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조금은 이상한 인맥 >
우우우우웅──.
까톡!
[뿅맛사탕] : 이거 보세요!
"으...."
크로스보우는 오랜만에 듣는 알림음에 잠에서 깼다. 드라이기가 여전히 요란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는 눈을 뜨자마자 뜨겁게 달궈진 드라이기의 전원을 종료하며 머리를 잡았다.
웅웅─!
그 순간 전화가 걸려왔다. 두통을 추스릴 시간도 없다.
'뿅맛사탕(이세린)' 발신
이 쪽이 메세지를 확인한 걸 보자마자 걸려오는 전화. 크로스보우는 어기적대며 자리에 일어나 앉았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크보님?...자, 자다 깼어요?]
"...네."
[...핫! 죄송해요! 그런 줄도 모르고 제가.]
목이 잔뜩 갈라져 소리가 잘 나오질 않는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물을 찾아 벌컥벌컥 들이켰다. 슬쩍 시간을 확인하자 오후 12시 50분.
어차피 곧 기상 시간이었다.
"아뇨. 괜찮습니다. 무슨 일 있나요?"
[...목소리가 조, 좀 좋으시네요?]
"...네?"
크로스보우는 잠깐 말을 멈췄다. 밤 사이 틀어놓은 드라이기가 방 안을 건조하게 만들어서 목이 갈라지는 것 뿐이다.
"칭찬은 감사한데...."
[아. 아! 까톡 보셨어요?]
"아뇨. 아직 제대로 확인하지는...."
[얼른 봐요! 그거 알려드릴려고 까톡했는데 깨워서 죄송해요.]
문제라도 생겼나? 크로스보우는 조금 깬 정신으로 다시 한 번 카톡을 확인했다.
"...제 아이튜브 링큰데요?"
[네! 그거랑 제 꺼도 같이 보냈어요.]
"아...구독 누르겠습니다."
[아, 아직 안 눌렀어요?! 아이...근데 그 얘기가 아니라...들어가보세요!]
그 말에 크로스보우는 캡슐로 기듯이 걸어가 들어갔다.
인터넷에 접속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들어온 그의 아이튜브 채널.
[봤어요? 봤어요?]
"음....뭐가 문젠지 잘...."
[머글들은 못 타는 날으는 오토바이 feat. 똥맛사탕]
이 정도면 적당한 제목같은데? 신예지는 항상 믿을만한 편집자였다.
[조회수! 조회수 보세요!]
"...네?"
조회수? 크로스보우는 눈을 가늘게 떴다.
[조회수 71만회]
-8시간 전
"...71만회?"
그는 멍하게 눈에 보이는 글자를 천천히 읽어내리고 눈을 깜빡였다.
"응?"
이거 오늘 새벽에 올린 영상 아닌가?
심지어, 자세히 살펴보자 그 영상에 더욱 더 믿기 어려운 태그가 걸려있다.
[인기동영상 1위]
"뭔...?"
[미쳤죠! 미쳤죠?! 오이오이! 믿고 있었다구우~ 줸장!]
그는 뿅맛사탕이 이상한 소리를 해대는 걸 멍하니 들으며 헤 입을 벌렸다. 홀린 듯 댓글창으로 스크롤을 내렸다.
-이제는 팬티 여러벌과 함께 방송을 보는 나
-32세 무직백수 아침에 일어나니 크보영상 발견...이게 인생인가?
-마지막에 로도호구 포상받는거 나만 부럽냐?
-퉤ㅋㅋㅋ
-크보 침묻은 수류탄 삽니다
-석궁 뭐임? 버그임? 석궁 뭐임? 버그임?
-다른 사람들 마나니 궁게이지니 쳐쓸때 혼자 장난감으로 전.장.평.정....엌ㅋㅋㅋㅋㅋㅋ
-본인 방금 크보되는 상상함
-이젠 단언할 수 있다. 크보쉑 보나마나 어디 특수부대 출신일듯
그저 드립의 향연. 천 수 백개의 댓글 중, 눈에 띄는 악플은 단 하나도 없다.
"...."
[댓글, 조회 수 전부 대기업 부럽지 않은 숫자에요. 크보님. 축하드려요!]
크로스보우는 그걸 일일히 확인하다가, 문득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아. 제 아이튜브도 확인했어요? 저도 10위권이에요!]
"...."
그 말에 크로스보우는 말없이 '인기 순위'를 클릭했다.
[인기동영상 8위]
[난폭한 연하남과 새로운 취향에 눈 떴습니다....W.크로스보우]
[조회수 58만회]
-5시간 전
-뿅보우 존버 1일차
-ㅋㅋㅋ누나 이제 지리는 걸 넘어 먹는거야?
-레이싱 걸? 누님 헛소리마시고 방송이나 키십쇼
-6:38 미드가...ㅗㅜㅑ;
-크보쟝 몸 뭐야 후욱후욱...
-4:13 0.25배속 검은색
└ㅋㅋㅋㅅㅂ뭔가했더니 크보팬티였네ㅋㅋㅋ
-ㅋㅋㅋ중간에 채팅 스카앗- 미쳤냐곸ㅋㅋㅋ
-근데 석궁 지리긴 하네
인기동영상 8위.
뿅맛사탕, 이세린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저 방송 엄청 오래한거 아시죠? 이 정도 조회수는 딱 한 번 있어봤어요.]
"그렇군요."
[전부 크보님 덕이네요. 헤헤.]
크로스보우는 치밀어오르는 무언가를 삼키고는 말했다.
"...뭐, 그런 셈이죠."
[네에? 흐허.]
그냥 긍정해버리자 이세린은 반문했다가 웃었다. 마냥 좋은 모양이다.
[곧 방송하실거죠? 뭐 하실거예요?]
"글쎄요. 아마 올오버 하지 않을까요?"
[뭐. 그거야 그렇겠죠! 근데 크보님.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랬는데 계속 더원그라운드 캐릭터만 하실거예요? 이미지 소모가 너무 빠를텐데.]
"...음."
확실히, 생각하고 있던 부분이다.
***
이제는 확실해졌다.
고작 두 개의 영상이지만 크로스보우는 어느 정도 대기업의 반열에 들어선 것.
아이튜브에 올린 댓글도 새로고침을 누를 때마다 갱신되었고, 구독자 수도 보고만 있어도 쭉쭉 올랐다.
방송을 마칠 때면 항상 커뮤니티는 크로스보우라는 떡밥을 물고뜯고 맛보기 일쑤.
심지어 '트리키 뷰'에서 게임 올 오버를 컨텐츠로 방송하는 스트리머들에게 크로스보우의 영상이 후원으로 들어가면서, 그의 인지도를 높혔다.
"이게 말이 돼요?"
"풀다이브 가상현실에도 핵이 나왔나..."
"와...진짜 섹시하다."
"미쳤네요. 이건 인정입니다. 우리 팀에 섭외 안하나?"
스트리머들은 모두가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으며, 그에 따른 수순일까.
[안녕하세요. 모래박스입니다.]
[플래티넘 티비입니다. 방송 잘 보고 있습니다.]
[크루가온입니다. 크로스보우님을 초청하고 싶습니다.]
모든 스트리머 매니지먼트 회사에서 연락이 들어왔다.
물론, 크로스보우의 입장에서 급한 건 없었다. 지금은 계약보단 노를 저어야한다.
아직 '총 잘쏘는 신인'에 대해 대중이 지겹게 받아들이기까진 시간이 꽤 남았다.
일주일동안.
크로스보우는 단 한 번의 휴방도 가지지 않고 계속해서 방송했다. 매 방송 때 마다 수많은 레전드 영상을 만들어내는 그의 행보.
그야말로 피지컬 천재! 고인물, 썩은 물을 넘어 석유라고까지 불리지만 실제 플레이시간은 100시간이 채 안되는 초보!
크로스보우는 전례 없는 속도로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그리고 그러던 어느 때였다.
아이튜브에 하나의 영상클립이 업로드되었다.
[크로스보우! 혜성처럼 등장한 그는 누구인가?]
신예로 떠오르고 있는 크로스보우에 대한 분석 영상.
게시자는 '옆집뇨끼네'.
깔끔한 여성의 목소리가 나래이션으로 깔리는 전문 게임관전 아이튜버로, 100만명의 구독자를 갖고 있는 관전계의 인플루언서였다.
"오늘은 구독자 여러분이 정말 제 메일함이 닳도록 요청하신 그 남자! 바로 크로스보우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영상의 길이는 꽤 길었다. 옆뇨라고 불리는 아이튜버는 수없이 많이 정지를 해가며 분석하고 있었는데, 그 장면이 매번 있으니 그런 듯한 모양.
-"여기서 크보님 1인칭으로 볼게요. 지금 시야각에 아주 살짝 뭔가가 보였죠? 집중해서 봐야 보일 정도로 작은 점이요. 아마 이 시점에서 미리 봐놨으니까 예측성 플레이가 되는거겠죠."
-"미래를 보기라도 하는 예측샷입니다. 심리전에 미친 듯한 혜안을 갖고 있습니다. 상황을 자신이 좋아하는 방향으로 설계하고 플레이하는데, 그 설계각이 창의적이고 즉각적이에요. 실수 한 번 없고요."
-"그냥 피지컬로 미는 것 같아 보이죠? 저도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 크보님 1인칭시점으로 보면 알 수 있는데, 이미 다 예측된 플레이에요. 애초에 피지킬로 민다고 해봤자, 더원그 자체가 1대1 승부는 진짜배기 S급 캐릭터들한테는 안되는데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그런 모습 한 번 보인 적이 없습니다."
-"지금 벌써 다이아 계급까지 올라오셨다고 들었는데, 단 한 번도 1등을 놓친 적이 없다고 하네요. 최다승수 랭킹 1위까지 찍었다고 하니, 정말 무서울 정도의 게임설계 능력입니다."
흐물.
"오올. 이 여자 좀 눈썰미 있는데?"
크로스보우의 편집자. 신예지는 탕수육을 씹으며 중얼거렸다. 방송을 끝낸 시각이었다.
"...맛있냐. 그거?"
"응."
"으...부먹충 자식."
크로스보우는 남의 집에 쳐들어와선, 멋대로 탕수육에 소스를 부어버리는 부먹충을 쳐다보며 진저리를 쳤다.
튀김의 눅눅함과 소스의 과한 단맛이 전달되어 오는 것 같았다.
"아니. 오빠. 탕수육은 부먹이지. 애초에 요리 시험에서도 붓는게 룰이라고."
"헛소리 하지말고 니가 부어놓은건 다 쳐먹고 가라."
"이걸 어떻게 숙녀 뱃속에 다 넣어? 변태."
"...이게 미쳤나?"
그는 단무지를 그녀의 앞접시에 훽 집어던지며 말했다.
"근데 너 왜 자꾸 오빠라 그러냐? 징그럽게."
"응? 내가 지금 오빠라고 그랬어?"
"어. 돈 잘 버니까 남자로 보이냐?"
"월급이나 올려주고 말해. 이 아저씨야. 오빠라고 해주면 감사합니다~해야지. 엉?!"
얜 입만 다물면 인기 많을텐데. 크로스보우는 턱을 쓰다듬다가 말했다.
"올려줄게."
"...엥?"
"올려준다고. 월급."
"어...응? 개이득? 나 근데 올려달라고 말 꺼낸거 아닌데."
"닥치고 받아."
"뭐, 뭐가 목적인데? 솔로 생활이 너무 길었던거야. 오빠? 내 몸이 목적?"
그는 인상을 확 찌푸렸다.
"뒤지기 전에 받아라. 그리고 좀 나가서 애인 좀 만들고 그래라. 나이 먹는거 금방이야."
"나이 차이 얼마나 난다고...."
크로스보우는 궁시렁대는 신예지를 무시하고 일어났다. 중국음식을 먹었더니 텁텁한 터라 아이스크림이 땡겼던 탓이다.
"야. 집 앞에 가서 아이스크림 살건데 뭐 먹을거야."
"메론바!"
"오키."
그리고 대충 모자를 눌러쓰고 나가려는 순간이었다.
-"개인적인 소식통으로 듣기론 그는 아직까지 사실상 원룸인 건물에 살고 있다고 하네요! 아직 정산이 안됐으니, 1주만에 얼마를 벌었다는 논쟁은 아직 이르다고 봐요."
신예지의 핸드폰에서 묘한 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니가 말했냐. 예지야?"
"...아니?"
옆캡슐뇨끼네. 그녀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담배도 끊고 술도 안 먹는, 현실에선 모범적인 남자, 크로스보우! 그를 응원합니다."
"오빠. 아는 사람 같은데?"
"...."
그럴 리 없다. 담배 끊은 건 최근인데? 아는 사람이라곤 신예지뿐일 터.
크로스보우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문 밖으로 향했다.
"그냥 뇌피셜이겠지. 냅둬. 100만 유튜버가 좋은 말만 해주는데."
"...아닌 거 같은데...."
신예지가 또다시 뭐라 중얼거렸지만 들리지 않았다.
***
곧이어 도착한 곳은 집 근처의 아이스크림 할인 매장.
"흐음....뭐가 좋을까."
크로스보우는 고민을 하다가 요청받은 메론바와 가장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여러 개 집어들었다. 막대기가 두 개 달려있는 초코 아이스크림이다.
"어떻게 된 게 전보다 더 작아졌네. "
"...어?"
그가 아이스크림의 사이즈를 가늠하며 중얼거렸을 때였다. 누군가의 놀란 듯한 소리가 들렸다.
크로스보우는 그 쪽을 바라보는 것보다 시간을 확인했다. 오전 4시. 이 시간에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기어나오는 인간이 또 있을 줄이야.
"호, 호혹시 크,크보?! 크로스보우 맞죠!?"
그 말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어. 음. 안녕하세요?"
그 쪽을 돌아보자 두 손을 모으고 있는 사람. 짧은 반바지 차림에 긴머리의 여성이었다.
"어. 어! 저, 저! 저 '크보쨩핥짝'이에요!"
"아. 네....네?"
크로쨩핥짝이라면 '나도 크보랑 가능' '우효옷─크보쨩'같은 저질스러운 채팅을 치던 시청자의 닉네임인데?
그는 영문을 알 수 없는 눈초리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어떻게?"
"목소리가 똑같아요! 키랑 체격도...코 아래 하관도...하아...."
"음. 하하. 그렇구나."
"바, 방송도 정말 잘 보고 있어요! 저랑 같은 동네 사시는구나...."
"아. 네...알죠. 구독도 하셨잖아요."
"기, 기억하세요? 방금까지 크보님 방송보고 있긴 했는데. 헤헤. 헤헤헤...."
뭐지. 크보는 헤실헤실 웃는 그녀를 보고 살짝 뒤로 물러났다. 분명 냉막한 미인상인데, 표정이 이상하게 풀어지니까 꼭 변태를 보는 것 같았다.
"저, 저. 같이 사진 찍고 싶어요!"
"어...사진이요?"
그건 좀 곤란한데. 그는 얼굴없는 방송인. 언젠가 공개할 생각이 없진 않았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아니었다.
"안되나요...?"
크로스보우는 어색하게 웃다가 대답했다. 오늘은 이상한 일이 많네.
"아뇨. 어디 올리지만 않으신다면야...."
"그, 그럼!"
허락이 떨어지자 그녀는 스윽 크로스보우를 향해 다가왔다. 소중한 팬에게 이런 생각을 하면 안되겠지만, 사샤샥─하는 모양새가 꼭 바선생을 닮았다....
찰칵!!
"감사합니다!"
사진을 찍고 나자 그녀는 꾸벅 머리를 숙였다.
"아뇨. 방송 매일 보시잖아요. 제가 더 감사하죠."
크로스보우도 마주 고개를 숙였다.
"저, 그럼 싸인도 좀...."
"싸인이요? 종이가 없는데 어쩌죠?"
그 말에 그녀는 가게를 이리저리 돌아보았다. 그리고 적당한 용지를 발견하지 못한 탓일까.
"그, 그럼 여기다 해주세요!!"
가슴을 쭈욱 내미는 여성. 크다.
본의 아니게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게 된 크로스보우는 멋쩍게 시선을 돌렸다.
"저, 그래도 성별이 다른데 그건 좀...."
"싸인...."
"크흠. 안돼요."
"그, 그럼 욕 한마디만 해주시면 안...."
"안됩니다."
가끔 있는 포상충이다. 단호하게 끊어내자 시무룩. 같은 소리가 들린 듯 하다.
"아이스크림 드시고 싶은거 있어요? 제가 다 사드릴게요."
"아이스크림...어! 그럼 아이스크림 드시다가 뱉어주시면 안되나요?!"
"네?"
그 말에 크로스보우는 기겁을 하며 깨달았다.
이 여자. 껍데기만 번지르르한 변태다.
오늘같은 방식으로 인기를 체감하게 되는 날이 오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구설수에 휘말릴 수도 있으니 도망가야겠다.
< 7화-조금은 이상한 인맥 > 끝
ⓒ Read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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