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화-빼앗긴 과거 >
영상 속.
-이거 인증가능?
-이거 리얼이면 그새끼 내핵까지 묻어버릴 수 있다
채팅이 마구 올라오는 모습.
-"음. 인증이요."
남자는 멈춰버린 지하철역에 서 있다. 마치 고민하는 듯한 정적이 흐른다. 그는 자신의 철가면을 톡톡톡 두드리더니 마침내 입을 열었다.
-"어려울 건 없죠."
"오오. 오빠 3인칭 시점으로 보니까 좀 멋있다, 역시 기럭지하면 크보."
"칭찬해도 뭐 안나온다."
"뭐가 나와. 만져주면 나오나?"
"야. 저리 안 가?"
"그래서 이거 어떡할거야."
"으음...."
크로스보우는 침음성을 내뱉었다. 그는 그의 편집자, 신예지와 함께 집 근처 벤치에서 맥주를 홀짝이고 있었다. 이제부터 편집지옥에 들어가야 한다고, 마지막으로 맥주나 한 캔 하자는 요청을 받아 나온 상황이었다.
[이세린(뿅맛사탕)]
[이거 정말인가요? 빠른 답장 부탁드리고 싶어요.]
"진짜긴한데."
그런 와중에 뿅맛사탕에게서 하나의 까톡과 영상주소를 받았던 것.
제목은 [오늘자 크보 충격발언].
트게더(트리키 뷰 전용 커뮤니티)에 올라온 영상 중, 가장 핫한 클립으로 지정되어 있는 영상이었다.
"그냥 공개해버려. 오빠. 판단은 시청자들이 하겠지."
신예지는 캔맥주를 홀짝이며 말했다. 아로마향이 나는 맥주같은 걸 마시는 거치곤 태연한 기색이다.
"글쎄. 진짜로 나 말고도 세이크라는 닉네임을 쓰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르잖아?"
그렇게 말하자 그녀는 무슨 소리냐는 듯 잉? 소리를 내었다.
"누가 봐도 사칭이던데용?"
"그건 맞다만."
크로스보우는 어깨를 으쓱였다.
스트리머 네임 '허이크'.
그가 과거의 자신을 사칭하고 있다는 건 진작에 확인을 마쳤다. 지금 확인하니 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칭을 시도한건지 알 수 없을 정도. 당시 공략글을 올렸던 싸이트가 사라진 것도 아니고 접속해보니 아이디도 살아있다.
크로스보우가 그럴 마음만 있다면, 진실을 밝히는 건 누워서 식은 죽 먹기나 마찬가지인 상황.
"아마 본래 주인은 죽었다고 생각한 게 아닐까?"
그 때 문득 신예지가 말했다. 그녀는 어느새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놓고 과거글들을 확인하고 있었다.
"갑자기 무슨 추리물같은 얘기냐."
"이 세이크라는 사람. 10년 전 8월 23일 이후로 글이 하나도 없어."
"타인 얘기하듯이 말하지마."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심지어 마지막 글이...[건강상의 이유로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이거네. 본문에는 '이러다 죽을 거 같습니다'라고 써있고."
"아. 그거."
크로스보우는 그 말에 비로소 그 당시를 기억해냈다. 그러고보면 그런 글을 썼던 때가 있었지. 그렇게 기억을 떠올리고 있자 돌연 예지가 심각하게 입을 열었다.
"...오빠. 혹시 심하게 아팠던 적 있어?"
"음."
"오빠."
대답을 피하자, 신예지는 눈빛을 굳혔다.
"혹시...지금 집에서 게임만 하는 이유도...."
"으으음...."
"아직도 아픈거야? 그거 마셔도 돼?"
이내 촉촉히 젖어들어가는 예지의 눈가. 그가 들고 있는 맥주를 뺏으려는 걸까. 슬금슬금 다가온다.
"그게 아니라."
더 이상 모른 채하다가는 간만의 맥주를 뺏길 위험이 있다. 아로마맥주랑 바꿔치기 당할지도 모른다. 그건 못 참지.
"이 때 조개구이였나. 뭘 잘못 먹어서 장염걸렸었거든."
"...응?"
"아우. 진짜 수분 쫙 빠져서 죽을 뻔 했다. 그렇게 아파본 게 처음이라 뻘글을 썼나보네."
"그럼...이 뒤로 글을 안 쓴 이유는...?"
"다른 게임이 재밌어져서였나. 그랬을껄."
"...아하."
"우냐?"
그러자 그녀는 눈가를 비비적거리며 말했다.
"아, 아니거든?"
"야! 얘 운다!"
"아. 아니라고!!"
그렇게 어설픈 주먹질을 막아내던 와중이었다.
까톡!
[이세린(뿅맛사탕)]
[저 영상이 정말이라면 제안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평소 이세린과는 뚝 떨어져있는 말투의 메세지.
크로스보우는 곁눈질로 휴대폰을 확인하다가, 얼굴을 굳혔다.
***
"아니. 결국 인증 못하고 방송 끈 거 아니냐고."
-ㅋㅋ쫄리쥬?
-허이크 넌 ㅈ대따 지이이이거어어언
-gee gun!
-이젠 니가 방송 접을 차례다 딱 대
"아니. 세이크 나 맞다니까? 사칭은 누가 사칭이야. 시발."
허이크. 실명 허만수.
그는 성질을 잔뜩 내며 채팅창을 노려봤다.
-네 다음 사칭충~
-ㅋㅋㅋ안걸릴줄 알았지?
-아니 님들 아직 누구말이 맞는건지 모르는거 아님?
-중립기어on
-아ㅋㅋ 네이션스 컵도 나가는 애가 그런 걸로 구라치겠냐고~
-팩트)허이크도 ID세이크가 본인인 거 인증 못하고 있음
허만수는 사시나무 떨 듯 부들부들 떨다가 소리질렀다.
"씨발. 나 맞다고! 본명이 허 씨라서 세이크 앞 글자 바꿔서 허이크로 지은 거라고!"
-쥐은걔럐고~ㅋㅋㅋㅋㅋ
-욕을 왜 함;;
-석궁단들이 분탕치는거 아님? 저는 허이크님 믿어요
-ㅋㅋ변명 그럴듯하게 잘하네
"비번 기억 안나서 몇 번 틀리니까 락 걸렸다고요. 하아. 님들은 그런 근본없는 스트리머 말을 믿어요? 내가 그래도 이 업계 선배 아니냐고."
-선배?ㅋㅋㅋ
-근본ㅋㅋ넌 진짜 안되겠다
-진짜 쥐어패고 싶네ㅋㅋㅋ
빌어먹을.
허만수는 이를 벅벅 갈아댔다. 설마 그 자식이 진짜 세이크 본인은 아니겠지?
"이거 보세요. 님들. 이 영상 좀 보시라고."
그는 그렇게 말하며 필사적으로 잡은 꼬투리를 공개했다.
"여기 크로스보우가 처음 게임한 판. 뒤에서 습격받았을 때. 보여요?"
그것의 정체는 하나의 영상. 아이튜브에 업로드된 영상 속에서 크로스보우가 시청자들에게 말하는 장면이었다.
영상 속의 크로스보우는 후방에서의 습격을 막아내며 말했다.
-"깜짝 놀랐네요. 저 게임 [악마를 울지 않는다]에 나오는 단테죠? 단거리 순간이동도 있네 무슨."
허만수는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이거 봐. 어? 이거보라고. 악마는 울지 않는다. 영문판 제목 [데빌 낫 크라이]의 공략글을 여러번 올리던 사람이 이런 말을 한다고?"
-와 개잘하네
-ㄹㅇㅋㅋ다시봐도 미쳤누
-방금 허이좆이 뭐라하지 않음 근데?
-몰라ㅋㅋ크보진짜 개잘하네
-근데 이건 좀 이상하긴하네
그러나 시청자들은 몇몇을 제외하곤 영상 속에서 크로스보우가 보여주는 퍼포먼스에 집중할 뿐이었다.
"...한 판 붙읍시다. 예? 그냥 1대1로 하자구요. 크로스보우 씨. 오버로드시라면서. 쫄? 쫄?"
-쫄? 이러고 있네 ㅋㅋ
-니 방송 인생 걸린 건 알지?
-수출하러 이꾸요오옷!
-나 그래도 허이크 통쾌해서 자주 보는데...이번에 지거나 사칭인거 밝혀지면 실망일 거 같다
-22
"실망? 그럼 보지말던가. 어?"
마지막까지 자충수를 두는 허만수.
그런 그의 모습을, 화면 밖에서 싸늘하게 바라보는 눈동자가 한 쌍 있었다.
***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그 누구도 인증은 하지 않은 채, 논란은 점점 커져가고 있는 상황.
물론 인터넷 여론은 압도적으로 크로스보우의 편에 있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어딜가든 같은 의견을 가진 인간들만 있지는 않다는걸까.
[솔직히 허이크가 세이크 본인인게 더 믿을만한데]
-크보가 한 말이나 평소 게임하는거 보면 좀 이상하긴해
└허빡이 차단
└병먹금요
[아니 여기 애들은 그러다 크보가 주작한거면 어쩌려고 그러냐]
-걍 중립기어 박아
└ㅋㅋㅋ업보 돌려받는거지 허이크는
└ㄹㅇㅋㅋ그간 한 짓 생각좀
[3년차 방송인 vs 이제 막 올오버로 어그로 끄는 신인]
-누구 말을 믿냐 니들은?
└허이크 말은 일단 안믿음
└크보 방송경력이 훨 더 길어 뉴비새끼야 하꼬로 있던 시절이 길어서 그렇지
가상현실의 등장으로 인해 게임판이나 개인방송판이 더 이상 그들만의 리그가 아닌, 수면 위로 올라온 시대이기에 더욱 더 몰리는 이목.
심지어 주말의 황금같은 시간대다.
-아ㅋㅋ크보 언제오냐고
-사이다 대량 드링킹하려고 트름하고 왓다 끄어어억
-니 엉덩이 더러워
그렇게 트리키 뷰의 시청자들은, 옹기종기 모여 크로스보우의 방송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ID세이크와 본인이 동일인물이라는 것을 인증해주길 기다리고 있던 것.
그런데 갑자기, 상황이 조금 다르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크로스보우 채널 공지사항]
[오늘 방송 시작은 저녁 8시로 미뤄질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돌연 방송을 미루겠다는 공지가 올라왔던 것이다.
[아니; 이거 분위기 이상한데]
-뭐냐?
[왜 피하는거임?]
-아 고구마 뭔데
[크보 올 때까지 숨 참는다 흡!]
-으읍
점점 불 붙는 개인방송판.
마치 이 때를 노렸다는 듯, 관련 기사와 이슈 아이튜버들의 뇌피셜이 마구 업로드되기 시작했다.
[이슈 줌! 두 방송인의 사칭 논란?]
[진실은 어디에]
[얼굴을 까지 않는데에는 이유가 있다?]
[충격! 크로스보우는 사기꾼이었다??]
주의를 끌기 위해서라면 대세의 파격적인 반대가 되라고 했던가.
신나게 물고 뜯는 하이에나들의 모습.
그럼에도 크로스보우는 묵묵부답이었다. 흙탕물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사건의 행방. 언뜻 보기에, 어그로를 끌려던 허이크의 노림수가 들어맞은 듯 보이는 상황이었다.
아마 지금쯤, 역시 그 자식도 진짜 세이크는 아니었다...정도로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죄송해요. 저 때문에."
인터넷을 살피던 뿅맛사탕은 푹 고개를 숙였다. 크로스보우의 자취방이었다.
"그냥 저한테 한 번 빚지신 걸로 하죠."
"네. 그럼 슬슬...."
크로스보우는 어깨를 으쓱였다. 이세린 이 여자. 생각보다 무서운 여자다.
그가 하는 거라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을 얹는 거 뿐.
"얼마나 준비하신거에요?"
"글쎄요...한 2년 정도? 이런 드라마틱한 연출은 생각도 안하고 있었지만요."
"그거야 뭐...아무튼 이제 그럼 어벤져스 어셈블인가요?"
"그거 좋네요."
피식 웃는 이세린의 모습.
그는 마주 웃어보이곤 캡슐로 들어갔다.
[크로스보우님의 방송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각. 트리키 뷰의 골수 시청자들의 핸드폰이 연달아 울리기 시작했다.
"...뭐야?"
[□□□님의 방송이 시작되었습니다!]
[□□□□님의 영상이 업로드되었습니다!]
[□□님의 방송이 시작되었습니다!]
[□□□□□님의 영상이 업로드되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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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방송이 시작되었습니다!]
트리키 뷰의 실시간 방송을 순식간에 매우는 여러 방송들. 그리고 아이튜브에 업로드되는 영상들.
[내가 방송을 그만 둔 이유]
[무단으로 방송을 잠적해 죄송합니다.]
[보고싶었어요 제가 왜 사라졌는지 알려드립니다....]
[오랜만에 한 번 켜봤습니다]
.
.
.
[인간쓰레기 허이크의 만행을 밝힙니다]
잊혀졌던 방송인들의 대거 복귀.
그 모습을 캡슐 속에서나마 바라보던 크로스보우는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트리키 뷰, 아이튜브 시청자 여러분. 크로스보우입니다."
-뭐야!
-???
-뭐임 벌써?
-뭔 일임 뭔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
-타 방송인들 갑자기 뭐야
크로스보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오늘 할 게임은...1대1 대전이구요."
그저 공략싸이트 ,'인맨'에 접속하며 말을 이을 뿐.
-뭐야
-뭐야 크보가 진짜 세이크야?
-지금 나만 감이 안잡힘?
-이걸 이렇게 태연하게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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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 : SAKE 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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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게스트는...아마도 허이크님이 되실 거 같네요."
딸칵!
[인맨에 돌아오신 걸 환영합니다! 세이크님!]
-미친
-진짜다
-무냐고!!!
크로스보우는 빙긋 웃었다.
"송별 컨텐츠입니다."
< 25화-빼앗긴 과거 > 끝
ⓒ Read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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