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 스트리머가 너무 강함-4화 (4/143)

< 5화-데뷔전 >

물 들어올 때 노를 열심히 저어야한다.

어떤 일에도 통용되는 말이겠지만 스트리머에겐 더욱 더 중요한 사실이다.

그리고, 알고 있는 사실이다.

"형...."

신예지. 그의 대학 시절 후배로, 이런 저런 일 탓에 방송이 망하고 난 뒤로 새로이 편집자가 되어준 녀석이었다.

잘 챙겨주지 못함에도 꿋꿋하게 의리를 지켜준 고마운 인연. 그녀는 일찍부터 크로스보우의 원룸에 와 있다.

"이제 잘될 일만 남았어. 다시 대기업돼서 동생 월급도 빠방하게 챙겨줘야지."

"그럼."

그 날 오후. 크로스보우의 영상은 마침내 인기 동영상 3위까지 치솟아올랐고, 생각보다 긴 시간 그 자리를 지켰다.

아무런 문제는 없었다. 그의 오랜 팬들은 이번 기회로 크로스보우가 다시 날아오르길 바라고 있었고,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조금 의심하는 사람은 있을지언정, 새로운 올 오버 스트리머를 관심 갖고 바라보고 있었다.

문제는, 크로스보우 자신에게 있었다.

배신당했던 경험. 악의적인 비난으로 인해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할 정도로 우울증과 강박증에 시달렸던 크로스보우다.

우울증의 기저에는 공포가 섞여있다.

"걱정마라."

그는 짐짓 태연하게 머리를 털었다.

"응. 형. 형이 빨리 방송켜야지 나도 녹화본 바로바로 편집한다니까?"

"그래. 근데...와준 건 고마운데....밥 먹으러 온 건 아니지?"

"무슨 소리!"

그녀는 입가에 짜장을 묻힌 채로 바락 소리를 높혔다.

크로스보우는 한숨을 푹 내쉬고 물티슈를 내밀었다. 그녀의 과장된 행동이 활기를 불어넣어주기 위해서라는 건 알지만, 좀 치우고 가줬으면 좋겠다.

"근데 형. 배틀로얄만 주구장창 할거야?"

"진짜 걱정마라. 생각해놓은게 있으니까."

그는 그렇게 말하고 웃옷을 훽 벗어던졌다. 일어난 직후부터 지금까지 아이튜브와 온갖 커뮤니티를 눈팅하느라 씻지도 못했다.

"씻고 올 테니까 다 먹고 세팅 좀."

"어. 응."

신예지가 자신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것도 모른 채 크로스보우는 욕실로 걸어들어갔다.

['크로스보우' 님께서 방송을 세팅 중 입니다.]

아마 지금, 그를 팔로우해놓은 시청자들에게 이런 메세지가 갔을 터였다.

***

"안녕하세요. 사랑하는 아이튜브 시청자 여러분~ 트수들~"

-크하~

-석하~(석궁 하이라는 뜻)

-기다리느라 눈빠지는 줄ㅋㅋ

-시청자 수 뭐야

"시청자 수요?"

[시청자 수 : 5,490명 시청 중]

"어...?"

순간 당황한 크로스보우. 생각보다 훨씬 많은 숫자. 세팅 중에 다들 들어와서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오천명...!'

이 정도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는데. 오늘 컨텐츠에 대한 불안이 조금 피어났다. 올 오버라는 게임 팬층이 이렇게 두터웠나?

-ㅋㅋㅋ당황잼

-하루 아침에 대기업행ㅋㅋ

-온갖 커뮤니티에서 다 몰려온듯

익숙한 시청자들 말이 맞는지, 채팅창이 ~~에서 왔습니다로 도배되기 시작한다.

['신병받아라~~'님이 10,000원을 도네하셨습니다!]

-여기가 스나이퍼 맛집맞죠?

-네 똥믈리에가 직접 숙성시킨 최고급 똥을 맛보실 수 있습니다

-ㅋㅋㅋㅋ우주제일 똥믈리에 크로스보우

-주모! 밥 가져와!

['엄마나방송탔어!'님이 5,000원을 도네하셨습니다!]

-크보님 제 이름 한 번만 불러주세요~

-니 이름이 뭔데

-노잼맨들 다 몰려왔누

['오빠너무잘생겼어요ㅠㅠ'님이 1,000원을 도네하셨습니다!]

-몇살이에요?

-우리 크보가 잘생기긴 했지

-ㄹㅇㅋㅋ물론 얼굴 공개는 안했지만 아무튼 잘생김ㅋㅋ

"만원 감사합니다. 저격 총은 사람을 맞추도록 만들어진 거라 쏘면 잘 맞긴 해요."

-?

-ㅋㅋㅋㅋ크보식 논리 나왔네

-맞는 말과 헛소리의 절묘한 콜라보;ㄷ

-??? : 되는데요?

"오천원도 감사합니다. 엄마나방송탔어님. 천원 감사합니다. 나이는 스물 일곱이에요."

그렇게 한동안 쏟아져 들어오는 후원에 답하다보니 시간이 생각보다 더 흘러있었다.

-그래서 오늘은 뭐할거임?

-오겜무?

"게임은 당연히 올오버구요. 오늘은...배틀로얄 듀오를 한 번 해볼 예정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크로스보우는 가상현실로 풀 다이브 했다.

[SYSTEM]'뿅맛사탕'님이 팀에 초대하셨습니다!

그리고 눈을 뜨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초대메세지가 도착했다.

초대를 보낸 사람은 크로스보우의 기념비적인 1킬의 희생양이 되었던 스트리머.

뿅맛사탕.

"그리고 듀오 분은 스트리머 뿅맛사탕님이세요."

실은 바로 어제 방송을 끄고 잠들기 직전, 그녀 쪽에서 먼저 메세지가 왔다.

[안녕하세요. 크로스보우님. 저는 스트리머 뿅맛사탕입니다. 갑작스러운 메세지에 당황하셨을텐데...다름이 아니오라...]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아주 바람직한 스트리머의 표본이다.

합방.

크로스보우로써도 나쁠 것 없는 제안이었다. 그녀의 방송을 쭉 다시 본 결과 별다른 논란도 없는 클린한 스트리머였으니.

-엥? 어제 그 시간 소녀 아님?

-뿅맛사탕은 또 누구ㅋㅋ

-있음 트최단

-???

-정보)트리키 뷰 최고 단신이란 뜻ㅋㅋ

-ㅋㅋㅋㅋㅋㅋ

"크-하~~!"

"안녕하세요."

파티를 맺고 로비로 들어가자 시청자들 말 맞다나 작은 키의 여성이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풍문으로 듣기론 서른 살이라고 했는데, 나이가 믿기지 않는 귀여운 인상이다.

"여러분들~ 오늘 같이 하실 스트리머, 크로스보우님입니다~ 와~ 짝짝짝짝~!"

그녀는 호응을 유도하며 폴짝폴짝 뛰었다. 과연. 6년 동안 방송을 지속시켜올 수 있었던 이유가 보였다.

"반갑습니다."

크로스보우는 고개를 꾸벅 숙여보였다.

요즘 방송에는 어울리지 않는 담백함. 바로 오늘 크로스보우가 잡을 컨셉이었다.

"네? 이모 드디어 우결이냐구요? 야아. 이모라고 하지마. 세 살이면 궁합도 안 본다구요? 아. 후원 감사합니다~ 고맙다뿅!"

저 쪽도 이제 막 방송을 킨 모양. 크로스보우는 멀뚱히 그걸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고맙다뿅!"

"뭐, 뭐에요?"

"왜요. 리액션 같이 해드린건데."

"...가, 감사합니다?"

-ㅋㅋㅋㅋ크보도 어지간히 미친놈ㅋㅋ

-첨보는 남자 앞에서 한 치 부끄러움 없는 사탕이vs리액션 따라하는 크보

-황밸ㅇㅈ

"암튼! 오늘 할 장르는~ 배틀로얄 듀오입니다!"

"그렇습니다."

"사실 어제 크로스보우님께 먼저 메세지를 보냈는데 합방하는데 조건이 있다고 들었는데, 오늘 말씀해주시기로 했거든요. 조, 조건이 뭔가요?"

-ㅗㅜㅑ;

-지금 왔는데 두 분 우결하시는건가여?

-ㅇㅇ 맞음

-속보)얌전한 크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가...

그 질문에 크로스보우는 씨익 웃었다.

"파티장 권한 주세요. 일단."

-일단 줘ㅋㅋㅋ

-날강두 크보

-정보)뿅맛사탕은 밀어붙히는 남자가 좋다고 언급한 바 있다

-퍄퍄; ㅁㅇㅁㅇ

"아. 네넹!"

권한을 양도받자 크로스보우의 머리 위에 반투명한 왕관 모양이 생긴다.

"오호."

-이 분 왜케 올린이 같음?

-ㅋㅋ신기한가보네

-정보)크보는 올오버 2일차 올린이다

-??2일차가 프로게이머 킬 기록을 경신함? 구라 즐;

-ㅋㅋㅋ못 믿을만하지 ㅇㅈㅇㅈ

놀라기도 잠시, 그는 아무 말 없이 게임을 서칭했다.

[배틀로얄 듀오]

[SYSTEM]곧 게임이 시작됩니다!

"어? 어? 이렇게 바로요?'

"네. 뿅님. 레이싱 걸이었다고 했죠?"

"어...네. 지금은 직업이 없어졌지만요."

150도 안되는 키로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다고 들었다.

"그럼 운전도 잘하시겠네요?"

"네...네? 레이싱 걸이랑 운전이랑 무슨 상관이...."

"레이싱 걸이잖아요."

"네?"

크로스보우는 아무 말 없이 더원그 캐릭터를 골랐다.

"똥 먹어봤어요?"

"네? 또, 똥이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질문 뭐임?ㅋㅋㅋ

-???: 이거 좀 먹어볼래요?

-으,응가앗─

-ㅋㅋㅋ응가앗 씹ㅋㅋㅋ

-스, 스카앗─

-(차단된 채팅입니다.)

"제가 오늘 먹여드릴게요."

"네? 또, 똥을요?"

"더 원그 고르세요."

"그, 그런 똥을요?"

"고르세요."

"네, 넷!!"

-똥이요?똥을요?똥을요?

-똥요정 크보

-카레맛똥vs똥맛카레

[SYSTEM]곧 게임이 시작됩니다!

이번 판 주총은 SMG라고 불리는 기관단총.

보통 한 손으로 잡고 드르륵 쏴버리는 총기를 생각하면 연상되는 총이다.

크로스보우는 그 옛날 PC시절, '짜장면으로 맞아볼래?'로 유명했던 MP5K를 손에 들었다.

"똥으로 맞아볼래? 특집입니다. 오토바이 운전만 하세요."

게임이 시작됐다.

***

로스트헤븐.

배틀로얄의 맵 중에서도 최대 규모의 넓이를 가지고 있는 맵. 2000년 초반의 제주도를 모티프로 한 맵에서 한 대의 바이크가 미친듯이 질주하고 있었다.

부아아아앙──

드르르르륵─!!

[SYSTEM]당신의 MP5K를 사용한 헤드샷으로 '못하면미아핑(전설의리그)'님이 기절하였습니다.

-와. 조준선이 헤드라인에서 안 움직이네.

-라이딩샷 최고봉

-더원그만큼은 프로게이머 이상인듯

"크보님. 저 이러다 죽겠는데요오오오오오──!!"

"안죽으니까 바이크 돌려요! 저거 가서 쳐버려!!!"

"흐어어어엉──!! 죄송해요오──!!"

-ㅋㅋㅋ크보 텐션무엇

-귀신같은 반말ㅋㅋ

-사탕이 그 와중에 운전잘하네ㅋ

['브금술사'님이 5,000원을 도네하셨습니다!]

-음성후원

마침 서부영화 같은 배경음악이 깔렸다.

콰직!

[SYSTEM]'뿅맛사탕'님이 '못하면미아핑(전설의리그)'님을 차로 치었습니다(4킬)

바이크를 돌린 뿅맛사탕의 핸들에 묘한 감촉이 전달되어왔다.

"흐아아악!! 저 지금 사람 쳤어요!"

"인생이란 그런겁니다!"

드르르륵─!!

[SYSTEM]당신의 MP5K를 사용한 헤드샷으로 '부장직위이대리(별들의 전쟁)'님이 사망하였습니다.(5킬)

"둘 다 컷! 이대로 자기장 들어가요!"

"너무 꽉 잡지마요...!"

신나는 기분이었다. 크로스보우는 재빠르게 탄창을 갈곤 도핑제를 투여했다.

-ㅗㅜㅑ;

-장래희망: 크로스보우

-사탕이 키도 작은데 미드가 ㅗㅜㅑㅗㅜㅑ

['사탕이살려서'님이 10,000원을 도네하셨습니다!]

-우승시 킬당 3만원

"바로 도전이죠."

그렇게 말한 크로스보우는 뿅맛사탕의 귀에 속삭였다.

"뿅님. 이 길로 쭉 달리면 점프대 있거든요? 날아가죠. 우리."

"저, 점프대요?"

"누나. 그냥 달려!"

에라 모르겠다하는 심정이었을까.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곤 속도를 높혔다.

어느새 130km/h까지 치솟은 속력.

그 때였다.

"어!!"

저 멀리, 길 한복판을 누군가 가로막는 모습이 보였다.

"저거, 아이언하르트죠?"

"네. 시계워치요!!"

거대한 방패를 켰다껐다하며 망치를 휘두르는 캐릭터.

그 커다란 몸체가 바이크의 진로를 정확하게 가로막고 서 있었다.

"저거 저격 같은데요?"

"...저격?"

저격.

일부러 방송인과 같은 게임에 매칭돼서 게임을 망치거나 관심을 끌려드는 행위.

그 단어가 나온 순간. 두 사람의 채팅방 분위기는 전혀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ㅋㅋ그 ‘슈터’ 또 만났나보네

-악질쉑 제재 안하나

-이 정도면 문화지ㅋㅋ스트리머는 컨텐츠 생기고

-문화지ㅋㅋ이러고 있네

뿅맛사탕의 채팅창은 늘상 있던 일에 그러려니 하는 반면,

-저격?

-ㄷㄷㄷㄷ오랜만에 ‘그’가 오나?

-다들 볼륨 줄여!

-방송 조졌다; 난 크보 하이드모드 되면 찐텐으로 무섭던데ㅠㅠ

-뭔 소리임?? 뉴비도 이해좀

크로스보우의 채팅창은, 그의 오랜 팬들을 시작으로 부산스레 뭔가 준비하는 모습.

“하하하. 저런. 길가에 동전이라도 떨어뜨렸나? 저러고 서있게.”

“크, 크보님?”

뿅맛사탕은 갑자기 스산해진 크로스보우의 목소리에 당황해 움찔거렸다.

“게헥?!”

“운전대 내놓으세요. 뒤지기 싫으면.”

“으어으어어??”

갑자기 목덜미를 턱 잡힌 뿅맛사탕은 이상한 소리를 내며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폭력적일만큼 과격한 자리 바꾸기.

-ㄷㄷ목소리 톤 뭐야

-크보야...정신 차려...아마 못 차리겠지만...

-하이드on

"동전 좀 같이 찾아줘야겠네. 안 그래요?"

"크, 크보니이임?!"

오토바이의 속력을 줄이긴커녕, 오히려 가속 손잡이를 끝까지 잡아당기는 크로스보우에 뿅맛사탕은 얼떨결에 그의 허리를 꽉 잡았다.

그런 그녀의 시야에 도네이션이 떠오른다.

[‘사과맨’님께서 10,000원을 도네하셨습니다!]

-우리 크보...더원그하면서 저격을 너무 많이 만나서...일단 사과드립니다....

“...네?”

[‘사과맨’님께서 10.000원을 도네하셨습니다!]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세요;;;

"무, 무슨 소리...! 꺄아악!"

엄청나게 가속된 속도로 상대방의 모습이 빠르게 가까워지는 상황.

크로스보우는 어떡해 따위로 도배된 채팅창을 한 번의 조작으로 꺼버리곤 눈을 가늘게 떴다.

“이대로 박게요? 지,지지지지진짜로?”

“닥쳐. 집중하게.”

-박...?ㅗㅜㅑ;;

-퍄퍄

그 말과 함께, 오토바이의 앞 바퀴가 들어올려졌다.

“히에에엑?!”

뿅맛사탕이 괴상한 소리를 내질렀다. 그럴 만도 하다. 무게중심이 확 뒤로 쏠렸을테니.

크로스보우가 시도하는 것은 오토바이 주행 기술 중, 윌리라고 불리는 위험천만한 기술.

지금 같은 200km/h에 다다른 속도로는 자칫 목숨과 뒤바꿀 수 있는 묘기였다.

"저 방패 위로 타고 날아오를겁니다."

"...? 그, 그런 게 가능할리가...!"

“왜 불가능해요?”

크로스보우는 스페츠나츠 헬멧의 가리개를 꾹 눌렀다. 헬멧 너머로 비치는 그의 눈이, 깜빡이지도 않고 번들거렸다.

"수 백 번은 해봤는데."

< 5화-데뷔전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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