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화-막간의 합방 >
1대1대전 모드에서 만난 상대편.
그녀가 스트리머였다는 걸 알게된 건, 게임이 끝나고 '짬먹을타임'이라는 닉네임으로 친구 추가 요청이 오고 나서였다.
"음. 안녕하세요. 짬탐님 시청자 여러분."
"짬하~크하~."
그러나 자신의 모습이 들켰다는 사실에도 크로스보우는 어깨를 으쓱이고 말았다.
선을 넘는 말을 한 것도 아니고, 지금껏 방송에서 아예 보여주지 않은 모습도 아니었기 때문.
물론, 어째선지 언젠가부터 생겨난 '과묵한 실력파 게이머'라는 이미지와는 조금 상반되긴 했지만....
-크보야 사랑해!
-남자가 방송하는 모습을 보는데 기분이 좋아요...이게 사랑일까요?
-아ㅋㅋ평소에서도 그런거 해주세~여
['크보쨩핥짝'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오팬무?
최소한, 이수아가 공유하고 있는 채팅창에는 오직 좋은 반응 뿐이었다.
"...핥짝님. 제 방송 말고 안 보신다면서요?"
['크보쨩핥짝'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그건 모르겠고 오팬무? 빨리 좀;; 급함
-구아아악
-저 악질쉑 크보만 쫓아다니네
-ㅋㅋㅋㅋ쟤 크보방 진은검(매니저)임ㅋㅋ
-크보 인성좋누ㅋㅋ변태포상충까지 포용ㄷㄷ
-형 형도 냄챙의 길에 빠진 건 아니지...?
크로스보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자기 방송도 아니고, 남의 방송에서 팬티색 따위를 공개할 수는 없었다.
"안 알려드립니다. 비밀이에요."
-아 너무해
그 채팅을 마지막으로 채팅창에서 사라져 보이지 않는 그녀.
그리고 5분쯤 지났을 때였다.
['크보쨩핥짝'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아 이제 됐음ㅋㅋ 그리고 핫클립 떠서 보러온 거ㅋㅋ
-???대체 5분 사이에 무슨 일이?
-설마...?
-현자가 되어서 왔누ㅋㅋㅋㅋ
-아 *발 변태포상충 밴! 밴!!! 밴해!!!!
"...크보님도 고생이 많네요."
"...으음."
크로스보우는 머리를 짚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크보쨩핥짝, 채은아가 저러는 건 하루이틀이 아니었지만, 매번 새로운 레퍼토리를 가져오는 탓에 도저히 적응되질 않았다.
심지어 서로 얼굴을 알기까지 하는데 질리지도 않는걸까. 컨셉도 적당해야하는 법인데.
"근데 크보님은 방송 안키세요?"
"아. 괜찮습니다. 오늘은 휴방이거든요."
그는 스패츠나츠 헬멧 속에서 말했다. 방송인 크로스보우의 모습으로 완벽히 돌아온 모습.
"그래도 돼요? 그럼 오늘 후원 전부 다...."
"진짜 괜찮습니다. 지금까지 메일 무시한 거 보상인 셈 치죠. 오늘은 크로스보우가 아니라 시청자 1 정도로 생각해주세요."
-ㅋㅋㅋ아ㅋㅋ크보놈 편안해보이누ㅋㅋ
ㄹㅇㅋㅋ맨날 7,8만명씩 보다가 천 명 보는 방송오니까 편-안한갑네
-여 스트리머랑 있는데 사심제로ㅋㅋ
-크보님 근데 아이튜브에 올린 강화권이 뭐에요?
"음. 그 얘긴 제 방송에서 알려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정식 합방도 아니고 우연히 짬탐님 만나서 방송에 제가 출연하는거니까요. 짬탐님 위주로 돌아갔으면 좋겠네요."
"어어? 저의 마음을 그렇게 한 번에 자빠뜨리기엔 쉽지 않으실텐데."
"어...?"
-?
-매형 안녕!!
-??ㅋㅋㅋ목소리 무얔ㅋㅋ
-...이 남자! 배려심 깊다!
-설레발여자ㅋㅋ
-이 미연시 재밌네
그렇게 한동안 신변잡기로 어색함을 푼 두 명.
그들은 이내 컨텐츠 이야기로 돌아와 의견을 교환하기 시작했다.
"저는 배틀로얄만 아니면 됩니다."
"그럼 레이드 모드(보스 몬스터를 여럿이서 잡는 모드)로 가실래요?"
-크보있을때 균방전 캐리받죠
-균방전 그 맵 가즈아ㅏㅏ
-레이드모드 오버로드의 위엄 보여주자
"그 맵? 호호. 아니면 크보님한테 1대1 좀 알려달라고 할까? 나 강해져야할 필요가 있어."
-연하남이랑 1대1 개인교습 퍄;
-망치여자...시집을 망친 여자...
-우결on
레이드모드 오버로드? 하긴 1대1에서 실력이 꽤 괜찮았던 걸 생각해보면 충분히 납득가는 이야기였다.
크로스보우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방송 진행을 그저 바라보았다.
"아! 그럼 그거하면 되겠다. 레이드 모드랑 균방전 같이 있는거."
"그런 게 있나보군요."
"균열방어전인데 보스몹 잡는 맵이에요. 저랑 레이드 같이 하는 사람들 모여서 매번 시도하는데 A이상 받아본 적이 없어요."
-ㄹㅇㅋㅋ개어렵
-'그 맵'...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곧 50회차 시도임ㅋㅋㅋ
"괜찮네요. 어차피 균방전 하나 더 깨야했으니까 저야 좋습니다."
"좋아요. 이힝힝."
-10분뒤 스포)차지어택 헛치고~아 솓됐다! 아하니히잉이히잉겡 왜 안맞아허엉엉
-ㅋㅋㅋ이게 왜 들리지?
-아ㅋㅋㅋ짬잘알ㅋㅋ
결정났다.
크로스보우는 그녀에게 권한을 넘기고는 씨익 웃었다.
운이 좋다.
아무 생각 없이 연습이나 할 겸 게임을 돌리고 있었는데, 마치 숙제처럼 남아았던 균방전 그랜드마스터를 해결하고 갈 기회가 생긴 것.
매번 균방전을 할 때마다 거의 혼자서 게임을 캐리했던 걸 생각하면, 스트리머 '짬먹을타임'은 꽤나 든든한 아군.
그리고, 요새 이런저런 이슈의 중심에 서는 바람에, 항상 시청자가 평소보다 훨씬 많은 나날을 보냈다.
그 탓에 힘이 들어갔던 것도 사실.
물론 그로서는 기뻐해 마지않을 시청자 수였지만...하루 쯤은 예전처럼 느긋한 게임도 나쁘지 않겠지.
그는 공유된 채팅창 구석에 떠오르는 시청자 숫자를 보며 웃었다.
[현재 시청자 수 : 1,354명]
얼핏 많다고 생각되어지지만, PC게임 시절보다 게임 자체에 관심도가 폭증한 작금엔 그렇게까지 많지도 않은 숫자였다.
아직까진.
***
"안녕하세요! 여러분의 아이들! 사탕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이세린입니다."
"오."
이게 누구야.
크로스보우는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이수아가 그 맵은 네 명이서 해야한다며 초대한 다른 팀원 두 명.
그건 바로 뿅맛사탕이었다. 정확히는 이세린과 이하린 자매.
"어떻게 왔어요?"
"어...초대받아서...?"
"제가 불렀죠. 세린이 하린이랑 아는 사이 아니에요?"
"안녕하세요."
그렇군. 크로스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보면 짬먹을타임, 이수아와 뿅맛사탕은 친분이 있다고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던 것이다.
둘이 다른 사람이란 것도 알고 있었던 모양.
-와! 자매 방송인!
-트리키 뷰 다크나이트 뿅맛사탕ㄷㄷ;
-크가놈 당황안하는거 무냐
-ㄹㅇㅋㅋ합방했던 사람이 영혼 따로 몸 따로였는뎈ㅋㅋ
언니인 이세린이 동생의 아바타를 뒤집어쓴 채 복수의 칼을 간 걸로 유명해진 자매 스트리머, 뿅맛사탕.
그러나 크로스보우는 당연하다는 듯 세린과 인사를 나눴다. 합방 때보던 것과 외모가 딴 판 수준으로 변했는데 아무렇지 않아하는 모습이었다.
"안녕하세요. 크보님."
"반가워요."
오히려 합방 때의 뿅맛사탕과 똑같은 모습인 하린에게는 어색한 인사를 건네는 크로스보우.
그 모습에 이하린의 눈이 반짝였다.
"얘기 많이 들었어요."
"그렇군요. 어쩐지 귀가 간지럽더라구요."
"네? 아하하. 그런거 아니에요."
-인싸개그on
-ㅋㅋㅋㅋ넘모재밌당ㅎㅎ^^
-크가놈 사탕이 꼬시려는거봐
-금발태닝양아치 크로스보우ㄷㄷ
-퍄퍄;
-ㅋㅋㅋ하여간 트수놈들 짬탐누나는 무시하냐고 아ㅋㅋ
아무튼 대충 인사를 마친 4인의 스트리머.
[SYSTEM]곧 게임이 시작됩니다!...59...58...57....
그런 그들의 눈앞에, 시스템 메세지가 떠올랐다.
"딱 매칭됐음. 준비해요.'
'여긴....'
그 말과 함께, 피부에 와닿는 공기가 확 바뀌었다.
크로스보우는 바뀐 풍경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잠실 백화점?"
꽤 낯이 익은 장소. 그는 바닥을 쿡쿡 밟았다.
"아니, 좀 다르군요."
"뭐가요?"
잠실에 있는 거대백화점이다.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맵 전체에 퍼져있는 듯한 느낌. 크로스보우는 뭔지 모를 꺼림칙한 기분에 인상을 찡그렸다.
"지금까지 해왔던 균방전은 진짜 현실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곳들이었거든요."
"그쵸."
"그건 여기도 마찬가진데요?"
짬탐의 긍정과 하린의 반문.
"물론 그렇습니다만."
그는 다시금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다.
에스컬레이터, 전등, 자동문...모든 것들이 당연하다는 듯 돌아가고 있지만, 그 어디에서도 손님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보통 백화점이 이런가요?"
-여긴 볼 때마다 뭔가 싸하네
-ㄹㅇㅋㅋ잘만듬 공포게임인줄
-이 맵 최고기록 얼마임??
-S랭크ㅇㅇ
환하게 켜져있는 불빛들.
"게다가 맵의 이름도 다른 맵들이랑은 다르네요."
광안대교, 사당역.
지금까지 클리어했던 맵들은 모두 그저 장소의 이름.
크로스보우는 고개를 들어 맵의 이름을 살폈다.
맵, [인류진보기관].
아무도 없는 유령백화점.
그는 피부에 와닿는 싸늘한 온도의 공기를 느끼며 눈을 가늘게 떴다.
[SYSTEM]지정된 위치로 이동하십시오!...30...29....28....
"이쪽이에요."
그들은 이수아가 안내하는 방향으로 향했다.
건물의 지하였다.
[SYSTEM]임무 : 제거
[SYSTEM]인류진보기관은 끔찍한 반인륜적 실험을 서슴치 않는 조직입니다. 이들은 마법으로 거대백화점의 지하에 터를 잡고 인체실험을 거듭했습니다. 이 곳의 지하에서 마침내 태어날 끔찍한 괴물을 제거하십시오.
[SYSTEM]제거한 괴물체 :0/1
과연. 이래서 레이드 라는건가. 크로스보우는 생각했다. 별로 어려울 거 같진 않은데.
그는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때였다.
빰빠밤!!
[SYSTEM]승격 임무가 부여되었습니다!
"...승격 임무 떴네요."
"오. 보여주세요."
그에 대답하듯 펼쳐지는 임무창.
[SYSTEM]그랜드 마스터로의 여정 : 승격임무
[선택한 게임 : 더 원 그라운드]
[승격임무!]
[단 한 번도 피격당하지 않고 임무를 클리어하십시오!]
[난이도 : 지옥]
"...."
이건 또 뭐야.
크로스보우는 잠시 미션창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
-ㅋㅋㅋㅋ아ㅋㅋㅋㅋ
-맞다 승격임무 뜰 차례랬지?
-ㅋㅋㅋㅋㅋㅋ
-크보 승격임무 운 진짜ㅋㅋㅋ지지리도 없네
-지옥이면 불가해 바로 밑임?
-ㅇㅇㅋㅋㅋㅋ
-어이어이 얼마나 똥캐릭인거냐고 이 스트리머~~~~~
-???: 뭐야 ㅅㅂ 살려줘요
"...뭐지? 혹시, 운이 없나? 똑똑~ 운빨님 계세요?"
"음...화이팅. 그래도 불가해보단 낫잖아요?"
"크보님이면 깰 수 있을거예요."
그걸 공유받은 시청자들과 팀원들의 반응에 크로스보우는 입맛을 다시곤 말았다. 불가해 난이도도 클리어했던 사람이니, 아마 별 무리없이 클리어할거라 생각하고 있는게 분명하다.
"뭐...이젠 익숙하군요."
-똥겜은...익듁하니까...
-ㅋㅋㅋ똥믈리에 똥칸에 빠질 위기
그러던 때였다.
위이이잉────.
경보음 소리. 백화점의 지하. 좁은 통로. 그들을 가두듯 내려오는 차폐벽.
온 사방을 붉게 물들이는 불빛.
"어떻게 해요?!"
"일단 기다려봐."
지하 통로. 차폐벽으로 막혀 비좁아진 공간.
크로스보우는 기관단총 두 자루를 주무기로 택했다.
붉은 불빛 아래, 마지 귀신같이 떠오르는 글귀.
[Human Progress Institution]
[PATH FINDER]
'별 겉멋이군.'
그는 뭐가 나오든 총알로 갈아버리리라 다짐하며 이상한 글귀가 새겨져있는 차폐벽을 바라보았다.
곧, 게임이 시작된다.
< 42화-막간의 합방 > 끝
ⓒ Read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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