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전야 (8)]
워울프는 이나은보다 덩치가 두 배나 컸음에도 민첩함은 뒤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나은보다 빠르다면 빠르다고 할 수 있었다. 파괴력도 엄청나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주변의 나무가 부러져 나갔다. 그런 워울프를 벌써 셋이나 쓰러뜨렸다니. 이럴 때마다 이나은도 괴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뭐, 괴수를 산 채로 먹어 치우는 내가 할 말은 아닌가?”
자조하며 주먹을 주고받는 워울프와 이나은의 주변을 빙 돌아 박다현에게 다가갔다. 그 후, ‘퀴네에’를 벗으니 그녀는 해맑은 표정으로 나를 반겨 주었다.
“오빠, 잘 갔다 왔어? 성안은 어땠어? 공주님하고 왕자님은 만났어?”
“도마뱀 왕자라면 만났지. 네가 상상하던 모습은 아니겠지만…. 그보다 어떻게 된 상황이야? 여기 있다는 건 왜 들켰어?”
“음- 있잖아. 그게 말이지.”
대답을 망설이며 손가락을 맞댄 채 바닥만을 바라보는 박다현을 보니, 그녀가 무언가 일을 저질렀단 건 바로 알겠다.
“네가 무슨 일을 저질렀든 간에 임성윤 헌터한테는 비밀로 해줄게.”
“정말 비밀로 해줘야 해. 나 좋아하는 사람이 실망하는 거 이젠 보기 싫단 말이야.”
“약속할게. 그러니 어떻게 된 건지 말해줘.”
“잃어버렸어.”
약속한다고 하자마자 박다현이 뜬금없는 말을 했다. 그 말만으로는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알 수 없어 되물었더니 그녀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 오빠가 삼촌이라고 부르는 사람 말이야. 그만 잃어버렸어.”
삼촌을 잃어버렸다? 그러면 아까 내가 들은 목소리가 정말 삼촌일 가능성도 있다는 건가?
“어쩌다가 잃어버렸는데?”
“그 사람이 계속 배 아프다고 했거든. 나은 언니는 ‘이면’에다가 싸든 말든 알아서 하라고 말했는데, 난 그런 건 딱 싫어서…. 화장실 갔다 올 때까지만 봐주기로 하고 나은 언니가 주변 살피러 간 동안에 몰래 풀어줬어.”
“그리고?”
“그리곤 냄새나니까 조금. 사실 조금은 아니고 조금 멀리 떨어져 있었어.”
애를 속여서 도망친 거였나. 이럴 줄 알았으면 이나은에게 조금 더 주의하라고 경고하는 거였는데.
“이나은 헌터는 왜 삼촌하고 너만 남겨두고 주변 살피러 간 거야?”
“이상한 걸 봤대. 근데 위험하니깐 난 여기 숨어 있으라고 했어. 거울 조각은 언니가 갖고 있다간 깨질 것 같다면서 나한테 맡겼고.”
“이상한 거?”
“응. 그리고 얼마 안 지나서 무시무시하게 생긴 늑대인간이 성 밖으로 나왔어.”
박다현을 삼촌과 단둘이 남겨둔 걸 보면 이상한 걸 가만히 지켜볼 수만은 없다고 판단한 건가?
이나은이 왜 박다현을 홀로 두었는지는 나중에 추궁해야겠다. 지금은 사라진 삼촌의 행방이 우선이다.
“그때 삼촌은 어느 쪽에 풀어줬어?”
“아깐 저기 있었거든.”
박다현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풀숲은 생각보다 멀지 않았다.
“그러다가 뒤돌아본 사이에 뿅 사라졌어.”
“사라진 다음에는 다시 본 적 없고?”
“본 적은 없어. 근데 목소리는 들었다. 그 사람이 막 누구 이름 불러서 워울프한테 여기 숨어 있단 걸 걸렸거든.”
“그래서 워울프랑 싸우게 된 거였구나. 혹시 삼촌이 부른 이름은 기억해?”
“정, 서훈? 정성훈? 둘 중 하나였던 거 같아.”
정서훈이 아니라 정성훈일 거다. 그럼 삼촌은 본인 이름을 부르면서 도망친 건가? 근처에 이나은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굳이?
“목소리가 들린 방향은?”
“저기.”
이번에 박다현이 가리킨 곳은 성 쪽.
정리하자면 삼촌은 이나은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성 쪽으로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도망쳤다는 건데. 보통 붙잡혀 있다가 도망치면 숨죽인 채 조용히 움직이지 않나? 이나은한테 들키면 어쩌려고 자기 이름을 불렀던 거지? 뭔가 이상하다.
“‘이면’ 밖으로는 언제쯤 풀어줬어?”
“오빠 가고 나서 성 앞에 수상한 사람 둘이 갑자기 나타나더니 안으로 들어갔거든. 그래서 언니가 성 쪽으로 간 건데,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르겠어.”
“수상한 사람? 로브 쓰고 있던?”
“로브? 로브가 뭐야?”
“로브가 뭔지 모르면, 그래. 검은 옷. 검은 옷을 입고 있던 사람들이었어?”
“아니, 그런 건 안 입고 있었어. 아! 그러고 보니 그런 색깔 옷을 손에 들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수상한 사람 둘이 갑자기 나타났다는 말을 미루어보아, 도마뱀 수인의 클라이언트들은 초월자의 순간이동으로 성 앞까지 이동한 모양이다. 그런 다음에 성안에 들어오며 로브를 썼겠지.
“근데 한 사람은 많이 본 사람이었어.”
“뭐?”
박다현은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강이란 세력에 속해 있었다. 회사 측 인물의 얼굴을 알고 있다 해서 이상할 건 없다. 중요한 건 그래서 그게 누구냐는 것. 누군지만 알면 주변에 수배서를 돌려서 붙잡을 수도 있다.
“누구였는데?”
“오빠네 삼촌.”
“뭐?”
“오빠 삼촌, 쌍둥이였어?”
그 말에 말문이 막혔다. 낌새를 보아하니 장난치는 건 아니다.
당혹감에서 간신히 벗어나 고개를 저으니 박다현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랐다.
“와! 쌍둥이가 아닌데 그렇게 똑같이 생긴 사람이 있을 수가 있구나!”
말도 안 된다며 무시하기엔 내가 성안에서 들었던 삼촌의 목소리가 맘에 걸린다. 무엇보다 삼촌과 똑같이 생긴 사람이 성 앞에 나타난 상황 정도여야 이나은이 홀로 움직인 게 설명된다.
“어찌 되었든 수상한 사람 둘이 성안으로 들어간 이후에 삼촌이 사라졌다는 거지?”
“응. 두 사람이 들어가고도 시간이 좀 흘러서였어.”
삼촌과 똑같이 생긴 사람이 성안에 들어간 다음에 삼촌이 사라졌다. 그 말은 ‘이면’에 갇혀 있던 삼촌과 성안에 들어간 삼촌은 서로 다른 존재라는 거다.
예전 권주혁의 분신을 상대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삼촌의 얼굴을 한 사람이 두 명 존재하는 것이 전혀 불가능한 일까지는 아니다.
다만, 분신을 만들던 스킬을 지닌 헌터가 사라진 지금 어떤 방법으로 또 다른 삼촌을 만든 건지는 짐작 가는 게 없다. 이건 삼촌을 붙잡은 뒤, 확인해야 할 문제. 아니, 그보다 우리가 잡아 둔 삼촌이 본체가 맞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제기랄.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일단은 워울프가 더 몰려오기 전에 이나은을 데리고 여기서 벗어나는 게 우선이다.
“혹시 ‘이면’으로 이동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이 어디야?”
“우리 집.”
“거기 말곤 없는 거지?”
“응.”
김화영의 스킬이 표식을 남겨야 하는 것처럼 박다현의 ‘이면’을 이용해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데에도 제약이 있다. 그 제약은 이동할 장소에 박다현의 스킬이 적용된 거울 조각을 놓아두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바로 이동할 수 있는 곳은 식당밖에 없다니 ‘이면’을 통해 이동하는 건 불가능하다. 삼촌을 다시 붙잡지 않고 돌아갈 순 없다.
그렇다면 다소 불편하더라도 내가 나서야 할 것 같다.
“지금 당장 ‘이면’에 이나은 헌터랑 같이 들어갈 수 있어?”
“언니랑 싸우고 있는 늑대인간도 같이 들어갈 것 같은데? 언니랑 너무 가까워.”
박다현의 ‘이면’에 생물체를 넣는 조건은 거울에 비치는 것. 당연히 이나은과 저렇게 근접전을 펼치는 늑대인간도 저절로 거울에 모습이 비칠 수밖에 없다.
“그건 어쩔 수 없지. 같이 안에 들여보내서 붙잡아 둬. 그러면 나중에 정보라도 캘 수 있겠지. 지금 상황을 보면 이나은 헌터가 질 것 같진 않으니까.”
능숙하게 공격을 하나하나 피하며 타격을 입히는 이나은은 S급 헌터다운 강함을 뽐내고 있었다. ‘이면’에 워울프와 함께 끌려간다고 하더라도 별다른 문제는 벌어지지 않을 거다.
“나는 어떻게 해?”
“넌 그 둘하고 다른 ‘이면’에 들어가 있어. 그리고 나중에 다시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나한테 거울 조각 줘. ‘퀴네에’ 쓰고 여기서 벗어난 다음에 신호 줄게. 그때 다시 나와.”
“늑대인간하고 숨바꼭질하겠단 거네. 알겠어.”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박다현이 거울을 이나은과 워울프 쪽으로 뻗었다. 곧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두 사람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리고 박다현도 ‘이면’ 속으로 사라지고, 거울 조각 하나만이 내 손 위에 남았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이면’에 들어간 걸 확인한 뒤, ‘퀴네에’를 썼다.
간발의 차로 ‘퀴네에’를 쓰자마자 워울프 둘이 나타났다. 두 워울프는 주변을 둘러보다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워울프로부터 안전해진 것이 확인된 후에는 다시 성 쪽으로 나아갔다. 삼촌이 성 쪽으로 도망친 건 본인을 알아볼 종교단체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일 게 뻔했다. 따라서 난 곧바로 성 뒤편으로 갔다.
성 뒤편, 그다지 넓지 않은 공간엔 옆으로 기울어진 교회가 있었다. 일전에 보았던 십자가는 성벽 밖으로 튀어나온 채였다.
교회에 가까이 다가가니, 그 안에서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기도에 열중한 모양인지 부서지기 직전인 문을 열었는데도 눈치챈 사람은 없었다.
예배당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어 몸에 힘을 주지 않는다면, 기울어진 방향으로 미끄러질 정도였다. 그런 험악한 공간인데도 다들 열심히 기도에 집중하고 있었다. 저들이 믿는 신이 바퀴벌레만 아니었다면 독실한 신앙심을 품었다고 칭송했을 거다.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에게서 시선을 돌려 예배당 내부를 둘러보니 구석에서 로브를 뒤집어쓴 사람과 대화하는 삼촌이 보였다.
“역시 여기에 있었구나.”
그쪽을 향해 나아가는데, 별안간 삼촌이 무릎을 꿇었다. 뭐라 말하는지까지는 기도 소리 탓에 잘 들리지 않았지만, 대충 데려가달라는 내용인 것 같았다.
“삼촌이 무릎 꿇을 정도의 위치에 있는 회사 사람이 여기에 와 있단 말이지?”
정체를 궁금해하며 마침내 두 사람의 대화 소리가 잘 들리는 위치에 섰다. 내가 근처에 다다랐을 때는 로브를 뒤집어쓴 사람이 말하고 있었다.
“대주교는 본인의 임무를 다하고 예정대로 지난번 시련에서 스스로 죽음을 택했는데, 넌 아니었잖아. 너도 대주교처럼 임무를 끝까지 다했어야지! 원래대로라면 넌 붙잡힌 채 우리에게 넘길 정보를 계속 모았어야 해! 여기로 도망칠 게 아니라!”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로브를 뒤집어쓴 사람의 목소리는 삼촌의 목소리와 완전히 똑같았다. 아마 이 사람이 박다현이 보았다던 삼촌과 똑같이 생긴 사람일 게 분명했다.
“버, 벌써 한 달 동안 붙잡혀 있지 않았습니까! 이 정도면 충분하잖아요!”
“충분? 아니! 망할 우리 조카 때문에 난 어떻게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삼촌이 아니라 로브를 뒤집어쓴 쪽에서 조카라는 단어가 튀어나왔다고?
“‘축생계’와 합쳐진 탓에 서울은 되찾지 못할 것 같으니 ‘캠비온 녹스’라도 붙잡으려 한 거였는데! 그래서 다음 시련 내용을 알아내거나 구원을 완성할 방법을 찾으려 했단 말이야! 그랬는데 하필 또 그 망할 용산 쪽에 ‘캠비온’의 마을이 있다고 하질 않나! 나한테 정보를 넘겨야 할 네놈은 소식이 끊기질 않나!”
“지, 지금이라도 정보를 넘기지 않았습니까?”
“그건 그렇지.”
로브를 뒤집어쓴 사람은 웃음소리를 내더니,
“컥.”
한 손으로 삼촌의 목을 쥔 채 들어 올렸다.
“그러니까 이젠 필요 없어진 거지.”
목이 졸려 숨이 끊어져 가는 걸 알 텐데도 신도들의 기도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커진 것 같다.
그런 와중에 어떻게든 저항하려던 삼촌의 손에 걸려 로브가 벗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