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독사지옥(18)]
내 인사에 삼촌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두려움이라기보다 우리에게 붙잡힌 게 분해서 몸을 떠는 거라고 말하듯 표정은 잔뜩 찡그리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남아서 자료를 폐기했다는 게 우리 삼촌이었어?”
“응. 게다가 강남 실험실 소장한테는 본인이 모든 자료를 폐기하고 밖으로 도망치고 나면 자폭 장치를 가동하게 시킨 것 같더라고. 정말 간발의 차였어. 우리가 삼촌을 만났을 땐, 삼촌이 자료 폐기를 마치고 밖으로 도망치기 직전이었거든.”
“자폭 장치는 가동 안 된 거야?”
“아니. 우리가 삼촌을 잡자마자 자폭 장치가 가동됐지. 1분 뒤 터진다고 해서 김화영 헌터의 스킬로 곧바로 여기로 도망쳤어. 김화영 헌터가 없었더라면 우리 전부 강남 실험실에 깔렸을 거야. 안 그래요, 삼촌?”
이화가 삼촌의 등을 툭툭 치며 묻자 그는 머리를 땅에 박으며 두 손을 모아 빌었다.
“내가 미안해. 사랑하는 우리 조카들이 있을 줄 알았더라면, 실험실을 터뜨리진 않았을 거야. 아니지, 오히려 그 반대야. 너희랑 같이 오붓하게 차라도 한잔했겠지.”
“저희가 차 한잔할 사이는 아니지 않아요?”
이화의 비아냥에 삼촌은 입을 다문 채 두 손을 모아 빌기만 했다. 방금까지 찡그린 표정을 짓던 사람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빌어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뭣보다 애초에 저희가 온다는 걸 알아서 삼촌이 강남 실험실에 와 있던 거였잖아요. 본인이 싼 똥 치우느라 고생 많으셨네요. 제대로 치우긴커녕 더 싸지르긴 하셨지만요.”
“전부 회사에서 시킨 일이야. 솔직히 이화 말대로 우리는 남남이나 다름없잖아? 그런데 단지 내 조카라는 이유로 직접 너희를 죽이고 만약 패배할 것 같으면 공덕 실험실과 강남 실험실의 실험 자료를 전부 폐기하고 실험실까지 폭파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내가 상무 자리를 따내려고 그동안 회사에 얼마나 헌신했는데! 나한테 그딴 명령을 내리면 안 되는 거잖아!”
삼촌은 이야기하다 보니 표정 관리에 실패한 듯 다시 처음 지었던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본인이 위험한 상황에 부닥쳐 있다는 자각은 하지 않고 있나 보다.
“근데 너희는 갑자기 왜 회사를 건드린 거야? 인천에서 잘 지내던 거 아니었어? 그러면 거기서 계속 잘 지내기나 하지 왜 뜬금없이 내 조카라는 이야기까지 하면서 회사를 친 거야? 삼촌이 잘 되는 게 보기 싫었어? 가족끼리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방금까지 남남이나 다름없다면서 이젠 또 가족이라고요? 아, 그래서 삼촌이 우리 엄마 돈까지 손대고 도망친 거였지. 본인 필요할 땐 가족이고 아닐 땐 남남이니까. 맞죠?”
“뭐야. 너네 고작 몇 푼 때문에 목숨까지 걸고 회사를 건드린 거였어?”
“고작 몇 푼? 우리 엄마가 오빠랑 나를 위해서 남긴 돈이야! 우리를 위해서 평생을 모으신 돈이지, 너 같은 놈이 쓰라고 남긴 돈이 아니라고! 우리가 액수 때문에 이러는 것 같아?”
삼촌의 무심한 말에 결국 이화가 폭발했다. 이화가 난폭하게 복부를 걷어차 삼촌은 헛기침하며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이화의 발길질은 내가 말릴 때까지 계속되었고, 이화가 물러났을 때 삼촌의 얼굴은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이 정도에서 끝난 걸 고마워하세요. 만약 삼촌이 회사의 중요 요직에 앉아 있지 않았더라면 여기서 끝나지 않았을 거예요.”
이화의 말을 들은 삼촌은 구르는 걸 멈추더니 곧장 자세를 바꿨다. 삼촌이 거만하게 우리 쪽을 바라보고 앉아 이화는 기가 찬 듯 혀를 찼다.
“너희한테 필요한 건 상무란 내 직책인 거지? 어디 보자, 내가 알고 있는 회사의 정보라도 털려는 건가?”
“맞아요. 그래서 지금부턴 회사에 관해서 물어볼 거니까 제대로 답하세요.”
“알겠어. 알고 있는 건 성심성의껏 답해줄게.”
“우선 회사의 본부는 어디에 있어요? 삼촌 정도면 거기에 아무런 제약 없이 들어갈 수 있는 거죠?”
“음…. 본부는 종로 쪽에 있긴 한데, 가봐야 소용없을걸?”
삼촌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어갔다.
“회사 본부 사람들은 너희가 인사과장을 죽였다는 걸 알고 전부 서울에서 빠져나갔어. 공덕하고 강남에서의 실험도 마무리됐겠다 이참에 방해꾼이 없는 곳으로 간다던데?”
뭐? 서울에서 빠져나갔다고?
“그럼 어디로 갔는데요?”
“그건 나도 모르지.”
이화가 다시 한번 삼촌의 복부를 걷어차려 하자 그는 다급히 말했다.
“우리 조카도 봐서 잘 알잖아. 회사에선 날 버렸어. 내가 도망치기도 전에 자폭 장치를 가동한 걸 보면 몰라?”
“거짓말하지 마세요.”
“나도 답답해 미치겠어! 나한텐 실험실의 연구 자료만 폐기하고 나면 새로 옮긴 본부의 위치를 알려준다고 했단 말이야. 그래놓고 자폭 장치를 터뜨려서 나까지 죽이려고 했는데 안 답답하겠어?”
삼촌은 억울한 듯 몸부림치며 바닥을 주먹으로 치기까지 했다.
“실마리라도 없어요?”
“그러고 보니 회사에서 가장 강한 세력이 있는 곳으로 간다고 했던 것 같아. 서용현 헌터가 주축이었던 곳이라 했었나? 거기가 어딘진 나도 정말 몰라.”
“서용현 헌터라고요?”
“어? 으응.”
이름을 듣고 놀라자 이화가 아는 사람이냐고 물었다.
“시련이 시작되기 전에 만난 적 있어. 그분이 지내시는 곳은 춘천이야.”
“자, 봐봐. 내가 도움이 됐지?”
“시끄러워요. 그것 말고 더 아는 건 없어요?”
“너희 같으면 나 같은 사람한테 중요한 정보를 알려주겠어? 새로 옮긴다는 곳에 관해서 내가 아는 건 이게 다야. 그런데 인사과장은 정말 죽은 거야?”
“후원 미션에 덧붙여진 내용 못 봤어요?”
“인사과장이 죽었단 말이지.”
이화는 지금 당장 더 이야기할 건 없겠다며 나를 끌고 밖으로 나왔다.
삼촌과의 대화를 마치고 내가 누워 있던 점포로 돌아가니 김아람과 김화영, 이나은 그리고 한성수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들이 나를 기다리는 이유는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젠 송태섭 헌터가 어떻게 되었는지 들을 수 있을까요?”
삼촌이 허튼짓 못 하게 감시하는 동현이 형과 부상자를 치료하는 중인 수연이는 이 자리에 있지 않았지만, 이나은의 부탁에 노인에게 들려줬던 이야기를 일행에게 다시 한번 들려주게 되었다. 그들은 내가 강이란을 쓰러뜨렸으나 그의 몸에 초월자가 강림했다는 부분에서 무척이나 놀란 듯했으나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말을 끊진 않았다. 마침내 이야기를 마쳤을 때, 김화영이 쪽지 하나를 보여주었다.
“이건 뭐예요?”
“전력실에서 백민기 헌터한테 받은 거야. 중요한 내용이니까 무조건 실험실 밖으로 나간 다음에 보라고 했거든. 난 이미 읽어봤으니까 너네도 한번 봐봐.”
쪽지는 송태섭이 쓴 거였다. 송태섭이 쓴 쪽지가 왜 백민기의 손에 들려 있던 건지 의문이 들었는데 내용을 읽으니 이유를 알게 되었다.
- 강이란을 쓰러뜨릴 방법을 나름대로 고민해봤어. 정면으로 붙었다간 주경기장에서 그랬던 것처럼 패배할 것만 같았거든. 고민의 결과, 강이란을 실험실에 가두어둔 뒤 실험실을 폭파하는 게 최선이라는 결론이 나왔어. 영화 같은 데서 보면 실험실에 폭파 장치가 하나쯤 있으니까, 공덕 실험실도 그러리라 생각하고 백민기 헌터에게 물어봤는데 본인이 자폭 장치를 가동할 수 있다고 하셨어.
그 이야기를 듣고 내가 강이란을 막는 동안 백민기 헌터가 자폭 장치를 가동하는 작전을 세웠어. 원래라면 너희랑 작전을 논의해야 하는데 강이란만큼은 내 손으로 직접 끝내고 싶어서 이런 계획을 세우게 되었어. 만약에 백민기 헌터가 너희에게 이 쪽지를 전달해줬다면 내가 실험실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거니까 아저씨한텐 말 잘 전해줘. -
“백민기 헌터는 자폭 장치를 가동하면 그걸 가동한 사람까지 죽는다는 건 이야기 안 했나 보네요.”
“그러니까 송태섭 헌터가 쪽지를 맡겼겠지. 두 사람 다 처음부터 죽을 마음가짐으로 실험실에 갔었던 거였네.”
착잡한 마음이 들긴 하지만, 저 둘이 왜 그러한 행동을 했는지에 관한 의문은 풀렸다. 송태섭은 강이란과의 인연을 끝내기 위해, 백민기는 본인이 만든 실험실에서 일어난 일들에 책임을 지기 위해 죽음을 택한 것 같다.
“그리고 이것도 전해달라고 했어.”
이번에 김화영이 건넨 건 건전지였다. 일반적으로 보던 건전지보다는 조금 더 크다는 차이점이 있었지만, 그것 외에 별다른 특별한 점은 없어 보였다.
“건전지는 왜?”
“현이 너한테 필요한 거야.”
“저한테 필요한 거요?”
“응. 너 ‘후원 미션’으로 허상헌 헌터의 신기를 훔쳐야 하지 않았어?”
“아…. 그랬네요.”
워낙에 강이란과 송태섭에게 신경을 쏟다 보니 ‘후원 미션’에 관해선 완전히 잊고 있었다.
“이게 허상헌 헌터의 신기인 거예요?”
“그렇대. 전력실에 있었어. 맞다. 그리고 번개, 그리스·로마 신화. 이 두 단어도 말해달라 했어.”
“신기의 진명과 관련된 건가 보네요.”
두 단어를 새겨들으며 건전지를 받아들자 글씨가 새겨졌다.
[플레이어 ‘허상헌’의 신기를 획득하였습니다.]
[‘호색한 찬탈자의 건전지’]
- 사용 가능 직업 : 전 직업
- 장비 등급 : 신기
- 내구도 0 공격력 0 방어력 0
- 1.5v
[플레이어 정현이 ‘후원 미션’을 클리어했습니다.]
[신기가 지급됩니다.]
[‘빛나는 눈의 전략가’님의 ‘후원 미션’을 클리어했습니다.]
[플레이어 정현이 ‘후원 미션’을 클리어했습니다.]
[신기가 지급됩니다.]
글씨가 새겨지는 동시에 얼굴이 비칠 정도로 투명한 철 방패와 함께 또 다른 건전지가 손에 쥐어졌다.
[‘빛나는 눈의 전략가의 방패’]
- 사용 가능 직업 : 전 직업
- 장비 등급 : 신기
- 내구도 900 공격력 0 방어력 1000
- 50% 확률로 착용자를 향한 공격을 방어합니다.
[‘번개의 아내의 건전지’]
- 사용 가능 직업 : 전 직업
- 장비 등급 : 신기
- 내구도 0 공격력 0 방어력 0
- 1.5v
[‘빛나는 눈의 전략가’님이 당신을 향해 자애로운 미소를 보냅니다.]
[‘번개의 아내’님이 당신의 승리를 기원합니다.]
[‘호색한 찬탈자’님이 격노합니다.]
[‘호색한 딸바보’님이 불안을 확신으로 바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