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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 스트리머가 너무 강함-26화 (26/143)

< 27화-빼앗긴 과거 >

허만수.

이세린은 감았던 눈을 뜨며 웅얼거렸다.

불꺼진 크로스보우의 방 안. 뭔가를 비추는 것은 오직 그가 들어가있는 캡슐의 불빛 뿐.

그리고 그녀의 스마트폰에서 나오는 작은 광체뿐이었다.

"...길었어."

자그마치 2년. 평범한 사람의 신분이었기에 더더욱 오래 걸린 시간들.

그녀는 지난 2년간 해왔던 고생들을 떠올리면서도─정적을 지켰다. 겉으로는 그저 멍하게, 미동조차 없이 크로스보우의 방송을 보고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고마운 사람.'

세린은 문득, 캡슐 속의 남자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어제 까톡 이후, 그녀 쪽에서 갑작스럽게 부탁한 첫 만남.

분명 곤란했을 터다. 애초에─ 그로써는 그녀의 연락이든 타 스트리머의 어그로든 무시하면 끝인 일에 불과했을테니까.

게다가 의아하기도 했을 게 분명하다. 그도 그럴게, 방송에서의 뿅맛사탕과 현실의 이세린은 너무나도 다르게 생겼으니까.

그러나 크로스보우는 그 무엇에 관해서도 일언반구 하지 않았다. 그냥, 조금 놀란 듯한 표정이 전부였다.

'실제로 봐도 미인이시네요.'

마치 보상을 받는 것만 같은 한 마디.

그 말에 왈칵 울음을 터트려버릴 뻔한 걸 떠올리며 그녀는 웃었다.

"...."

그 웃음에, 이세린은 자기도 모르게 제 얼굴을 만진다.

트리키 뷰 최단신이란 소릴 듣는 뿅맛사탕과는 다르게 커다란 키.

서양인이냐는 소리까지 들었던 높은 코. 이세린은 피식 웃었다. 설마하니 코를 낮추려고 올오버에 돈을 갖다바치는 사람이 또 있을까.

"...이게 마지막이야."

그래도 2년간.

그저 달리기만 했던 나날은 오늘로써 마감된다.

2년 전, 허만수에게 협박과 폭행을 당하곤 심각한 마음의 병을 얻어버린 그녀의 동생.

진짜 뿅맛사탕, 이하린을 위해 달려온 그 모든 나날이 오늘 마침내, 그 막을 내린다.

허만수가 퇴출되고 나면 동생은 차츰 회복될 것이다.

언제나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그녀의 동생은, 이세린이 하는 '뿅맛사탕'의 방송을 시청할 때만 말갛게 정신을 차린다.

...그러니 나는, 다시 그녀가 뿅맛사탕으로 살아갈 수 있게끔 퇴장해주도록 하자.

애초에 웃기는 일이었다.

개인 방송이라니. 본래 레이싱 걸을 직업으로 삼았던 이세린과는 어울리지도 않는 일이다. 찐따미가 풀풀 풍기는 시청자들과 웃고 떠들며 논다니. 말도 안되는 일이지.

게임같은 걸 할 바에는 밖에 나가서 술이라도 한 잔 더 마시는게 차라리 낫다.

그래.

그게 차라리 낫다.

"...어?"

그렇게 생각하던 이세린은 문득, 자신의 볼에서 뭔가가 흘러내린다고 느꼈다.

"...어라?"

그녀는 손등으로 볼을 훔치고는 한참동안 그 물기를 들여다봤다.

"왜, 왜."

나 왜 울지?

***

"...."

크로스보우는 결정했다.

이 울분을 모두 허이큰지 마이큰지 둘리마이콜인지 하는 놈한테 모두 풀겠다고.

['크보야이거너맞지?'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영상 클립]

-"보람찬 하루 일을 끝마치고서~"

-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

-상대편 개불쌍해ㅠㅠ

-ㅋㅋㅋㅋ

"아. 이 사람 저 아니에요."

-???

-ㅋㅋㅋ아ㅋㅋ뭔소리야ㅋㅋ

"사실 세이크도 저 아니에요. 세이크는 교통사고 났고 이 사람은 군대갔어요."

-ㅋㅋㅋㅋ아 컨셉ㅋㅋ

-악마의 재능ㄷㄷ

-ㅋㅋㅋ크보도 천년정지 맛 한 번 볼래? 몸에 조와요오홍홍

-ㅋㅋㅋ그 사람은 지금 뭐함

-지금은 밥 먹을껄?

-?

철 지난 드립의 향연! 크로스보우는 시청자들과 주거니받거니 얘기를 하다가 말했다.

"그나저나 왜 안오지? 시간 좀 많이 지나지 않았나요?"

-ㄹㅇㅋㅋ왜 안옴

-아 빨리 사이다 달라고!!! 참교육 시켜달라고!!

그런데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하였던가.

바로 그 때였다.

[SYSTEM]'허이크TV'님이 대전에 참가하셨습니다!

-ㅋㅋㅋ저새끼도 양반은 못 되겠네

-양반은 커녕 범죄자새끼임ㅋㅋㅋ지금 다른 방송들에서 펑펑 터지던데

-속보)허이크 모 남성 스트리머에게 음주운전 강요...막말은 물론 폭력까지....

-예전에 사고내고 방송 접은 앤가보네ㄷㄷ 그 때 허이크 지는 말렸다고 하지 않음?

-속보)허이크 모 여성 스트리머에게 상습적 성희롱...넷상 익명으로 악의적 허위 사실 유포한 일까지 드러나....

-속보)허이크에게 거금 빌려준 스트리머만 10명...돈 달라고 하자 폭력 및 살해협박....

-속보)빌린 돈으로 커뮤니티 댓글알바 고용한 것으로 알려져....당시 경쟁 스트리머 뷰봇논란 일으킨 주범....

"...이봐요. 크로스보우 씨."

"...."

크로스보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채팅창을 확인하느라 바빴기 때문이었다. 시청자들이 열심히 퍼다나르고는 있지만 그간 저질러왔던 악행이 한 두 개가 아닌 모양.

"이봐! 사람을 불러놨으면 말을 해야할 거 아니야!"

"부른 건 그 쪽이 먼저 아닙니까?"

그는 스패츠나츠 헬멧의 바이저를 내린 채 말했다.

"왜? 나도 전에 뷰봇으로 보낸 두 명처럼 보내려는데 잘 안돼?"

"뭐, 뭐?!...그건 어디서...! 아니. 됐어. 당신 똑바로 말해. 이거 다 당신이 사주한거야?"

허만수는 삿대질과 함께 침을 튀겨가며 말했다.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 대답할 가치도 없는 질문.

"...."

"야. 야!! 말을 하라고!! 씨발. 니가 한거지? 이거 다 모함이잖아. 어? 모함이라고 말해!!"

"무슨 말을 하는건지 잘 모르겠는데."

크로스보우는 그 쪽을 보지 않은 채 손가락을 놀렸다.

"당신이 세이크 본인이라면서. 그 쪽이랑 할 말은 그거 밖에 없지 않았나?"

"이, 이익...! 이 자식이...!"

"1대1로 붙자더니 아주 입만 살았군. 아니면 남의 이름값에 기생하는 놈이라 입 밖에 놀릴 줄 모르는건가?"

평소보다 더 음험하게 가라앉은 목소리.

그 순간, 크로스보우의 채팅창은 뭔가를 감지한듯 분주해진다.

-설마 '그'가 오나?

-하이드on

-다들 볼륨 줄여!!!

허만수의 얼굴이 터질듯이 부풀어올랐다.

"하라면 못할 줄 알고?! 사칭범은 네 놈이잖아! 아니, 그딴 건 이제 아무래도 좋으니까 당장 다른 놈들 하는 짓 멈추라고!!!"

크로스보우는 웃었다.

"픽이나 해라."

[백팀]

[똥의호흡]

[악마는 울지 않는다-대검 베이스 캐릭터]

"뒤지기 싫으면."

[현재 시청자 수 : 85,335명]

***

마스터 계급.

그리고 최고위 계급인 오버로드 계급.

언뜻 보기에는 두 단계밖에 차이나지 않는 계급간 격차. 그렇다면 과연 이들의 수준 차는 얼마나 될까?

세간의 인식은, 그래도 어느정도 비등한 싸움이지 않겠냐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야 그럴만도 했다. 겉보기에는 두 단계밖에 차이나지 않는 계급. 게다가 마스터 계급 역시 정말 특출난 사람들만이 도달하는 계급이니까.

"그거 그렇게 하는거 아닌데."

그러나 오늘, 아마 사람들은 그 인식을 바꾸게 될 게 분명했다. 마스터 계급과 오버로드 계급의 수준 차이.

"젠장. 쥐새끼처럼 피하기나 하고...!"

"이딴 수준으로 나인 척을 했다고?"

정답은 바로 '하늘과 땅만큼'이다.

"돌진 찌르기(스팅거)에서 대놓고 난무 찌르기(밀리언스탭)으로 이행하는데 그딴 걸 맞으라고 쓰는거야?"

크로스보우는 어처구니 없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캐릭터 상 스패츠나츠 헬멧을 쓸 수 없는 상황. 커스텀 아이템이 그의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이익...!"

"내 공략만 잘 읽었으면 이런 짓은 안할텐데...."

"이, 이 자식이...."

"그렇게하면 너무 뻔하잖아. ."

-ㄷㄷㄷ저게 뻔한거였음?

-난ㅋㅋ크보 어렵겠다 생각했는데

-아니 저 기술 초당 5번 찌르기일텐데 지금 지근거리에서 다 피해놓고

-허이크가 마스터긴 마스터구나 싶었는데....

-수준 뭔데....?

경직된 시청자들의 채팅. 크로스보우는 검을 피하는 와중에도 힐끗 그 곳을 확인하곤 말했다.

"알려줄테니까 잘 보라고. 10년만에 다시 알려주는 콤보 공략이니까."

"헛소리!!"

"헛소리는 무슨."

퍼억!!

"컥?"

허이크의 턱에 정확히 적중하는 대검. 아무런 전조도 없는 공격이었다. 크로스보우는 [똥의호흡]으로 알려진 그 영상처럼 외쳤다.

"사장님. 나이스샷~!"

-ㅋㅋㅋㅋㅋㅋ

ㄴ-ㅋㅋㅋ아ㅋㅋㅋ

-방금 어떻게 한거임?ㄷㄷ 저 기술 시전시간 있는데

-지금 이 영상을 보고 10년 묵은 똥이 나오는 중입니다

"캔슬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리고 똥이요? 그거 좋네요. "

그는 다시 한 번 채팅창을 힐끗 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장난치듯 주문을 외었다.

"똥의 호흡...제 1형. 똥 뿌리기!"

"그, 그만둬!"

-ㅋㅋㅋ*발ㅋㅋ

-네다씹!

-현실에선 마스터 장인이었던 내가 크보 앞에선 샌드백?

말은 그렇게 했지만 방금 기술의 진짜 이름은 차지공격(드라이브). 정타로 들어갔다.

그 다음은 방금 허만수도 사용한 돌진 찌르기였다. 크로스보우의 대검이 영 좋지 않은 곳을 쑤욱 관통한다.

"커, 커헉...!"

재빠르게 이행하는 난무 찌르기. 대검을 마구 찌르는 기술. 마치 검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허이크의 모습이 마치 더럽다는 양, 크보는 검을 마구 털었다.

마치 크고 굵은 무언가에 당하는 듯한 모습.

"끄아아아악!!!"

"...에이씨. 드럽게."

털썩.

[SYSTEM]퍼펙트 승리!

[백팀 똥의호흡 승리!]

[백팀]: [청팀] = 1 : 0

말 그대로 가지고 노는 수준. 그야말로 압도적인 실력차.

더 이상의 추가적인 인증이 없더라도, 둘 중 누가 공략글을 올리던 '세이크'인지는 명확해진 상황이었다.

그는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허만수를 바라보다가, 어처구니 없다는 눈으로 말했다.

"이건 뭐 애들 장난도 아니고...."

그래도 꽤 긴장하고 왔는데...너무 약해서 힘이 빠질 정도다. 뷔페이랍시고 뚜껑을 열었더니 아이들이 하는 과자뷔페라도 보는 듯한 기분.

"...어휴."

-수준차 무냐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크로스보우!크로스보우!크로스보우!

-ㄹㅇㅋㅋ아 개꼬시다

-ㅋㅋㅋㅋㅋ아 소화 잘되누ㅋㅋㅋ끄억

-우리 단이 원수 갚아주셔서 감사합니다ㅠㅠ

크로스보우는 채팅창을 보며 잠시 생각하다가, 한 쪽 손을 들었다.

"백 팀 기권."

[SYSTEM]기권하셨습니다.

[SYSTEM]청 팀 승리!

-아ㅋㅋ정신패배까지ㅋㅋㅋㅋ

-ㅋㅋㅋ오늘 꿀잠예약이다 다 뒤졌다

-근데...방금 그 콤보 원래 안 들어가는 기술인데...?

-뭐래ㅋㅋ그럼 방금 눈 앞에서 벌어진 현상은 뭐임

-아니 나도 같은 캐릭터 쓰는 마스턴데...지금 크보가 올오버 최초로 처음 보는 콤보 보여줬음...;;

-????

응?

"그거 국민콤보였는데요?"

그렇게 말하며 크로스보우는, [1대1대전]방에서 나가기를 눌렀다.

정적.

"흐윽...씨발. 빌어먹으으을...."

허만수에게는 끔찍한 침묵이었다. 흑백으로 물든 세상 속, 아무것도 없이 대검에 찔린 항문만이 남아있는 듯한 감각.

-ㅋㅋㅋㅋㅋㅋㅋㅋㅋ앙기모찌

-ㅋㅋㅋㅋㅋㅋ아ㅋㅋ유쾌상쾌통쾌 she발뇨나!

-크보한테 똥고 지건 맞았네ㅋㅋㅋ

-gee gun!!

-아직단이몫이남았어아직단이몫이남았어아직단이몫이남았어아직단이몫이남았어

-ㄹㅇ개추하다ㅋㅋㅋ뭐? 내가 세이크? 야이 사기꾼 *끼야ㅋㅋㅋㅋ

-형님 진짜 나가뒤지셨군요

-빨리 스샷찍어!ㅋㅋㅋㅋㅋ

-이거 그거 아니냐? 크릴잉이 죽었어!

-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시밬ㅋㅋㅋ

수없이 많은 침묵의 시선들.

그 속에서 허만수는 그저 움츠러들었다.

이게 지금까지 남의 험담과 유언비어를 퍼뜨려 이득을 취한 대가라도 된다는걸까.

그는 마치 수많은 눈들이 자신을 보는 것 같은 두려움에, 팔로 머리를 가렸다.

[이세린 발신]

[이제 좀 알겠어?]

< 27화-빼앗긴 과거 > 끝

ⓒ Read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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