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화-그랜드 마스터 승격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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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슬리는 문구. 크로스보우는 서둘러 알람창을 치워버렸다.
"하나...둘...셋...!"
팅...! 또르르.
"이런 미친....!"
콰아아앙!
[SYSTEM]당신의 수류탄으로 '밥먹자구구(굶지마)'님이 사망하였습니다.(9킬)
[승리!]
[이겼닭! 오늘 저녁은 치킨이닭!]
"...후."
크로스보우는 손을 털고는 눈을 쓰다듬었다. 자신만만했던 처음과는 달리, 슬슬 시야가 흐리다.
이걸로 몇 연승째지. 모르겠다. 방금 알람이 떴던 거 같은데.
-17연승...지금까지 164킬 노데스...
-않이 이제 솔직히 가능? 지금 17시간짼데 계급 너무 안오르고 크보 개피곤해보임ㄷㄷ
-힘들면 그냥 일반인으로 출전하자...대회 중 생방은 못하겠지만....
-그건 에반데; 무적권 생방이지
"17연승...."
그렇군. 나쁘지 않다. 매 판을 이기는 건 그리 힘들지 않으니까. 점점 머리를 써야하는 상황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은 괜찮다.
그러나 문제는 한 판 당 한 시간에 가까운 플레이 타임과 도저히 오르지 않는 계급에 있었다. 이미 총 방송시간이 17시간에 육박했음에도, 아직도 마스터 계급. 뒤에 있을 그랜드마스터 승격전까지 생각하면 아직 조금 더 이겨야한다.
['수면맨'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지금 자면 5만원
-잠은 자야지 크보야;
-ㄹㅇ구실도 생겼다 잠방 가즈아
-오우쉣 크보 잠방? 바로 로션 가져와야지
-그래도 다음 판엔 승격 뜰거같은데
-그 뜰 거 같은데가 벌써 5판째임
"후원 감사합니다. 잠은...괜찮습니다. 바로 다음 판으로 가보죠."
정신적 피로가 조금씩 더 누적된다. 게임에도 신경쓰는 거 뿐만이 아니라 채팅창에도 계속 신경을 써야하는 상황. 아마 현실이었다면 그의 눈 밑은 시커멓게 죽어있겠지.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네이션스 컵]의 출전 자격은 두 종목에서 그랜드마스터를 달성하는 것. 한 종목이라도 빠르게 그랜드마스터까지 올려둬야만 여유로운 플레이가 가능하다.
"후우."
그는 멈춰버린 게임에서 나가기를 눌렀다. 이 정도 이겼으면 슬슬 승격전이 떠야할텐데...그 승격전이 몇 판 째 뜨질 않고 있었다.
현재 점수는 마스터 99점. 단 1점만 있으면 승격전을 치룰 수 있으나...아무리 그 1점이 오르질 않는 상황.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올 오버에 존재하는 배틀로얄 모드는 보통 이길 때마다 계급이 올라가지만, 예외가 둘 있었다.
바로 그랜드 마스터 계급으로의 승격전과 최고 계급인 오버로드 승격전. 이 두 가지 승격전을 앞두게 되면, 이긴다고 해도 99점에서 점수가 오르지 않고 몇 번을 이겨야할지 모른 채로 여러번 게임을 해야하는 것.
그 여러번이 몇 번일지는, 올오버의 중앙통제AI만 아는 사실이다.
심지어 운 좋게 승격전이 뜨더라도, 그 게임을 우승하는 것만으로 승격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유별나게도 '승격 임무'의 성공과 함께 우승까지 거머쥐어야만 가능한 승격.
-이번엔 뜨나?
-가즈아ㅏㅏㅏ
-좀 떠라 진짜
-ㄴㄴ그마부턴 상대평가 아니고 절대평가임 지금 그마 500명도 안됨
쿠궁─!
[SYSTEM]게임 찾는 중....
"으음."
크로스보우는 눈가를 쓰다듬었다. 그런다고 피로가 풀릴 리는 없지만 습관적인 행동.
[SYSTEM]게임이 매칭되었습니다!
그 때쯤 새로운 게임이 잡혔다.
'또 처음 보는 캐릭터들 투성이네.'
계속 계급이 올라갈수록 생소한 캐릭터들이 꽤나 보였다. 이번 판도 마찬가지다.
'저건 [마지막 환상]에 나오는 '선택받은 왕'...[악마는 울지 않는다]에 '비질'...저건 뭔지 모르겠는데...대검을 쓰는 캐릭터라.'
빠르게 모여있는 캐릭터들의 정체를 파악하는 크로스보우. 스윽 채팅창을 보자 정체들을 알아본 시청자들이 그를 도와주고 있었다.
'이번엔 근접 전투 캐릭터가 많다. 스타일리쉬한 스타일도 많고. 원거리는 시계워치의 파랴드랑 아쉬드. 전설의 리그 캐릭터가 조금 정도.'
그렇다면.
크로스보우는 근접에서 싸우기 적합한 기관단총(SMG)인 벡터와 첫 판에서도 사용했던 저격소총(SR), M24를 손에 들었다.
-중거리전 포기ㅋㅋㅋ
-매칭된 애들 생각하면 현명한듯
-아~주~현명한 판단이에용~
'이번에도 무조건 이겨야한다. 한 번 지는 순간 지금까지 해온 연승이 없어지는거나 마찬가지야.'
크로스보우는 심호흡을 했다. 할 수 있을까?
그 질문에, 감각이 억지로 눈을 뜨듯 깨어났다.
[SYSTEM]곧 게임이 시작됩니다. 3...2...1...
-시작한다
-두구두구두구
-킹능성있다
-99점에서 5연승? 이건 떠야지
-과연 역대최강 똥믈리에의 승격임무를 받을 수 있을 것인가?!
-승객 여러분. 탑승해주십시오.
그렇게 비행기가 떴다.
그리고 그 순간.
빰빠밤!!
[SYSTEM]승격 임무가 부여되었습니다!
'승격 임무'가 떴다.
-떴다
-떴다!
-떴어?
-제발 난이도 상 제에발.
-최고의 똥 전문 요리사에게 그마 승격전이 왔다?! 뿌슝빠슝
크로스보우는 마침내 보상받은 고생에 진하게 미소지었다.
"무슨 난이도건 한 번에 클리어 갑니다."
그리고 마치 그에 화답하듯 펼쳐지는 임무창.
[SYSTEM]그랜드 마스터로의 여정: 승격임무
[선택한 게임: 더 원 그라운드]
[승격 임무!]
[근접 무기만으로 8명 이상의 적을 섬멸하십시오!]
.
.
.
[난이도 : 불가해]
"...?"
-?
-?
-?
-?
"뭐야. 씨벌."
방송이 다시 흥하고 처음으로, 크로스보우가 욕설을 입에 담았다.
***
맵. '이계로의 항구'
대한민국의 속초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배틀로얄 맵.
크로스보우는 인상을 찌푸린 채 적당한 곳에 하강하며 주변을 확인했다.
'가능할까?'
급박한 긴장감. 몸을 불쾌하게 데우는 피로감은 가상현실이라 생각하기 힘든 감각.
'아직 괜찮아. 나쁘지 않다.'
크로스보우는 주먹을 쥐었다펴며 채팅창을 확인했다.
-ㅋㅋㅋㅋㅋ속보! 똥믈리에 똥밟앜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무슨 난이도건 한번에 갑니다
-ㅋㅋㅋ불가해 난이도 처음 봄ㅋㅋㅋ
-지금까지 딱 두 번 클리어됐나ㅋㅋㅋ방송인한테 뜬 건 처음ㅋㅋㅋ
-운동 좀 한 일반인 스펙 캐릭터로 초능력자랑 1대1 맞짱 8번 떠서 이기라는거네;
-ㅋㅋ올오버가 크보 싫어하는듯
-넌 아직 준비가 안됐다! 네이션스 컵이 그대를 거부하리라!!
웃음과 드립으로 도배된 채팅창.
"...."
당연한 일이다. 상식적으로 절대 불가능한 승격 임무다. 그냥 채팅처럼 똥 밟았다 생각하고 넘어가는게 정신 건강에 이로울정도.
그러나 크로스보우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가능해.'
그는 입술을 꽉 깨물며 생각했다. 성공시킨다. 무조건.
['님들이거ㄹㅇ '님이 5,000원을 도네하셨습니다!]
-안전자산 ㅇㅈ? ㅋㅋㅋ승격 성공에 10만원 배팅합니다ㅎㅎ 깰 수 있음 깨보던가
-ㅋㅋㅋㅋ저번에 걔 아니냐?
-ㅋㅋㅋ맞넼ㅋㅋ
['곽철용'님이 10,000원을 도네하셨습니다!]
-묻고 더블로 가
['크보쨩핥쨕'님이 1,000원을 도네하셨습니다!]
-이 판 치킨 시 절 드림
-구아아아악
-ㅋㅋㅋ악질쉑 또 등판ㅋㅋ
['이건안전자산이아니라'님이 1,000원을 도네하셨습니다!]
-스위스은행 수준이노; 통 크게 승격 시 100만원간다
-노? 신고합니다
-다? 신고합니노
['테헤란로742건물주'님이 100,000원을 도네하셨습니다!]
-묻고 더블로 승격 시 200만+킬당 20만원 갑니다
-와;지린다 크보 많이 컸네 미션금 수준;;
-테헤란로 742 없는 주손데?
-??
세기도 힘들 정도로 많이 걸리는 미션금.
평소 같았으면 어느 정도의 리액션을 했을 크로스보우였지만, 오늘은 어째 일언반구도 없었다.
이미 고도의 집중 상태에 들어간 탓이었다. 느끼던 피로감따윈 잊으라는 듯 깨어나는 감각.
'같이 내린 게 한 명. 위 쪽 라인에 두 명. 아랫쪽에 한 명. 조금 떨어진 왼쪽 위치에 한 명.'
내리자마자 도핑. 최소한의 속도라도 확보해야한다. '
그리고, 냅다 같이 내린 사람 쪽으로 뛰었다. 지금은 갑작스런 기습이 가장 중요하다.
-?? 포기?
-발소리 안죽이나
벽 너머에서 대기하고 있는 상대편 캐릭터는 대기할 때 봤던 '비질'이란 캐릭터였다. 긴 일본식 장검을 사용하며, 준수한 스펙과 칼 기술, 그리고 마법을 함께 사용하는 캐릭터.
"뭐, 뭐여!"
플레이하는 사람은 아저씨인지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를 내뱉었다. 겉으로는 비질 코스프레를 한 중년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모습이다.
스릉-
하지만 높은 계급인만큼, 급작스러운 돌진에도 검을 뽑아드는게 자연스럽다.
"...사선으로 참격."
크로스보우는 중얼거리며 몸을 빙글 돌렸다. 당연하다는 듯이 피해낸다.
"어,엉!?"
"파고 들면 포스엣지."
포스엣지. 자신의 몸에 무형검을 둘러 빙빙 돌리는 스킬.
그는 허리춤에서 프라이팬을 꺼내들며, 몸을 확 숙였다.
그리고 그건 완벽한 타이밍이었다.
"이잇!"
'예상대로.'
틈을 노린 그의 프라이팬이 상대의 다리를 타격한다.
깡─!!
"억!"
비질이 한 쪽 무릎을 꿇었다. 더 원 그 캐릭터의 데미지는 게임 내 탑급. 쓰레기같은 자체 성능 때문에 똥캐릭이라 불리는 것일 뿐이었다. 물론, 보통은 그게 전부겠지만.
-미친
-지금 예측한거임?
빠르게 올라오는 감탄의 채팅. 크로스보우는 씨익 웃었다. 묵묵한 스패츠나츠 헬멧이 그를 분위기있어 보이게 만든다.
그때쯤 훌쩍 뒤로 물러났다.
'다음 공격은 차원참. 무조건이다.'
원거리에서 공간을 절단시켜 일그러뜨리는 참격. 강력한 기술이지만 각도가 좁아터진데다가 시전 후 딜레이가 길다. 일부러 거리를 벌려준만큼, 당황한 상대가 택할 선택지는 얼마 없다.
고계급이니만큼, 차원참이 최선의 판단이라 여기겠지.
"그리고 차원참."
"죽어!!"
예측대로였다.
크로스보우는 어깨를 조금 트는 것으로 공격을 피해내며 돌진했다. 공격범위를 완벽히 이해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그게 마지막이었다.
"으억?!!!"
깡.
한 대.
까아앙──!!!
두 대.
[SYSTEM]당신의 프라이팬을 사용한 헤드샷으로 힘을숨긴중식이(악마는 울지 않는다)를 살해하셨습니다(1킬)
"죽었군."
허무하리만치 쉽게 죽은 상대방. 크로스보우는 그 시체를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중얼거렸다.
"1킬."
...그 선언과 함께 채팅창에 불이 붙었다.
-...?
-와....
-미...친...
-이제 앵간한 거는 그러려니 할텐데 이건;;
-...지금 뭘본거지?
-진심모드on
무표정의 스패츠나츠 헬멧이 고개를 돌렸다.
바스락.
"다음."
***
< 19화-그랜드 마스터 승격전 > 끝
ⓒ Read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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