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화-피지컬 검증 >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을 겪으면 종종 침묵이란 선택지를 택하게 된다.
타다다다당!
"......?"
이세린, 스트리머 네임 뿅맛사탕이 지금 그랬다.
"...뭐야?"
평소 보여주는 의도적인 멍청미와 다르게, 진짜로 얼빠진 듯한 한 마디.
['????'님이 5,000원을 도네하셨습니다]
-????
시청자의 후원 소리에 화들짝 깨어난다.
"뭐에요...?"
-우리도 몰라...
-몬가..몬가 일어나고 있다···
-일어나긴 ㅅㅂ 표적이 안 일어나는데 뭘 보고 쏘는거임?
그녀는 채팅창의 반응을 살피다가 눈 앞에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가만히 앉아서 총을 정조준하고 있는 크로스보우의 뒷모습. 항상 착용하고 있는 철가면이 저 남자를 더욱 무기질적으로 보이게 만든다.
"시청자분들. 지금 이거 무슨 버그 아니죠? 표적이 안 일어나는 걸로 보이는데."
-우리도 몰라ㅋㅋ더 원 그라운드로 연습모드 해본 사람?
-그딴 똥겜을 연습까지 하는 사람이 어딨음 ㅋㅋ루ㅋㅋ
-버그가 아니라 표적이 일어나려는 순간 쏴맞추는 거 같은데?
-ㄴㄴ 걍 한 발 쏘면 맞추건 안맞추건 표적이 쓰러지는듯
"못 맞춰도 한 발 쏘면 그냥 쓰러지는거라구요?"
세린은 멍하니 시야에 펼쳐지는 광경을 보며 중얼거렸다. 제대로 확인하진 못해도, 소리로 추측하건데 표적이 올라오는 속도는 그야 말로 엄청난 빠르기.
확실히, 저걸 다 맞추고 있는거면 말도 안되는 일이다. 아무리 게임 속이라곤 해도 유저의 알맹이는 결국 현실의 인간. 캡슐과 동화율이 아무리 높아도 불가능한 일이란 게 있는 법이다.
-한 발 쏘면 쓰러지는 남자
-ㅋㅋㅋ크보가 아니라 조보였네
-ㅋㅋㅋㅋㅋ
-???: 조보아 씨!
-아무튼 크보가 방송각 뽑으려고 무리하는듯?
"으음."
이세린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시청자들 말이 사실이라면 썩 좋지 못한 상황이다.
실력요소로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하며 급부상한 크로스보우의 방송 특성 상, 몇 번 실수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다시 원래로 돌아가기 십상일 터.
그렇지만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그녀는 고민하다가 말했다.
"응원이나 할 수 밖에 없네요."
-ㅋㅋㅋ응원단장on
-용기갱on
"화이팅!"
타앙─!
그 응원에 맞춰 총성이 다시 한 번 울렸다.
그리고 같은 순간.
당황한 것은 통제실에서 크로스보우의 모습을 보고 있던 이응도 마찬가지였다. 크로스보우를 한껏 띄워놨는데 영 좋지 못한 퍼포먼스를 보이면 그의 입장도 난처해지기 때문이리라.
-다 맞추는 거 아님?
-맞추긴 개뿔ㅋㅋ핵이면 가능ㅇㅇ
-풀다이브 가상현실에 핵? 문과쉑ㅎㅎ잡았당
-아ㅋㅋ채팅 혈압 오르게 치지마라
-혈압이 왜 오르는진 알아?
-...모르는데?
-너두? ㅎㅎ 야나두!
-ㅅㅂㅋㅋ
-둘이 잘 노네
"으음...."
침음성을 흘리며 채팅창을 확인하던 이응이여섯개. 그러던 와중 그는 문득 시야의 한 구석에서 뭔가를 발견했다.
그것은 이미 쓰러져서 사라져가는 표적이었다.
"어?"
그는 홀린 듯 거대한 유리창에 착 달라붙었다. 그가 본 게 맞는지 확인하기 위한 모습이었다.
-ㅋㅋ흡사 타코야키 진공포장
-ㅋㅋㅋㅋㅋ
"여러분...."
그 때 뭔가 깨달은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는 이응.
-여러분. 제가 대머리라는 걸 발견했습니다
-ㅋㅋㅋㅋ
-아ㅋㅋ그걸 발견해버리면 저런 표정 ㅇㅈ이지
"아뇨. 그게 아닙니다. 아니. 이럴게 아니라."
그는 입을 헤 벌린 채 중얼거렸다.
"...모든 거리, 사로 표적지 상황 개시."
삐이이익─.
귀를 울리는 알림음과 함께, 거대한 스크린에 띄워지는 표적지 상황.
그리고 그걸 확인한 이응의 시청자들.
-?
-?
-?
-뭐야?
다음 순간, 오직 물음표만이 채팅창을 가득 매웠다.
스트리머 이응이여섯개는 그걸 확인할 생각도 못한 채 다시 중얼거렸다.
"...시스템. 상세 분석 부탁합니다."
띠리리리링─!
그리고 곧이어 떠오른 결과창.
이번엔, 채팅창에 오히려 정적이 흘렀다.
***
[모든 거리, 사로 표적지 상황 개시]
사격을 마친 크로스보우는 스패츠나츠 헬멧의 가리개를 들어올렸다.
캉─!
"으음.... 조금 실수했다."
-역시 그렇지?
-하긴 그렇게 빨리 쏘는데 어케 맞춤ㅋㅋ 몇 개는 빗맞춘듯ㅋㅋ
-실수? 당신 누구야! 크보 몸에서 나가!!!
-아 하느님한테 킹받을뻔ㅎㅎ; 하관만봐도 잘생겼는데 게임까지 잘하면 오바징ㅎ
-내가 볼 땐 그냥 ㅈㄴ 잘한거같은데?
-응 아니야^^ 다 맞춘거면 팬티 머리에 쓰고 크보 찾아가서 싸인받고 옴
그 때, 눈 앞에 반 투명한 스크린이 나타나며 표적지 상황이 표시되었다.
-?
-만발이네?
-만발이여?
폭발하듯 올라오는 수많은 갈고리.
"으으으음...."
그러나 크로스보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눈을 찌푸리다가 한숨을 쉬었다.
"하아. 아쉽네요.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아. 팬티 머리에 쓰고 오시겠다는 분은 꼭 저 찾아오세요. 싸인해드릴게요."
-아니 무슨ㅋㅋㅋㅋㅋ뭘 실수 했다는거임?
-크보그는신인가?크보그는신인가?
-크로스보우!크로스보우!크로스보우!
"좀 더 빠르게 쏠 수 있었는데 아깝네요."
['현직특전부사관입니다'님이 10,000원을 도네하셨습니다!]
-어케했ㄴ 시발련아;
-ㅋㅋㅋㅋㅋ
-ㅋㅋㅋㅋ
-이거 보고 우리 사단장이 또 지랄하겠네 야발
"이제 알겠다...이게 보통 인간의 레벨...시시해서 죽고 싶어졌다."
-아ㅋㅋ드립인 거 아는데 킹받네
-ㄹㅇㅋㅋ
혼란한 채팅창을 적당히 받아주며 정리하고 있던 와중 이어지는 방송음.
[시스템. 상세 분석 부탁합니다.]
어딘가 멍한 이응의 목소리. 크로스보우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띠리리리링─!!
[SYSTEM]명중한 표적 수 100/100
[SYSTEM]헤드샷 비율 : 100%
[SYSTEM]표적 식별 후 격발까지 평균 소요 시간 : 0.52초
[SYSTEM]착탄 위치 일치율 : 97.5%
[SYSTEM]종합 랭크 판정 : SS
[SYSTEM]사격 최고 기록! 축하드립니다!
[SYSTEM]업적 인장 해금 : 잘 쏘는 남자(더 원 그라운드)
"오우."
그리고 이번엔 정말로, 문자 그대로 방송이 폭발했다. 수 십키로쯤 되는 빠르기로 올라가는 채팅 탓이었다.
"개섹시해...."
멍하니 중얼거린 뿅맛사탕의 그 한 마디가 크로스보우 방송의 마지막 송출이었다.
***
그렇게 반강제적으로 얻게 된 잠시간의 휴식시간.
크로스보우는 멀뚱하니 새로 얻은 [업적 인장]이라는 걸 살펴보고 있었다.
"생각보다 기뻐진 않은가봐요?"
뿅맛사탕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보통 SS급 업적 인장이라고 하면 다른 스트리머들이 이 악물고 도전하는 과제다. 성공한 뒤 아이튜브에 올리기만 해도, 기본 수 십만 조회수가 보장되는 컨텐츠.
그러나 크로스보우에겐 그렇지 않았다. 그의 생각으론, 이 정도는 새삼스러운 일이다.
"으음. 제 오랜 팬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더 원 그라운드잖아요. 이제와서 1등한다고 해도 뭐...."
-뭔 솔?
-정보) 크보는 씹망겜 더 원그에서 2년간 1위를 유지했다.
-??ㅋㅋ씹망겜에서 1위한 거 갖고 뭔ㅋㅋ
-ㄴㄴ차이니즈 맨들 다 씹어먹고 1등이었음ㅋㅋ
-차이니즈 맨이면 핵쟁이쉑들?
-맞음ㅋㅋㅋ크보쉑 순진한 척 하면서 씹고인물ㅋㅋ
그의 방송이 셧다운 되어버린 것 때문에, 뿅맛사탕은 자신의 방송 채팅이 보이게끔 공개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방송에서 낯익은 닉네임이 설명해주는 걸 보며 어깨를 으쓱하는 크로스보우. 그가 하꼬 스트리머던 시절부터 봐오던 시청자 중 한 명이다.
사실 올오버가 어느 정도 파급력을 갖고 있는 지 잘 모르는 탓도 있었지만, 총기류를 사용하는 게임에서는 딱히 누구에게 밀린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기도 했다.
"다른 게임 베이스로 이러면 좀 기쁘긴 할 거 같네요."
"다른 게임이요? 그럼 이따 해볼까요?"
그 말에 뿅맛사탕이 화색을 띄며 물었다. 눈 앞에서 신기한 것을 목도한 어린아이같은 심정이 된 그녀는 이 남자...근접무기를 들면 어떨까? 따위의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
"저야 뭐. 뺄 이유가 없죠. 근데 인장이란 거 뭐가 좋은거죠?"
"인장질을 할 수 있게 돼요!"
"인장질이요?"
-ㅋㅋ인장질 중요하지
-인장질 하는 맛에 올오버함ㄹㅇ
-SS인장이면 금목걸이 같은 것도 주지 않나?
뿅맛사탕의 방송에서 그런 얘기가 오갔다.
"으음...."
-석궁쟝은 이런데 관심없어?ㅎ
-기분 좋은거(인장질) 하자구웃~?
-크보쿤...그게 두 개인건 처음 보는데....
-?? 선은 넘지 말자
-아니 S가 두 개인건 첨본다고 시발...어케 했누!
"아니. 님들. 저 부끄럽게 만들지 마시고 좀 조용히 하세요."
조금 이상한 채팅에 당황하는 이세린. 저 쪽 시청자 풀은 어째 악질이 조금 많은 듯 보였다.
그녀는 부끄러운지 얼굴이 조금 빨개진 모습이었지만, 그런 모습을 보이면 시청자들의 흥을 돋우는 일이 될 뿐이다.
-우리가 부끄러워?
-그스그청 몰라?
-언제는 우리밖에 없다며! 거짓말쟁이!
"어떻게 하는거죠?"
"설정창에서 동작 설정해놓으시고 그 동작하시면 됩니다."
대답은 다른 곳에서 나왔다. 어느덧 통제실에서 내려온 이응이었다.
"예를 들면 저는 머리를 만지는 행동으로 해놨습니다."
뾰롱.
슥슥 머리를 쓰다듬자 귀여운 소리를 내며 그의 위 쪽으로 떠오르는 문양. 멋쩍게 머리를 쓰다듬으며 악수를 하는 캐릭터 모습.
"인장 이름이 [무수한 악수의 요청이...]네요?"
"친구 창이 1,000명까지 채워지면 얻는 칭홉니다. 이거 얻으면 방송할 때 올오버에서 특혜를 조금 줘요. 1인칭 시청 지원이나 그런거."
"오. 신기하네요."
"그리고 SS급 인장이면 레드홀 본사에서 순금 인장모형도 보내줄겁니다. 단, 1년 안에 다른 사람이 크보님 기록을 갱신하면 랭크가 A로 떨어지고 모형도 못받게 돼죠."
“그런 식이군요.”
-저 분 왜 자꾸 올린이인 척 함? 한 번에 최고기록 세워놓고 소름돋네ㅋㅋ
-아니 크보 올린이라니까?
-ㅋㅋ근데 이응좌가 머리 만져서 인장띄우는거 왜케 웃기냐ㅋㅋ
-ㄹㅇㅋㅋ알라의 램프도 아니고ㅋㅋ
-알라의 램프는ㅋㅋ파키스탄산 램프냐?
['근데'님이 1,000원을 도네하셨습니다.]
-이응님 머리엔 여드름 안남?
"네. 저도 진짜 신기한데 하나도 안 나네요."
-왜지? 신기하넹
-아마 대머리 자체가 하나의 큰 여드름이라서가 아닐까?
-아ㅋㅋ너언 진짜 나빴다ㅋㅋㅋ
"앗! 아아...죄송해요! 매니저님. 쟤 영구차단 좀요."
화들짝 놀란 세린이 해당 채팅을 블라인드시키며 말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하하. 괜찮습니다. 저희 방 시청자들도 웃기 바쁜데요 뭘."
그렇게 둘이 만담을 나누는 사이, 크로스보우는 설정 창에서 빠져나오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알았습니다. 설정하고 왔어요."
"오오!"
화제를 돌릴 구석이 생기자 강하게 호응하는 이세린.
"보여주세요!"
그녀의 말에 태연히 끄덕인 크로스보우. 그는 그러더니 문득, 고간을 장전했다.
...설마? 라는 생각이 모두에게 스쳐가고 바로 다음.
"아, 안돼요!"
"돼."
아무렇지 않게 심의에 걸릴 모션을 취하는 모습.
철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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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급 최고기록!
[잘 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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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 손 동작, 인장 이름까지 완벽한 삼위일체!
-ㅋㅋㅋㅋ고간포ㅋㅋㅋㅋ
-크보쉑ㅋㅋ아무렇지 않게 헛짓거리하는거 개웃기네ㅋㅋㅋ
-형도 냄챙의 길로 빠지는거야...?
< 9화-피지컬 검증 > 끝
ⓒ Read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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