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화-구원의 총알 >
"야. 저거 나만 보이냐?"
"응? 뭐?"
"저거. 저거, 시커먼 거."
"뭐라노?"
크로스보우는 묵묵히 헬멧을 눌러썼다. 평소에는 잘 챙기지 않던 근접무기가 허리춤에 잘 달려있는지 체크. 허벅지에 매달아놓은 권총까지 확인한다.
"저, 저게 뭐야."
"일식인가?"
우웅─.
기묘한 울림이 나팔소리처럼 저 멀리서부터 뻗어져온다. 알 수 없는 힘의 파동 같은게 온몸에 부딪혔다.
그리고 그걸 느낀 걸까.
"어, 어어?"
"야, 야. 느낌이 안좋다."
그의 근처에 모여있던 남녀무리가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쳤다.
-도망가 바보들아!
-지금 튀어!
-인싸쉑들 또 죽겠네ㅋㅋ
그 장면을 그대로 느끼고 있을 시청자들이 채팅을 쳤다. 크로스보우는 그 곳을 힐끗 보곤 장탄 수를 확인했다.
돌격소총-M416(40/300)
저격소총-Kar98K(5/100)
권총-Desert eagle(7/∞)
'돌격소총 300발에 저격소총 100발이라. 권총탄은 무제한이긴한데....'
그는 임무창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SYSTEM]살해한 괴물 : 0/1000
'살상력이 있는 소총류로만 따지면...원샷원킬을 가정해도 500마리는 더 죽여야하는군. FPS출신 캐릭터가 깨기 힘들다는게 괜한 말이 아니야.'
이렇게되면 결국엔 근접박투를 피할 수 없다. 크로스보우는 헬멧 안에서 눈을 가늘게 뜨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그 순간, 몬스터들이 하늘에서 떨어져내리기 시작했다.
철퍽!
철퍽!
철퍽철퍽철퍽철퍽!!!
"으, 으아아악!!"
"꺄아아악!!!"
흥건히 튀어오르는 피와 살점파편. 그걸 뒤집어쓰는 헐벗은 인간들. 아이들이 울음을 터뜨리는 와중에 뜨거운 여름햇살이 그저 내리쬔다.
그것은 차라리 전위적인 광경. 평화롭던 해변가가 아수라장이 되는 건 일순간에 불과했다.
-으아악! 극혐!
-시작된다
-초반에 떨어지는 애들은 낙사하는데 바닥에 시체 좀 쌓이면 안 죽고 덤벼들던가?
-몰라 균열방어전 좀 끔찍해서 별로 안해봄
-별로 끔찍하진 않은데...NPC들 다 뒤지게 냅둔거아님?ㅋㅋ
-..ㅠㅠ
-니가 죽인거야! 기억해!
-ㅠㅠㅠ
-야! 우냐? 야! 얘 운다!
크로스보우는 채팅창을 보다가 옆으로 스윽 피했다. 그러자 그의 옆으로 뭔가가 계속해서 낙하하는 모습.
"키에에에엑!"
철퍽!
"이건 뭐 똥피하기 게임도 아니고...."
-ㅋㅋㅋ크가놈 당황한 거 보소
-???: 이건 뭐 거지들도 아니고
"아무튼 초반엔 약한 몬스터들만 떨어지고...."
-ㅇㅇ처음에 고블린같은 애들만 떨어져서 다 낙사함 후반갈수록 쎈 애들 떨어짐
-중간에 보스급애들 한번씩 떨어지고 그럼
"초반에 떨어진 약한 애들 시체가 발판이 된다는거죠?"
-그것도 있긴한데 어차피 모래 위라서 고블린들말고는 잘 안죽음
-빨리 팀원 찾아서 합류하자 크보야 여기보단 광안대교 지키는게 더 중요함
"흐음. 훈수는 감사합니다만...글쎄요."
크로스보우는 턱을 쓰다듬었다. 어느새 바다에서 물놀이를 즐기던 사람들마저 그의 뒤로 도망치고 있었다.
모두가 뒤를 향할 때, 그는 오연히 나아간다.
-크~ 이 느낌때문에 균열방어전 못 끊지
-ㄹㅇㅋㅋ
-영웅심리on
그는 자신에게 빙의해있는 시청자들의 채팅에 그는 웃었다. 소총을 등에 맨다.
"총알 좀 아낄게요."
그가 손에 든 것은, 권총 한 자루와 더 원 그라운드에선 마체테라고 불리는 근접무기.
검 한 자루와 권총 한 자루.
그런 그의 모습에 시청자들은 한 단어를 떠올렸다.
-건카타?
-그런 똥캐릭터로? 설마....
-크보놈 근접전투 본 적 있는 사람?
-없긴 해?
-자기가 크로스보우라는 사람인데 칼도 잘 쓴대!
아무런 스펙도 없다시피한 더 원 그라운드의 캐릭터. 단지 지치지 않는 것이 유일한 장점인 똥캐릭터!
"똥믈리에 출격합니다."
장난스레 말하며 그는 철가면의 바이저를 올렸다.
텅!!
몬스터들이 상대라면 시야를 제한하는 스패츠나츠 헬멧따윈 거치적거릴 뿐 썩 도움이 되진 않는다.
그러나 얼굴공개를 하지 않은 입장상 헬멧을 벗어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 바이저를 올려 조금 더 나은 시야에 만족할 뿐.
-어? 가만히 있으면 포위되는데?
-떨어진다아아아!!
철퍽!
철퍽!
철퍽철퍽!
"크우으...."
"키에엑!"
어느덧 그를 포위하는 진영으로 낙하한 몬스터들. 꾸물대는 검은색 슬라임 같은 것들과 고블린인지 하는 이름으로 불리는 놈들이었다.
"이, 이봐! 거기! 도망쳐!"
"거기서 혼자 뭐하는거에요!"
괴물들에게 둘러싸인 크로스보우가 걱정되었던 탓일까. 아까 그의 주변에서 떠들던 남녀무리가 멀리서 소리치고 있었다.
"...?"
그 소리에 그 쪽을 돌아보는 크로스보우.
그런 그의 뒤쪽으로, 고블린이 달려들었다.
"위, 위험!"
"뒤, 뒤...!"
타아앙!
"크에에에엑!"
노룩샷.
크로스보우는 보지도 않고 녀석의 머리통을 날려버리며 미소지었다. 바이저 밑으로 드려난 입꼬리가 호선을 그었다.
"이거나 드셔."
초록빛 피가 분수처럼 치솟았다.
"어...?"
의아함의 소리가 흘러나오고 바로 다음 순간.
쐐애애액!!!!
웃고 있던 크로스보우는 빙글, 한 바퀴 몸을 회전시켰다.
한 번의 휘두름.
서걱!
"케엑!!"
이번엔 머리통이 치솟아올랐다.
"꺄아아악!!!"
그 모습이 끔찍했던 탓일까. 그를 도와주러 온 듯 보인 이들이 움찔 비명을 질러댔다.
크로스보우는 그들 쪽을 향해 달려가려는 몬스터의 다리를 단칼에 자르며 동시에, 옆에서 달려드는 공격을 발로 걷어낸다.
그리고 격발.
타앙─!
정확하게 미간에 피격되는 총탄에 속절없이 깨져버리는 머리통!
[SYSTEM]살해한 괴물 : 3/1000
-와
-와
-개멋있누
-이거 영화냐?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듯한 전투에 채팅이 감탄으로 통일되었다. 빙의해있는 시청자들의 채팅은 없었지만, 아마 몸으로 직접 느껴지는 전투에 압도된 탓일 터.
그런 와중에, 크로스보우는 다른 생각에 몰두해있었다.
'저 쪽에 있는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자마자 날 무시했다.'
그는 바닥의 모래를 발로 차올려 놈들의 시야를 막고, 권총을 격발하며 고민했다.
탕!
"케에엑!!"
'꼭 유저의 존재감이 옅기라도 한 것 같은데...'
그는 마체테의 손잡이로 고블린의 검을 절묘하게 받으며 녀석의 뒤에 있던 검은색 슬라임까지 꼬챙이로 만들어버리곤 펄쩍 뛰어올랐다.
퓻!!
"케에엑!!"
그러자 그의 밑으로 저 멀리 보이는 고블린이 쏜 독침이 스쳐지나간다. 격분한 듯한 울음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과연. 천 킬을 달성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야. 관건은 사람들을 얼마나 살리느냐. 이 문제로군.'
틀린 발상은 아니었다.
물론, 1,000킬, 그것도 FPS게임 캐릭터를 기반으로 해내기는 걸 쉬운 것으로 치부하기엔 수많은 실패사례들이 있지만 아무튼.
그 때였다.
['투팝피시방'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쟤들 살려서 임무 완수하면 20만. 1코.
때마침 들어온 미션.
크로스보우는 쉬지 않고 건카타액션을 선보이며 대답했다.
"그 미션. 도전하겠습니다."
타아아앙─!!
그는 권총과 검을 놓아버리며 순식간에 저격소총을 들어 어딘가를 쏴버리곤 중얼거렸다.
"애초에...죽게 놔둘 생각따윈 없었으니까요."
-ㅋㅋㅋㅋㅋㅅㅂ
-으아악
-중2병on
-흑염룡ㅋㅋㅋ
-시공간이 뒤틀린다!
-방금 쏜 건 축포냐?ㅋㅋㅋ
그 대사를 들은 시청자들이 아우성을 쳤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
"왜 안와!!"
올 오버. 1대1 대전 모드와 AOS전투모드의 마스터 티어 게이머.
닉네임 '반반무'는 광안대교의 위에서 분통을 터뜨리고 있었다.
"한 명 더 원 그라운드임. 크크. 트롤 매칭된듯."
"진짜 균방전 매칭 왜 이러냐? 걍 저희끼리 하죠...."
"에휴. 또 죄없는 NPC들만 죽게 생겼네."
거대한 다리 위에 모인 것은 4명의 팀원들.
그들은 그 곳에 모이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는 듯 아직까지 얼굴을 비추지 않는 마지막 한 명을 생각하며 표정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그도 그럴만했다.
균방전.
즉, '균열방어전'의 해운대맵 기본적인 공략 방식은 팀원 모두가 우선 해운대를 벗어나 광안대교에 모두 모여서 시작하는게 정석이었기 때문이었다.
초반 균열이 해변가의 상공에 형성된다고해서 거기에 쭉 눌러앉아있으면, 시간이 흘러 등장하는 아룡종種亞龍 몬스터인 드레이크 탓에 광안대교가 붕괴해버리고 만다.
NPC들이 몰살당해버리는 대형사고. 유저의 입장에선 반드시 막아야하는 상황인 셈.
그러나 그에 반해, 해변가 쪽은 몬스터들이 떨어지며 대부분 사망하기에, 거의 아무런 희생없이 사람들이 대피하는 시나리오로 흘러간다. 경찰NPC들도 빠르게 출동해 방어선을 형성하니, 알아서 어느정도 버텨주는 것.
균방전을 가벼운 마음으로 처음 접하면, 당연히 알 리가 없다.
"하아...."
이번에도 제대로 된 클리어는 실팬가. 반반무, 윤유지는 잠깐이나마 절망어린 표정을 지었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그냥 게임일 뿐이야. 유지야. 과몰입하지말자.'
그녀는 자신에게 되뇌이며 자신의 캐릭터, 게임 [전설의 리그] '세나'의 주무기인 거대한 대포를 고쳐들었다.
요 며칠간 계속해서 시도하고 있는 균열방어전.
언제나 수없이 많은 사람이 죽고나서야 클리어하는 게임모드.
누군가는 그저 기분찜찜한 공성전 모드라고 부르는 모드.
사실, 다른 모드에서 마스터라는 높은 랭크를 달성한 그녀가 굳이 '균열방어전'을 계속 시도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찜찜함이 그녀를 옭아맸다.
그저 재미로 시작했던 게임모드가 꼭 현실처럼 느껴지고, 죽어나가는 사람들이 진짜같이 느껴졌던 것.
"아. 진짜 짜증나네? 뭔 트롤들이 이렇게 많아. 진짜 올오버 망겜이라니까?"
그녀는 입으로는 투덜거림을 내뱉으며 상공에 주의를 기울였다. 문득, 처음 균방전에 실패하고 꿨던 악몽이 기억난다....
"...."
"옵니다!"
"세나 준비하셈!"
"저 쪽이다! 뛰어!!!"
팀원들의 외침에 그녀가 정신을 차리기 무섭게, 저 높은 상공에 있던 균열이 급격히 밑으로 하강하기 시작했다.
해변가완 다르게, 이 곳에 떨어지는 몬스터들은 처음부터 고블린이 아닌 오크.
"...망령화."
반반무는 '망령화'스킬을 시전하며 스르륵 침잠했다. 범위 내에 있던 팀원들도 그 효과를 받으며 그들은 오크가 떨어져내리는 곳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돼요? 이거?"
"아...너무 멀다."
"쩝. 어쩔 수 없죠."
익숙한 포기 선언.
젠장. 그녀는 저 멀리 허공에서 나타나 낙하하는 몬스터를 노려보며 생각했다.
저게 떨어지면, 균방전 최초의 희생자가 나온다.
희생자는 오크가 떨어지는 곳에 있는 차량의 운전자NPC. 설정상 아이와 아내를 데리고 휴가를 떠나온 한 가정의 가장.
게임의 몰입도를 높이기위한 장치에 불과할 그것이, 어쩐지 몸 안 어딘가에 턱 걸린 기분.
그녀는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
"돌진기 없어요?!"
"안닿을듯."
"포기하죠. 이거 다음 대비하는게 더 중요해요."
게임 초반부라 아직 약하디 약할 캐릭터들이, 완벽하게 랜덤한 위치에 떨어지는 오크를 방해해 운전자NPC의 죽음을 막는 것은 몇몇 캐릭터를 제외하곤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
어쩔 수 없는 이벤트라는 인식이 보편적인, 예정된 죽음. 또다시 그걸 목전에 둔 윤유지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데 그 때였다.
타아아아앙───!!!
멀리서, 뭔가 그들을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다음 순간.
퍽!
"크우웨엑!!!"
육편이 터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낙하하던 오크의 머리가 정확히 박살난다.
그 모습이 그녀에게는 마치, 슬로우모션처럼 보였다.
"무슨...?"
콰앙!!
그리고 녀석은 그대로 날아가 다리 기둥에 쳐박혔다.
"뭐, 뭐야?"
"...저격? 설마 아까 그 더 원 그라운드?"
마찬가지로 당황한 팀원들의 목소리.
저격이라고?
그녀는 옆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아득하게 보이는 해변가.
"이 거리를...?"
그녀가 아연하게 그 거리를 가늠하고 있을 때.
타아아아앙───!!!
또 한 발이, 이번엔 그녀의 볼을 스쳐지나갔다.
< 11화-구원의 총알 > 끝
ⓒ ReadOu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