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계의 요리사-132화 (133/168)

[21. 전야 (9)]

로브가 벗겨지자 당황한 듯 괴인은 삼촌 목을 조르던 손을 풀고 땅에 떨어진 로브를 황급히 주웠다. 그 탓에 바닥에 엎어지게 된 삼촌은 뒷걸음질 쳐 자신을 죽이려던 괴인과 거리를 벌렸다.

자신에게서 멀어진 채 가쁜 숨을 몰아쉬는 삼촌에게 화가 잔뜩 났는지 괴인은 로브를 뒤집어쓰며 외쳤다.

“무슨 쓸데없는 짓을! 다른 사람들이 보면 어쩌려고! 이딴 짓을 한다고 네가 여기서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아!”

누군가를 죽이던 걸 중단하고 다시 로브부터 뒤집어쓸 정도로 저 괴인은 자신의 얼굴을 감추고 싶어 했다. 그러나 로브가 벗겨진 순간, 난 그의 바로 앞에 있었고. 괴인의 바람과 달리 그의 얼굴을 정면에서 보고야 말았다.

“박다현 헌터의 말이 맞았잖아.”

내가 본 괴인의 얼굴은 너무나 잘 아는, 익숙하지만 반갑지는 않은 얼굴이었다.

“차라리 내가 잘못 본 거였으면 좋겠네.”

그건 분명 삼촌의 얼굴이었다.

“삼촌이 두 명이라고? 그럼 둘 중 누가 진짜 삼촌인 거지?”

마치 거울에 대고 본뜬 것처럼 똑같이 생긴 두 명의 삼촌이 내 앞에서 마주하고 있었다. 심지어 두 사람은 얼굴, 체격 같은 외형뿐만 아니라 목소리까지 완벽히 일치했다. 인제 와서 우리가 지금껏 데리고 있던 자가 진짜 삼촌인지, 아니면 여기에 뜬금없이 나타난 자가 진짜 삼촌인지 분간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진짜와 가짜를 분간할 수 없는 상황에 혼란스러워하는데 로브를 쓴 삼촌이 손뼉을 쳤다. 예배당을 가득 메운 기도 소리 때문에 박수 소리는 잘 들리지도 않았으나, 그 순간 모든 신도가 기도를 멈춘 채 이쪽을 바라보았다.

“이자를 죽여.”

그 말을 끝으로 신도들은 교회 밖으로 도망치려던 삼촌에게 달려들었다. 몇 명이 삼촌의 팔다리를 붙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한 이후, 다른 신도들은 온갖 무기로 삼촌을 공격했다.

베고, 찌르고, 때리기를 반복하는 과정 속 교회 출입구 쪽이 한 사람의 피로 붉게 물드는 동안 로브를 쓴 삼촌은 별말 없이 상황을 지켜보았다.

비명이 잦아들 때쯤 로브를 쓴 삼촌은 고개를 끄덕였다.

[‘허영의 사내’님이 500만 포인트를 사용하여 자신의 수혜자를 텔레포트 시킵니다.]

고개를 끄덕인 직후 로브를 쓴 삼촌은 사라졌고, 신도들은 제자리로 돌아가 이전의 기도를 이어갔다.

“전지전능하신 바퀴벌레 신님, 인간으로서의 제 죄를 씻을 수 있도록 구원해주세요. 부디 바퀴벌레로 태어날 수 있게 은혜를 베풀어 주세요.”

“바퀴벌레 신님을 믿지 않는 저희 형을 제 손으로 처단했습니다. 다른 그 누구보다 구원받을 자격이 충분한 건 저입니다! 제 기도부터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구원, 구원, 구원, 구원, 구원, 구원, 구원, 구원.”

갑자기 튀어나온 또 다른 삼촌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려 했으나, 다시 시작된 각양각색의 기도 탓에 도저히 정신을 집중할 수 없었다. 결국 생각은 여기서 빠져나간 뒤 이어가기로 마음먹고 쓰러진 삼촌 쪽으로 다가갔다.

물어볼 것이 많았기에 살아 있길 바랐으나 피투성이가 된 삼촌은 무언가를 중얼거릴 뿐, 이미 동공은 풀린 후였다. 뭘 물어본다고 대답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닌 듯했다.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네.”

혹시 모르니 ‘이면’에라도 넣어서 주둔지로 데려가야 하나 고민하는데 삼촌의 몸이 일렁거렸다.

잘못 본 게 아닐까 싶어서 눈을 크게 떠 다시 한번 바라보았으나, 삼촌의 몸은 여전히 일렁거리고 있었다. 일렁거리던 몸은 곧 액체처럼 흐물거리더니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아까 신도들이 습격할 때 독을 뿌렸던 사람이라도 있었는지, 삼촌의 피부는 완전히 녹아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순간 멍해져 피부가 바닥에 흘러내리는 걸 바라보는데, 벗겨진 피부 뒤 누군가의 형체가 드러났다.

어렸을 적, 흔히 괴담의 소재가 되곤 했던 과학실의 인체모형. 그에 따르면 벗겨진 피부 아래엔 근육이 있어야 했다. 피부와 함께 근육까지 녹아내렸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뼈가 보여야 할 것이었다.

하지만 벗겨진 피부 아래엔 처음 보는 남자의 얼굴이 있었다.

겁에 잔뜩 질린 듯, 그는 흔들리는 동공을 고정하지 못한 채 입만 뻐끔거릴 뿐이었다.

마침내 온몸의 피부가 완전히 녹아내리자 허물을 한 꺼풀 벗은 것처럼 남자의 전신이 드러났다. 그로 인해 두 명의 삼촌이 존재할 수 있게 된 진상을 알 수 있었다.

“그림자로 만든 분신 같은 게 아니라 겉모습을 베낄 수 있는 스킬을 지닌 헌터를 쓴 거였나.”

아마 저자는 본인의 스킬로 삼촌의 겉모습을 베껴 자신의 몸 위에 덮었던 것 같다. 삼촌의 말투며 목소리며 평소 습관까지 완벽하게 베낄 수 있는 스킬을 쓴 건지, 덕분에 저자가 가짜 삼촌이라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몇 년 동안 본 적 없다지만 조카인 나와 이화까지 완벽히 속일 정도이니, 겉모습을 베낀 상태의 그가 진짜 삼촌이 아니라는 것을 분간할 수 있는 자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중요한 건 저자가 진짜 삼촌인 척 우리에게 접근해 붙잡혔다는 거다. 즉, 저 가짜 삼촌은 애초부터 의도적으로 우리에게 붙잡힌 것이었다.

가짜 삼촌이 붙잡혔던 시점은 강남 실험실을 파괴한 직후. 회사는 서울에서 물러나면서도 우리 측에 스파이를 심어 둘 생각을 했던 거다.

진짜 삼촌과의 대화에서 정보 이야기를 운운한 것으로 보아 우리 측의 정보를 빼가려는 목적으로 붙잡혔던 것일 테다.

“진짜 삼촌한테 무슨 정보를 넘긴 거지?”

자세한 건 가짜 삼촌에게 물어봐야 알 수 있으나, 문제는 허물이 벗겨지고 드러난 남자의 신체에도 신도에게 공격당한 상처가 그대로 남아 있다는 거였다. 더군다나 이미 너무 많은 피를 흘려 당장 수연이 앞으로 데려간다고 하더라도 살릴 수 있을지 미지수인 상태다.

허탈함 속에서 망연자실하는데 가짜 삼촌이 앞으로 손을 쭉 뻗었다. 그러곤 다 갈라져 가는 목소리로 무슨 단어를 중얼거렸다.

“…섬, 제….”

조금 더 가까이 가니 그가 중얼거리는 단어가 무엇인지 들을 수 있었다. 그는 두 개의 단어만을 끊임없이 반복하여 말하는 중이었다.

“노들섬, 제물.”

그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물어볼 수 없었다. 조금씩 작아지던 목소리는 곧 동공이 완전히 풀림과 동시에 사라졌으니까.

황급히 가짜 삼촌의 목에 손을 가져다 댔을 땐, 이미 숨을 거둔 후였다.

***

가짜 삼촌이 죽은 뒤, 교회에서 빠져나온 난 그제야 주머니 속에 거울 조각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본래는 거울 조각으로 바깥의 풍경을 비춰 박다현이 ‘이면’ 밖의 상황을 이나은에게 중계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했는데, 가짜 삼촌의 등장으로 혼란에 빠져 거울 조각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 탓에 주머니 속에서 거울 조각을 꺼내지 못해 이나은은 바깥 상황을 눈으로 보지 못한 채 소리만으로 파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면’을 통해 식당으로 돌아오자마자 내가 한 건 이나은에게 가짜 삼촌의 존재에 관해 알게 된 일련의 과정을 들려주는 거였다.

지금껏 우리가 데리고 있던 삼촌이 가짜라는 것을 알려주었을 때, 이나은은 성 앞에 나타난 또 다른 삼촌의 모습을 봤었기 때문인지 그렇게 놀라지는 않았다. 대신에 가짜 삼촌을 감옥에 가두어두지 않았더라면 더 많은 정보가 빠져나갔을 거라며 분개했다.

처음 붙잡았을 때, 뽑아낼 정보를 다 뽑은 다음 죽이는 게 맞았다. 회사에 속한 놈들은 그 누구도 믿어선 안 된다 등등. 짜증 섞인 자조 끝에 이나은은 하나의 의문을 던졌다.

“근데 회사 측을 후원해주시던 초월자님께선 왜 그 스파이 놈이 감옥에 갇혔을 때 텔레포트 시키지 않았을까요? 저희 정보를 빼낼 수 없는 상태라면, 바로 텔레포트 시키는 게 나았을 텐데….”

그 의문에 머리가 더 아파졌다. 이나은이 언급한 지점은 생각해본 적 없었다.

교회에서 진짜 삼촌은 말했다. 대주교는 죽으면서까지 본인의 목적을 다했고, 가짜 삼촌은 본인의 목적을 다하지 못했다고. 두 사람의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중요한 건, 가짜 삼촌이 본인의 목적을 다하지 못했단 거다.

가짜 삼촌이 대주교와 달리 본인의 목적을 다하지 못한 이유는 금세 유추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인간계’와 ‘축생계’가 합쳐지며 가짜 삼촌이 감옥에 갇혔기 때문일 것이다.

바깥세상과 완전히 차단된 감옥에 갇히며 가짜 삼촌의 목적을 달성시킬 방법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는 건데.

초월자는 왜 목적을 달성할 수 없게 된 가짜 삼촌을 텔레포트 시켜 회사에 복귀시키지 않은 걸까?

단순히 버려도 상관없는 카드였기 때문이라고 보기엔 타인의 겉모습과 행실을 완벽하게 베낄 수 있는 스킬을 지녔다는 게 마음에 걸린다. 여러모로 쓸 데가 많은 스킬을 지닌 헌터를 함부로 버리려고 했을 리는 없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자세한 내막을 알아낼 수 없었다. 내막을 밝혀내기엔 알고 있는 정보가 너무 부족했다.

“‘캠비온 녹스’를 찾기 시작한 것부터 가짜 삼촌을 우리 쪽에 심어둔 것까지. 회사에서 대체 뭘 하려는 건지 전혀 모르겠어.”

“강남 실험실을 폭파한 이후 회사에 관한 정보가 완전히 끊겼으니까, 어쩔 수 없죠. 그리고 누가 알았겠어요. 저희가 붙잡았던 놈이 가짜였다는 걸.”

“하필이면 정보를 뜯어낼 만한 가짜 삼촌마저 교회에서 죽어서….”

“이미 지나간 일이에요. 가짜가 죽은 건 아쉽긴 한데, 되살릴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다른 데에서 회사에 관한 정보를 얻을 방법이나 생각해보죠.”

삼촌에게 된통 당한 것만 같아 분하긴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나은의 말대로 지나간 건 지나간 거고, 지금은 회사에 관한 정보를 하나라도 더 모으는 게 중요하다.

회사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선….

“오빠, 언니! 밖에 나와봐! 빨리, 빨리!”

방문을 열고 들이닥친 박다현의 개입에 식당 출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식당 출입구로 들어선 사람들을 보고 나니 회사에 관한 생각은 뒤로 미뤄둘 수밖에 없었다.

“현 오빠, 우리 이번엔 진짜로 고생 많이 했으니까 밥 좀 맛있게 차려줘.”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선 건 원정을 나갔던 이화 일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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