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화-조금은 이상한 인맥 >
"와. 진짜 미쳤네."
프로게이머, 카운터는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중얼거렸다. 그는 자신이 과자를 먹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걸 어떻게 하는거지?"
그가 보고 있는 것은 스트리머 크로스보우의 방송.
매 방송마다 자신이 쓴 레전드를 자신이 갱신하는 방송. 어쩌면 지금, 새로운 전설의 탄생을 지켜보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
"이게 올오버 시작한지 한 달도 안된 사람이라고?"
웃기지도 않는 소리다. 크로스보우가 없었다면, 헛소리하지 말라는 핀잔이나 듣고 올만한 이야기.
그런데 그런 말도 안되는 짓을 현실에서 보여주는 사람이 있다니.
이게 진정한 재능인가? 다른 게임에서 썩을대로 썩은 랭커라고 하더니, 올오버도 그냥 그 연속일 뿐인걸까?
그는 영상을 돌려 슬로우모션으로 보며 생각했다. 아는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겉으로는 평범해보이는 모습이지만 카운터는 나름 잘 나가는 프로게이머다.
올오버의 프로구단, 팀 TK. 한국에서 강팀으로 손꼽히는 팀 중 하나로 불리는 TK의 주전 선수 중 한 명인 것이다.
그런 그가 보기에도 이번 [사당역] 방송은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다 계산하고 하는 거 같은데...입으로 게임해도 이렇게는 못하겠다...."
카운터는 크로스보우가 기생체를 정확히 맞춰 죽이는 모습을 몇 번이고 다시 돌려보며 웅얼거렸다.
알 사람들은 알았겠지만, 본래 4단계 기생체는 더원그 캐릭터따위의 총탄 한 방에 죽는 몬스터가 아니다.
몸 속에 들어있는 작은 '핵'을 정확히 노려야만 가능한 일일텐데, 심지어 한 방에 죽이지 못하면 아무런 데미지도 입지 않고 도망가버리는 몬스터로 악명이 높았다.
그런 이유 때문에 분명, 4단계 기생체를 상대로 하는 [사당역]맵은, 꿈도 희망도 없는 균방전다운 난이도로 유명했던 곳일텐데.
"어케 했누."
아무리봐도 크로스보우 이 남자는 맵에 나타난 모든 기생체들의 속도와 움직이는 경로를 전부 느끼고 있는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럴 수 없다.
카운터는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기 시작했다. 만약 내가 저 자리에 있다면?
"4단계 기생체들을 혼자 틀어막는 부분에서부터 이미 아웃."
그렇다면 한국 최고의 프로게이머들 중 한 명으로 유명한 프로게이머, '블래드'라면 어떨까.
"...."
...크로스보우와 블래드, 두 명의 전투방식이 너무나도 달라 확언할 수 없다.
블래드는 '변수를 차단'하는 스타일.
그에 반해 크로스보우는 사방에 흩어진 '변수를 자기 입맛대로 방치하듯 통제하다가, 상황에 맞춰 골라 쓰는' 스타일이다.
피지컬 수준의 정도는 비슷할지도 모르겠는데....
카운터가 그렇게 골똘히 생각하고 있던 때.
"미친. 미친거아냐? 와. 뭔데?"
그는 아예 방송에 들어갈 듯 두 눈을 크게 떴다.
"이런 발상을 한다고? 진짜 정체가 뭔데? 진짜 정체가 뭐냐고."
화면 속에는, 쏟아지는 물을 맞으며 웃고 있는 크로스보우가 비치고 있었다.
"...."
그리고 한참동안 전투.
엄청난 퍼포먼스에 환호하는 채팅들.
그러나 채팅과 후원이 너무 많았던 탓일까. 클리어와 동시에 방송이 뻥 터져버렸다.
"아이씨. 타이밍하곤."
카운터는 들고 보던 스마트폰을 내던져버리곤, 캡슐로 달려갔다.
방송이 터지던 말던 랭킹에는 [사당역] 클리어랭크가 뜰 터. 그걸 확인하러 간 것이었다.
"야야. 왜 이렇게 뛰어다녀. 뭔 지진 난 줄 알겠네. 뭔 일인데."
헐레벌떡 뛰어온 캡슐. 다른 프로게이머 팀원이 그런 그의 모습에 말했다.
"방송보다 지려서 뛰어왔지. 아. 진짜."
"또 그 크본지 우최똥인지 하는 사람 보냐?"
"아니. 두인이 형. 진짜 이 사람 미쳤다니까? 오늘 방송이 진짜 레전드라고."
두인이 형이라 불린 팀원은 어깨를 으쓱했다.
"저번에 보니까 무슨 1대1 마딱이 쥐패고 놀던데. 그냥 양학러 아님?"
"아. 형 좀 닥쳐봐."
머쓱해진 팀원이 머리를 긁적였지만 거기에 신경 쓸 시간이 없었다.
[균열방어전 한국 랭킹 100]
[사당역]
1. 크로스보우-SSS(전세계 1위)
2. TK 블래드-SS
2. SP 쿠마-SS
2. 세계최강아이언-SS
2. RNZ 더리퍼-SS
.
.
.
"SSS!!!"
랭킹을 확인한 카운터는 소리를 빽 질렀다.
"아. 깜짝이야. 귀 떨어지겠네. 에스는 이자식아. 야스야스야스!"
투덜대는 소리에 그는 자신의 캡슐과 연결된 컴퓨터를 가리켰다.
"아니. 형. 두인이형 이거 봐봐. 미쳤다니까?"
"아. 예예. 어련하실까. 어디 한 철 실력 좋은 사람이 한 둘이었냐."
하여간에 프로게이머놈들. 자존심만 쎄가지고 누굴 인정할 줄 모른다. 떠오르는 스트리머, 크로스보우를 저렇게 생각하는 프로게이머가 한 둘이 아니다.
"...."
"야. 야야. 삐졌냐? 니가 왜 삐져."
네이션스 컵에서 참교육 한 번 당해보라지. 카운터는 그렇게 생각하며 캡슐로 기어들어갔다.
[사당역]맵을 시도해보려는 생각이었다.
***
그 시각 커뮤니티.
이제 크로스보우가 이뤄나가는 행보에 차츰 익숙해져가는 탓일까.
게시판은 그저 놀라는 걸 넘어 그걸 즐기는 수준에 이르렀다. 흔한 말로 뽕이 차오르는 듯한 게시글 들이 다수.
[갓로스보우 같은 말좀 하지마라ㅡㅡ]
[빛 이미지]
-이제부터 저를 '크'라고 불러주세요
└아ㅋㅋㅋㅋ현실빵긋
└크보니티 포스ㄷㄷ
[허이크 이젠 약물복용 혐의까지?]
-존나 '약해'
└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아ㅋㅋㄹㅇㅋㅋ
[???:저...실례합니다...허이크입니다...]
[쓰레기더미 짤방]
-왔구나!!!
└ㅇㄱㄹㅇㅋㅋ
└쓰레기한테 사과해ㅡㅡ
[방금 또 사당역 레전드 갱신한 크로스보우]
[영상 클립]
└레전드;
└제발국대해줘제발국대해줘
└눈이 부셔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 이번 역은 낙....]
[조커 짤방]
[권총을 겨누고 있는 크로스보우 짤방]
-낙낙! 후스데얼?
└아ㅋㅋ복면똥왕ㄷㄷ
[흑인이 총을 쏘면?]
-혹시 깜빵을 상상하셨나요? 당신의 그런 인종차별주의적인 생각이 세상을 병들게 합니다. 잘 알아두세요.
[스타킹을 뒤집어쓰는 크로스보우 짤방]
정답은 크로스보우입니다.
└ㅋㅋㅋㅋ미친새끼ㅋㅋㅋ
└[차단된 게시글입니다.]
"이 정도면 이제 빼도박도 못하는 대기업이네."
크로스보우는 피식대다가 창을 종료시켰다.
조금 더 보고 싶었지만...졸음이 급속도로 몰려왔다.
자기 전.
그는 습관처럼 드라이기를 키려다가, 깜빡 잠들고 말았다.
***
그렇게 돌아온 평일 오후. 월요일.
띵─동─.
금요일 새벽부터 시작해서, 주말 이틀 동안 허이크 사건과 균방전 새로운 맵 클리어라는 두 가지 일을 마친 크로스보우.
"...."
그는 베개에 얼굴을 묻은 채 미동도 없이 누워있는 중이었다.
띵─동─.
귓가를 울리는 초인종 소리. 그는 끼기긱 얼굴을 들었다.
방음 리모델링을 그의 집에는 불청객과도 같은 소음.
크로스보우는 어기적대며 인터폰으로 향했다.
"누구세요?"
-"아. 올오버에서 나왔습니다."
올 오버에서?
하품을 해대며 문을 열자, 올오버 제작사 문양이 박힌 야구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는 여성이 보였다.
여성 택배기사. 예전이었다면 고개를 갸웃거렸겠으나 요즘은 드물지 않은 일이다. 완력을 보조할 수 있는 기계 팔 같은 외골격이 상용화됐다던가.
"본사에서 보낸 클리어 보상입니다. 크로스보우님 본인이시죠?"
"네. 그런데요."
"싸인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대충 싸인을 마치자 택배기사는 박스를 내밀었다.
"올오버를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네. 수고하세요."
이게 뭐지?
방 안으로 상자를 끌고 들어온 크로스보우는 턱을 쓰다듬었다.
꽤 고급스러운 포장. 맨 위에는 올오버를 나타내는 인장이 찍혀있는 모습.
궁금하지만 지금 열어보기엔 신예지가 없다. 명색이 아이튜버다. 편집자도 카메라도 없이 이런 귀한 소재를 뜯을 순 없는 노릇.
[나]
[바쁘냐?]
[신예지]
[ㅔ?]
[죽어가는 오리 이모티콘]
바쁜가보군. 크로스보우는 머리를 긁적이다 중얼거렸다.
"본의 아닌 이른 기상이구만."
본래라면 혼자서 1대1대전 모드를 즐기겠지만...이틀간의 달림은 제 아무리 크로스보우라고 해도 정신적 피로를 느낄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게다가 오늘은 할 일도 있다. 그는 컴퓨터를 켜 트리키 뷰에 접속했다.
바로 채팅매니저를 뽑는 일이었다.
그간 미뤄왔던 일을 왜 이제서 하느냐? 이유는 간단했다.
어제 균열방어전을 클리어하는 순간 터져버렸던 방송에 매니저의 필요성을 다시금 느꼈던 탓이다.
어제 시청자 수는 8만명 조금 더 넘는 수준.
일전, [불가해 난이도 승격임무] 당시엔 10만명이 넘게 몰려도 방송이 멀쩡했던 걸 생각하면 의아한 부분이다.
"부검(시청자들의 채팅로그나 팔로우목록 따위를 확인하는 일) 딱 대. 쿠쿠루쿠쿠."
모두 채팅창을 관리하는 사람이 없었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평소엔 게임과 동시에 채팅창까지 관리하는 일이 딱히 어렵진 않았지만...어제처럼 전력을 다해야할땐 이야기가 달랐다.
"크보쨩핥짝...크보짱핥짝...여기 있군."
그는 자신의 구독자들을 하나하나 흩어보며 매니저로 점찍었던 시청자를 찾았다.
조금 변태같지만 항상 방송에 들어와 터줏대감 노릇을 하는 시청자. 인근의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실제로 만나기도 했으니 아마 사는 곳도 가까울 터다.
"어디 보자...아이디가...."
어?
그녀의 아이디를 확인한 크로스보우는 얼빠진 소리를 내었다.
'크보쨩핥짝'이란 시청자가 쳤던 채팅들이 주르륵 기억났던 것이다.
-방송 너무 재밌어요ㅎㅎ
-오늘도 잘 보다 갑니다~좋은 밤 되세요!
-힘내세요 크보님ㅠㅠ
분명 멀쩡한 사람이었다.
그 때엔 닉네임도 '보들보들앞발'이었나. 그런 느낌 아니었던가?
"사람이 이렇게 바뀌나."
그는 의아하게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쪽지보내기를 눌렀다.
아무렴 어떨까 싶었던 것이다.
[하실래요?]
대충 제목은 이게 좋겠군. 크로스보우는 작은 장난을 쳐놓고 피식 웃었다. 내용은 [매니저 하실래요?]다.
쪽지를 보내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빠르게 도착하는 답장.
[가능가능씹가능!!! 불꽃가능!!]
"...?"
저렇게 좋아할 일인가. 크로스보우는 회신을 준비했다.
그런데 그 때 잠시 후 다시 도착한 쪽지.
[...아...매니저 얘기구나....]
무슨 생각을 한거야.
그동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걸까.
< 31화-조금은 이상한 인맥 > 끝
ⓒ Read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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