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 스트리머가 너무 강함-27화 (27/143)

< 28화-사당역 >

그 날.

모든 방송을 마치고 새벽.

"...응?"

캡슐 밖으로 나온 크로스보우가 발견한 것은 침대에 기대 잠들어있는 이세린의 모습이었다.

"기다린건가?"

이 시간쯤이면 이미 돌아갔을거라 생각했는데.

그는 멍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예상 외의 상황에 잠시 당황한 탓이었다.

일단은 깨우는 편이 낫나? 크로스보우는 조심스레 그녀를 잡고 흔들었다.

"세린 씨."

흔들흔들.

"...."

미동도 없군.

세린은 바닥에 앉아 침대에 팔을 베게 삼아 엎드려있었다. 방송을 보면서 상황을 확인하다가 긴장이 풀려 잠들어버린걸까. 아마 그럴 터였다. 기다리고 있던 거라면 연락 한 통 남기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럼 어쩐다. 크로스보우는 고민했다. 곤란한데. 집에 여성을 이렇게 오래 들이는 건 신예지를 제외하곤 처음이다.

"불편하게도 자네."

그냥 놔두기엔 내일, 무릎이나 허리 둘 중 하나가 나갈게 확실해보이는 자세. 그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불이라도 덮어주기만 하기에는...침대 발치에 옆드려 있는 여성을 놔두고 자야하는 상황. 그의 낯이 그리 두껍진 않았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

그는 세린의 무릎 뒤로 손을 넣어 들어올렸다. 침대에 눕히려는 셈.

"...오늘은 캡슐에서 자야겠다."

저가형 캡슐이라 조금은 불편하겠지만 어쩔 수 없지. 안면이 있다고는 해도 처음 본 사람과 동침을 할 수는 없는 노릇.

그 때였다.

"...으응."

움찔!

"...."

크로스보우는 세린이 낸 소리에 잠시 동작을 멈췄다.

정적.

본의 아니게 그녀를 안아들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지금 정신을 차리면 서로 어색해지기만 할 터. 심지어 안아드는 과정에서 옷이 말려올라가 있었다.

갑자기 오늘 방송 중 [똥의호흡]의 정체를 들키고나서 받았던 후원 메세지가 떠오르는 건 어째서일까.

['크보쨩핥짝'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변태?

크로스보우는 그저 허허 웃을 수 밖에 없었다. 누가 누구한테 하는 소린지는 모르겠지만...당장에 할 말이 없었던 탓.

아무튼, 그렇게 세린을 마저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는 것까지 끝마친 상황.

"...응."

잠꼬대가 좀 있는 편이군. 그는 바람을 쐬러 나가려다가 문득, 발걸음을 멈췄다.

"...울었나보네."

침대자락에 눈물 자국이 있다. 정확히 세린의 얼굴이 닿아있던 부분이다.

"...."

그는 나직히 한숨을 내쉬곤 물티슈를 가져와 뽑았다. 혹시라도 깨서 보면 민망해할테니 자국을 지워주려는 셈.

요즘따라 한숨이 잦군.

그것까지 마치고는 진짜로 현관문을 나섰다.

덜컹─.

띠리링.

그리고 현관문이 잠기는 소리가 나자마자

"...."

눕혀져 있던 이세린은 반짝, 눈을 떴다.

그녀는 제 눈물 자국이 있던 곳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확 누워 이불을 머리 끝까지 올려썼다.

밖으로 삐져나온 귀가 조금 빨갛다.

***

'허이크 사건'.

그 날, 거의 모든 커뮤니티에서 언급되고 마침내 다음날 기사까지 나버린 그 사건.

대한민국에선 드물게도, 상황이 시원스레 흘러가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가히 폭도라고 할 수준으로 불타고 있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모 영화의 히어로들의 집결을 보는 것 같았던 극적인 연출이 그 효과를 본 걸까.

가상현실이 개발된 시대임에도 불구하고─관련 정부부처의 웹사이트가 지연될 수준이었으니 그들의 화력이 얼마나 강했는지는 짐작할만했다.

특히, 사랑하던 스트리머의 망가진 모습을 본 팬들의 분노는 기사에도 언급될 정도.

그 정도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사건.

허이크 사건으로 인해 인터넷 방송계 전체가 격변하고 있었다.

심지어 며칠 뒤, 트리키 뷰의 운영진 중 한 명이 그의 만행을 알면서도 묵인하고 있었다는 것이 밝혀지며 열기는 식을 줄을 모르고 달아올랐다 .

-와ㅋㅋ*발 진짜 비리 미쳤네

-ㅋㅋㅋ지금까지 묵인하고 있었던거임?

-*발ㅋㅋ이게나라다

어쨌든

결론만 말하자면, 결국 허만수는 입건되었다.

방조하거나 그와 친분이 있던 스트리머들도 대부분 업계퇴출의 수순을 밟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날 하루, 잠깐 복귀했던 과거의 방송인들은 각자 잔류를 택하거나 다시 일반인으로 돌아갔다. 플랫폼을 옮긴 사람도 존재했다.

가지말라고 붙잡는 시청자들과 시원섭섭한 듯 떠나는 스트리머들. 아쉬운 광경이었다.

그런데 그러는 와중, 그 방송인들이 입을 모아 언급한 이름이 있었으니.

바로 뿅맛사탕.

그녀가 없었다면 방송을 한 번이라도 킬 생각따윈 하지도 않았을거라는 이야기가 다수였다.

-갑분뿅??

-우리 이모가 그랬다고??

-뿅크나이트ㄷㄷ

-암모나이트면 가능

-아ㅋㅋ뿅씨 헛소리 말고 밥이나 먹어

일이 있고 꽤 오랜 기간 휴방에 들어가있는 뿅맛사탕.

모두가 그녀의 방송을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이 모든 건 조금 시간이 흐른 후의 이야기에 불과했다.

***

당장 사건의 이틀 후.

['크로스보우'님의 방송이 시작되었습니다!]

-크하

-석하

크로스보우의 방송만큼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양, 완전히 평소대로 돌아온 상태였다.

"오늘 방송은...지난 번에 하다 말았죠? '균열방어전 사당역맵'입니다."

-아ㅋㅋSS로 만족하라고!

-두 개인 것도 처음 봤는데...세 개는 안들어가...

-[제재된 채팅입니다.]

-절 대 균 방 전 해

-ㅋㅋㅋㅋㅋ아 크보니티 포스님 1대1은 안하시나요?쿠쿠루삥뽕

-ㅋㅋㅋ똥의호흡을 왜 크보한테 물어봄ㅋㅋ

-짬탐이 합방각 보던데

-그게 누구임?

-시집을 등진 사람이요

-???

['크보쨩햝쨕'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오팬무?

방송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시청자의 후원.

"글쎄요."

그는 스패츠나츠 헬멧을 쓴 채로 씨익 웃었다.

-오빠나죽어!

-덜렁

-아..잘생겼다ㅋㅋ큐ㅠㅠ

-간신 쳐내!!

-ㅋㅋㅋ얼굴도 안보이는데 어케 아누

-용의 눈으로

크로스보우가 서 있는 곳은 2호선 사당역.

돌연 나타난 이상한 차림의 남자에게 시민들이 시선을 던진다.

띠리리리───.

「지금 낙성대, 낙성대가는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SYSTEM]임무 : 색출

[SYSTEM]'도플갱어 기생체'들은 인간의 심리를 잘 알고 있는 생명체입니다. 이들은 지하철에 몰린 인파에 달려들어 인간을 숙주 삼아 인간인 척 하려하고 있습니다. 모두 색출해 섬멸하십시오. 저들은 인류에게 끔찍한 해악을 끼칠 괴물입니다.

[SYSTEM]살해한 괴물 : 알 수 없음

-균방전 연출 무냐고!!

-가즈아ㅏㅏ

-다른 팀원부터 찾아!!!

-똥물의 신 크보가 간다!

-간다간다뿅간다!

-뿅...?간다...?ㅗㅜㅑ;

"사당역맵의 기본적인 임무는 색출섬멸입니다."

크로스보우는 시청자들의 채팅을 확인하며 말했다.

"이 사실만 잘 생각해보면 지난 번 회차 때 어째서 SSS가 아닌 SS가 떴는지 알 수 있어요."

-와! 그렇구낭~ 고걸몰랐네용ㅎㅎ^^ㅣ발

-난 알앗는데 왜 D받음??

-???: 동일인식 동일랭크!

-[제재된 채팅입니다.]

-아ㅋㅋ근데 사당역 사람 개많은거 보소

-출근 트라우마on

"그 때는 단순히 시민들을 보호하고 보이는 '도플갱어 기생체'를 모두 죽인 게 전부였죠."

크로스보우는 총을 꺼내들어 살펴보았다.

얼마되지 않았지만, 체감상 굉장히 오랜만에 손에 쥐는 듯한 감각.

"당시 문제는 '이미 기생해버린' 도플갱어였습니다. 숙주의 기억을 읽어 사람인 척 행세하는 괴물."

-ㄹㅇㅋㅋ총 들이밀면 사람인 척 놀라던데

-여우같은 마누라가 있어요!

-하지마?

-근데 그건 어쩔 수 없지 않나 임무창에도 살해한 괴물 숫자 안나옴ㅋㅋ

-죽일 때도 내가 사람 죽였는지 괴물 죽였는지 안알랴줌ㅠ나중에 일반인 죽였다고 뜨면 자괴감 ㅆㅅㅌㅊ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나온 채팅과 같은 이유로, 사당역맵은 균방전 중에서도 가장 인기없는 맵.

"그래도 이미 기생한 도플갱어들도...어느정도 자연스럽게 사람인 척 행세하려거든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걸 어케 알음?

-이거 ㄹㅇ이면 엄청난건데; 관찰력 무야

-아ㅋㅋ크보쉑 또 한 판하고 기믹 알아챘네

-ㅋㅋㅋ한 눈에 핵인지 아닌지 알아보던 그 시절 크보

-이거 셜록 다음 시즌 맞죠?

"제 감에는 그 간격이 대략 1분 남짓하는 시간."

크로스보우는 그렇게 확언하곤, 주변을 둘러보았다.

'있군.'

그가 바라본 것은 자판기.

음료수 자판기가 아닌, 여성용품이나 간단한 간식거리를 파는 자판기였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 그는 성큼성큼 다가가 냅다 주먹을 내질렀다.

쨍그랑!!

"꺄악!"

"뭐, 뭐야?"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주목도가 확 올라가는 것은 당연한 일. 그를 중심으로 인파의 원이 생긴다.

"왜 저래?"

"취했나봐."

"경찰불러야하는거 아니야?"

-ㅋㅋㅋㅋ

-테러범이냐고ㅋㅋ

-이잉~앗쌀라말라이꿈~

-상남자on

"아직 사람인 척 행세하는데에 어색한 그 1분동안 수 십 마리의 도플갱어를 한 번에 잡아내야합니다."

채팅창과 게임 속 사람들의 반응. 둘 모두를 아랑곳하지 않고 그렇게 말한 그는 방송에 노출되지 않는 앵글로 돌아선다.

그리곤 스패츠나츠 헬멧을 벗었다. 가려져있던 시야가, 깔끔하게 드러난 그의 눈동자에 비친다.

"...잘 생겼네."

"헐. 대박..."

"무슨 사정이 있나봐...."

-뭐야뭐야 우리도 보여줘!!

-길고 길었다...드디어 얼공인가...

-응아니야

-NPC가 공인한 미남ㄷㄷ

-여청자들이 잘생겼다할 때 간신 쳐내라던 트붕이들 다 어디갔누ㅋㅋㅋㅋ

-쉬,,,벌,,

그리곤 자판기에서 스타킹을 꺼내 개봉했다

-스타킹 200데니아짜리넹ㅎㅎ

-ㅋㅋ크보방 여청자 점점 느누

-ㅋㅋ?...ㅎㅎ...ㅈㅅ

-??*발ㅋㅋㅋㅋㅋㅋ

"1분. 사람들을 통제하면서도 단번에 뚜렷한 감정을 일으키는 방법."

그리고 대충 그 끝을 찢어 눈코입을 만든 그는, 스타킹을 뒤집어썼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팡머on

-광대모드ㅋㅋㅋㅋㅋ

-아ㅋㅋ진짜 테러냐고ㅋㅋㅋ

그리곤 뒤돌아섰다.

완벽한 테러범의 모습.

[SYSTEM]게임이 곧 시작됩니다. 5...4....3....

"바로 테러범입니다."

-ㅋㅋㅋㅋㅋ이거 방송가능하냐?

-ㅋㅋㅋ총도 하필 AK47 골랐네ㅋㅋㅋ

-파키스탄식 해결법ㅋㅋㅋㅋ

그는 총구를 하늘로 향했다.

타다다당──!!!

"그러니까 다 엎드려!!!! 뒤지기 싫으면!!!"

"꺄아아악──!"

"으아아악─!!"

[SYSTEM]게임이 곧 시작됩니다. 5...4...3...2...1.

[SYSTEM]색출, 섬멸하십시오.

통로의 끝에서부터 검은색 부정형의 괴물들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 28화-사당역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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