한 듯 입을 떡 벌렸다.
“숨겨둔 장비를 쓰게 만들었으니, 이젠 맘 놓고 공격해도 되겠지.”
본인의 수를 모두 읽혀 당황하는 강이란의 머리통을 향해 새로 꺼내든 프라이팬을 휘둘렀다.
정수리, 뺨, 턱 등. 강이란의 머리에 프라이팬이 부딪칠 때마다 경쾌한 소리가 제어실에 울려 퍼졌다.
한참을 프라이팬으로 때리던 중 별안간 강이란이 양손을 들었다. 그 상태로 그는 손에 들린 단검을 모두 떨어뜨렸다.
“역시 날 죽일 사람은 자기밖에 없다니깐. 인제 그만 항복할게.”
저래놓고 나를 죽인 전적이 몇 번, 아니 수십 번 있기에 항복 선언은 무시하고 급소를 한 번 더 발로 올려 찼다. 그에 강이란의 몸이 반으로 접혔다.
신기하게도 다음 공격을 어떻게 펼칠지 생각하기도 전에 내 손엔 강이란이 떨어뜨린 단검이 들려 있었다. 자연스럽게 단검을 그의 등 쪽으로 내리찍자 강이란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강이란은 땅에 떨어진 단검을 재빨리 드는 동시에 몸을 완전히 틀어 공격을 막아냈다.
단검과 단검이 부딪혀 몸에 찌릿한 느낌이 퍼져갔으나 공격을 멈출 순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공격을 주고받았을까.
마침내 제어실 내에 울려 퍼지던 쇳소리가 멈추었을 땐 둘 다 맨손인 상태였다. 그러나 땅에 떨어진 단검을 줍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 이거야말로 제대로 된 싸움이지!”
강이란이 흥분한 듯 웃으며 먼저 주먹을 뻗었다.
그의 주먹이 복부에 꽂혀 숨이 턱 막혔으나 어느새 내 주먹도 앞으로 뻗어지고 있었다.
그 뒤로 우린 한참 동안 주먹을 주고받았다.
온몸이 열기를 내뿜으며 고통을 호소했으나 공격을 멈추고 싶진 않았다.
본능에 맡겨 전투를 이어가다 보니 머릿속엔 단 한 가지 생각만이 남아 있었다.
저 자식과 엮인 이후 겪었던 죽음들을 갚아주고 싶다.
예술회관에 붙잡혀 가 겪게 된 죽음.
야구경기장으로 이끌려 겪게 된 죽음.
주경기장에서 공방전을 마칠 때까지 겪게 된 죽음.
마포대교에서 법무팀장과 엮이며 겪게 된 죽음.
용산역에서 부대장을 쓰러뜨리려다가 겪게 된 죽음.
마지막으로 지금 강이란과 싸우며 겪게 된 죽음까지.
목이 잘리고, 괴수에 먹히고, 건물에 압사하는 등등. 다양한 방식으로 겪은 그 모든 죽음이 전부 저 자식에게서 시작되었다는 생각에 어느새 냉정함을 잃고 말았다.
내가 겪은 고통의 일부분이라도 돌려주고 싶다.
그 일념으로 미친 듯이 주먹만을 휘둘렀다.
주먹에 묻은 피가 강이란이 흘린 건지 내가 흘린 건지 분간이 안 될 시점. 모든 스탯을 배제한 인간 대 인간의 싸움은 강이란이 총을 맞은 다리를 구부리며 끝을 맺었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기 때문인지 다리에서 힘이 풀린 강이란은 그대로 몸을 숙였고, 결국 내 주먹을 얼굴에 정통으로 맞고 말았다.
코와 입에서 피를 뿜으며 뒤로 넘어간 강이란은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자기, 대체 뭐야? 한두 번도 아니고, 어떻게 내 공격을 전부….”
강이란의 물음에 ‘퀴네에’를 벗으며 답했다.
“이미 다 경험해본 거거든.”
“경험했다?”
“말해줘봤자 의미 없긴 해도, 너한테만큼은 말해줄게. 나한텐 죽음 이후 귀환하는 특성이 있어. 그러니까 네 놈이 수십 번도 넘게 날 죽여준 덕분에 내가 널 쓰러뜨릴 수 있었던 거야.”
[금지된 명령어입니다.]
[CONTINUE?]
[최근 저장 지점으로 돌아갑니다.]
“자기, 대체 뭐야? 한두 번도 아니고, 어떻게 내 공격을 전부….”
‘CONTINUE?’ 특성을 언급하기 직전으로 돌아왔으나, 상관은 없다. 속 시원하게 속마음을 한 번 털었으면 된 거다.
“인제 그만 지긋지긋한 연 좀 끊자.”
‘퀴네에’를 벗고 바닥에 떨어진 식도를 집었다. 그런데 별안간 강이란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럴 줄 알았어. 나를 쓰러뜨릴 사람이 있다면 그건 자기일 줄 알고 있었어.”
식도를 집고 다가가는데도 강이란은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내가 말했잖아. 자기는 혼란을 퍼뜨릴 퍼즐 조각이라고. 즐길 건 다 즐겼으니, 이제 원하시는 대로 하세요.”
불길함이 잔뜩 어린 말에 서둘러 뛰어가 강이란의 심장에 식도를 꽂아 넣었다. 강이란의 웃음은 눈이 뒤집히고 나서야 멈추었다.
“현아, 내가 잘못 보고 있는 게 아니지?”
강이란의 몸에 꽂은 식도를 뽑는데, 뒤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니 송태섭이 군인 한 명의 목에 대검을 겨눈 채로 서 있었다.
“네 앞에 쓰러져 있는 사람, 강이란 맞아?”
“제대로 본 거 맞아요.”
“네가 어떻게 강이란을….”
“나중에 설명해 드릴게요. 근데 군인은 왜?”
“네가 한 방송을 들었거든. 그래서 저 자식한테서 너를 구해주려고 데려왔지.”
인질로 삼아서 나와 교환하려고 했던 건가? 강이란의 성격이라면 절대 교환해주지 않았을 텐데.
뭐, 상관은 없다. 어차피 강이란은 쓰러졌으니….
“현아, 다시 ‘퀴네에’ 써.”
식도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통로 쪽으로 다가가는데, 송태섭이 다급히 외쳤다. 그의 시선은 내 등 뒤에 꽂혀 있었다.
고개를 돌려 그의 시선을 따라가니 상체를 일으키는 강이란이 보였다.
“분명 심장을 찔렀을 텐데….”
“자기, 강림의 조건 기억해?”
피를 흘리는 강이란의 입에서 들려선 안 될 소리가 흘러나왔다.
“강이란이 극찬한 자기라면 강림의 조건쯤은 기억하고 있을 텐데.”
강림의 조건이라면 전속 계약, 진명, 그리고 모든 스탯이 0인 헌터. 그걸 왜 갑자기….
“너 설마….”
“너라니. 자기, 격이 다른 존재 앞에서 너무 예의 없는 거 아니야?”
강이란은 식도에 찔린 상처에 손을 집어넣더니, 본인의 심장을 뽑아 들었다.
“필멸자는 이런 거에 의존하는 거야? 한심하네.”
그러더니 심장을 꽉 쥐어서 터뜨려버렸다.
“자기들은 이렇게 하면 죽는 거지? 어휴, 약하다. 약해.”
본인의 심장이 터지는 것을 보며 까르르 웃던 강이란의 뒤집힌 눈이 어느새 본래의 자리를 되찾아 있었다.
“자기, 고마워. 덕분에 놀러 올 수 있었어.”
본래의 자리를 되찾은 강이란의 두 눈은 완전히 붉게 물들어 있었다.
[‘낮은 시선의 소유자’님이 ‘피의 살육자’님의 강림에 의문을 표합니다.]
[‘허영의 사내’님이 ‘피의 살육자’님의 강림을 주의 깊게 지켜봅니다.]
[‘별의 적대자’님이 ‘피의 살육자’님의 살육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