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화-크로스보우 증후군 >
늦은 밤. 건물의 옥상.
크로스보우는 멍하니 밤하늘을 바라보며 아까 보았던 알림에 대해 생각했다.
[SYSTEM]축하드립니다!!
[불가해 난이도 승격 임무 클리어!]
[SYSTEM]크로스보우님의 계급은 '오버로드'입니다.
[SYSTEM]당신의 이름이 랭킹 보드에 새겨집니다.
[SYSTEM]이제부터 다른 모든 종목들의 계급전이 '플래티넘'부터 시작합니다! 이는 플레이어님과 다른 플레이어들의 실력 차를 조정하기 위한 일입니다.
[SYSTEM]새로운 칭호를 얻었습니다!
[SYSTEM]새로운 인장을 얻었습니다!
[SYSTEM]이제부터 모든 플레이어는 승격전에서 '불가해' 난이도를 직접 선택할 수 있습니다!
[SYSTEM]올 오버가 주관하는 모든 대회에 대한 우선참가권과 소정의 상품이 발송 됩니다! 개인 메일함을 확인해주세요!
[SYSTEM]'알 수 없는 열쇠'를 얻었습니다.
'설마 참가권이 보상에 있을 줄은.'
게임. '유어 캐릭터즈 올 오버' 역사상 손에 꼽는 '불가해' 난이도 승격 임무.
그리고 세계에서 3번째로 이루어진 임무 클리어.
과연 전세계적으로 흥행한 게임사에서 준비한 최고의 난이도답달까. 채팅창에 다시금 불이 붙을만큼 파장이 컸다.
심지어 그 결과는 2계급 승단.
대충 시청자들의 말을 들어보니, 2계급 승단은 저계급에서나 가끔 나오는 일이라고 한다. 이번 일로 최고계급에서도 2계급 승단이 가능하다는 걸 최초로 밝혀낸 거라고.
보상 또한 게이머들의 열의를 불태울만한 것이었다. 세상에서 단 3명만 갖고 있는 칭호와 인장. 거기에 균방전 때를 잇는 또 한 번의 '소정의 상품'. 올 오버가 주관하는 모든 대회의 우선참가권까지.
'추석 선물이라도 일찍 받은 기분이네.'
덕분에 방종 없이 쭈욱 달릴 예정이었던 방송도 조금은 여유가 생겼다. 어차피 네이션스 컵에 출전하는 것은 가능해졌으니, 급할 필요가 없다.
그런 이유로 크로스보우는 방송을 종료하고 옥상에 올라와 숨을 돌리고 있던 것.
'그나저나 알 수 없는 열쇠....'
대체 뭘까? 멍하니 생각하고 있던 와중이었다.
슬금슬금 누군가 다가오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크로스보우는 그 쪽을 바라보았다.
"!!!"
누군가 했더니 옆 집에 사는 이웃주민이었다. 송다혜라고 했었지. 그는 느릿하게 그녀에게 말했다.
"기습이라도 하시려고요?"
"아, 안녕하세요?"
'옆캡슐뇨끼네.'
분석 및 리뷰 아이튜버. 그녀의 정체를 기억해낸 크로스보우는 목례 겸 고개를 까닥여보였다.
"그, 그게. 밖에 나가시는 소리가 들려서."
"아. 그게 들리나봐요."
"네. 어. 그게...다름이 아니라 그...."
다름이 아니라? 크로스보우는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을 까맣게 잊은 채 갸웃거렸다. 그녀의 태도가 어딘가 이상했던 탓. 마치 굉장한 수치심을 이겨내고 말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으으으...."
"듣고 있습니다."
혹시 영상감으로 써도 되냐는 질문일까? 그런거라면 이미 번호를 준 바 있다. 그 쪽으로 연락을 주면 될 일.
"으으...."
"으으?"
이상한 소리를 내는 여자. 이제 보니 그녀는 손에 뭔갈 들고 있었다. 담밴줄 알았는데. 어두운 와중에 명확하진 않았지만, 그거보단 큰 무언가.
"연초 끊고 전자담배로 바꾸셨어요?"
"아, 아뇨! 아닙니다. 으으으."
송다혜는 그렇게 말하며 슬금슬금 다가왔다. 어딘가 꺼림칙한 모습에 그는 자기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
"왜, 왜 멀어지시나요."
그러자 그녀는 울상으로 말했다. 귀만 빨개진 모습이 문득 눈에 띈다. 날씨가 쌀쌀해지긴 했지.
다시 봐도 화려한 미인상이지만...하는 짓이 조금 이상하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며 그녀를 경계했다. 그러자 그 눈초리에 조금 진정한 모양.
"죄송해요. 제가 이런 말을 해본 적이 없어서...혹시 저 이사왔을때 기억하시나요?"
"이사....음. 네."
못한다.
"그 때 밤이었잖아요. 늦은 시간에 혼자서 막막했거든요."
"괜찮습니다."
그런 적이 있었나싶다.
"근데 말로만 고맙다고 말했던 거 같아서요. 떡이라도 돌렸어야 하는데...이웃도 크로스보우님밖에 없는데 뭐라도 드렸어야 했는데 죄송해요."
"다 그런거죠."
이 건물은 한 층에 호수가 두 개 뿐이긴 하다. 그러나 아래층도 분명 이웃이다.
"게다가 며칠 전엔 말실수나 하고...정말 실례했습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손을 내밀었다. 수상한 검은 봉투. 크로스보우가 한참 바라만 보고 있자, 다시 귀가 달아오르는게 눈에 보였다.
"그, 그...현실 도네라고 생각해주세요. 오늘 방송 정말 알차게 잘 봤어요. 땀이 막...."
"으음. 그러시다면야."
이렇게까지 오래 손을 뻗고 있게 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다. 그는 슬쩍 엄지와 검지만으로 그걸 잡았다. 그러자 봉투 안에서 달그락 소리가 난다.
"약? 약인가요?"
"영양제에요. 맨날 밤새시잖아요. 햇빛도 안 보시고. 비타민 D랑 마그네슘이에요."
안 쪽에 들어있는 건 비타민제로 보이는 동그란 통 두 개. 송다혜는 이제야 본인 페이스를 되찾았다는 듯 빙긋 웃었다.
"으음. 너무 비싸보이는데요?"
"받아주세요. 얼마 전에 크로스보우님 분석 영상으로 조회수도 많이 뽑았구. 이번에 실검 1위 하신 것도 축하드릴 겸."
"그렇다면야 잘 먹겠습니다. 근데 방금 마지막에 뭐라고...."
"실검이요. 실시간 검색어. 모르셨어요? 지금 크로스보우님이 1위에요. 공홈도 다운됐던데."
"...?"
실시간 검색어? 공홈이 다운됐다고?
그 말에 느릿느릿 움직이던 그는 빠르게 핸드폰을 켜 포탈페이지에 접속했다. 그러자 한 눈에 들어오는 검색어 순위.
1. [크로스보우]
2. [올오버 크로스보우]
3. [크로스보우 불가해]
4. [불가해 난이도 최초 클리어 보상]
5. [올 오버 홈페이지]
6. [TK 카운터 발언]
"...세상에."
그리고 그 말이 사실임을 확인한 크로스보우는 살짝 벙찌고 말았다.
'...실검 1위? 내가...?'
그런 건 연예인들이나 하는거 아닌가?
그것도 보통 1위가 아니라 아랫 순위도 전부 차지한 1위다.
실시간 검색어에 등극하는 것은 성공한 스트리머들에게도 어지간해선 일어나지 않는 일. 그 사실까지 생각이 미친 크로스보우는 멍하니 액정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러다 문득, 그는 자기도 모르게 씨익 웃었다.
희열감.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만족과 기쁨이 가득 차올랐던 탓.
"...사진 한 장만 찍어주시면 안될까요? 너무 제 이상...아니, 아니...너무 잘생기셨어요."
그런 그 얼굴을 바라보던 송다혜가 돌연 내뱉었다.
크로스보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이상한 사람인 줄 알았던 오해도 어느 정도 풀린데다가 상대는 팬임을 자처하는 아이튜버. 사진 정도야 어려울 것 없는 일이다.
"어려울 건 없죠."
"그, 그럼 혹시 싸인도...!"
"그럼요."
"호, 혹시 인터뷰도...?"
"음. 그건 좀 얘기를 들어봐야겠는데요?"
예를 들면 페이에 관련된 얘기라던가. 그는 장난스레 손 모양을 만들어보였다.
< 22화-크로스보우 증후군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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